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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관련된 위안부 문제 | |||||||||||
한국군 위안부 | 한국정부의 위안부 | 일본군 위안부 |
1 개요
그냥 희생양이죠 뭐. 가슴 아프죠. 가슴 아픈 역사죠.
전직 공무원, 토벌참여, 그것이 알고싶다.E1008.151107.꽃들에 관한 인권보고서 2부 -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 , 54:14 ~ 54:19
그 때는 위안부라고 했거든요
김선희 (가명) 전직 '몽키하우스' 간호사의 증언, 같은 방송, 51:59 ~ 52:06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절대로 그냥 잊혀지지 않도록 조속히 해결해야할 대한민국의 흑역사
본 문서는 위안부라는 이름이 쓰인 전부가 아니라 정부의 개입에 따른 위안부 문제를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시기 상으로는 1961년부터다.
1.1 한국군 위안부, 양공주 문제와 다른 점
- 이승만 정부, 허정 정부, 장면 정부 시절에도 양공주는 위안부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때는 정부개입은 전혀 없었다. 한국군 위안부라는 게 존재하지만 이것이 강제성이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1961년 이후 문제는 정부가 직접 개입했다.
- 6.25 전쟁 당시 한국군 위안부에선 최소한 1961년 이후 위안부 문제 같은 반인권 행위가 일반적이거나 조직적이었다는 자료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서를 봐도 알 수 있다. "...국군 ‘위안부’를 동원한 주된 방식이 강제연행이었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일부 장군들은 여성들을 ‘사창가’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데려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또한 전쟁의 혼란과 절대 빈곤이라는 당시의 절망적 상황을 감안하면, 국군 전용 ‘위안소’에 소속된 여성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성판매여성들이 ‘자발적 동기’로 성을 팔았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위안부’의 ‘자발적 동기’가 없었다는 것만으로는, 다른 성판매여성과 구별되는 국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입증하기에 불충분하다." - 〈한국전쟁기 성매매정책에 관한 연구〉 , 박정미. p.37. 양공주 문서 r70에서 복붙함. 전쟁 때도 없던일이 1961년 이후에 벌어졌던 것이다.
- 위키백과에서 '미군에게 생포된 인민군 간호원'이 위안부가 됐다는 서술이 있는데 그 출처란 게 오마이뉴스니 근거가 있는 지 의문이다. 현재까지 정부개입이 확인된 건 1961년 이후 위안부 문제다. 물론 한국군 위안부에서도 강제납치된 사례에 대한 증언은 존재하나 그게 대량이나 조직적이었다는 근거는 없다.
2 사건의 실체
1961년에 정부는 윤락행위 방지법을 제정해서 성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이걸 면제해주는 지역을 설정했다. 그 지역은 윤락행위 방지법을 면재해준 것[1] 그 과정에서 정부가 실제로 개입해서 위안부들을 관리했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정부의 개입에 대한 근거는 이미 여러번 나와있다.
3 정부 개입의 증거
3.1 '토벌'과 환원
3.1.1 '토벌'이 무엇인가
당시엔 '토벌'이라 해서 성노동자 여성들을 잡아갔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것이 굉장히 강압스러웠다.
미장원에 있다가도 막 잡아가고 그랬다니까 토벌 나오면. (취재진: 토벌이요?) 토벌 나와서 막 잡아다가 다 집어넣는 거야 거기다.
홍미자(가명) 증언, 같은 방송, 03:43 ~ 03:48
경찰관도 있고 남자 몇 사람이 왔어요.
박인순 증언, 같은 방송, 03:43 ~ 03:53
토벌이라고, 토벌 나왔다! 저기서 먼저 걸린 사람이 소리 질러요.
김영자 (가명) 증언, 같은 방송, 03:54 ~ 04:04 그러면 죄 도망가는 거예요.
