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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李世乭, Lee Sedol) | |
생년월일 | 1983년 3월 2일 (33세)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전라남도 신안군 |
신체 | 172cm, O형 |
직업 / 소속 | 바둑기사 / 한국기원 |
단급 | 프로 九단 |
입단 | 1995년 |
가족 | 3남 2녀 중 다섯째 배우자 김현진, 딸 이혜림 |
최대 연승기록 | 32연승(세계 3위) |
누적우승경력 | 48회(한국 3위[1]) |
타이젬바둑 닉네임 | 공짱조폭, 꽁지에(P) |
1 개요
한국의 프로 바둑기사. 별명은 쎈돌. 현재 세계 4위.
최고의 기보 중 하나 #1[2]#2영상. 조훈현, 이창호에 이은 세계 바둑 최강의 계보를 이어가는 바둑기사. 세계대회 우승 횟수가 이창호 다음으로 많고, 12세에 입단하여 한국 프로 기사 중 최연소 입단 4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1위는 조훈현 九단의 9세, 2위는 이창호 九단의 11세, 3위는 최철한.
2 상세
전남 신안군 비금도 출신으로 12세에 프로가 되었다. 형인 이상훈 프로를 따라 입단했으나 자신보다 기재가 뛰어난 동생을 본 형은 '나는 이세돌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은퇴해야겠다'고 선언하고 동생 세돌의 지원에 전념해오고 있다. 여러모로 아군이 적은 이세돌의 든든한 지원군. 이상훈 프로도 잠재된 기력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포터를 자처하게 만든 천재. [3]
그의 이름에 쓰이는 한자인 '돌'(乭)자는 한국에서 '돌' 자를 위해 만들어진 한자로, '石'자에 '乙'자를 합쳐서 만든 형성자다.[4] '석'(石)자는 돌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을'(乙)자는 한자와는 상관 없이 돌의 받침 ㄹ을 나타낸다. 이름은 아버지가 지었다고 하는데 정말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중이다. 세계를 바둑돌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과 일본엔 없는 글자이다보니, 일본에선 乭만 도루(ドル)로 표기한 '李世ドル'로 표기한다.2~3달러
중국에서는 '돌'자를 石(석)으로 바꾸어 이세석(李世石)으로 표기하는 경우와 최근에는 李世乭로 쓰고 乭의 음은 '스' 혹은 '다오'로 읽는 경우를 병행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언론에서는 이창호 九단과 성씨가 똑같아서 이창호 九단은 '大李'라 부르고, 이세돌 九단은 '小李'라고 부르기도 한다.[5]
3 파격적인 행보
1995년에 입단하지만 2000년부터 두각을 나타낸다. 2000년에 32연승이라는 역대 연승 3위 기록을 세우며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이후 3년간 바둑계를 휩쓸지만 당시 三단이었다. 이는 이세돌이 더 높은 단을 달기 위해 치러야 하는 승단대회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식에 젖어 과도한 대국수로 스타급 기사를 혹사시키는 승단대회의 문제점은 이전에도 지적되고 있었지만[6] 최초로 그 제도에 정면으로 대항한 것이 이세돌이었다. 三단에 불과한 이세돌이 최우수기사로 선정된 후 메이저 세계대회인 후지쯔배를 우승하고 LG배 결승에 진출하면서 승단대회 무용론이 여론의 지지를 받게 된 것. 결국 한국기원은 2003년부터 승단 규칙에 "세계대회 우승시 三단 승단, 준우승시 一단 승단"을 추가한다.[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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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의 이세돌 |
이세돌은 그 후 5개월 만에 이창호 九단을 꺾고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제2회 KT배 준우승, 제16회 후지쯔배 우승[9]을 하여 九단이 된다. 강제승단 [10]
이후에도 2009년 5월까지 국내랭킹 1위, 10번째 세계대회 우승을 하는 등 정상급 기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바둑계에서 (어찌보면) 괘씸죄로 찍혀버려서 징계를 받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이세돌이 2009 한국바둑리그를 앞두고 바둑리그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이유도 있었고 기보에 대한 저작권 문제와 대국료 관련 문제도 있다. 여튼 이런 여러 문제 때문에 징계를 내렸고 결국 이세돌은 '휴직계'를 내버렸다.[11] [12][13]이후 이세돌은 사과기자회견을 하게 된다. '이세돌 휴직사태 기자회견'.
그리고 여차저차해서 한국기원과의 앙금을 청산하고 복직하자마자 파죽의 24연승과 함께 덤으로 제2회 BC카드배 결승에서 창하오 九단을 3:0으로 압살하면서 세계 타이틀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된다. 세 판 모두 불계승. 참고로 이 대회 16강전에 당시 중국 랭킹 1위이던 콩지에를 상대로 초반에 대마가 잡혀 85집 정도를 잃은 상태에서도 역전승을 했었다. 그날 인터뷰에서는 초반에 밀려서 그냥 두는데에 의의를 뒀다고. 2011년 4월에 제3회 BC카드배 결승에서 라이벌로 여겨지는 구리 九단을 상대로 3:2 신승을 거두고 BC카드배 2회 연속 제패에 성공한다.
이창호의 바둑이 느긋하면서도 안정적인 계산으로 끝내기#s-1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세돌은 압도적인 수읽기를 통한 흔들기로 난전으로 끌어들여 상대를 혼란시키고 압살해버리는 스타일이어서 아마추어와 일반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구경하는 사람이 즐거운 바둑. 묘수와 잔수[14]가 아주 강해서 대국 초반부터 계가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틈이 보인다 싶으면 전투가 수시로 일어난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상대를 흔들어서 뒤집어서 역전승한 경우도 많고, 안 되는 축을 몰아서 승리한 바둑이 이런 데 올라가 있기도 하다. 영어자료
2012년 12월 13일, 삼성화재배 결승 3번기에서 구리 九단을 1국 반집승, 2국 불계패, 3국 반집승으로 총 한집(반집+반집)으로 구리를 물리치는 희대의 드라마를 찍으며 2:1로 우승했다. 삼성화재배는 통산 4번째 우승한 것. 구리 九단과의 상대전적도 10승 1무 14패로 약간 회복했다.
