韓國儒敎冊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
파일:Attachment/unesco-memoryoftheworld.gif | ||
이름 | 한글 | 한국의 유교책판 |
영어 | [1] | |
프랑스어 | ||
국가·위치 |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 | |
소장·관리 |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 | |
등재유형 | 기록유산 | |
등재연도 | 2015년 | |
제작시기 | 1460~1955년 |
1 개요
조선왕조 시절 718종의 서책을 간행하기 위해 목판에 판각한 책판(冊版).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305개 문중과 서원에서 기탁한 총 64,22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북 안동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2]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줄여서 유교책판으로 자주 불리지만 나무위키에서는 유네스코 공식 등재 명칭인 한국의 유교책판(Confucian Printing Woodblocks in Korea)으로 항목명을 작성하였다.
2 특징 :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3]
• 공론(公論)
유교책판은 모두 ‘공론’에 의해 제작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공론(公論)’이란 당대의 여론 주도층인 지역사회의 지식인 계층의 여론을 뜻한다. 때문에 서책 전체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부분적인 내용에 관한 것이든 공론에 어긋나는 내용은 출판이 제한되었다. 이렇게 공론에 따라 만들어진 목판은 파손되지 않게 후대를 위하여 보존되었고 이에 따라 후대는 스스로 해당 내용을 출판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었다. 이것은 조선의 기록문화에서만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하고도 독특한 특징이다.
• ‘공동체 출판’ 네트워크
책판으로 인쇄된 서책들은 지역 공동체의 주도 아래 간행되었다. 공론의 주도자들은 문중-학맥-서원-지역사회의 주요 인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유교책판을 판각할 계획부터 판각 내용을 선정하고, 판각 과정과 완성 과정을 감독하고, 서책을 인출하고 배포하는 모든 과정을 담당하였다. 유교책판의 제작에는 개인이나 문중이 독자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비용이 필요한데, 그 비용까지도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이 서로 분배하여 부담하였다. 유교책판의 일관된 주제는 유교 공동체 사회의 구현이었으며, 이러한 내용을 담은 유교책판 역시 공동체 출판이라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 집단지성(集團知性)
유교책판의 학문적 의미는 500년 이상 지속되어온 ‘집단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learning)’에서 찾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각각의 저자들은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출간하였는데, 이러한 학문적 성과는 책판에 담겨 그들의 제자들에 의해 다음 세대에서 그 다음 세대로 전승되었다. 한편 제자들은 스승의 학문적 성과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토론과 비판을 거쳐 그 내용을 반영하여 전승하였고 이는 모두 책판에 수록되어 전해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유교책판에 수록된 인간답게 살기 위한 인륜공동체의 건설이라는 주제는 시대에 따라 발전하고 보다 구체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유교책판을 통하여 학자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가치는 세계사가 추구하였던 보편적인 인간 가치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된 유교책판은 각각의 서책을 인쇄할 수 있는 유일한 판목(板木)들이다. 멀게는 550년 전의 것도 있으며 가깝게는 60년 전에 제작된 것도 있는데 각각의 책판들은 단 한 질만 제작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유일한 원본’이다. 활자본과 달리 판목에 직접 새긴 목판본으로서 후대에 새로 제작된 번각복(飜刻本)도 거의 없는 것으로서 절대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유산이다. 때문에 이 책판이 어떤 방식으로든 훼손된다면 550년 동안 지속되었던 집단지성의 전통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3 기타
가장 오래된 책판은 1460년 청도의 선암서원에서 판각된 배자예부운략(排字禮部韻略)이다. 가장 최근 것은 1955년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목판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은 우리나라 팔만대장경과 베트남 응웬왕조 목판에 이어 세 번째다.
아직 유교책판 수집이 모두 완성된 것은 아니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64,226장의 목판은 대부분 영남지방, 그중에서도 경북지방 문중에서 나라를 위해 기탁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에 이용두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축하 인터뷰에서 "현재 유교책판은 대부분 영남지역 문중에서 기탁했지만, 세계기록유산 등재 후 전국에서 위탁 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작품 보관에 더 신경쓰겠다"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행사를 경북 안동에서 열었다.#
안타깝게도 망실한 유교책판이 많다고 하는데, 근현대 격변기를 거쳐오면서 땔감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요철(凹凸)같은 글씨 때문에 빨래판으로도 쓰여서 사라진 책판이 매우 많다고 한다. 2002년부터 '목판 10만 장 수집운동'을 통해 기부받은 것들인데 목표인 10만장을 채우지 못했다. 물론 이 6만장으로도 유네스코에서는 놀라워했다고 한다. 학자들은 등재된 6만장 외에도 전국에 대략 10만장 정도의 책판이 더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이 약 15만장은 남한 기준으로, 북한까지 합치면 얼마나 더 많은 책판이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북한은 유교와 조선 등에 매우 적대적인 환경인데다 중국처럼 광역 데이터 말소를 시전할 수 있는 독재 공산주의 체제 특성 상 유교책판이 많이 남아있을 확률은 낮은 편이다.
책판의 가격을 유추한 기사가 있다.# 책판 1장 제작비용이 현재 가치로 약 250만원 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퇴계문집의 경우 문중에서 초간본 691장과 후기판본 1천74장을 보관하고 있는데 대략 현재가치로 30억원 정도를 썼을 거라고. 이 때문에 전대 왕조나 다른 나라에서는 일반 서적 정도면 모를까, 책을 뽑아내는 판각 같은 것은 큰 규모의 절이나 기관 정도가 아니면 소장이 불가능했지만 조선에서만 특이한 공동체 네트워크를 통해 일반 개인 문중들도 책판을 다수 소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렴한 가격의 대규모 석판 인쇄 기술이 확대 보급된 현재에도 목판 하나를 판각하는데 400만원이 든다고 하는데 역시 일반 문중 수준에서 보유하긴 힘든 가격이다.
다른 기사에서는 연인원 2000여명과 4144냥(판각비 463+인쇄비 3681냥)이 들었다고 한다. 쌀로 환산하면 2만4864말에 달하며, 현 시가(8㎏ 말당 2만5000원)로 6억2000만원 정도라고 계산했다.
등재 과정에서 중국이 한국의 유교 관련 기록유산 등재를 불쾌해 하는 것 같다는 비공식적 얘기가 흘러나왔었다. 유교의 본산지인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 때 유교 경전과 책판 대부분이 실전되었다고...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중국이 제출한 난징대학살 문건이 유교책판과 동시에 등재가 확정되어서 중국 쪽에서도 일단 축제 분위기라는 모양.
2015년 12월에 유교책판 중 퇴계선생문집 책판 709장을 보물로 지정하기로 하였다.##- ↑ Confucian Printing Woodblocks in Korea
- ↑ 이곳에는 영남지방의 고서 135,557권, 고문서 228,495권, 목판 65,502장, 현판 1,056장, 서화 3,816장, 기타 국학자료 2,790개 등, 총 43만 7,216개의 조선시대 국학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지정문화재로는 국보 1점(징비록), 보물 19종 1,092점, 시도유형문화재 26종 1,918점, 문화재자료 5종 216점, 등록문화재 691점이 있다. (2015년 기준)
- ↑ 내용출처 세계기록유산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