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텔

Hi-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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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PC통신 서비스 중 하나. 당시 4대 PC통신에는 하이텔을 비롯하여 나우누리, 유니텔, 천리안이 있었다.

2 케텔 시절

한국 PC 통신의 근원지이다. 기존 전자게시판 기반의 서비스를 발전시켜 1988년 9월에 시작된 케텔이 하이텔의 전신이었기 때문. 하이텔의 전신은 한국경제신문에서 개발한 Ketel로, '개털'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던 추억의 통신망이다. 초창기에는 뉴스를 중심으로 데이콤의 생활정보서비스(천리안의 전신)에 서비스를 공급하는 일종의 IP였지만, 자체 접속망을 갖추고 게시판과 채팅, 동호회 등을 갖춘 PC통신 서비스로 발전하게 되었다. 무료 통신망으로 인기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저녁시간대엔 늘 이용자가 폭주했다. 그러나 케텔은 수익성이 전혀 없었고 1990년 들어 신문사의 재정도 악화되자 한국경제신문에서 케텔을 매각하려고 했다.[1] 이에 한국통신(현 KT)을 위시한 여러 회사가 합작하여 1991년 12월 한국PC통신 회사를 세우고 케텔을 인수한다. 이후 1992년 3월 서비스명을 케텔(KETEL)에서 코텔(KORTEL)로 변경하고 같은 해 7월 다시 이름을 하이텔로 변경, 서비스를 시작한다.

3 하이텔 시절

1992년 7월 가입비 10,000원 + 이용료 월 9,900원으로 유료화를 단행한다. 단, 가입비는 1990년대 후반까지 면제되었고, 이용 요금은 1990년대 후반에 11,000원으로 오른다. 덕분에 한국PC통신 한국통신이 아니다 본사 앞에서 유료화 반대[2] 촛불시위가 벌어졌다. (한국 최초의 네티즌 주도 촛불시위)

이 시위에서 훗날 '하동연'으로 자리 잡는 '동호회 연합회'가 결성되었고, 당시 KETEL 전체 동호회의 대다수가 동호회 초기화면을 통일해서 바꾸는 등, 상당한 파급이 있었다. 시위의 원인은 단순 유료화 반대가 아닌 "신용카드 ONLY"라는 대금 결제 조건 때문이었고, 이러한 촛불시위와 결합된 온라인 시위의 결과로 결국 회사는 유료화 요금 결제 조건을 신용카드 ONLY에서 "지로 선납제"까지 후퇴하게 된다. 후불은 죽어도 안된다능 [3]

1994년부터 한국통신(현 KT)에서 PC통신의 인기가 높아지자 01410 접속만 가능한(즉, 채팅이나 정보 검색만 가능하고 파일 다운로드 따위는 안 됨) 단말기를 무상으로 대여해주기도 했다. 2,400bps(0.3KB/s)짜리 모뎀, 브라운관, 키보드를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얼마 없었던 리눅스 유저들은 자기 컴퓨터에 2번째 접속하는 터미널로 쓰기도 했다. 한국통신에서는 사람들에게 대여해 준 후 회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현재까지도 이 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ATDT 01410(14.4kbps 모뎀용), 01411(28kbps 모뎀용), 01412 or 01432 (56kbps 모뎀용)를 통해 접속할 수 있었다.[4]

별칭으로는 안녕텔 및 안녕전화[5], 로우텔, 빡텔(이쪽은 멸칭에 가까움) 등이 있었다.

유명한 동호회로는 개오동(개털 오락 동호회의 약자. 케텔 시절 하도 장애가 많아서 케텔을 '개털'이라고 불렀던 것이 그 시초다[6]. 많은 사람들이 임/오락동호회로 잘못 알고 있다. 적절한 그분도 이 곳 출신이며 김동준해설도 이곳 운영진 출신이다. 유명한 개발자 몇몇을 배출한 게임제작동호회도 원래 개오동의 게시판에 있다가 독립해 나간 케이스이다.) 이러한 인원풀이 있었기 때문인지, 당시 PC통신상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다루는 게임 동호회중에서는 심도있는 글이 많이 올라오던 게임 동호회이기도 하였다. [7], 동인샵이 아니라

한국 1~2세대 오타쿠의 산실인 애니메이트 등이 있었고, 알지롱이라는 PC통신풍 커뮤니티도 하이텔이 전신인셈. (후술한다) 스타크래프트 유즈맵계의 고대작들 중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이 많으며, 판타지소설계에서도 드래곤 라자퇴마록, 데프콘이 연재된 곳이라는 의의를 갖고 있다. 작가 라인업에서는 후에 작가들이 커뮤니티를 결성할 정도[8]로 화려한 나우누리 SF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퇴마록과 이영도의 브랜드 파워는 나우누리의 쟁쟁한 작가진들과 맞먹어도 꿀리지 않을 정도였다.

