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노 사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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藤原佐為

알파고
스탠드

히카루의 바둑의 또 다른 주인공. KBS한정 이름으로는 좌랑이며 원조 대리기사.
성우는 각각 치바 스스무 / 구자형(KBS)[1][2], 김장(투니버스)[3] / 브래드 스웨일.

2 작품에서의 행보

2.1 헤이안 시대

향년 20세. 헤이안시대의 바둑 기사였고, 덴노[4] 에게 바둑을 가르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른 바둑 선생이 덴노에게 이간질을 하여 한 명의 선생이면 충분하다라는 의견 끝에 승부를 내고 그 승자만 남는다는 조건캐삭빵 하에 바둑을 두게 되지만, 상대의 행동[5]에 감정이 격분하게 되고 결국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패배하게 되고, 패배한 뒤로 궁에서 쫓겨나 3일간 배회하다 입수 자살을 하게 된다.

2.2 에도 시대

자살 후 혼이 되어 한 바둑판에 잠들었다가 바둑 기사를 지망하는 토라지로[6]와 만나 그의 몸에 깃들어 당대의 최고 바둑 기사로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혼인보 슈우사쿠가 전염병에 걸려 바둑판에 피를 토하며 사망하고, 다시금 그 바둑판에 잠들었다.

참고로 쿠로후네 사건과 페리 제독도 아는 걸 보면 상당히 근대와 가까운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작중 언급은 140년 전으로, 쿠로후네 사건이 1853년이고 현대의 배경이 1990년대 최후반[7]인데다 혼인보 슈우사쿠도 1837년부터 1862년까지 활약했기에 얼추 연대가 맞아떨어진다. 머나먼 헤이안 시대의 사람인 사이가 현대에 와서도 부적응 문제 없이 무리없이 바둑을 둘 수 있었던 것도 어떻게보면 이 시대를 거쳤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허나 인간이 달에 착륙했다는 등의 과학적인 이야기는 너무 안드로메다 같은 소리라서 그런지, 그런게 있을 수 있냐고 추궁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신기한 상자라고 하거나 헤이안과 전근대 시절보다 현재와 토라지로 시절이 더 갭이 크다는 등의 소리도 한다.

2.3 현대

히카루의 할아버지가 액막이로 그 바둑판을 사들이고(흰 천 뒤집어쓴 귀신이 나오는 바둑판이라고 해서. 물론 그건 사기.), 할아버지의 골동품을 팔아먹어(!!) 용돈벌이 좀 하려던 신도우 히카루와 만나게 되었다.

본래 히카루는 바둑에 관심이 없었지만, 사이가 그 무신경한 말들(바둑은 고리타분하다)에 상처받고 슬퍼할 때마다 그 의식이 히카루를 감싸서 구토를 유발하는 바람에,[8] 본의 아니게 반강제로 히카루에게 바둑을 두게 한다.

처음에는 히카루의 할아버지와 대국을 시도하지만, 히카루가 바둑 용어를 전혀 몰라 대실패. 이후 동네 바둑교실을 다니며 바둑의 기초를 익혔다[9]. 그리고 기원에 가서 처음으로 제대로 붙은 대국이 토우야 아키라와의 대국이었는데,[10] 이 대국으로 인해 토우야 아키라는 신도우 히카루를 쫓게 된다. 작중 시점의 기준으로 아키라가 백을 쥐었고, 덤 5집 반의 규칙 때문에 결과만 놓고 보자면 아키라의 승리지만[11] 아키라 스스로도 이 엄청난 벽에 질겁했다.[12] 이후 다시금 길가던 히카루를 붙잡아 대국을 벌였고, 역시 지도 바둑 기분으로 가볍게 두려던 사이도 아키라의 맹렬한 기세에 적당히 봐주다간 질 지경이라, 처절하게 이겨버린다.