2014년 동갑이자 최대의 라이벌인 구리 九단과의 인생승부 10번기를 시작했다. 이세돌-구리 10번기는 제한시간이 4시간에 1분 초읽기 5회. 월드컵 기간인 6월을 제외하고 1월부터 11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 개최되며 먼저 6승자가 나오면 종료된다. 승자는 우승상금 500만 위안(약 8억 4000만 원)을 독식하고, 패자에게는 20만 위안(약 3500만 원)의 여비가 지급된다. 단, 최종 성적이 5승 5패일 경우 상금을 절반씩 나눈다. 자세한 내용은 Milly 몽백합 이세돌-구리 10번기 문서를 참고. 결론적으로 이세돌 9단이 6승 2패로 승리한다.
2012년까진 삼성배 우승을 하며 세계 1인자의 자리를 지켰으나, 30대에 접어든 이후부턴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준우승만 내리하며 서서히 기량이 하락하고 있다. 2016년 4월 한국 랭킹은 2위(1위는 박정환 9단). 다만 박정환 9단이 세계무대에선 국내무대만큼 기량을 잘 못발휘하는 편이라 국내용이라는 오명이 있다 아직도 한국바둑에서 이세돌 9단의 위상은 크게 죽지 않았다.
2016년은 연초부터 굵직굵직한 대국이 이어지고 있는데, 몽백합배 결승전에서 커제와 접전 끝에 준우승을 했고, 이후 박정환 9단과 제34기 KBS바둑왕전, 제43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에서 결승대결을 펼치면서 일명 8번기를 펼쳤다.[15] 바둑왕전에서는 박정환에게 첫 판을 딴 후 내리 두 판을 내주며 준우승했으나, 명인전에서는 3승 1패로 박정환을 꺾으며 통산 4번째 명인전 우승을 차지하여 2014년 렛츠런파크배 오픈토너먼트 이후 오랜만에 국내기전 우승을 차지하였다.
알파고와의 대전이 끝난 후 첫 대회인 3월 30일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8강에서 이세돌 킬러라 불리는 김지석 9단을 172수만에 백 불계승으로 잡았다. 본인은 알파고 대전 이후 바둑을 즐기는것에 대해 다시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2016년 5월 시점에서 알파고와의 대국 후 8연승을 달리면서 맥심커피배 우승을 차지하였다. 두번째 전성기를 기대한다는 응원글도 많이 볼 수 있다. 알파고의 참교육 알파고한테 져서 T-3000이 되었다. 그 대국을 계기로 동기부여가 생겼다는데, 다시 세계 1위가 되어 알파고와 다시 대국을 하고 싶다고 했다.
5월 19일에는 바둑기사회 탈퇴를 선언했는데, 아래 항목 참조.
9월 1일부터 4일까지 진행되는 TV아시아배에 참석했는데[16], NHK에서는 이세돌 9단의 대국을 포함한 모든 대국을 생중계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유는 이세돌 9단에 독도에서 김장훈과 대국을 했기 때문. NHK에서는 극단주의자들이 호텔에 침입한다던지 하여 이세돌 9단의 신변에 위험이 생길까 봐 최대한 조용히 대회를 진행하기 위해서라고 공식적으로 해명하였으나, 독도 대국이 일본에서 큰 관심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핑계일 가능성이 많다. 이 때문에 미위팅, 리친청 등의 대국을 보고자 했던 중국인들도 열이 받은 듯. 일본과 이세돌을 욕하고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듯, 개막식에서도 표정이 어둡다. 그리고 준결승에서 리친청에게 패해, TV아시아 3연패는 이루지 못했다.
9월 27일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의 한국팀의 선봉으로 출격했으나 일본의 이치리키 료 7단에게 반집패하고 말았다.
10월 4일과 6일에 펼쳐진 삼성화재배 16강, 8강에서 각각 중국의 퉁멍청 5단과 탕웨이싱 9단에게 승리해 4강에 진출하였다. 상대는 작년과 같은 커제 9단으로 이번에는 단판도 아니고 번기라 결승에 진출할 확률은 희박하다는 평이 다수. 승리해서 결승 진출을 한다고 해도 반대쪽은 퉈자시 vs 판원러인데, 퉈자시는 커제 등장 이전 이세돌 킬러로 유명한 기사이고, 판원러는 32강 더블 일리미네이션에서 이세돌, 16강에서 신진서, 8강에서 박정환을 꺾을 만큼 기세가 좋기 때문에 어렵다. 이세돌, 퉈자시, 판원러 모두에게 상대전적이 크게 우위인 커제 9단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2016년 하반기 들어서 이세돌 九단의 하락세가 완연해지고 있다. 한국바둑리그에서 예전의 이세돌이라면 전혀 생각하지 않을 착각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다 잡은 바둑을 순식간에 역전패하는 노화의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창호 九단이 퇴화해간 루트를 이세돌 九단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이세돌 九단이 조훈현 九단처럼 롱런하려면 이세돌 九단이 못 끊은 담배라든가 그 좋아하는 술 다 끊고 운동을 해야하는데 이세돌 九단이 술 담배 끊을 사람이 아니라 점점 하락세는 확실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세돌 九단이 급격히 늙어가는 것이다. 원래라면 안 질 이치리키 료한테도 질 정도니...
