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 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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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홍철?!

Heath "The Texas Crazy Horse" Herring

종합격투기 관련 인물

이름히스 헤링(Heath Herring)
생년월일1978년 3월 2일
국적미국
체격184cm[1] 193cm, 114kg
종합격투기 전적43전 28승 14패 1무효
7KO, 16서브미션, 4판정, 1기타
4KO, 2서브미션, 8판정
주요 타이틀WVC 9 토너먼트 우승
기타WVC 8 토너먼트 준우승
링네임"텍사스 광마(狂馬)"

17세의 나이에 MMA에 뛰어든 풍운아. PRIDE, K-1, UFC를 모두 경험한 선수로 나이는 젊지만 경험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젊은 베테랑이다. 링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 폭발적이고 과격한 파이팅과 한번 정줄을 놓으면 리미트가 날아가 버리는 다혈질인 성격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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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적

  • 무효 : 나카오 요시히로왜 강조표시가 되어있는지는 보면 안다

1.1 PRIDE

초창기에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인 면에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헤링은 중소무대에서 확실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1997년 10월과 11월에 에반 터너와 1승 1패를 주고 받았고, 1999년 5월에는 트레비스 풀턴에게 패했다. WVC 8 토너먼트에는 결승에서 알렉산더 페레이라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9월의 WVC 9 토너먼트에서는 결승에서 만난 밥 슈리버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H2H와 IAFC를 거쳐 일본PRIDE와 계약을 맺게 된다.

2000년 6월 PRIDE 9에서 윌리 페타스를 RNC로 꺾었고, 이후 톰 에릭슨, 엔센 이노우에 등의 강자를 연달아 잡아내며 주가를 높였다. 2001년 5월 비토 벨포트와의 대결에서 아쉽게 판정패했으나[2], 2001년 7월에는 당시 '영장류 최강'으로 일컬어지던 마크 커를 노스사우스에서 그라운드 니킥으로 떡을 만들며 충격의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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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드디어 초대 헤비급 왕좌를 두고 PRIDE 17에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맞붙었다. 헤링이 스탠딩 타격으로, 노게이라는 그라운드에서 승부를 걸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노게이라가 타격을 주도해가는 가운데 헤링이 노게이라의 서브미션을 전부 파해하는 양상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치열한 명승부가 펼쳐졌으나 결국 저지들이 만장일치로 노게이라의 손을 들어주며 헤링의 패배가 선언되고 말았다.

2002년 2월에는 이고르 보브찬친을 두들기며 만장일치로 승리했고, 2002년 9월 유리 코슈히네를 상대로 또 다시 승리를 추가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노게이라의 1차 방어전의 가장 유력한 상대로 꼽혔고, 팬들 역시 두 선수의 재대결을 바라고 있던 바였다.

드디어 2002년 11월 타이틀 도전권을 걸린 시합이 열렸는데 이 시합의 상대가 바로 RINGS에서 공수해 온 표도르 예멜리아넨코였다. 헤링은 공이 울리자마자 터치글러브도 씹고 효도르에게 선공을 걸었다. 하지만 기습적인 미들킥은 이내 막혔고 효도르는 테이크다운에 성공, 경기를 그라운드로 끌고 갔다. 이후엔 다들 아시는대로…… 효도르의 얼음 파운딩이 작렬하며 헤링은 안드로메다로 떠났다. 결국 헤링의 안면이 골절되며 닥터스톱에 의한 TKO패가 선언되었다.[3]

2003년 6월에는 미르코 크로캅을 상대로 스탠딩에서 완벽하게 밀리며 또 졌다. 헤링은 이노키알리까지 가며 저항했으나 크로캅의 바디킥-레프트 컴비네이션에 당해 또 다시 KO패를 당했다. 이후 야마모토 요시히사, 자이언트 실바 등 한 수 아래의 선수들과 시합을 이어갔다. 2004년 2월에는 간 맥기에게 스플릿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2004년에는 PRIDE 2004 헤비급 그랑프리에 참가, 1차전에서 타카하시 카즈오를 파운딩으로 떡실신시켰으나 2차전에서 또 다시 만난 노게이라에게 스피닝 초크로 승리를 헌납하고 말았다. 결국 2004년 10월의 요코이 히로타카전 승리를 마지막으로 PRIDE와 결별하게 되었다.

