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헨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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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Dan "Hendo" Henderson
종합격투기 전적47전 32승 15패
16KO, 2서브미션, 14판정
3KO, 4서브미션, 8판정
생년월일1970년 8월 24일
국적미국
신장180cm
체급-83.9kg, -93kg, -120.2kg, 무제한
평체92.5kg 전후[1]
링네임"할리우드"[2]"헨도"[3]
주요 타이틀BOF 1997 라이트헤비급 토너먼트 우승
UFC 17 미들급 토너먼트 우승
Rings 킹 오브 킹스 토너먼트 1999 우승
PRIDE 2005 웰터급 그랑프리 우승
PRIDE 초대 웰터급 챔피언
PRIDE 2대 미들급 챔피언
Strikeforce 6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MMA의 위대한 노장

세계최고단체들의 타이틀을 모두 획득했던 파이터

오른손에 폭탄을 장착한 '폭탄 레슬러'이자 'H-bomb'의 주인공.

화학전의 귀재[4]

관련항목 : UFC 역대 챔피언, PRIDE 역대 챔피언

1 전적

1.1 초창기

1997년부터 종합격투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브라질에서 활약하다가 1998년 5월 UFC에 건너와 미들급 토너먼트에 출전한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카를로스 뉴턴이었는데 타격에서 밀렸으나 레슬링과 포지셔닝에서 얻은 우위를 지켜내며 승리했다.

이후 1999년에서 2000년까지 일본 Rings의 킹 오브 킹스 토너먼트에 참가한다. 이때부터 슬슬 H-bomb이 가동되기 시작, 1999년 10월 카네하라 히로미츠를 쓰러뜨리고 블록 우승을 차지한다. 2000년 2월 길버트 아이블을 상대로 한 본선 1차전에서 초반 대포동에 이은 개비기로 승리, 2차전의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는 연장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치른 끝에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다.[5] 결승에서 만난 헤나토 소브랄에게도 메이저리티 판정으로 승리를 거두며 Rings 왕중왕에 등극했다.

1.2 PRIDE

1.2.1 미들급

2000년 12월 9일 그는 PRIDE에서 데뷔전을 치른다. 상대는 반달레이 실바. 두 선수는 3라운드 내내 치열하게 접전을 벌였고 헨더슨은 연달아 대포동을 작렬시키며 실바를 열심히 괴롭혔다. 그러나 결국 체격차를 극복하지 못했고 실바에게 반칙성 니킥까지 맞은 끝에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한다. 둘의 대결은 룰 개정이 있기전인 PRIDE.12에서의 경기였기때문에 그 당시 룰은 애초에 4점포지션에서의 모든 킥 공격은 반칙이다. 룰 개정은 다음대회인 2001년 PRIDE.13부터 적용되는데 보다 공격적이고 화끈한 경기운영을 위해 4점포지션에서 모든 킥공격[6]이 허용된다. 그래도 헨도가 전반적으로 밀렸던 것은 사실. 경기 후 실바는 넌더리를 내며 "댄 핸더슨 같은 녀석과는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다시 싸우게 되었고 결과는...

데뷔전에서 패배를 당했으나 2001년 3월 PRIDE 13에서 헨조 그레이시를 라이트 어퍼에 이은 호쾌한 파운딩 KO로 잡아내며 부활했다. 5월의 PRIDE 14에서는 쇼지 아키라를 상대로 초반 다운을 내주며 고전하는 듯 보였으나 이후 레슬링과 타격에서 우위를 보인 끝에 3라운드 파운딩과 니킥으로 KO승을 거뒀다. 11월에는 슈트 박스의 무릴로 닌자와 치열한 접전을 벌여 스플릿 판정승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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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2년 4월 PRIDE 17 히카르도 아로나와의 경기에서 레슬링에서 밀려 패하면서 3연승의 기세가 무너지고 만다. 12월의 호드리고와의 2차전에서도 고전 끝에 암바에 걸려 패하는 등 PRIDE에서의 2002년은 다소 침체된 분위기였다.

