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격투기 선수 표도르 예멜리아넨코와 관련된 논란 중 하나.
속칭 효거품 논란. 개요는 '효도르는 PRIDE에서 떡밥스런 상대만 잡아왔고 UFC의 강자들을 상대로는 몸을 사렸다.'는 것이다.
주요 근거는 히카르도 아로나와의 링스전, 상대한 상대들이 효도르전 이후 퇴물이 된 것, 떡밥 섭취 등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효도르가 최강까지는 아니어도 거품은 아니었다.
효도르는 2000년 데뷔했고 2003년에 PRIDE의 벨트를 획득해 2007년까지 지켰다. 단, 챔피언 시절의 고작 3차 방어를 효도르를 함께 MMA의 3대 올타임 레전드로 일컬어지는 앤더슨 실바와 조르주 생 피에르의 기록과 비교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하다.
날짜 | 단체 | 상대 | 랭킹 |
2002년 6월 | Pride 21 | 세미 슐트 | 4위 |
2002년 11월 | Pride 23 | 히스 헤링 | 9위 |
2003년 3월 | Pride 25 |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 1위 |
2003년 4월 | Rings Lithuanua | Egidijus Valavičius | 50위 이하 |
2003년 6월 | Pride 26 | 후지타 카즈유키 | 30위 |
2003년 8월 | Pride FC - Total Elimination 2003 | 개리 굿리지 | 9위 |
2003년 12월 | Inoki Bom-Ba-Ye 2003 - Inoki Festival | 나카타 유지 | 50위 이하 |
2004년 4월 | Pride FC - Total Elimination 2004 | 마크 콜먼 | 10위 |
2004년 6월 | Pride FC - Critical Countdown 2004 | 케빈 랜들맨 | 7위 |
2004년 8월 | Pride FC - Final Conflict 2004 | 오가와 나오야 | 50위 이하 |
2004년 8월 | Pride FC - Final Conflict 2004 |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 2위 |
2004년 11월 | Pride - Shockwave 2004 |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 2위 |
2005년 4월 | Pride - Bushido 6 | 코사카 츠요시 | 15위 |
2005년 8월 | Pride FC - Final Conflict 2005 | 미르코 크로캅 | 4위 |
2005년 12월 | Pride - Shockwave 2005 | 줄루징요 | 50위 이하 |
2006년 9월 | Pride 32 | 마크 콜먼 | 4위 |
2006년 12월 | Pride - Shockwave 2006 | 마크 헌트 | 7위 |
2007년 4월 | Bodog Fight - Clash of the Nations | 맷 린들랜드 | 미들급 5위 |
2007년 12월 | Yarennoka - New Years Eve 2007 | 최홍만 | 50위 이하 |
2008년 7월 | Affliction - Banned | 팀 실비아 | 8위 |
2009년 1월 | Affliction - Day of Reckoning | 안드레이 알롭스키 | 5위 |
2009년 11월 | Strikeforce / M-1 Global - Fedor vs. Rogers | 브렛 로저스 | 7위 |
2010년 6월 | Strikeforce / M-1 Global - Fedor vs. Werdum | 파브리시오 베우둠 | 10위 |
2011년 2월 | Strikeforce - Fedor vs. Silva | 안토니오 실바 | 10위 |
2011년 7월 | Strikeforce / M-1 Global - Fedor vs. Henderson | 댄 헨더슨 | 라이트헤비급 7위 |
2011년 11월 | M-1 Global - Fedor vs. Monson | 제프 몬슨 | 31위 |
2011년 12월 | Dream - Fight for Japan | 이시이 사토시 | 45위 |
2012년 6월 | M-1 Global - Fedor vs. Rizzo | 페드로 히조 | 47위 |
그 동안 싸워온 상대들의 랭킹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랭킹 출처 FIGHT MATRIX
PRIDE 입성 후부터 상대한 선수들은 대부분 헤비급 10위 ~ 20위권 내의 강자들이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퇴물이 되어버린 선수들도 있지만 적어도 효도르와 붙을 당시에는 상당한 강자들이었다. 하지만 당시를 기준으로도 떡밥스런 상대가 많이 끼어있는 것들은 맞다. 이는 일본 단체들이 좀 황당한 매치업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한 몫했지만 그래도 효도르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정도가 심한 것들이 많았다.