4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대국 전 기자회견장에서 두 인물의 역사적인 만남 |
대국 | 날짜 및 시간 |
1국 | 3월 9일(패) |
2국 | 3월 10일(패) |
3국 | 3월 12일(패) |
4국 | 3월 13일(승) |
5국 | 3월 15일(패) |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대국을 치렀다. 알파고는 이세돌 이전에 2013-2015년 중국 프로 기사이자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 후이(2단)과 대국을 하였는데 5-0으로 알파고가 이겨버렸는데, 인공지능이 현역 프로 바둑기사를 이긴 건 사상 처음이었다. [17]
그러나 이세돌 본인은 물론 커제나 이창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바둑기사가 판 후이와의 대결 양상을 기준으로 이세돌의 5-0 완승 또는 4-1로 이길 것을 자신했으나, 판 후이와의 대결 이후 알파고의 무서운 성능 향상으로 9일에 열린 1국에서 알파고가 186수 만에 불계승, 10일에 열린 2국에서도 알파고의 불계승으로 이세돌이 2패를 당했고, 12일에 열린 3국 역시 초읽기에 들어가는 접전 끝에 알파고의 176수 불계승으로 결국 3-0이 되며 알파고의 승리로 끝이 나버리며 인공지능에 압도당하게 되었다. 한때 바둑계의 대사탄으로 간주되던 이세돌이 한낱 기계 앞에 대굴욕을 맛보며 처참하게 박살나는 모습에, 이 때까지만 해도 바둑계 전체는 물론 인류가 인공지능 앞에 허무하게 몰락하는 게 아니냐는 비관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사상이 대한민국 전체를 강타하게 된다. 하지만...
이세돌 九단도 알아가고 싶었던 거예요, 알파고에 대해서.
마침내 4국에서 드디어 이세돌이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했다. 4국에서 불리한 형세에 들어간 알파고가 승률이 낮아질수록 더더욱 잦은 실수를 하였고 이세돌은 1개 남은 초읽기로 1시간가량 버티는 대혈전 끝에 알파고를 이겨 불계승을 거두었다.[19] 대국 현장에 심사위원으로 있던 판 후이가 이세돌에게 따봉을 날렸다
제4국을 유심히 살펴보면, 알파고가 어떤 특정 시점을 계기로 갑자기 실력이 아마추어급으로 급락해버린 지점이 있다.[20] 그 지점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세돌이 집요하게 노린 알파고의 약점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 생긴 것이다. 인간이 마주해보지 못한 계산 기계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비록 패함으로써 지구 최강의 자리는 내려놓게 됐지만, 그런데도 4판 만에 알파고의 약점을 찾아 첫 승리를 이끌어낸 이세돌이 새삼 대단해지는 부분. 그리고 이세돌은 남은 5국에서 흑을 잡고 싶다고 피력했다. 자기 입으로 알파고의 약점이 흑선[21]이라 판단하고 되레 본인이 불리한 흑을 잡겠다는 것은, 2만 달러의 승리수당도, 한 판 더 이겨 체면치레하겠다는 생각도 모두 초월한 채 알파고와의 승부를 즐기겠다는 그다운 패기로 보였다. 하지만 5국에서는 280수 백 불계승으로 이세돌이 패배했다. 이때는 알파고 역시 큰 실수를 했지만, 이세돌의 큰 실수로 판을 져버리고 말았다. 5국에서도 백을 잡아 3:2 정도로 마무리했다면 마기계와도 호각인 대사탄의 실력을 과시했을 텐데. 3:2였다면 인류 바둑의 희망임이 확실히 굳어지고, 커제도 불필요한 말을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이세돌은 이번 대국들에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바둑을 즐기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경기는 정말 원 없이 두어본 대국 같다"고 하고 "구리에겐 미안하지만 이번 대국이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이라고 했다. 많은 걸 느끼고 새로운 바둑을 연구해 봐야겠다는 의욕을 가지게 되었다고. 덧붙여 아자 황이 매우 인상 깊었던 듯하다.#
알파고와 바둑을 하면서 오히려 기력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알파고와의 대국을 중계하던 프로 9단 해설진들이 알파고의 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세돌은 표정에서 동요를 보이며 알파고의 수를 이해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제3국에서 보인 이상한 수들도 해설진이 복기한 결과 다 의미가 있는 수였다는 걸 깨닫고 멘붕하는 등[22] 이세돌이 세 판 내리 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계를 제외한 인간 중에서는 최정상급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대국이 되었다.
알파고와 대국을 이후로 박영훈 9단을 이기고 9연승을 한 뒤 인터뷰에서 "알파고 이후 생각이 많아진만큼 좋은 내용의 바둑을 보일 수 있을 듯하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대국 이후 본인의 실력에도 영향을 준 듯하다.#
2016년 7월 이세돌 九단이 다보스포럼에 참석하여 알파고와의 대국 과정을 소개하고 바둑에 대한 홍보 역할을 맡기도 했다. 세계 바둑계에서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것은 이세돌 九단이 사상 최초이다.
5 말말말
大李未走 小李又至 (대리미주 소리우지)큰 이씨가 아직 가지 않았는데, 작은 이씨가 또 나타났다.
ㅡ 중국 체육주보에 나온 표제.
"말로써 세계를 제패하겠습니다!"ㅡ 브레인 서바이버에 출현해서 한 말. 이후 실제로 아래와 같은 수많은 말들을 남겼다.
Q: 다음 상대는 조한승 六단인데 어떤 결과를 예상하나?"화려한 바둑으로 KO시키겠다."