2003년 3월 PRIDE 25에서 오야마 슌고를 대포동으로 떡실신시키며 재기, 11월에는 무릴로 부스타만테를 역시 KO로 초살시킨다. 파운딩에 의한 TKO였는데 스탑이 선언된 시점이 부스타만테가 헨더슨의 상체를 끌어안고 방어에 들어가려던 순간이었기에 부스타만테측으로부터 항의가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 미묘한 타이밍일 수도 있었으나 헨더슨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것만은 사실. 부스타만테측의 항의는 다름이 아니고 펀치가 아닌 버팅에 의해 의식을 잃었다는데 초점이 있는것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버팅은 반칙이다. 느린그림으로 보면 버팅인걸 확실히 알수있다는..여하튼 경기종료 직후엔 부스타만테측에서도 바로 항의모드가 아닌 헨더슨을 축하해주는 분위기였고 그후에 브라질리안들의 주특기인 핑계모드 버팅때문에 졌다는 뉘앙스로 말한것이다.

2004년 10월의 PRIDE 28에서는 나카무라 카즈히로와 대결해 상위를 잡은 상태에서 나카무라의 어깨가 탈골되며 승리를 얻는다. 12월의 남제에서는 Pancrase의 중량급 에이스였던 곤도 유키와의 접전 끝에 스플릿 판정승을 거뒀다.

미들급(-93kg 현 UFC 라이트헤비급)에서 4연승을 거둔 헨더슨은 2005년 3월 2005 PRIDE 미들급 그랑프리에 출전, 1회전에서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와 대결했다. 연달아 테이크다운을 따냈으나 오히려 예상외로 호제리오의 가드는 견고했다. 결국 태클이 스프럴에 막히면서 사이드를 내준 뒤 암바로 허무하게 패했다. 이 시합 후 헨더슨은 웰터급(-83kg 현 UFC 미들급)으로 체급을 낮췄다.

1.2.2 웰터급

체급을 내린 헨더슨은 2005 PRIDE 웰터급 그랑프리에 참전, 2005년 9월 무사도에서 열린 예선 토너먼트에서 승리를 거둔다. 1차전에서 만난 초난 료를 22초만에 펀치러쉬로 안드로메다로 보냈고[7], 2차전에서 만난 고노 아키히로의 아웃파이팅에 약간 애먹긴 했으나 역시 대포동을 작렬시키며 7분만에 실신 KO승을 거뒀다.

2005년 12월 남제에서 만난 상대는 미들급에서도 한 번 대결한 적이 있는 BTT의 수장 무릴로 부스타만테였다. 양 선수는 2라운드 15분을 모두 소모하는 접전을 벌였고 승부는 판정으로 넘어가 2:1 헨더슨의 스플릿 승리가 선언된다. 이로써 PRIDE 초대 웰터급 챔피언에 등극함과 동시에 웰터급 그랑프리 타이틀까지 손에 넣게 된다. 다만 여기서도(...) 판정에 잡음이 있었다.

2006년 4월에는 그라바카 출신의 미사키 카즈오와 대결, 스탠딩에서 다운을 따내는 등 모든 면에서 상대를 압도하며 승리했다. 8월에 PRIDE 2006 웰터급 그랑프리에 출전하여 1차전에서 미사키와 재대결했으나 상대의 아웃파이팅에 말려 완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타이틀전이 아니었던 관계로 웰터급 타이틀은 잃지 않았고 헨더슨에게 승리한 미사키는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미사키도 2차전에서 파울로 필리오에게 패했으나 필리오가 부상을 입으며 리저버로 출전, 역시 부상을 입고 결승에 진출한 데니스 강에게 편파 판정승을 거둔다. 참고로 이 경기로 미사키는 한국팬들로부터 '깨방정 스탭'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1.2.3 미들급

2006 그랑프리 이후 헨더슨은 다시 미들급으로의 월장을 시도했다. 2006년 10월 PRIDE에서 격돌한 상대는 속사펀치로 유명한 비토 벨포트였는데 개비기로 손쉽게 잡아버린다.