지옥이야 지옥 거기는. 몇 달을 거기서 썩고 그냥 주사 맞고 약 먹고 주사 맞고 약 먹고. 얼마나 흉악한지
박인순 증언, 같은 방송, 10:42 ~ 10:48
성병 없는 그 표시가 딱 찍혀져 있잖아. 이번 금요일에 검진받았다고. 합격하면 합격도장을 찍어주니까 괜찮고. 이거 합격도장도 없고 아무것도 도장이 안 찍혔으면 잡아가고.
박미진 (가명) 증언, 같은 방송, 11:08 ~ 11:18
검진 안 하면 토벌할 때 검진 패스 보자고 해서 도망이 안 찍혔거나 검진 패스가 없거나 그러면 잡아가요. 잡아서 무조건 3일 거기 있었어요.
최경미 증언, 같은 방송, 11:43 ~ 11:49
3.1.2 격리치료 필요여부
당시 격리치료가 필요했을까? 이것에 대해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전문가에게 문의를 한 바 있다.
(취재진: 격리 치료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없습니다. 성병이기 때문에 성관계로 전파되는 거고 공기 중으로 전파된다거나 이런 게 아니기 때문에요. 그 환자분을 특별하게 격리해야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이은정, 감염내과 전문의, 같은 방송, 11:58 ~ 12:09
그러니깐 단순히 성병을 막으려는 거라면 저런 걸 할 이유가 없다. 피해자의 성노동 행위가 자의가 아니라면 그냥 보호하거나 집에 돌려보내면 그만이고, 자의로 했다면 콩밥을 먹이면 그만인데 이런 성병 검사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3.1.3 환원
성병이 성황을 하고 성병 관리에 대해서 걸리면 전력이 약화하잖아. 우선 그 미 사병들이 이 성병관계를 대한민국 정부에서 처리해야 할 거 아니냐 미 8군에서 한국 정부에 얘기를 해서 한국 정부에서 성병 진료소를 만들었어요. …… 셔틀버스에 태워다가 일주일 동안 치료해 치료에 이상이 없으면 영업소에다 다시 환원을 시켜줘(취재진: 영업소로요?) 집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자기 업소로 다시 돌려보내는 거지. [2]
전직 A시 최고위 공무원, 같은 방송, 12:56 ~ 13:50
다시말해 성노동자 여성들을 강압스럽게 잡아가서 격리치료 해놓고는 끝나면 그대로 업소로 돌려보낸 것이다.
3.2 페니실린 쇼크와 면책
3.2.1 피해자들 증언
당시 페니실린 치료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토벌'하여 감금해놓고 했는데 그게 굉장히 폭력스러웠다. 심지어는 사망자도 여럿 나올 정도였다.
사람이 죽었는데! 내가 그걸 봤다니까요!
김숙자, 같은 방송, 16:29 ~ 16:33
그게 몸에 쇼크 시험을 해야 하는데 안 했나 봐 그 의사가 그거를 맞고 한 30분 지났는데 죽었어요. 나 그 여자 죽는 것도 봤어요. 쇼크 받아서. 놓고 가만있다가 조금 한 10분 정도 됐나. 온 사지를 다 떨어요. 떨더니 죽더라고요. 그 뒤로부터는 그 페니실린이 너무 무섭데.