실제로 압살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Q: 세계정상급 기사라면 이창호, 조훈현, 마샤오춘 九단이 있는데, 실력을 생각할 때 좋아하는, 존경하는 기사는 누군가?"다 좋은 기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도 존경하지는 않는다. 아, 좋은 기사에서 마샤오춘 九단은 빼달라."
Q: 중국 기보를 연구해본 적이 있는가?
Q: 오청원[23]의 바둑은?"공부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Q: 차세대 중국의 유망한 기사는?"이름도 잘 모르는데 그들의 바둑 실력을 어이 아나?"
Q: 중국 음식은 잘 맞나?"너무 기름져서 입에 안 맞다."[24]
Q: 한국에선 안티 이세돌 사이트도 생겼다던데?"나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도 신경을 못 쓰는데 그들에겐 당연히 신경 끈다."
Q: 어떤 각오로 대국을 시작하는지?
"아, 싸울 만해서 싸워요. 수가 보이는데 어쩌란 말이에요."[25]
"불리하다 보니 이기자는 생각 없이 대충 뒀는데 이겼네요."- 구리 九단에게 대역전승을 거둔 직후의 인터뷰
"나도 여자친구가 없는 걸 보면 인기가 없나 봐요. 큰일이에요."[26]
"비금도(이세돌의 고향) 인구 수 몰라요. 내가 뭐 면장도 아니고."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인데 내가 우승해서 미안합니다."[27]
Q: 이창호 九단이 끝내기#s-1가 완벽해서 신산(神算)이라고 불렸는데 요즘은 박영훈 九단의 끝내기#s-1가 최고라 소신산(小神算)이라고 불립니다. 이세돌 九단이 생각하기에 누구의 끝내기#s-1가 더 뛰어납니까?
Q: 이창호 九단과 계속해서 1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본인은 이창호 九단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는가.A: "실력으로는 차이가 많이 나지만 내가 요즘 기세가 좋아서 대등해 보이는 것이다. 앞으로는 좀 더 노력해 진짜 대등한 승부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
-2007년 8월 21일, 제3기 한국물가정보배 우승을 결정짓던 날 인터뷰[29]
"히카루의 바둑에 나오는 그 바둑 귀신이요? 에이, 그거 별 거 아니더라구요. 그 때는 초읽기도 없었는데, 얼마든지 이길 수 있어요."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요."[30]
“제자라뇨? 같은 프로끼리. 아주 관심이 가는 어린 후배죠.”“신진서는 나와 비슷한 면이 있어서 먼저 관심이 갔다. 그러나 아직 연이 닿지 않았다. 그런데 민준이는 프로에 입단하기 전에 가끔 봤고 바둑을 한판 둬 본 적도 있었는데 나랑 스타일이 정반대였다. 어린 나이에도 침착하고 끈기 있는 바둑을 뒀는데 정반대 스타일이어서 오히려 관심이 갔다.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신민준 二단을 내제자로 키우던 시절에 한 인터뷰. 기사정말 혹독하게 가르쳤는지 신민준 二단 기풍이 바뀌고야 말았다.(...)
◇ 김현정: 그 얘기예요. 바둑이 이세돌 九단에게는 뭡니까?◆ 이세돌: 바둑은 제 인생의 대부분이 될 수도 있고요.
◇ 김현정: 그럼 바둑 아닌 다른 건 뭡니까? 이세돌 九단한테, 도전해 보고 싶은 것.
◆ 이세돌: 글쎄요.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아직 결정한 바는 없고요. 어쨌든 바둑을 둬봤으니까 승부수를 한 번 날려보겠죠, 다른 분야에서도. (웃음)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인터뷰.
Q: (알파고와의 대결을 앞둔 인터뷰에서) 2년 전 구리와의 10번기 때와 비교해 어느 쪽이 더 긴장되나.A: "이번 대결은 전혀 긴장감이 없다." 한 판만 져도 내 패배... 그런 일 없을 것
(구글에게 100만 달러 대국을 제안받고서) "명색이 구글인데 100만 달러는 조금 적은 것 아닌가?" 인공지능 ‘알파고’ 승리 예측, 바둑 모르고 하는 소리
3-2 이런 승부는 아닐 거 같고요. (제가) 한 판을 지느냐, 5-0이냐 4-1이냐 이런 정도의 승부로 예측합니다."[31]ㅡ 이세돌 (2016년 3월 6일 VS 알파고 대국 3일전)
특별히 준비한 것은 없고 마인드컨트롤에 힘쓰고 있다. 한 판이라도 진다면 알파고의 승리라는 생각이다. #ㅡ 이세돌 (2016년 3월 7일 VS 알파고 대국 이틀 전) [32]
인간이 진 게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것.ㅡ 이세돌 (2016년 3월 12일, 3국에서 자신의 패배가 확정되자)
한 판을 이겼는데 이렇게 축하를 받아본 건 처음인 것 같다. 3승을 하다가 1패를 했으면 좀 아프지 않았을까 싶은데, 3패를 하다가 1승을 하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이 1승은 정말, 전에도, 앞으로도 바꾸지 않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1승이다.ㅡ 이세돌 (2016년 3월 13일 4국 승리 후)
그 수를 둔 이유는, 그 수밖에 없었다, 그 장면에서. 다른 수는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보이지가 않아서...ㅡ 이세돌 (2016년 3월 13일 4국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78수의 묘수에 대해 묻자)
"요즘 한국 바둑이 중국에 비해 약간 주춤하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이 바둑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진다면 다시 세계 최강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신진 바둑 후배에게 '바둑이란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 '옷을 입는 것처럼 숨을 쉬는 것처럼 일상이 됐다'는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바둑계에는 이렇게 좋은 후배들이 많이 있어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ㅡ 이세돌 (2016년 3월 25일) 기사
"6연승 정도로는 세졌다고 하기에 데이터가 부족하다. 여기에다 ‘10’자가 더 붙는다면 모를까."