아키라를 보고 자극받은 히카루가 바둑에 진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기뻐하며 틈나면 히카루와 바둑을 두는 친구이자 선생님이자 애완동물(…)로서 히카루의 재능을 발견했고 그의 성장에 기여 아니, 전적으로 키우다시피 했다. 중학교 입학 후 바둑부에 들긴 했지만 부원 츠츠이나 미타니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오로지 재능+사이 효과. 과거에도 현대에도 어디가서 꿀리지 않을 세계 정상급인 기사가, 하루 종일 천재적 소질을 가진(그러나 성질머리가 글러먹어서 티는 잘 안나는.) 아이를 가르친 셈. 몇 개월만에 히카루를 원생으로 만들고, 바둑 시작 약 1년만에 프로 시험을 패스시키는 수준까지 올려놓았다(애초에 덴노를 가르치는 기사다.) 실제 기사가 돈을 받고 출장 형식으로 과외를 해주는 시스템도 있다지만, 톱 급 기사는 그런 일에 손도 대지않는(대국 스케쥴도 많고 그런거 안 해도 돈은 잘 번다.) 점을 감안해볼 때 사이와 보낸 3년은 히카루에겐 땡잡은 시기.

이 때 몸이 없어 히카루가 대신 돌을 둬 줬는데, 첫 등장 이후 사라졌던 부채가 나타나 대국시 놓을 돌의 위치를 짚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후 히카루의 몸에 빙의해서 타인과 두거나 하는 등등의 장면에서 접힌 부채를 내뻗는 등 사이표 간지 아이템으로 정착. 사이와 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13]

이후 바둑상대가 히카루에 한정되어 있는 것을 갑갑해하던 차에, 히카루가 사이를 위해 인터넷 바둑을 시작하면서 사이는 인터넷 바둑계에서 Sai라는 이름으로 각양각색의 세계의 기사들과 대국을 두게 된다. 이를 통해 잦은 대국 경험은 물론이고, 잠들어 있는 동안 새로이 개발되었던 바둑 묘수들을 습득하였다. 최강이었지만 옛 것이었던 바둑 실력에 새로운 발전을 가져온 것. 온고지신. 덤으로 세계의 강호들을 모조리 이겨 인터넷의 전설적인 기사로 등극(아마도 무패일 것이다.)하였다. 이에 대해 와야는 '혼인보 슈우사쿠가 현대의 정석을 배우는 것 같다.' 고 평했다. 말 그대로다. 그러나 프로 시험의 1패를 헌납한 아키라와의 인터넷 대국을 마지막으로, 정체를 들킬 위험이 높아져,[14] 방학의 막바지와 함께 사이의 활약 종료. 다시금 사이의 상대는 히카루 하나로... 이후 별 활약이 없었다. 일단 1부는 '사이'편인데(…)

히카루가 프로시험에 합격해 고단자와 첫 대국을 하는 '신초단 시리즈'의 상대가 이승에 돌아온 후 꼭 상대해보고 싶었던 도우야 고요임을 알고는, 히카루에게 억지를 부려 자신이 대국을 두게 된다. 하지만 대국 성격상 신초단인 히카루에게 역 핸디로 5집 반이 주어지자, '핸디 없이 두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이 열한집의 핸디를 안고 있다는 전제로 대국을 감행하였다.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대국이 엉망.[15] 자신에게도 중요한 대국이었던 히카루에게 대한 미안함 반, 다시 제대로 대국을 두고 싶다는 열망 반으로 한동안 복잡해했다.

도우야 고요가 쓰러졌을 때, 병문안을 간 히카루 덕에 인터넷으로 도우야 고요와 대국이 성사되었다. 히카루의 손을 빌려 진행된 이 인터넷 대국은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엄청난 관전 속에 진행되었고, 사이 스스로도 이승에 돌아온 이후 최고로 전력을 다해 상대한 승부였다. 결국 사이가 반집 차로 승리하게 되지만, 히카루가 중간에 그 바둑의 역전의 수를 알아내게 되고 신은 히카루에게 이 일국을 보여주기 위해 나에게 천 년의 시간을 기다리게 한 것이다 라고 깨닫게 된다.[16][17]

그에 자신이 곧 사라질 것임을 깨닫고 도우야 고요의 재대국 요청에도 '시간이 없다.'며 머뭇거린다. 이러한 불안함에 자꾸 대국을 졸라 히카루를 귀찮게[18]하는 등 안쓰러운 모습을 보였다. 또 그간 히카루가 sai와 관계가 있음을 깨달은 오가타의 대국 요청을 자꾸 피해왔었지만, 오가타가 술에 취한 동안 대국해주는 서비스(?) 정신도 발휘.[19][20] 행사를 끝내고 귀가해 자려던 히카루를 붙잡고 마지막 대국을 시작하지만, 토라지로와 만나고 히카루를 만나 온 자신의 삶이 신의 한 수를 향해가는 커다란 여정의 하나이며, 자신의 역할이 끝난 것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성불한 듯.).[21]

스스로 성불할 운명을 예감하고 있던 사이는 그 이전부터 혼잣말로 계속해서 히카루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중얼거리지만, 히카루는 사이의 걱정을 그저 기우라고만 생각했고 결국 이후로 만나지 못한다.

