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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스포츠의 아버지.
세계 최초로 게임 중계라는 것을 만들어낸 사람.
고려대학교 서어서문과 출신.
최초 사회 생활은 96년 투니버스에 애니메이션 담당 PD로 입사한 것. 그러나 직후 IMF로 인해서 투니버스에서 추진하던 기획들이 모조리 엎어지자 반쯤 백수가 되었고 그 시절 접한게 게임이었다고 한다.
마침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시즌에 직장 선배와 피파98을 하다가 이걸로 중계를 해보면 재밌겠구나라는 생각에 나온 프로그램이 투니버스의 예측 98 사이버 프랑스 월드컵이란 프로그램이었다. 단 이때 사용된 소프트웨어는 피파98이 아니라 스핀오프인 'FIFA 월드컵 98'이었다. 16강 표대로 매치를 붙였을 때 총 16경기 중 12경기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마침 바로 이후에 또 박찬호열풍이 불어서 당시 나온 야구게임으로 트리플 플레이 99[1]를 이용해서 역시 컴끼리 붙이는걸로 박찬호의 앞으로 있을 경기의 성적을 예측하기도 했으나 이건 어째 사이버 월드컵만큼 기억하는사람이 많지는 않은것 같다. 이 프로그램이 예상외로 인기를 끌어서 나아간 생각이 직접 게임을 하고 이것을 중계해도 재밌겠다 싶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스타리그의 전신인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
온게임넷이 설립되자 당시 PKO 멤버들과 함께 온게임넷으로 이적하였고 이후 스타리그 PD를 거쳐 온게임넷 중계국 국장을 하다가 바투의 제작사인 이플레이온에서 바투의 총괄 개발 및 방송 중계를 포함한 모든걸 관리하는 본부장을 맡았다. 바투가 짧은 흥행 끝에 가라앉자 중화TV 본부장을 하다 다시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온게임넷으로 돌아와 온게임넷에서 본부장을 하고 있다.
꽤나 많이 이적한거 같이 보이지만 투니버스, 온게임넷, 이플레이온, 중화TV는 모두 CJ의 계열사인 온미디어 소속사이고 이플레이온은 온게임넷의 모회사.
2 e스포츠와의 관계
월드컵 시즌을 맞아서 재미삼아 한 사이버 월드컵이 그의 게임 방송 이력의 최초이다. 사이버 월드컵은 지금으로선 당황스럽지만 직접 게임을 하는게 아니라 AI끼리 매치를 붙이고 그걸 캐스터와 해설자만 중계하는 형식의 일종의 대리게임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고 16경기 중에 12경기를 맞추게 되면서 의외로 게임이 정확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이후 그가 택한 게임이 당시 떠오르던 PC방과 그 총아라고 할 수 있었던 스타크래프트였다. 다른 게임이 아닌 전투를 다룬 RTS게임을 고른 이유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실제 전쟁을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중계를 한다면 재미있지 않겠나'라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그리고 학교 선배였던 스포츠 캐스터 정일훈을 꼬셔서 이걸 중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했다. 이 당시 둘의 대화가 걸작인데
황형준: 형, 우리 스타크래프트를 한번 중계해 봅시다.정일훈: 그래, 좋다. 재미있을 것 같구나. 그런데 말이다…스타크래프트가 뭐냐?
이렇게 스타크래프트가 뭔지도 모르는 캐스터 한명과 여태 게임 중계 프로그램을 한번도[2] 안해본 PD가 내놓은게 99 PKO이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게임 중계라는 개념이 없으니 전문 해설자도 없었고 이걸 구하는데 상당히 어려워했는데 이 때 나타난게 까꿍 애니메이션 기획 때문에 투니버스를 방문한 엄재경이었다. 이렇게 3명이 초창기 프로그램의 기획과 준비, 스폰싱 작업을 도맡아 했고 이 구성은 후에 투니버스를 떠나 온게임넷까지도 이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게임 중계는 당시 하이텔을 중심으로 열리던 하이텔배 KPGL과 같은 아마추어 온라인 대회를 중심으로 하다가 이것저것 어려움도 많고 원하는 대로 대회 운영도 하기 힘들어져서 만든게 99 PKO라고 한다.
최초의 스타리그 중계가 얼마나 열악했냐면 중계 10년이 지난 지금도 간혹 온게임넷 해설진들이 우스개 소리로 하는 소리인 탁구장 중계가 바로 이 시절 이야기이다.
장소도 현재와 같은 타임머신이나 전용 스튜디오는 당연히 없었고 투니버스 휴게실에 있는 탁구대에다가 천을 덮어서 방송 기자재를 얹어놓는 테이블로 사용하고 옵저버가 없어서 일단 옵저버역할의 플레이어가 접속한 후에 동맹옵션에서 지도 보이기 설정을 한 이후 본진을 직접 없애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대회도 pc방에서 하는 등 열악한 환경인건 마찬가지였으나 인기가 올라감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장비의 개선도 이루어지고 10년이 더 지난 지금 전용 스튜디오와 전용 경기장, 부스가 있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
투니버스에서 시작한 스타크래프트 중계가 점점 인기를 얻어 독립 방송국인 온게임넷도 생기고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 이윤열을 위시로 한 4대천왕 등의 프로게이머로 인해서 스타리그의 인기와 시청률은 점점 올라갔다. 하지만 이때부터 e스포츠가 진짜로 스포츠화 되려면 팀단위 게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여러 대기업을 설득하여 만들어낸게 팀단위 스타크래프트인 프로리그.
결국 이 프로리그의 설립과 2005년 광안리에서의 10만 흥행으로 중계국 국장까지 출세한다. 하지만 이후부터 점점 KESPA와 프로팀, 방송국 사이에서 분쟁이 커지고 이를 조율하는 일에 지쳐서 국장 자리를 내놓고 온게임넷의 모회사인 이플레이온의 본부장으로 이적한다.[3]
이 곳에서 직접 기획부터 시작해서 e스포츠에 특화된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여 나온게 바로 바투. 하지만 온게임넷과 바둑계의 끊임없는 푸시에도 바투의 흥행은 결국 실패하고 이후 중화tv 본부장을 거쳐서 2011년 온게임넷 본부장으로 다시 복귀한다.
복귀 이후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e스포츠화에 그의 후임 스타리그 pd였던 위영광 pd와 함께 힘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