김숙자, 같은 방송, 16:39 ~ 17:01
3.2.2 문서
이런 내용들은 피해자들의 증언으로만 전해졌다. 그러다 그 증언을 증명하는 실제 문서를 찾았다. 1978년, 당시 몽키하우스를 관할하던 보건사회부는 보건부장관에게 협조공문을 보냈다.[*그것이 알고싶다.E1008.151107.꽃들에 관한 인권보고서 2부 -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 18:24 ~ 18:33
파일:그것이 알고싶다.E1008.151107.꽃들에 관한 인권보고서 2부 -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HDTV.H264.720p-WITH.mp4 001113920.jpg
경유 수신 참조: 검찰총장발신: 법무부장관
제목: 페니실린 과민성쇼크사고 처리
보건사회부장관으로부터 별첨과 같이 페니실린 과민성쇼크사고 처리에 관한 협조요청이 있어 이를 송부하니 업무에 참고하시고, 이러한 유형의 사고를 수사할 때에는 특히 신중을 가하도록 하시기 바람첨부 보사부 만성 1433.4-1689(78. 2. 8) 공문사본[3]
파일:그것이 알고싶다.E1008.151107.꽃들에 관한 인권보고서 2부 -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HDTV.H264.720p-WITH.mp4 001140421.jpg
파일:그것이 알고싶다.E1008.151107.꽃들에 관한 인권보고서 2부 -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HDTV.H264.720p-WITH.mp4 001147962.jpg
1433. 4 - 1689 (중간 숫자 판독불가) 1978. 2. 3수신: 법무부장관
제목: 페니실린 과민성 쇽크 사고 처리에 대한 협조요청
2. 본 사업수행에 필수적인 페니실린 약제 사용에 있어, 일분 일선진료의사들이 페니실린 과민성 쇽크사고 발생으로 페니실린 주사행위를 기피함으로써 성병 관리 사업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바,
……의료인으로서 환자관리상 주의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였을 경우에는 이에 대하여 면책하여 주실 것을 귀부에 협조요청하오니 국가성병 관리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하시어 이에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4]
페니실린 과민성 쇼크가 발생한 경우에 필요한 응급조치를 다 한다면 면책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성병 퇴치를 위하여 페니실린 투약이 불가피한 실정임이 인정되므로 수사를 함에 있어 신중을 기하도록 관할 검찰에 지시할 것임을 첨언합니다.
당시 법무부의 회신[5]
위에서 봤듯이 이 성병은 성매매를 못하게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해야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정부는 성노동자 여성들을 업소로 돌려보냈다. 그런 과정에서 피해자한테가 쇼크가 난다해도 면책할 수 있게 했다. 빼도박도 못하는 개입의 증거다.
3.3 1971년 11월 19일 한미 합동위원회 비망록
파일:그것이 알고싶다.E1008.151107.꽃들에 관한 인권보고서 2부 -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HDTV.H264.720p-WITH.mp4 001968956.jpg
기지 주변 지역의 성병 보균자가 완치될 때까지 치료와 격리를 집중 강화할 것을 권고한다.[6]
파일:그것이 알고싶다.E1008.151107.꽃들에 관한 인권보고서 2부 -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HDTV.H264.720p-WITH.mp4 001975445.jpg
직업 여성들은 주 2회 성병 검진을 받게 된다.[7]
미군기지와 시당국은 감염된 여성들의 명부를 교환하는 것을 유지해오고 있다.[8]
3.4 대통령 개입
파일:그것이 알고싶다.E1008.151107.꽃들에 관한 인권보고서 2부 -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HDTV.H264.720p-WITH.mp4 002150419.jpg
대통령 (서명 되어있음) 77.5.21977년 기지촌 정화 대책[9]
당시 박정희는 모른다고 하였다가 사인이 발견되자 너무 바빠서 사인만 하고 내용은 읽지 않고 넘겼다며 말을 바꾸게 된다.
파일:그것이 알고싶다.E1008.151107.꽃들에 관한 인권보고서 2부 -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HDTV.H264.720p-WITH.mp4 002159481.jpg
성병관리 불철저- 진료소의 시설, 장비, 요원 부족
- 검진 및 진료방법의 낙후, 관련약품 부족- 윤락여성 전용 아파트 건립 문제[10]
4 위안부들의 자의성 여부
4.1 피해자들 증언
다른 사람들도 나오는 거야? (상대자: 얼굴 나오는 거 두 사람은 싫어서 안 나오고 언니도 그렇게 해요.) 나는 얼굴 나와도 괜찮아. 뭐 하러 속여! 아니야 나는 그런 속일 필요가 없어.…… (취재진: 시작은 어떻게 하다가 시작하시게 된 거예요?) 소개소, 서울역 소개소. 어떤 여자가 내가 배고프니까 짜장면을 사주는 거야. (취재진: 짜장면 두 그릇이요?) 아니지. 세 그릇이라고 그랬지. 나한테 짜장면 세 그릇 사준 여자가 데리고 갔다고요. 배 좀 안 고프게 해달라고 그랬더니 자기가 소개해준다고. 그때 돈이 얼마였느냐면 15만 원. 아니, 15,000원. 15,000원에 팔려간 거야, 내가. (취재진: 들어오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다 잡혀 들어온 사람들이었어요?) 다 팔려온 거지 소개소에서. 직업안내소에서 우리를 판 거지.