이후 2007년 2월 반달레이 실바의 미들급 타이틀에 도전하게 된다. 두 선수는 이미 7년 전에 미들급에서 싸웠던 적이 있고 당시에는 실바가 승리한 바 있었다. 침착하게 경기를 운영하던 헨도는 3라운드 실바의 턱에 왼손 훅을 정확하게 꽂아넣으면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로써 웰터급과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쥔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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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어깨의 은색 벨트는 PRIDE 웰터급과 미들급의 정규타이틀이고 허리의 금색 벨트는 웰터급 그랑프리 타이틀

1.3 UFC

이후 프라이드가 와해되자 그는 UFC로 건너간다. 2007년 9월 UFC 75에서 UFC 퀸튼 잭슨과 PRIDE, UFC의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놓고 맞붙었는데, 5라운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끝에 3:0 판정패를 당하며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11월의 UFC 78에서는 앤더슨 실바와 PRIDE, UFC 미들급 챔피언 대결을 벌였으나 2라운드의 타격전에서 완벽하게 발린 끝에 백에서 RNC를 잡히며 패배. 결국 두 체급의 타이틀을 모두 잃으며 또 다시 부진에 빠지고 말았다.[8]

2008년 9월 UFC 88의 복귀전 상대는 발목 수집가 후지마르 팔하레스. 헨더슨은 상대가 서브미션을 노릴 것을 예상하고 그라운드를 공발을 최대한 회피하며 타격전과 포지셔닝에서 우세를 보이며 승리한다. 2009년 1월 UFC 93회 대회에서 펼쳐진 콩 대결 리치 프랭클린과의 대결에서는 레슬링에서 우세를 보이면서 2:1의 근소한 판정승을 따냈다.[9] 이 승리로 TUF 시즌 9의 코치자격을 얻는다.

2009년 7월 UFC 100에서 마이클 비스핑과 대결했다. 비스핑은 헨도의 약점을 노리고 아웃파이팅 전략을 들고 나왔으나 왼쪽으로 스탭을 밟다 대포동에 걸려 안드로메다행 특급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미들급의 챔피언이 된 비스핑이 이때의 패배를 언급하며 헨더슨을 지목하게 된다. 아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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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1.4 Strikeforce

앤더슨 실바와의 2차전을 원했으나 앤더슨 실바 측이 거부하면서 무산. 이후 상대 선수 & 파이트 머니 문제로 UFC 측과 계속 대립하다가 결국 거액을 받으며 Strikeforce로 이적했다. 2010년 4월 Strikeforce - Nashville에서 미들급 챔피언 제이크 쉴즈와 대결했다. 역시 초반 대포동이 불을 뿜으며 승기를 잡는 듯 했으나 데미지를 회복한 쉴즈가 2라운드부터 지옥의 개비기를 선보이며 헨도를 역관광시켰다. 결국 5라운드까지 꼼짝달싹 못하고 그라운드에 묶여 판정패. 이 시합 이후 다시 라이트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2010년 12월 헤나토 소브랄과의 2차전에서 레프트 훅에 이은 2방의 파운딩으로 KO승을 거두며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10pxft5.gif 당시 커뮤니티의 반응은 "으악! 바바루 죽은 거 아님?"

2011년 3월에는 하파엘 페이자오의 Strikeforce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했다. 초반 다운을 당하며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곧바로 TD를 성공시키며 앞섰고, 2라운드에서도 우세를 이어가더니 3라운드 스트레이트성 펀치에 이어 대포동 파운딩을 작렬시키며 또 한 번 KO승을 거둔다.

그러더니 2011년 7월 표도르 예멜리아넨코와 헤비급에서 대결했다. 헤비급 매치는 거의 10년만이고 상대가 상대인지라 압도적인 열세가 예상되었으나 헨도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KO승을 거둔다. 초반 난타전에서 우세를 잡았고 표도르의 러쉬에 다운을 당하며 밑에 깔리기도 했으나 곧바로 하프가드에서의 스윕, 이어 겨드랑이 사이로 펀치를 꽂아넣으며 표도르를 실신시키는 대 이변을 연출했다. 이 시합으로 표도르는 Zuffa에서 퇴출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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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UFC