성불한 뒤로는 개심한 히카루의 꿈에 나타나서 자신이 애용하던 부채를 건네주는[22] 장면을 끝으로 더이상의 직접적인 등장은 없다.

그가 사라진 후에도 신도우 히카루도, 도우야 고요도, 토우야 아키라도 사이가 사라졌지만 사이의 강함을 뒤쫓고 있다. 하긴 바둑실력으론 작중 최강. 천년의 기력

3 특징

3.1 성격

첫 등장은 슬픈 유령 정도였고, 토라지로와 만났을 때의 첫 대사를 보면 꽤 기품이나 위엄 같은 것도 있는데 어째 히카루와 만나고 나서부터는... 가끔 바둑을 못둬서 갑갑해하거나, 도우야 고요와의 일전 이후 사라질 것임을 깨달았을 때 이외엔 성격이 갈수록 귀여워지는 듯 하다. 원작자 홋타 유미가 말하길 '자신이 그럭저럭 귀엽게 그리면 그림 작가 오바타 타케시가 훨씬 귀엽게 그려주고, 또 거기에 자극받아서 더 귀엽게 그리면 오바타가 또 더 귀엽게 그려주고...'의 산물이라고.

성격적인 면으로는 평소에는 나긋나긋 부드럽고 고고한 자세를 취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혈질이 되기도 함(주로 바둑과 관련된 점에서). 분위기를 잘 타고 보기보다 고집도 세다.

할 말을 똑 부러지게 못 하는 면이 있지만 히카루 엄마와 함께 히카루의 버릇없는 소리를 다 받아줬다. 진지해지면 엄한 태도를 취한다.

약간 촐랑대는 성격인 듯 보이나, 바둑에 임할 때 만큼은 날카롭다. 특히 도우야 고요와의 대국에서 투지를 불태울 땐 카리스마에 더해 살기까지 느껴질 정도.

바둑 외에도 보드 게임 전반이나 재미있어 보이는 것에 호기심을 많이 가지는 편. 일단 천 년 전의 사람인 만큼 자동우산이나 자동문, 수족관 등을 보면서 매우 신기해한다. 사람이 달에 갈 수 있다는 것도 처음엔 믿지 못했다.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해서 살짝 스친 사람의 얼굴도 곧잘 기억해낸다. 매사 덤벙대는 히카루가 덕을 많이 보는 편(예 : '저번에 히카루가 *** 했던 그 사람이에요!').

싫어하는 것은 두꺼비. 두꺼비 뿐만 아니라 두꺼비를 닮은 것도 모두 싫어한다. 근데 막상 대국에 맞설 때는 카리스마를 폴폴 날려주었다.

히카루의 표현에 의하면 '강아지 같은 녀석' 내가 견공자제분이라니! 원작자인 홋타 유미에 의하면 '엄마, 아빠, 형, 친구, 애완동물(?)을 모두 아우르는 존재'라 하였다.

외전인 '천 년 방랑'에 의하면 운동신경이 엄청 둔한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 등에서 피리 종류를 부는 모습도 종종 나왔지만 작중에선 오로지 바둑 일변도다.

3.2 외양

헤이안 시대의 하얀색 남자 복식을 하고 있다. 물론 일러스트에선 옷 색에서 문양까지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등장하지만, 작중에는 항상 희고 무늬 없는 옷을 입었다. 서비스 컷 따위 거의 없는 만화라(아카리와 나세의 바니걸 정도가 유일하다.), 사실 변용되는 경우조차도 헤이안 복식 이외의 옷을 입은 적이 없다. 머리는 거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듯. 연재 초반에는 머리를 묶은 위치가 높았으나(목덜미), 차츰 위치가 아래로 내려왔다. 작가들도 잊어먹었는지, 23권 권말의 1권 시점 외전을 보면 매듭이 아래쪽에 있다(;;;) 머리끈도 처음엔 국화 매듭 형태인 듯 했지만 차츰 납작하고 흰 끈 같은 것으로 질끈 묶은 형태로 변형.(일본 전통 양식을 보면 보통 그런 것으로 머리를 묶고있던데... 아시는 분 수정바람.).

