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모수

解慕漱

부여의 역대 국왕
부여 건국(?)초대 해모수2대 해부루왕
시호미상
해(解)
이름모수(慕漱)
생몰년도음력? ~ ?
재위기간음력? ~ ?

1 개요

한국 신화의 등장인물.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북부여를 건국한 부여의 시조이나 동시에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의 아버지라고도 한다. 그리고 대소왕의 증조할아버지라고도 한다.증손과 아들이 동년배인 이 콩가루 집안.

여러 고대사 관련 기록에서 천제(天帝), 혹은 천제의 아들로 묘사되며 부여고구려의 건국 설화에 모두 등장하는 등 여러모로 신비에 싸인 신화적 인물이다.

2 관련 기록

조선왕조실록》 평양부편

천제(天帝)가 태자를 보내어 부여(扶餘) 고도(古都)에 내리어 놀게 하니, 이름이 해모수(海慕漱)이다. 〈해모수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오룡거(五龍車)(5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종자(從者) 100여 인은 모두 백곡(白鵠)(흰 고니)을 탔는데, 채색 구름이 그 위에 뜨고, 음악소리가 구름 가운데에서 울렸다. 웅심산(熊心山)에서 머물러 10여 일을 지내고 비로소 내려왔다. 머리에는 오우(烏羽)의 관(冠)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龍光劍)을 찼는데, 아침이면 일을 보고, 저녁이면 하늘로 올라가니, 세상에서 이르기를, '천왕랑(天王郞)'이라 하였다.

라고 되어 있다.

이후에 하백의 세 딸 중 유화와 정을 통해 결혼하고자 했으며, 하백과 재주를 겨루어 승리했다. 그런데 혼자 승천해버려서(…) 가문을 욕되게 하였다고 화가 난 하백유화를 추방했다.

삼국유사》의 북부여 항목에는

옛 기록(古記)에 이렇게 말했다. "전한(前漢) 선제(宣帝) 신작(神爵) 3년 임술(壬戌; 전 58) 4월 8일에 천제(天帝)가 흘승골성(訖升骨城)(대요(大遼) 의주(醫州) 지경에 있음)에 내려왔다. 오룡차(五龍車)를 타고 도읍을 정하여 왕이라 일컫고 국호를 북부여(北扶餘)라고 하고,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解慕漱)라고 했다.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扶婁)라 하고 해(解)로 씨(氏)를 삼았다. 왕은 뒤에 상제(上帝)의 명령으로 도읍을 동부여(東扶餘)로 옮겼다. 동명제(東明帝)는 북부여(北扶餘)를 계승하여 일어나서 졸본(卒本州)에 도읍을 정하고 졸본부여(卒本扶餘)가 되었으니, 이것이 곧 고구려(高句麗)의 시조(始祖)이다(아래에 보인다).출처

 
라고 되어 있다.

한편 역시 삼국유사고구려 항목에는

《단군기(檀君記)》에는 "단군(檀君)이 서하(西河)의 하백(河伯)의 딸과 친하여 아들을 낳아서 부루(夫婁)라고 이름했다"고 했다. 지금 이 기록을 상고해 보면 해모수(解慕漱)가 하백(河伯)의 딸과 사사로이 통해서 주몽(朱蒙)을 낳았다고 했다. 《단군기(檀君記)》에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夫婁)라고 했다" 했으니 그렇다면, 부루(夫婁)와 주몽(朱蒙)은 배다른 형제일 것이다.

 
이런 기록도 있다.

전체적으로 신적인 존재인 듯하며, 고구려부여 일대에서 시조신으로 모셔진 듯 하다.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의 기록에서는 단군과 동일시 되었는데, 현대에서는 이 부분은 별로 신경 안 쓰고 있다.

이처럼 여러 설이 있어서 '해모수'라는 이름이 북부여의 건국 시조일 때는 특정인물의 고유명사로 취급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 국가의 건국 시조의 호로 받아들여졌다라는 설도 있다. 마치 로마 제국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생전에는 인물의 이름이었으나, 사후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황제'를 지칭하는 명사화가 되어 이후 카이저,차르의 어원이 된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스스로를 '해모수'라고 지칭하는 인물은 북부여의 시조인 '해모수'와 해부루가 동부여로 수도를 옮긴이후 그 옮기기 전의 땅으로 어디서 왔는지 알 길이 없는 자인 '해모수'가 스스로를 동명이라 칭하여 나라를 세웠다고 하는 '해모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몽의 아버지가 되는 '해모수' 등 다른 인물이 셋이나 된다. 그래서 논란의 대상.

태양신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침에 왔다가 저녁에 간다든가, 유화부인이 햇빛으로 임신/혹은 임신 중에 햇빛이 배를 비추는 상황, 오룡거를 몰고 다닌다든가 하는 것에서.

다산 정약용은 아방강역고에서 해모수를 부여의 건국자인 동명왕과 동일 인물로 보았다.[1]

3 대중문화 속의 해모수

3.1 사극 주몽의 등장인물

배우허준호.

주몽의 친아버지이자 금와의 더없는 벗.

작중 가장 기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운명. 다물군의 대장으로 옛 조선의 유민들을 한나라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인생을 바쳤지만 결국 한나라에 사로잡혀 눈알이 뽑혀 두눈이 멀게 되어 처형 위기를 맞는다. 그러다가 그나마 친구 금와에 의해 탈출하는듯 싶더니, 이번엔 화살맞고 절벽으로 떨어져 죽었나 싶었다. 그러다 알고보니 부여 신녀 여미을에 의해 20년간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수미산 동굴 감옥에 갇혀 있었다. 뭐 이런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 유화를 만나고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 주몽이 알고보니 자신과 유화 사이에서 낳은 친자식임을 알게되고 기뻐하였다.

그러면 이제 부여의 황제이자 해모수와 목숨까지 나눌정도의 벗인 금와만 만나면 어떻게든 구원받을수 있었지만 해모수와 금와가 만나는 것을 막으려는 대사자 부득불과 왕자 대소의 계략에 의해 처참하게 사망.

유화에게 해모수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해모수를 만나러가던 금와는 결국 대화도 나눠보지 못한채 죽은 해모수의 시신을 안고 오열한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정말 해모수만큼 불쌍한 사람이 또 있을까 들정도로 기구한 운명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과 한번밖에 만나지 못하고 주몽이 자신의 아들인걸 깨달았지만 부자의 정을 나누지 못한채 며칠안가 사망. 그리고 서로를 위해 목숨마저 버릴수 있었던 벗인 금와는 만나지도 못했다.


작중 무술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고수인데 눈이 뽑혀 장님이 되었고 20년 동안 검 한자루 잡아보지 못했는데도 부여 최고의 검술을 가진 대소를 이길 정도였으며 심지어는 대소와 1:1이 아닌 대소와 그의 아우인 영포. 즉 2:1로 맞서싸워서 압도했고 수많은 부여 병사들과 맞서 싸웠을 정도다.

참고로 해모수가 해부루왕의 아버지라는 설정은 당연히(?) 짤렸다. 그래서 작중 해부루왕이 해모수와 의기투합하는 아들 금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장면이 나온다.

4 대중문화에서 해모수의 이름을 딴 요소

4.1 만화 아스피린의 등장인물

해모수(아스피린) 항목 참조.

4.2 녹색전차 해모수의 전차

해모수(녹색전차 해모수) 항목 참조.

4.3 신암행어사의 해모수

해모수(신암행어사) 항목 참조.

5 관련 항목

  1. 해모수는 신화적 존재에 가까우므로 부여의 동명왕을 모델로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