표도르를 퇴치한 업적으로 UFC로 귀환, 2011년 11월에 UFC 139에서 마우리시오 쇼군과 무시무시한 혈전을 벌였다. 구 PRIDE 시절부터 팬들이 고대하던 드림매치가 4년만에 옥타곤에서 실현된 것. 이상하게 복싱에서 헨도가 앞서고 쇼군이 레슬링과 그라운드로 반격하는 양상이었는데, 초반 헨도의 대포동이 연달아 터지면서 1, 2, 3 라운드에 무려 3번이나 다운을 뽑아낸다. 하지만 쇼군은 그 타격을 모두 버텼고 4 라운드부터 우세를 잡기 시작하더니 5라운드를 그라운드로 끌고 가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치열한 양상이 이어진 가운데 3라운드의 헨도와 5라운드의 쇼군은 10:8이 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고, 결국 승부는 판정으로 넘어가 헨도의 48:47 만장일치가 선언되었다. 타격과 그래플링 양면에서 일진일퇴, 역전과 재역전이 난무했던 MMA 역사상 손꼽히는 명승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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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을 이기게 되어 UFC 151의 메인이벤트에서 VS 존 존스와의 타이틀 매치가 예정되었으나 경기 8일 전, 무릎부상으로 출전이 불가하다고 선언하였고 대체선수로 내세운 차엘 소넨을(모든 라이트헤비급선수들이 대체경기를 거부했다. 상대가 강하기도 했고, 준비기간도 턱없이 부족) 존스가 거부하게 되어 결국 UFC 151 자체가 취소되었다. 부상을 3주 전부터 숨겨 온 것이 드러나며 욕을 꽤 많이 먹었다.

부상 치료 이후 UFC 157에서 미국 팬들의 일방적 응원 속에 료토 마치다와 도전자 결정전을 가졌다. 1,2라운드에서는 큰 타격을 꽂아넣는 데에 실패했고 오히려 1라운드 막판에는 테이크다운 및 파운딩을 허용하기도 했다. 3라운드에서 기회를 잡아 테이크다운을 시키는 등 우위를 차지했지만, 전체적인 유효타에서 다소 앞서고도 스플릿 판정패를 당했다.

2013년 6월16일 캐나다 위니페그에서 열린 UFC161에서 라샤드 에반스를 상대로 경기를 가졌다. 1라운드 초반 라이트를 적중시켰고, 에반스의 TD 시도를 여러번 막아내며 차분하게 풀어갔다. 하지만 2라운드 후반부터 클린치 싸움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3라운드에는 에반스의 펀치를 허용하여 휘청이는 모습을 보인 끝에 결국 2:1 판정패를 기록했다.

2013년 11월 9일 UFN 32에서 비토 벨포트와 리매치를 가졌다. 1차전과 달리 들어가면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고 비토에게 역카운터를 맞고 쓰러졌다. 처음엔 버티는거 싶더니 일어나면서 왼발 하이킥에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생애 첫 KO패. UFC와의 마지막 계약 경기인지라 앞으로의 행보를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다시 계약을 맺은 것인지 2014년 3월 24일 UFC Fight Night 38의 메인 이벤트에서 마우리시오 쇼군과의 두 번째 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쇼군이 1차전과는 다르게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때때로 정타를 꽂아넣는 경기운영을 펼치며 경기를 잘 풀어나간 반면 헨더슨은 테이크다운이 번번이 실패하고 1라운드와 2라운드 모두 쇼군의 정타를 허용해 그로기 상태에 빠지는 등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3라운드에서 테이크다운 시도를 막으려다 빈 틈을 보인 쇼군의 안면에 정확하게 오른손 훅을 꽂아 넣은 이후 연이은 파운딩으로 대역전 TKO 승리를 거뒀다. 쇼군전 이후 3연패를 다시 쇼군을 이기며 끊은 데다가 퍼포먼스 오브 나이트와 파이트 오브 나이트 보너스까지 독차지해 10만 달러의 보너스를 얻으며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한 셈.

하지만 TRT가 공식적으로 금지된 첫 경기인 UFC173에서 다니엘 코미어를 맞이하여, 그야말로 화려한 관광패를 하게된다. 보다보면 눈물날정도로 얻어 맞는다. 1라운드부터 바닥청소를 하면서 체력이 바닥나고, 김대환 해설이 제대로 해설을 못할정도로 처절하게 맞고 깔리고 굴러다니다가 윷가락 던져지듯이 슬램도 당하고, 3라운드 종료 1분을 남기고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실신까지 당하면서 처절한 패배를 맛보게된다. 약의 유무가 정말 확실하다

이후 2015년 1월 24일 UFC on Fox 14에서 게가드 무사시를 상대로 복귀전을 가졌지만, 치고 들어가다 라이트 카운터를 얻어맞고 다운을 당하며 1분 남짓한 경기 끝에 초살당했다. 너무 빨리 말렸다고 레프리에게 항의하긴 했지만 이미 눈이 풀려있던 상황이라..