신장의 공식 설정은 없지만, 애니메이션 신장 대비표의 설정으로는 179cm. 흠좀무...

사실 긴말없이 척 보면 작화탓에 절세미녀로밖에 안보인다(...). 그런데다 하는 행동까지 귀엽기 짝이 없으니...

그나마 성불떡밥이 던져질때 쯤이면 그나마 늠름한 작화가 되기는 하지만.

3.3 성별(…)

원래 일본에서는 헤이안시대 때 남자만 바둑을 둘 수 있는데다가 옷만 봐도 남자 복식이어서 이를 아는 일본 독자들은 남자라는걸 알았지만[23] 한국에선 그런 걸 몰라 여자로 알고 하악한 사람도 꽤 되는 듯(…) 사실 사이가 좀 모에하다. 단행본 내에 있는 훗타 유미(스토리 작가)의 뒷담화에서도 편집장이 사이를 그녀라고 칭했다고 한다. 특히나 오바타 타케시의 작화 스타일이 굉장히 많이 변한 편인데(23권이니까.), 초반부의 사이는 그야말로 여성(…) 그 자체다. 뒤로 가면서 조금씩 중성(…)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외모가 역변하는 건 아니니 여전히 이쁘고 귀여운건 변함없다. 이렇게 귀여운 사이가 여자일 리 없잖아. 일본에서 애니화돼서 방영되거나 KBS, 투니버스에서 방영되면서 남자 목소리로 말하는 사이를 보고 경악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나의 사이는 그러지 않아! 물론 애니로 처음 접한 사람들은 그런 거 없다.

사실 착각할 만하다. 단행본을 보면 초반에 중간중간에 있는 스토리작가의 한페이지 에피소드 컷에서 '사이가 남자'라는 말이 나오긴 하는데 그냥 보면 긴 머리, 얼굴 묘사뿐 아니라 하는 행동이나 대사가 굉장이 중성적이고 모에해서(..) 뭐, 대사끝에 하트가 붙는다던가 귀여운 그림체로 변하며 징징거린다거나 등등...
애니판에서는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대부분이 피해갈 수 없는 작화의 열화(...)탓도 있고 성우도 남자성우를 기용[24], 대놓고 남자라는걸 알 수 있게 해놨지만 원작 만화의 경우는 귀여운아름다운 여자로밖에 안 보이는 행동거지와 외모로 그려져 있어서... 일본의 고전 복식이라거나 과거 신분제도 등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착각할 수 밖에 없다.
부업으로 가부키 배우를 하기라도 했나

