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역대 국왕 | ||||
초대 해모수 | ← | 2대 해부루왕 | → | 3대 금와왕 |
시호 | 미상 | |
성 | 해(解) | |
휘 | 부루(扶婁)(?) | |
생몰년도 | 음력 | ? ~ 60년 |
재위기간 | 음력 | ? ~ 60년 |
解扶婁王
1 개요
삼국유사의 부여 건국 설화에 의하면 북부여를 건국한 시조 해모수의 아들이라 전해진다. 나라의 도읍을 옮겨서 동부여를 건국한 것으로 유명하다.
2 일생
2.1 출생
삼국유사에 따르면 하늘에서 오룡거를 타고 내려온 해모수는 흘승골성(訖升骨城)을 도읍으로 삼고 북부여를 건국하였으며 아들을 낳았다.[1]
해모수는 아들의 이름을 부루(扶婁)라 지었으며 그 성을 해(解) 씨라 하였다. 이리하여 해씨성과 이름을 얻게 된 해부루는 장성하여 북부여의 왕이 되었다.
2.2 동부여 건국
그러던 어느날 신하 아란불(阿蘭弗)의 꿈에 천제(天帝)가 나타나 "장차 나의 자손으로 하여금 이 땅에 나라를 세우려고 하니 너는 이 곳을 피하라. 동해 해변에 가섭원(迦葉原)이라는 땅이 있는데 토지가 기름져 왕도를 세울 만한라."라는 계시를 내렸다.
아란불이 왕에게 이를 고하자 해부루는 이를 따라 나라의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다.[2][3]
2.3 아들을 얻다
이후 해부루는 나이가 들어서도 후사를 이을 자식이 없는 것을 고민하여 산천에 제사를 지내 아들을 얻기를 빌었다. 그러자 해부루의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어 큰 돌 앞에서 멈추어 서더니 눈물을 흘렸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해부루가 돌을 치워보니 그 아래에 황금빛 개구리 형상의 아이가 있었다. 해부루는 이 아이를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준 아들이라 하면서 이름을 금와(金蛙)라 짓고는 태자로 삼았다.
2.4 죽음과 사후
해부루왕이 언제 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해부루왕이 죽은 후에 그 아들인 금와왕이 부여의 재위에 올라 부여를 다스렸다.
3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사극 주몽에서는 배우 박근형이 연기하였다. 극중 해부루왕은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군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한나라와 화친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해모수가 해부루왕의 아버지라는 역사적 사실은 짤렸다. 그래서인지 아들인 금와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고조선 부흥군을 이끄는 해모수와 의기투합하자 이를 굉장히 못마땅해하는 듯한 모습도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