무사시와의 경기까지 말아먹으며 최근 6경기에서 1승 5패를 기록하고 있어 은퇴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닌가 했지만 2015년 6월 7일 UFC Fight of Night 68의 메인이벤트에서 팀 보에치를 만나 라이트 훅과 어퍼컷을 작렬시키며 28초만에 KO승을 거뒀다. 다만 경기 이후 승자 인터뷰에 따르면 손 부상을 입은 것 같다고 밝혀서, 다음 경기가 언제 이루어질지는 확실하지 않은 상태.

2015년 11월 비토 벨포트와 3차전에서 1라운드에 KO패당하면서 또 다시 부진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2016년 6월 헥터 롬바드와의 경기에서 1라운드에 반격당하며 패배위기에 몰렸으나 놀랍게도 버텨내고, 2라운드에 하이킥이 잡히자 강력한 라이트 엘보우로 롬바드를 실신시키며 승리했다. 본인도 "이건 (진다면) 내 마지막일수도 있었던 경기였다"라며 감격했다.

한편 미들급에서 마이클 비스핑루크 락홀드를 제압하고 챔피언으로 등극했는데 비스핑이 1차 방어전 상대로 헨더슨을 지목했다. 미들급에는 크리스 와이드먼이나 자카레 등과 같은 강력한 탑 컨텐더들도 즐비한데다가 당시 헨더슨의 랭킹도 12위에 최근에 이겼던 상대도 헥터 롬바드. 타이틀샷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였지만... 비스핑의 도움으로 결국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2016년 10월 8일에 열리는 UFC 204에서 과거 자기가 KO시켰던 비스핑과 리매치 겸 챔피언 결정전 매치를 치르게 되었다. 댄 헨더슨 입장에서는 은퇴 전 UFC 챔피언으로 등극할 수도 있는 마지막 기회. 물론 비스핑이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만 사실 헨더슨 입장에선 그나마 해볼만 한 상대가 비스핑 정도니... 또한 승패여부에 상관없이 이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임을 밝혔다. 즉, 챔피언전이면서 은퇴 경기인 것.

1.6 UFC 204

UFC 204의 메인 이벤트는 그야말로 노장의 마지막 투혼을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경기였다. 육체의 노쇠화와 그에 따른 부족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신중하게 경기를 운영해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마이클 비스핑에게 2번이나 H-Bomb를 터뜨려 넉다운 시켰고 비스핑의 왼쪽 눈은 안와 부상까지 왔다. 하지만 라운드를 거칠 수록 나이를 속이지 못하고 움직임이 느려졌고 호흡에도 곤란을 겪었다. 4라운드에서는 비스핑에게 반칙 고자킥을 당해 회복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숨을 돌렸고 5라운드에서는 테이크 다운까지 시켜 비스핑을 잠시 제압했다.

싸우기 전까지 트래쉬 토크를 시전한 비스핑도 관중들에게 우선 댄 헨더슨에게 경의를 표하라고 했고 댄이 얼마나 위대한 파이터인지는 자신의 얻어터진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존경의 뜻을 밝혔다. 댄 헨더슨도 자신의 마지막 경기에 챔피언 벨트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비스핑에게 감사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기가 끝난 이후 비교적 멀쩡했던 댄 헨더슨에 비해 상대인 비스핑의 얼굴은 처참할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러나 5라운드 내내 짤짤이로 포인트를 가져온 결국 5라운드 만장일치 승을 거두었다. 비스핑의 홈 경기였지만 경기가 끝난 후 늙은이 치고 괜찮지 않았나?라는 농담을 던지며 팬들을 뭉클하게 만들고 환호성을 받았다.