좀 더 범위를 넓히면 대우자동차가 한창이었을 적의 1994년에 대우자동차가 '오토컴'이라는 기업 최초의 게시판을 개설,현재의 디씨인사이드 자동차 갤러리급의 파워를 자랑했었으나...대우자동차 홈페이지가 96년도에 설립된 이후로는 힘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민간인 측에서 서버이전을 받고 2002년 1월까지 운영하다 폐쇄되었다.

그리고 1991년에 세워진 진보계열 동아리인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이하 바통모. 천리안의 희망터와 나우누리의 찬우물 포지션.)'도 있는데, 1988년 10월에 한겨레가 창간되자 진보성향 유저들은 한국경제신문에 한겨레 기사도 올려달라고 했으나 한경 측이 이를 거절하자 일부 유저들은 직접 한겨레 기사를 타이핑해서 케텔 게시판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런 유저들이 모여 처음엔 ‘한국민주통신동호회(이하 한민동)’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200명의 발기인을 모아 동호회로 만든다는 목표로 준비작업에 들어가 1991년에 위와 같은 이름으로 만들어졌다.[9]

다만 흑역사급 동아리도 있는데, 하이텔 내에 존재했던 '주부동호회(주부동)'는 서울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및 기타 학부모 단체들과 연계하여 세일러문, 소년기사 라무의 국내방영을 필사적으로 반대한 바 있다.

하이텔 출신의 유명 네임드로는 김유식, 안철수, 이영도, 김경진, 델리스파이스, 듀나, 이우혁, 송락현, PC Tools 김현국, 그리고 앞서 말한 적절한 그분 등이 있다. 그외 plaza란에서 IMF가 닥치기전 독자적으로 IMF를 예견했다가 코렁탕을 먹을뻔한 용자도 당시 plaza란 유저들 사이에서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흑역사급 인물로는 김완섭이 있다.

여성운동 진영에서 종종 보이는 "부모 성 함께 쓰기"도 하이텔에서 출발하였으며 (조은광순, 신정모라 등), '벙개' 등의 통신용어, '수구꼴통'등의 표현 등이 처음 시작된 곳도 하이텔이다.

네이버가 시초라고 알려진 "지식검색 서비스"의 시초가 바로 하이텔의 "하이텔 서당" 서비스. 하이텔 서당의 GO 인덱스(메뉴 직접 이동 명령인 GO 명령으로 찾아가는 일종의 부호)중 하나가 TE31 이었는데[10], 그래서 아직도 하이텔 서당은 "알지롱 (TE31.COM)"으로 명맥을 유지 중이다. 다만 하이텔서당 시절부터 있었던 구성원은 지금은 극소수이며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서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번 가보자.

하이텔 내에는 동호회(SIG)외에도 여러 기업체나 노동조합 등 재야 사회단체들의 CUG[11](닫힌 모임)가 존재하였는데, 모기업인 한국통신 노동조합 CUG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CUG는 1994년에 개설되어 1995년 한국통신 파업 당시 투쟁지침을 하달하고 파업 관련 속보를 보내서 대국민홍보에 나서는 등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서다 그해 5월 22일~6월 4일 사이에 이용약관에 따라 게시글 28건이 삭제되었고, 6월 6일에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와 동법 시행령 16조에 따라 폐쇄되었다가 이용자들의 항의로 열흘만에 철회되었다.

6월 6일 폐쇄 이후 노조 측은 하이텔 PLAZA에서도 게시글을 작성하다 노조 관련 게시글 181건(노조 측 게시글 7건, 나머지는 일반사용자 게시글들)이 무더기로 삭제되기도 했다. 1, 2, 3 이후 노조 측은 CUG 폐쇄 건에 대해 한국통신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으나 1996년 1심, 1997년 2심, 1998년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세 번 다 패소당했다.