4 여담

  • 한국판의 제목인 고스트 바둑왕은 사이를 칭하는 것 같다. 본격 주인공 지위 강탈. 그 덕분에 중반부터 사이가 사라진 이후 한국팬들은 "사이도 없는데 왜 고스트 바둑왕이냐!"하고 항의했다고. 아마도 사이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25] 일본 원제는 "히카루의 바둑"이라서 제목에 대한 항의는 없었다. 다만 사이의 퇴장 이후 만화책 판매량은 타격을 좀 받았다고. 실제로 독자들(특히 어린이층)은 큰 충격을 받았으며 본작을 계기로 바둑에 입문한 어떤 한국인은 당시 우울증까지 앓았다고(...)[26]
  • 유명세 때문에 실제 한국에서 개최하는 바둑 대회 주최측에서 '사이에게 시드를 주자.'란 농담도 나왔다고 한다.[27] - 그리고 결국 알파고가 한국 명예 프로 9단이 됐다!!
  • KBS 방영시 좌랑이란 이름으로 개명 되었다. 화랑 이름인가?[28][29] 뿐만 아니라 옷에 해당하는 부분을 전부 하얗게 칠해버렸다.[30][31]
  • 프로 기사 이세돌이 사이와 관련해 "그 바둑 귀신이요? 에이, 그거 별 거 아니더라구요. 그 때는 초읽기도 없었는데, 얼마든지 이길 수 있어요" 라고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작중 사용된 기보가 이세돌 九단한테 깨졌던 일본 프로바둑 기사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화에 나오는 기보를 감수한 우메자와 유카리는 五단이었으므로[32] 이세돌 눈에 차지도 않았을 테지만... 물론 이세돌 본인의 인정사정따위 개나줘버리는 까칠한 인터뷰 성향도 한몫했다. 통역이 필요치 않다
  •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구글이 개발한 AI인 알파고가 그 이세돌 9단을 꺾음으로서 사이의 재림이라는 드립이 나돌고 있다. 컴퓨터가 착수할 수 없어 개발자이자 아마 5단인 아자 황이 알파고의 지시에 따라서 두는데, 그 돌을 잡는 모습이 히카루처럼 어설프다고...
  • 히카루의 바둑 완전판 번역본에서는 후지와라노 사이후지와라 가문의 사이로 변경되어서 번역되었으며, 말투도 옛날 말(아이를 아해라고 칭하는 등)로 완전히 변경되어서 번역되었다.
  1. 치바 스스무와 구자형 둘 다 선계전 봉신연의에서 양전 역을 맡았다.
  2. 구자형은 동일 작가의 차기작인 데스노트에서 레이 펜버를 맡았다.
  3. 치바 스스무와 김장 둘 다 신풍괴도 잔느(신의 괴도 잔느)에서 나고야 치아키(하진서) 역을, 그리고 울트라 매니악에서 츠지아이 히로키(히로) 역을 맡았다.
  4. 한국판에서는 대군으로 바뀌어서 나오지만 원서에는 덴노가 맞다. 아마 천황이라는 표현때문에 이렇게 바꾼듯 하다.
  5. 돌을 숨겨두다가 슬쩍 딴돌에 놓는 부정행위를 했다. 이를 눈치채고 성토하려고 했지만 상대의 이빨언변에 휘말려 소동이 벌어졌다. 덴노는 소란스러운건 싫다며 바둑을 계속하라고 했지만...
  6. 혼인보 슈우사쿠의 아명
  7. 원작 연재가 1998년부터 시작했다.
  8. 어떻게 된 메커니즘인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이 만화는 바둑만화지 판타지는 아니니까. 그런데 작가도 잊어버렸는지, 나중에 사라질 것을 걱정하면서 슬퍼할 때에는 히카루가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9. 애니판에서는 할아버지와의 대국 시도 장면이 없다. 처음부터 기원으로 가서 토우야 아키라와 붙고, 그 다음에 동네 바둑교실에 나가서 아키라와의 대국을 되새기면서 기초를 익히는 구성이다.
  10. 히카루 왈, "내 또래도 있네? 쟤랑 할래요~." 바둑에 무지했기에 가능한 뻔뻔함이었다. 당시에도 아키라는 명인의 아들이자 동년배에 적수가 없는 무적 유망주.
  11. 헤이안 시대에는 덤의 규칙이 없어서 사이가 덤을 모르고 있었다.
  12. 덤으로 이때는 아키라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어르신이 있어서, 사이가 적당히 한 대국이었다(...).
  13. 원래 그 부채(카와호리)는 헤이안 남자 귀족들의 필수 아이템. 얼굴을 가리거나 뭔가 가리킬 때 손가락질 대신에 부채를 사용한다. 여자 귀족들이 사용하는 것은 히오우기라는 나무 부채.
  14. 실력이 너무 좋았던 탓에 히카루의 아이디인 Sai가 누군지 전 세계 바둑계에서 알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라면 아마 순식간에 신상 털렸을 듯(…)
  15. 그렇지만 이 대국을 엉망으로 두었다고 히카루를 깐 사람은 히카루의 동기인 와야나 오치등 저단자들뿐. 상대 대국자인 도우야 명인이나 이 바둑을 관전한 구와바라 혼인보, 오가타九단같은 고단자들은 히카루가(=사이가) 스스로 핸디를 안고 변칙적 대국을 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때문에 이 바둑을 보고도 히카루에 대한 평가를 낮추지 않았다. 특히 구와바라 혼인보의 경우는 "만약에 또 이런 대국이 벌어진다면 다음에도 저 꼬마에게 돈을 걸겠다"고 말했을정도(뭐 이 세명은 진짜 히카루가 아니라 히카루안에 있는 사이를 보고 있는 것에 불과히지만.).