1.2 K-1

헤링의 몸개그 캐릭터가 확립되는 흑역사 시즌

DSE와 계약 문제로 갈등을 겪으며 K-1으로 이적한 헤링은 FEG의 MMA 프로젝트인 K-1 HERO's 1에 출전한다. 상대인 샘 그레코는 원래 입식 파이터인지라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는 시합이었다. 그런데 킥을 차다가 그만 바닥에 미끄러지면서 무릎이 돌아가 KO로 패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헤링의 '셀프힐훅 사건'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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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와 동시에 몸개그 + 부상 크리로 막장테크를 탄 헤링이 다시 링에 오른 것은 2005년 12월의 다이나마이트였다. 힐훅 사건 이후 그야말로 심기일전하여 치른 재기전이었는데, 그만 여기서 더 큰 사고를 쳐버렸다. 상대였던 나카오 요시히로가 경기 직전 눈싸움을 하다 그만 키스를 했고 순간적으로 리미트가 해제된 헤링은 그 자리에서 주먹을 날렸다. 무방비 상태에서 헤비급의 펀치를 맞은 나카오는 그대로 실신해버렸고 경기는 무효처리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키스 헤링' 사건이다. 많은 격투 매니아들의 추측으로는 제롬 르 밴너와 마이크 베르나르도가 눈싸움 도중 서로 키스했던 사건을 흉내내려 한 것 같다고 하지만...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난데없이 키스를 했으니 당연히 저런 사태가 벌어질 수 밖에.
더불어 경기가 끝나고 "I'm not a gay!"라고 말한 것이 포착되면서 나카오 요시히로와 함께 한동안 네타 캐릭터화 되기도 했다(...). 정작 나카오 본인은 이 사건을 통해 '키스'라는 링네임이 생겼다. PRIDE 소개영상에서 나온 걸 보면 본인도 좋아하는 모양(...)진짜 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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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개리 굿리지를 KO로 잡긴 했는데, 어쨌든 K-1과의 재계약도 결렬된다. 저런 짓을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터뜨렸으니 당연하다면 당연.

1.3 UFC

헤링은 UFC와 계약을 맺고 2007년 1월 제이크 오브라이언을 상대했다. 하지만 레슬링에 밀리며 판정패한다.

하지만 2007년 4월 UFC 69에서 브래드 아임스를 꺾고, 다시금 상위권으로 도약할 기회를 잡게 된다. 이때 만난 것이 PRIDE에서의 원수인 노게이라. 2007년 7월의 UFC 73에서 만난 두 선수는 3번째의 대결을 벌였다. 헤링은 1라운드를 30초 가량 남기고 미들킥을 적중시키며 노게이라에게 다운을 빼았고는[5] 파운딩을 퍼붓는다. 하지만 노게이라가 가드 포지션을 취하려하자 잽싸게 일어나 버렸는데, 사실 그때 노게이라는 의식이 없었고 거의 본능으로만 움직이고 있던 상태였다. 헤링은 이내 그 사실을 알아채고는 일어나라는 사인을 보냈으나 노게이라는 영리하게 태클로 시간을 끌며 위기를 넘겼고, 시합은 판정으로 넘어가 헤링의 패배가 선언된다. 헤링으로서는 과거의 패배 때문에 지나치게 노게이라의 가드게임을 겁낸 나머지 다 잡은 시합을 놓쳐버렸다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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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도 졌다

2008년 3월에는 UFC 헤비급의 게이트키퍼인 칙 콩고와 대결했다. 예상과는 달리 타격에서 헤링이 앞서고 레슬링에서 콩고가 압도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결국 승부를 가른 것은 그라운드 운영으로, 헤링이 2번의 사이드 마운트에서 콩고의 허리를 니킥으로 난타하며 스플릿 판정승을 거두었다.

2008년 8월에는 브록 레스너와 대결했으나 경기 초반 타격에서 다운을 당하고 레슬링에서 완전히 밀린 끝에 만장일치로 판정패했다. 이후로는 영화 배우, 포커 선수로 활동하며 사실상 은퇴한 상태다.

2 파이팅 스타일

베이스는 삼보무에타이로 미국내 삼보대회에서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나름 웰라운드 파이터로 스탠딩과 그라운드의 양면에 걸쳐 밸런스가 좋은 선수다. 타격은 정석은 아니지만 왠지 잘 맞고, 그라운드 운영도 뛰어난 편이다. 그 중에서도 그라운드 니킥과 스윕만큼은 일품. 이 두 가지 만큼은 세계 1류라는 평가다. 특히 특유의 빡돌면 미친듯이 달리는 특성 상 그라운드 니킥을 화려하게 쓰곤 하는데 마크 커를 이걸로 보내버렸다. UFC에서는 봉인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살짝 안습.[6]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윕이라는 훌륭한 무기가 있기 때문에 요거 하나로 먹고 살았다. 전성기 시절에는 B급 효도르라는 별명도 있었다.