6 트리비아
그 동안 받은 상금액이 약 70~80억원 정도 된다고 알려져 있다.
목소리가 매우 가늘어 처음 들은 사람들은 여자로 착각할 정도이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입단 후 열네 살 때 스트레스가 심해 실어증이 왔는데 어린 나이에 고향 신안군에 있는 부모와 떨어져, 서울특별시에 살면서 서울에서 보호자 역할을 했던 형(이상훈 9단)은 입대해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그렇다고 한다. 기관지 신경이 마비되어서 그런 거 라고 한다. 콤플렉스냐는 말에 세월이 오래 흘러 사람들도 자기 목소리에 익숙해졌을테니 그러려니 하고 웃으며 산다고. 그 때문에 프로 기사들이 염두에 두는 해설가 쪽은 은퇴 후에도 고려하지 않는 듯 하다.
상술된 어록을 봐도 알 수 있듯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설적인(좋게 말하자면 솔직한, 나쁘게 말하자면 버릇없는) 화법으로 유명하다. 이런 컨셉 때문인지 이세돌에게 번번히 깨졌던 중국 바둑팬들 중엔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사실 중국 기자들이 이세돌에게 질문을 하면 악마의 편집에 의해서대부분 예의없이 툭툭 뱉는 말을 한 것처럼 소개돼서 더 그런 점도 있다. 물론 애초에 그런 식으로 말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실력이 진짜배기인지라 그저 분만 삭히는 모양.
이 언행들 때문에 안티클럽도 있다지만 본인은 크게 개의치 않는듯 하다.[33] 어록을 보면 상당히 거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선수의 활약상을 보면 했던 말들이 사실과 크게 틀리진 않다는 점이 실로 굇수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자신과 비슷한 언행을 보이는 커제에게 되레 당했다 마른 몸매에 미성인데다 여성스럽게 생겨서 그런지, 거침없는 언행이 반전 매력 포인트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는 듯. 다만 결혼도 했고 복직 이후 세월이 흘러 나이도 중견 기사급으로 올라서면서 까칠하게 보였던 성격은 많이 순화된 편이며 이러한 경향은 알파고와의 승부 이후 돋보여졌다.[34] 이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사
알파고와의 패전 후에도 대단히 겸손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겸손하게 패배를 자인한 기사
고스트 바둑왕에 나오는 인물인 고영하가 이세돌과 여러모로 잘 매치가 되지만, 사실 이세돌은 홍수영의 모델이었다고 한다. 또 애니판이 한국에 방영되었을 때 해설을 맡기도 했는데, 九단이 바둑돌 어디다 놓는지부터 일일이 설명하는 모습은 많은 바둑팬들의 흥미를 끌기도 했다.[35]
이영도의 소설 피를 마시는 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대장군이자 국수급 기사인 엘시 에더리의 이름은 이세돌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세돌 ➔ 이세도리 ➔ Lee세도리 ➔ L.세도리 ➔ L.S 에도리 ➔ 엘스 에도리 ➔ 엘시 에더리. 참고로 성격은 이창호 9단에게서 따왔다고.
최정상급 기사 중 담배를 피우는 유일한 기사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체력 문제로 피우지 않는다. 조훈현 九단도 엄청난 골초였지만 금연했을 정도.[36] 그럼에도 이세돌은 타고난 체력으로 인해 기사들간의 달리기류의 체육대회가 있으면 언제나 1등을 맡아놓는다고 한다. 특히나 장거리는 독보적이었다고. 그러나 2013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금연을 선언했다. 이유를 딸이 담배 냄새를 싫어해서라고 할 정도로 딸바보다. 그러나 몰래 피우는 모습이 보이는 걸로 보아 결국 금연은 실패하고 딸이 안 보는 곳에서 피우는 것으로 보인다. 담배 끊는 게 그만큼 어렵다 담배는 참는 것 2016년 3월 기준으로 기러기 아빠라서 가족 눈치없이 담배를 태울 수 있어서 흡연을 하고 있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종종 자리를 몇 분 비우는 모습을 보이는데 바로 담배 피우러 나가는 것.인류 최강의 마기계 알파고 때문에 빡친 이세돌 또한 동료 기사들 말에 의하면 이세돌은 주량도 상당하다고.
"타도 이창호"를 내건 소장파 기사의 선두이다. 이세돌 본인도 타도 이창호에 매우 열심이었던 듯. 모 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아직 입단하기 전 기원에서 바둑 공부할 때 이창호 9단이 가끔씩 기원에 와서 바둑을 둘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그 옆에 앉아 이창호 9단의 손만 빤히 쳐다봤다고 한다. 2000년대 초중반 이창호vs이세돌의 승부는 바둑계 초미의 관심사였으며, 2003년에 열린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5번기 승부에서 이세돌이 이겼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당시 이창호는 제1회 춘란배 결승에서 스승인 조훈현에게 패한 이후 4년간 국제 대회의 결승에서 무패행진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 중에는 2001년에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이세돌을 리버스 스윕으로 꺾고 우승한 적도 있다. 즉 이세돌에게 이창호가 최초로 진 것이기 때문. 그 때 양쪽 모두 사력을 다한 승부였기에 이긴 이세돌도 탈진, 진 이창호는 생전 안하던 술을 마시며 쓰라린 마음을 달랬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부터 이창호를 이기는 후세대 기사들이 점점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세돌이 (세계대회에서는) 그 시초격인 셈. 참고로 국내 대회에서는 제19회 KBS 바둑왕전 결승에서 목진석이 이창호를 이긴 적이 있다.