헨더슨은 결과에 아쉬워했고 크리스 와이드먼 등 업계의 많은 파이터들도 헨더슨의 손을 들어줬다.비스핑과 같은 미들급의 게가드 무사시요엘 로메로는 비스핑이 굉장히 허접한 경기를 보여줬다고 평했고 팀 실비아는 어떻게 저딴 놈이 챔피언이냐고 했다.

결과는 아쉽지만 마지막까지 투혼을 보여준 노장의 마지막 시합에 업계의 파이터들은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2 파이팅 스타일

전 미국 올림픽 대표팀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 그레코로만형 선수로 출전했다. MMA 선수 중 레슬링 커리어로는 거의 최상위급.

거의 1세대 MMA 파이터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레슬링으로만 싸우는 모습을 보였지만 점차 약점들을 보완하여 PRIDE 시절에 접어들어 웰라운더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기량의 상승을 보였다. 레슬링 백본으로 금강불괴 수준의 내구력과 스탠딩에서의 강력한 화력을 갖췄기에 어떤 상대에게도 난적인 선수.

"H-Bomb"이라고 불리는 특유의 오버핸드 라이트훅이 유명한데, 타고난 하드펀처라 걸리면 웬만한 상대는 한 방에 나가떨어질 정도로 파괴력이 무시무시하다. 타격으로 잘 안 풀릴 때는 그레코 클린치에 의한 끈적끈적한 케이지 컨트롤, 비틀거리는 상대를 힘으로 싸잡아서 안면에 꽂아넣는 니킥도 위협적이다. 그라운드로 끌고 가서 개비기를 운영하는데 전매특허 손으로 상대 입 틀어막기 이것도 꽤나 강력하다. 특히 공중에서 한번 붕떴다가 내려꽂는 파운딩이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라운드 상황에서 엘보우의 활용도 수준급.

물론 약점이 없는 선수는 아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스타일이 공략되고 있으니.. 중심이 무너질 정도로 동작이 큰데다가 콤비네이션이 단순하고[11], 하단태클 방어가 강한 편은 아니라 레슬러이면서 의외로 테이크다운을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역으로 테이크다운을 당하기도 한다. 미사키의 아웃파이팅을 잡아내지 못해 완패하거나 진흙탕 양상이 되는 시합에서는 후반 체력이 방전되기도 한다.

거기다 나이가 들면서 안면에 큰 타격을 허용하는 빈도가 많아지고 있다. 비토 벨포트과의 2차전에서 어퍼컷 카운터와 하이킥에 첫 KO패를 당했으며, 마우리시오 쇼군과의 2차전에서도 쇼군의 카운터에 실신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맞이했다. 이후에도 몇번씩 다운되가며 한 대 치고 두대 맞는(...) 양상을 띄워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갔다. 오른손만 믿고 뛰는 파이터

평체가 93kg정도인데 미들급에서 뛰면 체력 문제가 생기고 라이트헤비급에서는 체격에서 밀리는 등 어느 체급에서 경기를 뛰건 한 가지씩은 문제점이 생긴다. 나이를 먹으면서 평체가 줄었는지, 라이트헤비급 매치였던 다니엘 코미어전에서의 계체량 체중이 90.3kg였다. 후속 경기인 게가드 무사시전부터 앞으로는 미들급에서만 뛸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3 기타

경기가 잡히든 안 잡히든 훈련량을 거의 일정하게 유지한다.[12] 그래서 언제든지 오퍼가 와도 경기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경기 3일전에 오퍼가 왔는데도 수락해서 승리한 경기도 있었다. 무차별급에서부터 84kg 미들급에 이르기까지 넓은 폭의 체급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담으로, 그의 가계를 살펴보면 그의 혈통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Clinch Gear라는 의류 브랜드를 갖고 있으며, 이 회사는 2007년 9월 열렸던 세계 레슬링 대회의 참가팀에게 반바지를 공급했다고 한다.

랜디 커투어와는 팀 퀘스트에서 같이 활동한 사이로, 서로 의형제를 맺었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라고 한다. 둘의 경기 스타일도 매우 비슷하다. 맷 린들랜드도 함께 팀 퀘스트를 이끌어 갔던 동료 사이. 하지만 린들랜드와는 팀 퀘스트의 상표를 두고 2011년 법정분쟁을 벌였다.