  16. 하지만 도우야 같이 나이가 있는 기사는 인터넷 바둑을 두면 그 자체로 기력이 저하되기도 한다. 초일류 대국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반집을 충분히 가를 수 있다. 도우야가 이 대국으로 은퇴를 건 것도 미심쩍은 부분인데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실력이 앞서는 기사가 약한기사를 항상 이기는 것이 아니다. 가령 실력차가 확연한 기사끼리도 3번기 또는 5번기 승부에서 밀리는 쪽이 1승 정도는 가져가는 것이 많이 있고 상대 전적으로 보아도 약한쪽이 강한쪽 상대로 몇 승 정도는 따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실제 바둑에서 한 판에 바둑 인생을 거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17. 후일 도우야는 오로지 강한 상대와 겨루기 위해 일본이 아닌 중국의 프로기사로 데뷔한다. 즉 일본에서의 은퇴는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이와의 대결은 그 쐐기를 박은것일 뿐.
  18. 이 부분에서 히카루의 성질머리에 팬들은 '저런 못돼먹은 놈 ㅠㅠㅠ'하는 반응. 지금까지 키워준게 누군데!!
  19. 본디 이 각주는 술에 취했어도 바둑을 두다 보면 깰 수밖에 없어 설정 구멍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원작을 보면 두기 시작하면서 또 들이붓고 있다. 대국하는 와중에 또 들이부은 듯.
  20. 고스트 바둑왕에서 사이가 떠난 이후의 히카루, 사이와의 현세 첫 대전자 아키라를 제외하면, 오가타 세이지만큼 사이를 의식하고 대국하기를 강렬히 원했던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이에 감화된 것도 있다.
  21. 이 때 마지막으로 히카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마침 히카루가 피곤에 지쳐 졸고 있던 바람에 히카루는 사이의 작별인사를 듣지 못했다.
  22. 이후 히카루는 사이가 그랬듯 부채를 항시 상비하게 된다. 사이의 의지를 이어가겠다는 사이를 목표로 하겠다는 히카루 나름의 의지표명인지도.
  23. 여자 그려놓고 남자라고 우기기 에 해당하지는 않는 셈.
  24. 목소리도 그냥 남자 목소리다. 애초에 남성 캐릭터니까 당연한가...
  25. 결국 완전판은 '히카루의 바둑' 원제 그대로 정발되었다.
  26. 말이 성불이지 사실상 조력자의 사망이다.
  27. 조금더 정확하게는 히카루의 바둑 작가의 한국기원 취재때 한국기원측에서 작가분에게 건넨 농담. 조훈현 九단항목 참조.
  28. 고려 혹은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관직명 중에도 좌랑이라는 이름이 있다. 다만 신라시대에는 사내 랑 자를 화랑 등의 이름이나 호칭에 사용한 경우가 매우 흔했으므로 그냥 신라 느낌 나게 임의로 지은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29. 헤이안시대는 신라시대 후반인 794년에 시작되어 고려시대 무신정권이 세워질 무렵인 1185년에 끝난다. 당시 고려와 일본 모두 문인귀족 중심이었던 사회권력이 무신에게 넘어갔다는 점에서 기묘하게 공통된다.
  30. 처음엔 얼굴 빼고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욕을 태백이로 먹은 KBS가 후에 칠하는 정도로 수정.
  31. 사실 사이가 입고있는 의복. 그러니까 귀족들의 평상복이었던 노우시(直衣)의 일종인 카리기누(狩衣)와 귀족들의 일상 모자로 쓰인 에보시(烏帽子)는 신라시대의 관복과 상당히 흡사하다. 몸판과 소매 사이부분이 터진 형태나 소매의 끈장식 등 세세한 부분을 제외하면 신라시대의 단령(團領)과 거의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노우시와 단령 모두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 애초에 에보시는 한국의 변형모(弁形帽)가 건너간, 거의 동일한 형태의 모자다. 에보시가 관모라는 시각도 있지만, 엄연히 일본의 관복인 소쿠타이(束帶)에는 칸무리(冠)라고 불리는 정식 관모가 따로 있다. KBS가 과연 이런 걸 감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헤이안 시대를 신라로 현지화한 것은 나름대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32. 작품의 감수를 맡은 우메자와 유카리는 작품 시작시기에 二단이었고 이후 五단까지 승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