박인순, 같은 방송, 39:53 ~ 41: 17
'왜 너희가 좋아서 온 거 아니냐?' 이렇게 물어보는데 이 산골에 기지촌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그 시절에 길거리에서 미군 한 명도 보기 힘든 그런 시대였는데 어떻게 알고 여기를 왔겠어요? 직업을 알선해주고 그리고 숙식을 제공한다, 뭐 직업소개소가 있더라고요. 들어가니까 거기서 이제 이쪽으로 해준거지. (처음에는 이런 업소인 줄 모르고……)네, 모르고 왔죠.
홍미자(가명), 같은 방송, 41:27 ~ 41: 52
처음에 돈 벌러 그렇게 그런데 가려고 누가 그래요? 그런 사람 하나도 없을 것 같아요. 그렇죠? 소개소에 간 그게.
최경미(가명), 같은 방송, 41:53 ~ 42:03
억울하니까 그렇죠. 억울하잖아요. 다 단속을 해줬어야죠. 우리는 진짜 나이도 어리고. 우리가 포주들한테 이렇게 당하고. 그런 거 나라에서 신경 쓰지 않았잖아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기 낳고 가정도 갖고. 그렇게 살았으면 보통 사람들처럼
최경미(가명), 같은 방송, 48:23 ~ 48:55
4.2 주변인들 증언
'몽키하우스' 그러면 이제 감옥을 얘기하는 건데 사실 비슷한 거지. 거기 가면 못 나오는데 그게 감옥이지 뭐.
'몽키하우스' 인근 주민의 증언1, 같은 방송, 00:56 ~ 01:05
여자들이 거기 매달려서 막 우는 소리 지르고 뭐라고 그러니깐 '몽키하우스'라고 (취재진: 원숭이가 매달린 것 같다고 해서요?) 그렇지요. 철장을 해놨잖아, 이렇게. (취재진: 철장으로요?) 네. 못 도망가게. (취재진: 교도소처럼요?) 네. 교도소나 마찬가지예요, 교도소.
'몽키하우스' 인근 주민의 증언2, 같은 방송, 01:06 ~ 01:20
막 뛰어넘고 울구불고 난치 쳤지. 왜냐하면, 일명 교도소나 마찬가지잖아. 왜 이렇게 철조망 해놓고. 많을 때는 한 백여 명도 있었을걸? 실오라기 하나도 안 입고 그냥 발가벗고. 그냥 막 들고 뛰어. 그러면 자기가 잡히지 않겠지 해서. 그리고 이제 2층에서, 굉장히 높아요. 이 건물 자체가. 그러다 떨어져서 탈출하다가 허리 다치고.
'몽키하우스' 인근 주민의 증언3, 같은 방송, 01:37
공보실에서 근무했어요. 67년부터 96년도까지.……이런 얘기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는데 한 사건이 있었어. 미니버스를 운영했는데 그 차를 갖고 나가서 이제 여러 사람이 단속되니까 그 차에다 태워서 오다가 커브 도는 데서 이제 속도를 줄일 거 아니야. 그런데 이 여자들이 (몽키하우스에) 들어오면 갇히니까 도망가려고 달리는 버스에서 그냥 창가에서 뛰어 내려서 몇 사람 목숨 잃고
전직 공무원, 토벌참여, 같은 방송, 04:39 ~ 05:21
5 밝혀진 공식명칭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위안부라는 명칭은 국가의 공식 명칭이었다.