단순 랭킹이 아니라 선수들의 면면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일단 당시 헤비급 수준이 워낙 낮다보니 순위변동도 심하고 일본 단체들의 떡밥 매치업으로 선수들의 전적이 뻥튀기 된 이유도 있다. 몇몇 선수를 예로 들자면 새미 슐츠는 4위인데 전적 대다수가 일본선수들에 대한 연승으로 이루어졌다. 마크 헌트를 보자면 랭킹 진입시 3위인데 이때 전적이 2승 1패다. 랭킹 자체가 이해가 안되는 경우. 실바나 크로캅을 이겨서 상위권 도약은 가능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흥행을 위한 타격가 끼리붙인 매치업의 결과고 실제 평가는 굉장히 낮았다. 케빈 랜들맨은 라이트 헤비급과 헤비급을 오가던 선수로 본 체급인 라이트 헤비급에서 23위였고 크로캅을 잡고 헤비급 13->7 위가 된 선수로 이 뒤에도 줄줄이 연패를 당한다. 맷 린들랜드는 아예 미들급 랭킹이다. 엄밀히 말해 효도르가 이긴 상대중에 대중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건 히스 헤링, 히카르도 아로나, 노게이라, 크로캅, 알롭스키 정도이고 팀 실비아와 마크콜먼은 좀 애매하다.참고글
당시 고평가를 받거나 수준급이지만 효도르와 안싸운 선수는 랜디 커투어, 조쉬 바넷,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프랭크 미어, 댄 핸더슨, 베우둠 등이 있다. 즉 절반 정도는 싸우고 절반은 안싸운 것. 이런 이유로 효도르가 당시 헤비급의 최종보스인 건 사실이지만 절대무적의 챔피언이라던지 10년간 헤비급을 지배했다던 말은 과장인 것이 진실이다. 당장 위에 언급된 선수 중 후에 효도르를 골로 보내는 선수가 두 명이나 있다.
다만 랭킹제는 실적을 평가하는 것이지 실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력의 평가에 대한 척도는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지만 실적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다. 선수의 실력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시합의 승패와 누적된 전적은 그대로 수치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랭킹에만 집착하지 말고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라는 식의 논지는 객관성과 공신력을 가진 자료 vs 개인의 주관적인 주장으로 수렴할 수 밖에 없다. 그 주장을 하는 개인이 공신력을 확보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다.
UFC로 눈길을 돌리면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11명의 헤비급 챔피언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중에서 4명이 효도르와 싸웠고, 모두 졌다. 초대 챔피언인 마크 콜먼까지 합치면 효도르는 5명의 UFC 챔피언과 7번 싸워서 모두 이긴 셈이 된다. 특히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던 2003년 ~ 2006년의 4년 사이 UFC 헤비급 타이틀은 팀 실비아와 안드레이 알롭스키가 돌려먹고 있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실적부족으로 UFC에서 퇴출된 게 아니라 자신의 대우에 불만을 품고 제발로 UFC를 걸어나와 효도르와 싸웠다는 것이다. 실비아의 경우 허리부상이 있었다지만 당시 UFC 헤비급 컨텐더였던 브랜든 베라[1]를 꺾고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UFC 타이틀전을 치렀으며, 알롭스키는 UFC에서 3연승, 어플릭션과 EXC까지 합쳐서 총 5연승을 달리고 있었을 정도로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다.