중국 바둑리그에 용병으로 참가하면서 이기면 돈을 받고 지면 돈을 받지 않는 계약을 최초로 한 한국바둑기사다.2006년 중국갑조리그 관련기사 이후 한국기사들도 용병으로 참가할 때 이러한 조건을 비슷하게 달고 출전하는 경우가 늘었다. 심지어 5빵(이기면 5만 위안, 지면 없음), 7빵이라는 프로기사들 사이의 은어까지 생겼을 정도이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바둑 종목이 추가되었고, 이세돌 九단도 한국 선수로 참가하였다. 결과는 다 알고 있다시피 한국이 전 종목(남자단체, 여자단체, 혼성페어)을 석권하였고(금3, 동1), 이세돌 역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세한 내용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바둑 문서 참조.
2013년 1월 합천군 초청 '2013 새로운 물결, 영재 정상 바둑대결'에서 유일하게 승리했다. 최연소 프로기사 신진서 初단이 이창호를 불계승으로 꺾어 파란을 일으킨 이 대회에서 그만이 유일하게 승리한 것. 대회 후기에 의하면 넉넉하게 이길 수 있었는데 일부러 반집승으로 유도했다고 한다. 그러고서 "요즘 애들은 왜 다들 이렇게 똑같나"라고 했다고. 정말이라면 그다운 발언이라 할 수 있겠다.
기러기 아빠다. 현재 이세돌의 아내와 초등학생인 딸은 2008년부터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알파고와의 대결 때 그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캐나다에 있는 아내와 딸이 귀국해 함께 호텔에 머물렀다.
그런데 기러기 아빠 생활을 끝낼듯 하다. 딸을 제주도에 있는 '제주 KIS 국제 학교'에 진학시킬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2013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은퇴를 시사하기도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기러기 아빠 생활을 청산하고 바둑 보급에 힘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 적이 있다. 이 계획의 첫번째로 go9dan.com을 열었다고. 한국 바둑의 현실에 대해서는 입단이 너무 쉬워졌다며 이대로는 중국에 따라잡힐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37], 한국 바둑계의 창의적이지 못한 바둑 교육에도 일침을 가했다. 이는 바로 위에서 영재 정상 바둑 대결 후의 인터뷰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후계자로 김지석 九단을 지목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김지석 九단 성적이 별로 좋지 않다.[38] 아직까지는 현역으로 건재하나 매해 대회 출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2014년 Milly 몽백합 이세돌-구리 10번기나 2016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등 이벤트 대국에도 응하는 것으로 보아서 은퇴를 염두에 두긴 하는 것 같다.
2004년 KBS 2TV에서 진행하는 신나는 바둑나라라는 50초짜리 프로그램을 한해원 당시 2단과(2016년 현재 3단) 함께 진행하였다. 만화 고스트 바둑왕 첫 방영과 함께 만화 방영 후 진행되는 프로그램 이었으며 그 길로 흑역사가 되었다. 관련기사 관련기사2(사진첨부)
한편 알파고와의 대국을 계기로 바둑에 문외한인 외국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름을 알렸다. 그런데 이름이 길어서 줄여부르다 보니 나온 이니셜이 LSD(...)
이세돌은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 도고리(道古里) 출신인데, 살던 집이 약 1500평 정도 될 정도로 부유했다고 한다. 논을 메워 집을 지었고, 이웃 빈집을 사들여 텃밭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5살 때부터 그에게 직접 바둑을 가르친, 부친 이수오 씨(아마 5단, 광주교대 졸업, 초등학교 교사 10년 근무)는 1998년 암으로 사망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이세돌은 아버지와 맞바둑을 두었고, 2학년 때 기력이 아버지를 완전히 넘어섰다고 한다.
형제자매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바둑을 뒀고, 대부분이 이후에도 바둑계에서 일한 바둑 집안이다. 5남매중 가장 바둑 재능이 없던 넷째 이차돌만 바둑 대신 공부시켜서 보낸 게 서울대.사실 이차돌도 아마 5, 6단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하지만, 동생인 이세돌이 본인을 너무나 빨리 추월하자 이내 흥미를 잃었다고. 둘째 이상훈도 자신보다 바둑을 잘두는 이세돌을 보고, 바둑으로는 이세돌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며 이세돌을 뒷바라지 하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첫째 이상희 - 아마 5단 (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둘째 이상훈 - 프로 九단 ( 신안천일염팀 바둑 감독)
셋째 이세나 - 아마 6단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現 월간바둑 편집장)
넷째 이차돌 - 아마 5단 ( 목포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컴공과 졸업)
다섯째 이세돌 - 프로 九단 (바둑에 전념하기 위해 중학교때 학업을 그만둠)
- <이세돌 명국선>이라는 책을, 국문과 출신이자 바둑 아마 6단인 그의 친누나인 이세나가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협지를 좋아한다. 누나 이세나는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그가 명대사를 쏟아낸 게 무협지 때문이라고(!) #
바둑 월드컵이라 불리는 응씨배와는 인연이 없었다. 항상 초반에 탈락했다. 하지만 2016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이후 열린 응씨배에서 4월 24일 기준 4강까지 올라간 상태. 6월 10일에 벌어진 응씨배 준결승 제 1국에서 박정환에게 186수끝에 불계패하였다. 그러나 6월 12일에 열린 제 2국에서 164수끝에 백 불계승을 거둠으로써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승부는 6월 14일에 벌어지는 제 3국에서 결정되는 상황, 그러나 무리수로 박정환 九단에게 패하며 4강에 그치고 말았다.
