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正生
1 소개
대한민국의 동화작가. 1937년 9월 10일 일본 출생. 2007년 5월 17일 안동시 일직면 소천.
2 일생
일본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라다가[1] 1946년 해방 이듬해에 귀환했다. 조선인연맹에 가입해있던 형님 두 분은 나중에 뒤따라 오기로 했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아 평생 생사를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귀국 후에도 살림이 무척 어려워서 국민학교도 겨우 졸업했고, 또한 바로 나무 장수, 고구마 장수, 임노동자 등의 궂은 일을 하며 성장했다.
19세때 그는 폐병에 걸리고 말았다. 항생제를 보급받기 위해 읍내 보건소를 찾아갔으나 공급이 제대로 되질 않아 허탕치는 날이 많았으며, 같이 폐병을 앓던 고향친구들이 하나둘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의 병세는 점점 심해졌는데, 폐결핵과 늑막염을 거쳐 신장결핵과 방광결핵으로 인하여 온 몸이 망가져버려서 사람 구실을 못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평생 오줌통을 몸에 차고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 부모님마저 차례로 돌아가시고, 집도 없고 기댈 곳도 없어진 그는 1967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 일직교회 부속의 토담집에서 기거하며 종지기를 하게 되었다. 생활은 여전히 조악해서, 여름이면 소나기에 뚫린 창호지 문 구멍 사이로 개구리가 들어와 울고 겨울이면 생쥐들이 들어와 발가락을 깨물거나 옷속을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들 정도였다고 한다. ㅎㄷㄷ 처음엔 깜짝 놀라고 귀찮았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고 나중에는 아랫목에 먹을 것을 두고 생쥐들을 기다릴만큼 정이 들었다고 한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84년부터 교회 뒤편의 빌뱅이언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혼자 살며 꾸준히 창작을 했다.
81년작 몽실 언니 등의 베스트셀러를 쓰면서 수억원에 이르는 인세를 매년 받았으나 정작 산골의 흙집에서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고, 옷도 단벌이어서 이웃 사람들은 그가 굉장히 가난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의 사망 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과 그가 남긴 재산에 대해 알고서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2] 사실 여기엔 어두운 뒷 이야기가 있다. 권정생 작품 인세는 모씨가 대신 받아서 관리하였던 것... 이 일에 대해 모씨는 "권정생은 워낙 순수한 사람이라 돈이 있어도 쓸 줄 몰라 주지 않았다"라고 변명하였다고 한다. 금전에 무지한 권정생이 훗날 유언장에 유산에 관한 부분을 남기게 된 사연이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타계 2년 전에 작성한 유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남긴다는 것이 무척이나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낭만적으로 삶을 마감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췄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것은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에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
그리고 타계 직전에 쓴 유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티벳 어린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
마지막 유언은 "어머니...어머니 아아, 어머니.."였다고 한다.(권정생 위인전 참고)
현재 그의 재산은 유언에 따라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에서 관리하며 남북한과 분쟁지역 어린이 등을 돕기에 사용되고 있다.
지식채널e에서 正生이라는 제목으로 권정생의 일생을 다룬 적이 있다.
3 주요작품
-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 강아지똥
- 사과나무밭 달님
- 하느님의 눈물
- 몽실 언니
- 도토리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 달맞이 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 바닷가 아이들
-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 짱구네 고추밭 소동
- 내가 살던 고향은
- 우리들의 하나님 - 2008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에 있는 책이다. 좌우 이념을 선동하는 내용은 전혀 없고 자연과 벗하여 사는 가난한 삶에 관한 이 책이 불온서적으로 오르자 독자 및 네티즌들은 '오히려 필독서를 권해줘서 고맙다', '국방부는 제대로 읽어보기나 한거냐? 독후감 좀 써봐라'라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 엄마 까투리
- 랑랑별 때때롱 - 이 작품은 200 페이지가 넘는데 일본식 번역체인 "~의"를 단 3번만 사용한 일화로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번역체 문장/일본어 참조.
- 한티재 하늘 - 지병으로 인한 건강 문제로 완결을 내지 못하고 작고하였다. 출판은 2권까지 되어 있다.
- 점득이네
4 어록 및 발언
- 유언으로 북한 어린이들에게 '3천달러 상당의 우유를 지원하라'와 '지금껏 나의 재산은 모두 어린이들 덕분에 번 것이니, 나의 인세를 북한 어린이를 위해 전부 다 써달라'라고 부탁했다.
-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사건 때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들과 함께 미군 반대 구호를 외쳤다.
- 2006년 한겨레와 인터뷰 당시 '교회나 절이 없다고 세상이 더 나빠질까'라고 말했다.
- 동화가 왜 그렇게 어둡냐고요? 그게 진실이기에 아이들에게 감추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지요. 좋은 글은 읽고 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5 사상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임은 물론 생태주의자이고, 기독교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로도 평가받는다. 다음은 그의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시이다.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