프로격투기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1997년에 그래플링 대항전에 출전한 것이었는데, 여기서 프랭크 샴락에게 하체관절기로 패했다. '아마추어 레슬링이 짱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핸더슨에게 프로레슬러에게 그래플링으로 졌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고 이후 브라질의 발리 투도 대회에 출전을 결심한다. 하다보니 금전적인 보상이 제법 짭짤했기에 아마레슬링 커리어를 접고 아예 이쪽으로 눌러앉게 되었다고 한다.

RINGS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을 때 상금 2천만엔을 현금으로 수령했는데, 세금을 안내려고 이걸 투명 테이프로 몸에 칭칭 감고 귀국했다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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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 맷집을 키우기 위해 생니를 2개나 뽑았다.# 은퇴하면 임플란트박겠다는 듯.[13]

종합격투기 역사상 메이저 단체에서 두 체급 타이틀을 동시에 가져간 유일한 선수[14]이자 UFC, Rings, PRIDE 3대 메이저 단체 타이틀을 모두 획득한 선수다.[15] 고미 타카노리를 제외한 PRIDE의 모든 챔피언들에게 승리를 거두는 진기록[16]을 세우기도 했다. 핸더슨 본인도 커리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프라이드에서 두번째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라고.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와는 재미있는 관계다. 헨더슨 역시 업계에서 무시 못할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UFC 진출 당시 스포츠 의류 지정 등 사업에서의 이권을 놓고 화이트와 대립한 끝에 완전히 사이가 틀어져 결별한 적이 있다. 그래서 Strikeforce로 간 것인데 2011년 Zuffa가 스포를 꿀꺽해 버리며 입장이 꽤나 난처해졌다. 한때 '내가 UFC를 미워해서 그런건 아님'이라며 한 수 숙이고 들어갈 정도로 몸을 사리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데이나의 숙적이었던 표도르를 잡으며 인생역전, 데이나의 총애(?)를 받으며 UFC에 금의환향하게 되었다. 은퇴 후 인터뷰에서 UFC와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데이나에게 일자리 달라고 전화할거라고(...)

판정운이 대단히 좋은데, 비단 헨도 뿐 아니라 팀퀘스트 3인방 전원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다. 최대의 피해자는 역시 브라질리안 탑 팀.

UFC 151의 취소 사태에 가장 직접적 책임이 있는 선수다. 취소 사실이 알려졌을 때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 존스를 비난했지만, 헨도의 부상이 실은 3주 전에 발생했으나 지금까지 숨겨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부분의 비난의 화살은 다시 헨더슨에게 돌아갔다. 더불어 하필이면 헨도의 팀 퀘스트 동료인 소넨이 대체 선수 물망에 올랐다는 것에서 둘 사이에 작당모의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이 소동은 결국 비토 벨포트가 리저버로 급투입되며 일단락되었으나 벨포트전 이후의 타이틀 도전권을 소넨이 가져가버리자 이번에는 헨도가 소넨을 비방하고 나서며 다시금 풍파를 일으켰다. 한 마디로 소넨이 도전할 명분이 없다는 얘긴데,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다.. 근데 어제까지 한 편이었던 팀 동료에게 하루아침에 키배를 거는 것도 좀...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긴 하지만. 게다가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헨도에게 있으니. 사실 팀 퀘스트 전통이다 이제 고소미만 날리면 된다

안티 없는 파이터로도 유명했으나, TRT요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약도란 별명으로 불리면서 까이고 있다. 2007년 무렵부터 주체육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호르몬제 사용을 허가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침체기를 맞았다가 경기력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는데 공료롭게도 이것이 호르몬 요법을 쓴 시기와 대강 맞아떨어진다. 이를 두고 요법의 효용이 기량에 미치는 영향, 호르몬제를 처방받게 된 경위 등 여러 사안들에 대해 다양한 대립하고 있는 중이다.[17] 처음에는 이를 별 문제 삼지 않았던 데이나 화이트 회장이 TRT를 금지하겠다는 강도 높은 수위의 발언을 하면서 앞으로의 선수생활이 주목되는 선수 중 한 명. 근데 하필 TRT를 끊은 첫 경기를 마치다 전에서 져버리는(그것도 아주 지루하게) 바람에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고, 이후 라샤드와 비토에게 연패를 당하면서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더불어 TRT빨로 경기력이 올랐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쇼군 2차전에서는 TRT를 쪽쪽 빨고는 극적인 역전을 이루어내며 또다시 TRT빨로 경기력을 올리더니 TRT가 공식적으로 금지된 코미어전에서 그야말로 전방위 관광을 당하면서 그야말로 TRT효과가 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근데 쇼군이랑 코미어랑 싸워도 쇼군이 관광당할거 같은데