응씨배 직후 6월 16일부터 6월 25일까지 8라운드에 걸쳐 치러지는 을조리그에 참가했다. [39] 2라운드에서 마오루이롱에게 패배하였으나, 나머지 7경기를 승리하여 7승 1패로 마감하였다. 작년까지는 을조리그에서 2팀이 갑조로 승격하였으나, 올해는 3팀까지 승격한다. 7라운드까지 팀 전체 성적이 5위라 갑조리그 재승격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마지막 8라운드에서 팀원들이 전승을 하고, 7라운드까지 1위였던 윈난 팀이 8라운드에서 패배하여 최종 순위 3위로 갑조리그 승격을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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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짤 버전
참고로 요즘은
마지막 표정이 압권이다
반복버전도 나왔다
요즘은 으헤헤헤
이세돌이 농심 신라면 광고를 찍었다.
유한양행 메가트루 포커스 광고도 나왔다.
농심그룹 백산수 광고
카피라이터가 제작한 대사.
이세돌의 사전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된 대사.
공익광고협의회의 공익광고에도 출연했다. 광고 출연료를 한푼도 받지 않고 무료로 촬영했다고 한다.
화제를 모은 것 치고는 광고가 적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실제 이세돌은 더 많은 광고 제의를 받았으나 농심의 광고와 공익광고에만 응했다고 한다. 공익광고는 그렇다고 치고 농심만 응한 이유는 자신이 농심 신라면배에서 자주 우승했기 때문.
7 기사회 탈퇴 선언
2016년 5월 19일 이세돌은 자신의 형인 이상훈 9단과 함께 프로기사회 탈퇴서를 제출하였다. 관련기사
이세돌은 친목단체인 프로기사회에 불합리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며 이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세돌이 문제 삼는 것은 두 가지 내용이다.
- 기사회에 소속된 기사만이 한국기원에서 개최하는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규정된 점.
- 기사회에서 대회 상금을 일률적(3~5%)으로 공제하는 점.[40]
또한, 추가로 한국기원이 아닌 중국기원에서 개최하는 대회의 상금도 공제한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이세돌은 기사회를 탈퇴하면서도, 대회에는 참가하겠다는 입장이며, 이것이 문제가 될 경우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참고로, 엄밀히 말하면 한국기원과 프로기사회는 다른 조직이며, 이세돌은 한국기원에서 탈퇴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야구와 비교하면 한국기원은 대한야구협회, 기사회는 선수협에 견줄 수 있는 단체다. 이세돌이 지적하는 점은 이 기사회가 한국기원처럼 행세한다는 것에 맞추어져 있는 셈이다. 특히 이세돌이 문제삼은 내용 중에서 '기사회에서 대회 상금을 일률적(3~5%)으로 공제하는 점'은 회사로 따지면 권한있는 자가 걷는 세금으로 모자라 노동조합까지 세금을 뜯어가는 것과 동일하다. 분노를 안하는 게 이상하다.[41] [42]단, 이세돌 측에서는 한국기원에서 걷는 발전기금 10%에 대해서는 계속 납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양건 프로기사회 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공제' 부분은 관행적인 것이며, 논의 가능하다고 한다. 기사에 달린 네티즌들 반응은 "기껏 열심히 해서 상금 땄더니 왠 꼰대가 상금 5% 내놓으라고 한다" 등 프로기사회에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인터넷 여론은 거의 이세돌을 지지하는 쪽이다. 또한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서 이전에도 그렇게 이루어졌으니 그냥 참으라는 식의 말을 하는 건 비논리적인 보상심리이기도 하다.
현재 프로기사회는 7년 전처럼 이세돌에게 강경하게 징계를 내리기 어렵다는 예상이 많다. 일단 7년 전 휴직사건과 비교해서 이세돌 9단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으며, 명분 또한 충분하다. 이세돌 9단이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이 많지만 나이가 적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존재할 것이고, 본인으로서는 기사회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나이가 든 후 연금을 받는 것이 더 이익이기 때문에 후배기사들을 위한다는 측면에서 큰 공감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세돌 9단과 형 이상훈 9단이 이미 법무법인과 접촉하였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하다.[43][44]
일각에서는(특히 바둑계 관계자들) 이세돌의 기사회 탈퇴에 대해 자신의 금전적인 이득을 이유로 다른 기사들의 생활에 대해 생각해 주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이라던가, 알파고와의 대결로 유명해져 멋대로 행동한다는 평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세돌이 지금껏 보여준 행동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단순히 돈만 안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는 것이, 이세돌은 2008년 쓰촨성 지진 당시 TV 아시아배 우승 상금을 전액 기부[45]했고, 중국바둑리그 활동 시 자신이 주장으로 활약하여 을조에서 갑조로 승격시킨 광시 팀의 성적이 떨어져 다시 을조로 강등되자 책임감을 느껴 승리수당을 전혀 받지 않고 팀이 다시 갑조로 승격될 때까지 팀원들을 가르치겠다고 선언했던 적이 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판단할 때는 굳이 금전에 얽매이지 않은 듯 하다. 그리고 프로기사회 연금은 40세부터 받는데, 이세돌의 나이는 33세이다. 21년동안 프로기사 생활을 해 온 이세돌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기사회에 낼 돈보다는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나서지 않는 것이 이득이다. 그리고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결로 유명세를 얻기 한참 전부터 불합리한 바둑계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다만 그 방식이 지나치게 강경하다는 비판은 많이 있었다.) 따라서 이제 와서 멋대로 행동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리고 평상시에도 한국 바둑이 인기가 없는 것에 대해 바둑인으로서 책임 통감한다는 인터뷰도 자주 하였기에 이번 행동도 진정으로 바둑계를 위하는 측면에서 행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5월 20일에는 맥심커피배 시상식에 참가하여 양건 프로기사회 회장과 만나고, 인터뷰도 하였다.