다만 타격도 그래플링도 최정상권은 아니라는 것이 약점. 레슬링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도 치명적이다. 멘탈도 약점으로 꼽히는데 정신력이 약하다거나 그런건 아니고 그놈의 욱하는 성질 때문에… 공격성이 너무 강하고 한번 흥분하면 정줄을 놓아버린다는 것이 단점이다.[7]

특이한 점은 그래플러한테는 타격으로 털리고 타격가한테는 이상하게 타격으로 앞서서 이긴다는 점(...) 대표적인 예가 전자는 노게이라, 후자는 콩고다. 크로캅은? 또한 팀도 세미 슐트까지 있는 입식 명문 체육관 골든 글로리고 본인도 타격을 훨씬 중점적으로 연습하는데 그래플러에 가깝다(...)

00년대 초기에는 노게이라, 효도르와 경쟁했으나 이후 PRIDE 3강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UFC에서는 수문장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노게이라와는 3번 싸워서 3번 모두 졌다.

3 기타

초창기의 헤링은 그야말로 불량아 그 자체였는데, 코너맨도 뭣도 없이 홀로 걸어나와서 미친듯이 상대 선수를 박살내고는 혼자 유유히 걸어나가고는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영락없는 길거리 싸움꾼의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기술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았으나 타격을 보완하기 위해 찾아간 골든글로리에서 많은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효도르전의 인상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효도르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털린 놈' 정도로 기억되기도 한다. 아니면 '효도르에게 맞고 브록에게 또 맞은 놈' 정도? 게다가 셀프힐훅, 키스 사건에 이어 노게이라 3차전 이후로는 그냥 개그맨이 되어버렸다.

자이언트 실바와의 대결도 은근 개그. 실바의 막주먹에 밀리는 등 엄청나게 고전했는데 그 다음 경기부터 실바를 개나 소나 다 잡아버렸기 때문에 상황이 우스워졌다. 특히 덩크 펀치에 맞아 다운 직전까지 몰리는 등 고생이 많았는데 실은 이때부터 몸개그에서의 재능이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카오와의 NC 후 인터뷰에서는 "나는 게이가 아니다."라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나타냈다. 나카오는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8] 아예 "키스"를 링네임으로 쓰게 되었는데[9] , K-1 HERO's에서 시합한 굿리지가 인터뷰에서 이걸 가지고 헤링을 놀려먹기도 했다. 다이나마이트가 12월 31일의 연말 행사였기 때문에 북미권에서는 new year's eve kiss로 유명하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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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너전 이후 UFC와의 계약에 불만을 표하며 MMA에서 은퇴한 상태인데, 인터뷰에 의하면 더이상 격투계에서 금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어서 그랬다고 한다. UFC에서 헤링의 파이트머니는 7만 ~ 14만 달러 수준으로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뭔가 문제가 있긴 한 듯. 실은 영화배우로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몇몇 작품에 얼굴을 비추면서도 이렇다할 대작에는 출연하지 못하고 있었다. 2010년 11월 복귀 의사를 밝혔으나 시합은 뛰지 못했고 이후 포커 선수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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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시합마다 머리가 변하는 다색의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몸개그 전담이라 다들 간과하고 있지만 뜯어보면 상당한 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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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넌

노홍철과 닮았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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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라이드 시절 프로필 상 신장
  2. 내용상으로는 헤링의 우세였으나 체중차로 인한 핸디캡 매치였기 때문에 패배.(프라이드에서는 판정 채점 기준에 체중이 낮은 쪽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룰이 있다.)
  3. 그래도 안와골절이 의심되는 상태에서 거의 5분이 넘게 경기를 진행했었고 여러번 스윕을 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4. 힐훅 시전 전까지는 헤링이 그라운드에서 압도하고 있었기에 더욱 웃겼다. 그레코 입장에서는 '누워서 맞고 있다가 일어나니깐 내가 이겼대'.
  5. 이것도 좀 웃긴 것이 헤링의 킥은 바디킥 궤도였는데 노게이라가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하이킥이 되어버렸다.
  6. 그래도 두부만 아니면 가격이 가능하다. 칙 콩고전에서도 이걸로 이겼다.
  7. 사실 단점이라고만 생각하기도 좀 애매한게 저 폭발력으로 사람 잡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
  8. 물론 알고 있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후 나카오에게는 한동안 동성애자 의혹이 따라다녔다…
  9. 본인은 야마모토 KID 노리후미를 의식한 네이밍이였다고 주장했지만, 누가봐도 아니라는게 문제…
  10. 미국에서 신년이 시작될 때 키스를 하는 풍습에 빗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