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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미
바람기가 있거나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인에 하는 비칭. 욕설.
2 어원
2.1 민간어원
아래는 흔히 화냥년의 어원이라고 알려진 잘못된 이야기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비롯한 사건이 있었을 때, 많은 여인들이 청나라를 비롯한 타국으로 끌려갔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는 주로 북쪽에 살던 여인들이 많이 끌려갔다고 한다. 이런 여인들은 대부분 돌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돈을 주고 겨우 돌아온 여인들이 있었다.문제는, 겨우 돌아온 여인들을 본 남편들이 절개를 잃었다고 그녀들을 내친 것. 그래서 이 여인들의 남편들이 단체로 왕에게 몰려가 이혼을 청구했다고 한다. 억지로 끌려갔다가 겨우겨우 고향에 돌아온 여자가 무슨 죄를 졌다고... 그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이건 남자들이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여성보다는 남성의 권위가 높았고, 또 여성의 정절에 민감한 조선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겼던 듯.[1]
이렇게 돌아온 여인들은 환향녀라고 불렸으며, 이들은 조선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또한 환향녀라는 말을 정숙하지 못한 여인을 칭하는 말로도 사용했다. 이 환향녀라는 발음이 세월이 지나면서 화냥년으로 변했다.
위와 같은 이야기가 돌아다녀서 많은 사람이 화냥년이 환향녀(還鄕女)에서 변화하였다고 아나,[2] 이건 어디까지나 민간 어원설일 뿐이다. 그 이유는 아래 내용 참고.
2.2 정설 및 기타 가설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 납치로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화냥년이라는 욕설은 조선시대 병자호란 이전에도 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위의 정설을 억지로 끼워맞춰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애초에 한자어에서는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환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면 금의환향(錦衣還鄕) 정도가 있다. 만약 실제로 그 여인을 칭하는 단어가 만들어진다면 귀환병녀 내지는 귀향녀라고 불러야 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한글로든 한자로든 환향녀를 검색해도 환향녀라는 단어가 전혀 안 나온다. 즉, 조선시대에는 환향녀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위의 사례에서 왕에게 이혼을 청구한 것 역시 후대에 덧붙여진 말로 보이는데, 당시 민간에서는 이혼이 허가를 얻어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며 이혼이 드물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대의 왕이었던 인조는 최명길의 주장에 동감하며 몸값을 내어 여자들을 데려오는데 힘썼고 남편들이 아내를 내치는 것을 막기 위해 명을 내리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이미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뒤라 지켜지지가 않아서 문제였지.
학계에서의 정설은 창녀를 뜻하는 중국어 화낭(花娘)이란 말이 우리나라에 전래할 때 중국식 발음인 '화냥'을 차용하였고 굳어진 것으로 본다. 화낭이라는 말은 이미 당, 송대부터 기녀, 창기라는 말로 쓰였다. 가령 당대 시인인 李賀가 지은 申胡子觱篥歌에는 "삭객은 크게 기뻐하며 잔을 들어 일어서고 화낭에게 막에서 나와 배회하며 배알하도록 명한다(朔客大喜‧擎觴起立, 命花娘出幙, 徘徊拜客.)"[3] 라는 구절이 있고, 송나라 때 매요시가 지은 花娘歌에는 "화낭은 12세에 가무를 할 수 있고 대단한 명성은 악부에 머무룬다(花娘十二能歌舞,籍甚聲名居樂府.).[4]"라고 되어 있다. 원말명초에 쓰여진 남촌철경록에 이미 창부를 화낭(花娘)이라고 부른다는 구절[5]이 있는 것을 보면, 당, 송 이후에도 계속 쓰인 듯하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성종실록에도 시중에서 몸파는 여인을 화낭이라고 부른다는 부분을 보면 당, 송대에 기녀, 창기로 쓰인 화낭(花娘)이 조선시대 때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식 발음은 huāniáng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어 표기는 화냥이다. 이 만하면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좋다. 한국어에도 성매매와 관련된 몇몇 단어에 '화(花)'가 들어가는 단어(화류계, 화대 등)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주동 선생은 성적 행위를 했던 고대의 무당을 뜻하는 화랑[6]이 붙은 '화랑질하는 년'이 간략화되어 화냥년이 되었다는 설을 주장했지만 이미 죽은 학설이다.
그 외에도 '화냥질'이란 평안북도 부근의 사투리가 일반명사화했다는 설이 있었고, 심지어 만주어 'hayan'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었다.
3 문학작품에서의 화냥년
화냥년이라는 말이 나온 작품으로는 사랑 손님과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가 옥희와 대화할 때 등장한다. 그리고 권정생의 몽실 언니에도 여러 상황에서 이 단어의 사용이 보인다.
- ↑ 당시 주화파인 최명길은 "그녀들을 청나라로 잡혀가게 한 게 대체 누군데? 왜 그녀들을 욕하는가? 아녀자들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이들이 정작 아녀자들에게 안 죽고 돌아왔냐고 큰소리치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은장도라는 쓸데없는 것 하나 던져주고 알아서 죽으라고? 은장도를 던져주기 앞서 자신이 칼을 들고 그녀들을 지켜줘야 하지 않았는가."란 말을 했다. 참고로 사관은 그런 최명길의 발언에 대해 부적적으로 평했다.
- ↑ EBS에서도 이런 내용을 토대로 영상을 만든 바 있다.
- ↑ 李賀詩歌集注, 상해:상해고적출판사, 1978, 140쪽 참조
- ↑ 全宋詩24, 「梅堯臣」14, 花娘歌, 2832쪽
- ↑ 南村輟耕錄14, 「婦女曰娘」, 174쪽, "故子謂母曰娘, 而世謂穩婆曰老娘, 女巫曰師娘, 都下及江南謂男覡亦曰師娘, 娼婦曰花娘, 達旦又謂草娘, 苗人謂妻曰夫娘, 南方謂婦人之無行者亦曰夫娘."
- ↑ 실제로 신라의 그 화랑이 이런 일을 하던 집단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화랑 문서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