5.1 전직 '몽키하우스' 간호사
저희는 그냥 당연히 하는 건 줄 알았죠.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었는데 미군을 위해서 했던 거 같아요. 미군을 위해서. (취재진: 미군에게 깨끗한 성을 공급하기 위한?) 네 그랬던 거 같아요.
김선희 (가명) 전직 '몽키하우스' 간호사의 증언, 같은 방송, 51:33 ~ 51:45
그 때는 위안부라고 했거든요.(취재진: 위안부요? 미군 위안부라고 표현을) 미군 상대하는 사람들을 위안부라고 했었어요. 그 때 그렇게
김선희 (가명) 전직 '몽키하우스' 간호사의 증언, 같은 방송, 51:59 ~ 52:06
국가에서 한 거죠. 따지고 보면 국가에서 지시가 내려오니까. 여기에서도 그렇게 한 거죠.
김선희 (가명) 전직 '몽키하우스' 간호사의 증언, 같은 방송, 52:23 ~ 52:28
5.2 문서
파일:그것이 알고싶다.E1008.151107.꽃들에 관한 인권보고서 2부 -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HDTV.H264.720p-WITH.mp4 003150041.jpg
1974년도사업지침전염병관리 [11]
2. 검진회수1) 임질
위안부, 밀창 주2회
땐사 주1회
접대부 2주1회[12]
6 사건에 대한 반응
6.1 민족주의 세력의 위선
이 사건에 대한 한국 민족주의자들의 태도 또한 문제인데, 친정부 민족주의자들은 이걸 민족주의로 미화했다. 반국가 민족주의 세력(예: 북한)은 이것들을 '미국 탓', '제국주의'라는 해석을 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6.1.1 미화 세력
오산 기지촌에 있는 송탄 직업부녀회 회관 벽에는 이런 슬로건이 있다.
명심하자! 지금 우리의 마음씨 몸차림 행동이 그대로 3천만민족의 흥망과 직결되어 있음을!
위안부들 뜯기는 달러에의 과녁, 매일경제, 1969.04.24 기사
6.1.2 한민족 피해자 코스프레 세력
- 요악하면 한국 측 가해 잘못을 아예 부정하고 가해주체를 미국으로 설정해놓은 것이다.
6.1.2.1 한국 내
일부 친정부, 친국가 민족주의 세력은 이 사건을 미화하고 숨기려고 하였으며 일부 반정부, 반국가 민족주의 세력은 이게 다 미제탓이라능. 한민족은 피해자라능이라면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한국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으로 커진 게 90년대 부터인데, 당시에는 이걸 순수 인권이 아니라 민족주의, 반제국주의 프레임으로 접근했다.
일본군 위안부문서와 관련해서 글자의 수가 현저하게 적은 등 매우 적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서이다.일본군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되는 심각한 역사적 문제이지만 일본군 위안부는 합의를 통해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된만큼 앞으로는 한국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욱 비중있게 다뤄줘야 할 것이다.
6.1.2.2 북한
북한도 마찬가지로 모두 미국 탓을 하고 있으며 '미국이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미국이 조선 민족에게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에 시효란 있을 수 없고, 미국은 왜 우리 민족이 미제 침략자를 소멸하자면서 대결전을 준비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는 선군조선의 강위력한 화력 타격수단들이 보여주는 엄숙한 경고"라면서 한민족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니들 왜 그러냐
6.2 국수주의자들의 부정
국수주의자들은 피해자분들을 창녀라 표현하며 어디서 많이 본 반응을 보였다. 아래 링크된 연합뉴스 덧글에도 그런 인간들을 볼 수 있다.
7 이후
7.1 국가상대 집단 소송
이후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