4 Highlights

  1. 인터뷰 http://fightlinker.com/dan-henderson-i-see-myself-fighting-another-couple-years-at-least/
  2. 헨더슨 본인이 싫어하는 별명이라 취소선을 긋는다. PRIDE에서 UFC로 넘어올 때 인터뷰를 보면 이 별명이 나온다.
  3. 공식 링네임은 아니었지만 일본 활동 당시에는 '단 헨'이라고 불리웠다.
  4. 스테로이드와는 다르게 불법이 아니었던 TRT (Testosterone Replacement Treatment, 테스토스테론 대체요법) 을 교묘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 과거 전적이 있어서 격투팬들이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자주 쓰는 말이다. 최근 헥터 롬바드와의 미들급 경기가 잡히자 "ㄷㄷ화학전이네" 와 같은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5. 다만 연장에서 노게이라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판정에 논란이 있었다.
  6. 니킥,사커볼킥,스탬프 킥
  7. 초난 료는 이 경기의 전 시합인 필 바로니 전에서도 1분 30초만에 KO당한게 부각되면서 이 시합을 계기로 국내 팬들에게 '초살료'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8. 즉 현 UFC 미들급,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은 구 PRIDE의 웰터급, 미들급 챔피언을 겸한다는 얘기다. 근데 지금도 그런 거 신경쓰는 사람 있을까...
  9. 그런데 3라운드에 써밍이 터지는 바람에 말이 많았다. 하필 프랭클린이 공세를 펼 때 나온 것이기도 해서.
  10. 조 로건은 이를 'one of the most epic fights in the history of UFC'라고 극찬했고 슈퍼액션의 김대환 해설, 엠파이트를 비롯한 언론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혼돈의 일상고우키는 UFC 139의 평점을 5.0으로 주었고, 이종격투기 카페, GOT MMA에서도 두 선수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11. 예컨데 킥을 섞어 주는 경우가 드물고, 킥 & 펀치 콤비네이션의 활용도나 숙련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큰거 한방을 노리고 인사이드 레그킥과 오버헨드 라이트를 주무기로 삼는 편. 요새 전체적으로 선수들 수준이 높아지며 펀치와 킥을 섞어주는 콤비네이션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헨도의 스타일은 여전히 구식이다.
  12. 선수마다 개인차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경기가 없을 때의 훈련량은 경기가 있을 때의 절반 정도이다.
  13. 과거 복싱이나 킥복싱 같은 입식타격기 선수들 몇몇이 했던 방법이다. 다만 실제로는 안면맷집이랑 별 관계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바람에 2010년대 활동하는 선수들은 거의 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헨더스옹의 연세(...)를 알 수 있는 부분일지도.
  14. BJ 펜이나 랜디 커투어 역시 UFC에서 두 체급 타이틀을 가져가기는 했지만 동시에 갖지는 못했으며, 한 번씩 반납한 뒤 다음 체급에서 챔피언이 됐다는 차이가 있다. 반면에 핸더슨은 웰터급 챔피언을 지내면서 동시에 미들급 타이틀을 따냈다.
  15. MMA 역사상 핸더슨과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단 2명만이 달성한 일이다. 단 노게이라의 UFC 타이틀은 잠정 챔피언 타이틀이라 약간 애매하다.
  16. 2005년 경 고미가 헨도와 붙고 싶다는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어서 고미와의 경기가 성사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고미가 무차별급 GP 참가를 포기하고 목숨을 선택하며 무산되었다.
  17. 물론 헨도의 커리어가 단순히 TRT 덕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애초에 도핑 문제는 많은 선수들에게 있어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