불법자료 단속은 나머지 3~4대 통신중에서 가장 철저히 한건지, 일단 동호회 통합자료실 개념이 없어 나우누리, 유니텔과는 달리 (듣보잡 소모임에) 우회적으로 올려서 (동호회 통합자료실로) 우회적으로 받는 수법이 먹히지 않았고, PCCOM[12] 이하 복제인간 관리자들의 모니터링이 철저한건지 아닌지는 몰라도 하여튼 불법자료에 관해서는 대형 PC통신망중 비교적 클린한 축에 속했다.

4 폐쇄 이후

2004년경 메가패스, 한미르와 합쳐져 파란닷컴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2012년 6월 폐쇄되어 완전히 흔적이 사라졌다. 다만, 현재까지 케이티하이텔 법인은 존속되어 기존 하이텔 사용자들이 느끼기는 힘들지만 olleh TV 컨텐츠 유통이나, T-커머스같은 인터넷 결제 서비스 등을 서비스 하고 있다.# 코스닥에도 아직 상장 중. (036030)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법인은 KTH 항목 참조.

별 상관없는 내용일 지도 모르나 2015년까지도 KT에서 POWWOW 라는 이름으로 전화모뎀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운영중이다.[13]

연결음이나 연결 후 잠시 보게 될 터미널 화면의 메뉴에서 약간의 추억은 느낄 수 있을 지도?![14]

5 관련 항목

  1. 한국경제신문은 이후 "한경 에코넷(ECONET)"이란 PC통신망을 새로 만들었다. 역시 전화접속이며, 이것은 일반인이 가입 활동할 수 있는 한국경제신문 뉴스사이트라고 할 수 있었다.
  2. 정확히는, 100% 신용카드 ONLY 결제 정책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경우 카드 발급을 받을 수 없으므로 자동으로 유료 이용자 층에서 떨어져나가게 된다는 점. 그래서 이 시위의 결과로 '지로 선납제'가 도입되었다.
  3. 이 촛불시위를 당시 KORTEL 소식지인 '꿈따라'에서 '촛불잔치(!)'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다시한번 가루가 되도록 까였었다.
  4. 90년대 초까지 모뎀이 내장된 하이텔 단말기를 전화국에서 무상 대여했는데, 뒤에는 전화국에서 이 대여서비스를 중단했는데, 그 때 전화국을 방문하면 남은 재고를 무료로 가져갈 수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
  5. 이 용어를 즐겨 쓴 사람이 이영도이다. serial란에 올린 드래곤 라자 연재분 말미의 잡담에 이 용어가 많이 언급되었다.
  6. 개오동 공지란에 있던 개오동의 역사를 적은 게시물에 이 유래가 언급되어 있었다.
  7. 멀티플레이 전략은 물론, 스타크래프트 캠페인 모드의 대사번역이 가장 빨리 올라오고 있었고(한스타가 나오기 이전부터), 캠페인 스토리에 관한 이야기도 꽤 있었다. 나우누리에서 비슷한 포지션의 게임동호회로는 나모모가 있다.
  8. 다만 그 결성의 계기는 좀 씁쓸하다.
  9. 전대협 말기와 한총련 초기에 자료를 교환하는 게시판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상한 것들을 올리고 다닌 건 아니다. 노태우 말기에는 김씨부자책같은 건 말고 맑스주의 철학쪽은 일반 출판물로도 해금돼 있었다.
  10. 다만 처음에는 "TE31"이 아니라 "TE11"이였다. 원래는 컴퓨터 하드웨어 관련 질문답변을 올리는 TE01, 컴퓨터 소프트웨어 관련 질문답변을 올리는 TE02.... 이런식으로 해서 기타 질문답변을 올리는 TE10 까지 있었으나 몇몇 이용자들이 부적절한 질문을 올려대서 게시판의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여서 생겨난것이 유치하거나 사소한 질문답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게시판인 "호기심해결 Q/A (TE11)"이였다. 이후 하이텔의 인덱스 개편작업을 통해 "TE11"은 "TE31"로 바뀌었고 이는 하이텔의 서비스 종료까지 쭈욱 이어졌다.
  11. Closrd Users Group. '폐쇄이용자그룹'의 준말.
  12. 보통 PCCOM(n)이며 pccom1, pccom2, pccom3등이 있었다. 나우누리로 치면 나우지기에 상응하는 존재.
  13. 2016년 이후에도 서비스중이라고 한다. 다만 인포샵 같은 내부 서비스는 종료했다고 한며 이용요금은 월4000원/분당3원.
  14. 하이퍼터미널같은 터미널 에뮬레이터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