챔피언 | 대회명 | 날짜 | 상대 | |
9대 | 팀 실비아 | UFC 41 | 2003년 2월 | 리코 로드리게스 |
팀 실비아 | UFC 44 | 2003년 9월 | 간 맥기 | |
10대 | 프랭크 미어 | UFC 48 | 2004년 6월 | 팀 실비아 |
잠정 | 안드레이 알롭스키 | UFC 51 | 2005년 2월 | 팀 실비아 |
안드레이 알롭스키 | UFC 53 | 2005년 6월 | 저스틴 아일러스 | |
11대 | 안드레이 알롭스키 | UFC 55 | 2005년 10월 | 폴 부엔텔로 |
12대 | 팀 실비아 | UFC 59 | 2006년 4월 | 안드레이 알롭스키 |
팀 실비아 | UFC 61 | 2006년 7월 | 안드레이 알롭스키 | |
팀 실비아 | UFC 65 | 2006년 11월 | 제프 몬슨 |
즉, 리코 로드리게스, 간 맥기, 저스틴 아일러스, 폴 부엔텔로, 제프 몬슨 등을 꺾고 UFC의 정상에 올라섰던 선수들이 바로 실비아와 알롭스키라고 보면 된다.[2] 바꾸어 말하면 당시 UFC는 아일러스나 부엔텔로, 몬슨 등이 타이틀 컨텐더급으로 활약했던 단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중 2010년까지 UFC에 잔존해 있던 선수는 미어 한 명 뿐이다.[3]
효도르는 각각 2008년 7월과 2009년 1월 Affliction에서 실비아와 알롭스키를 연파한다. 이것은 상당히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는데, 해머하우스 이후로 거의 교류가 없다시피했던 UFC와 PRIDE 헤비급의 최강자들이 격돌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알롭스키는 UFC와의 계약이 무산되긴 했으나 UFC에서 3연승을 거둔 것을 비롯하여 IFL, Affliction 등에서 5연승의 쾌조를 달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효도르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선수들은 있었다. 특히 댄 핸더슨이나 파브리시오 베우둠은 효도르와 동세대, 혹은 이전 세대의 파이터이기 때문에 당시에 이들과의 대전이 이루어졌다면 효도르가 패했을 가능성도 높다. 왜나하면 둘은 Strikeforce에서 효도르를 철저하게 박살내시켰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프로파이터 사이의 대전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성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넷과 효도르의 대전은 Affliction에서 수 차례 추진되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취소되었다. 효도르 뿐 아니라 바넷 측에서도 금전적인 문제로 시합을 거부한 일이 있을 정도다. 실력이 뛰어나고 인지도가 높은 선수들일수록 몸값은 높아지게 마련이고 이런 부담을 짊어지면서 양 진영간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단지 두 선수의 실력이 비슷하다고 해서 무조건 시합을 붙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4] 반면 북미에서 실비아와 알롭스키를 상대로 한 빅매치가 연달아 열릴 수 있었던 것은 Affliction의 풍부한 자금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적극적으로 대진이 안이루어진건 아쉬운 일이지만 효도르가 의도적으로 대진을 피했다고 볼 수는 없다.
본격적으로 이런 비판이 심해진것은 프라이드 도산후에 1위 단체인 UFC로 가지 않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2009년 이후 두각을 나타낸 UFC 헤비급 신성 4인방을 비롯하여 UFC의 신성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구세대를 밀어내고 새로운 헤비급 판도를 짜나갈 때 이 경쟁에서 한발짝 물러나는 인상을 주었던 것. 결국 2010년 이후 파브리시오 베우둠과 안토니오 실바, 댄 헨더슨에게 연패하며 몰락하고 말았다.
2013년에 셔독의 한 유저가 역대 파이터들이 TOP 5 / TOP 10급 선수를 상대로 거둔 승리횟수를 정리한 적이 있다. 여기서 표도르는 각각 TOP 5급 7회와 TOP 10급 12회를 기록했다. 별로 많지 않아보일 수 있으나 이는 전체급 통틀어서 8위에 해당하고 헤비급에서는 노게이라에 이어 2번째인 횟수다. 2013년 기준으로 효도르는 헤비급에서 역대 2번째로 빡센 대진을 소화해낸 선수였다는 것이다. 커투어의 기록은 헤비와 라헤가 섞여 있는 수치이므로 헤비급만 추려내면 노게이라나 효도르에 미치지 못한다.참고
참고 : PRIDE 역대 챔피언, UFC 역대 챔피언, UFC 헤비급 신성 4인방- ↑ 원래 베라가 미어에게 승리하자 실비아의 타이틀에 도전하기로 낙점되었으나 UFC의 처우에 불만을 가지고 경기를 거부하면서 그 대타로 커투어가 땜빵으로 들어간 것이다. 여기서 커투어가 이기자 다시 실비아 vs 베라가 성사된다.
- ↑ 미어는 실비아에게 이겼지만 곧바로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며 링을 떠나게 되었고, 복귀 후에도 오랫동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 ↑ 그렇다고 효도르가 이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 ↑ 이게 가능한 곳이 바로 2008년 이후의 UFC고 그 이전까지는 어떤 단체에게도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UFC행을 거부한 효도르의 행보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