관련기사 기사 내용을 보면 이세돌은 프로기사회와 대화는 하겠지만, 풀어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기사회 적립금 문제는 일부에 불과하며 기사회 정관에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상식적인 것들이 많아 완전히 뜯어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전에도 계속 고치려고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자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고. 적립금을 바둑 보급 및 발전에 사용했다는 기사회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으며, 은퇴 위로금을 모으는 것뿐이라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정관을 완전히 뜯어고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기사회를 와해하고 새로운 기사회를 창립하겠다고 밝혔다. 프로기사회 측에서는 자세한 정관에 대해서도 공개할 수 없으며, 적립금 사용 내역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10번기 이후부터 탈퇴를 계획하고 있었으며, 세계대회 우승을 하고 나서 탈퇴를 하려고 했으나 마침 알파고와의 대결로 유명해진 지금이 적기라 탈퇴를 결심하였다고. 몽백합배 당시 일생일대의 대결이며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지인들에게 말했다고 하는데, 우승이 좌절되고 나서 느꼈던 아쉬움은 단순히 어린 천적 커제가 자신에게 걸어오는 도발을 바둑으로서 쳐내지 못했다는 승부사로서의 감정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기회가 날아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같이 있었던 듯 하다.
다만 프로기사회 회장 양건이 개혁파이고, 회장이 되기로 한 계기가 2009년 이세돌 휴직사태임을 고려할 때 원만히 해결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귀추를 주목해 볼 수 있을 듯. 서로 대화로 합의점을 찾기로 했다.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한국바둑리그에 참가하여 백홍석과의 대결에서 승리해 9연승을 이루어냈다. 연승이 바로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는데 불계승으로 끝났다.
5월 23일에는 박지은과 팀을 이루어 이창호-김윤영 팀과 대결해 승리하였다. 알파고 이후 10연승. 다만 페어대국은 공식기록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큰 의미는 없다.
5월 30일 LG배 32강에서 구리와 대결하여 흑으로 불계패했다. 이로서 이세돌의 연승 횟수는 9에서 멈추었다.
6월 2일 프로기사회가 기사총회를 열어 이세돌의 탈퇴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탈퇴시 한국기원 주관 대회 출전불가 조항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어 삭제하기로 하였다 [46]. 그러나 기사회 적립금 문제나 이세돌의 탈퇴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보류하고, 한국기원과 논의하기로 하였다. 이에 모 바둑전문 기자는, "기사들을 위해 기원과 대립하며 기원과 기사회가 수뇌부가 같다는 것은 루머"라고 주장하는 기사회의 스텐드와 모순된다고 지적하였다. 그간 지적되왔던 기원과 기사회 구조는 사실상 이건희 회장이 삼성노조 회장까지 하는 격이라는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란 것이다. 애초에 기원과 대립구도라면 기사회 내부 정관 수정을 위해 기원과 협의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 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기사회 입장에서 초강수를 두기는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이며, 사실상 이세돌의 승부수가 먹힌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구설수에 올랐던 수입 지출 내역이 공개되었는데 작년에만 10억 가량의 수익을 올렸으며, 대부분의 지출은 은퇴비 명목으로 쓰였음이 드러났다. 또한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65억에 달한다 [47] 애초에 바둑 저변 확대와 복지에 사용된다는 기사회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이세돌의 말이 맞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프로에 입단한 이세돌이 부친상을 당하고 실어증이 걸렸을 때, 그 누구하나 병원에 데려가거나 도움을 주지 않았음을 꼬집으며, 기사회가 과연 이세돌에게 복지를 운운할 입장이 되느냐며 분노하고 있다. 실제로 당시 이세돌은 프로가 된지 2년 가량이 지난 후 이었고, 바둑리그다 승단대회다, 마주치던 기사회 소속 어른들이 청소년 밖에 되지 않는 기사가 목소리를 내는 것을 어려워하며 괴로워하다 결국 성대에 지대한 손상을 입기까지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48] 당시 이세돌은 돌봐주던 형이 입대하여 혼자 살고 있었다.[49] 따라서 현행 기사회 구성으로는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이세돌 본인이 현행 기사회 시스템의 부실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 신진서를 지켜라.
이 기사회 탈퇴 건으로 인해 한국바둑리그 2016년 시즌에서 도입된 각 선수별 세리머니를 촬영하지 못했다. 기사회 문제로 한국바둑리그 개막식날 불참해버렸기 때문이다. 형인 이상훈 九단은 감독이니까 개막식에 참석하고 신안천일염 나머지 선수들은 촬영을 마쳤지만, 이세돌 九단만 세리머니 사전촬영을 안 했다.
8 저서
- 가장 쉬운 독학 이세돌 바둑 첫걸음 : 2016년 작. 이외에도 바둑 입문관련 서적은 이세돌 九단 이름으로 많지만, 이세돌 九단이 직접 발표한 입문서는 이것 하나뿐이다.
9 참고 문서
- ↑ 1위 조훈현(160회), 2위 이창호(140회)에 많이 밀린다. 바둑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국내 기전 수가 많이 줄고, 이전에는 전년도 우승자가 미리 결승에 진출해 있는 도전기제가 많았으나 현재는 국수전을 제외하면 모든 기전이 토너먼트이므로 전년도 우승자라고 해도 상대적으로 타이틀 획득이 힘들어졌다.
- ↑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미지 경로에서 겹슬래시(//)에서 슬래시(/) 하나를 삭제하면 볼 수 있다.
- ↑ 이상훈 프로도 어린 나이에는 동명이인인 이상훈 기사와 구별되기 위해 '비금도 이상훈'이라고 불리며 차세대 유망주로 기대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후 공교롭게 둘 다 바둑리그에서 감독직을 맡고 있다. 이세돌의 형 이상훈은 신안천일염 감독을 맡고 있다. 형은 감독으로, 동생은 선수로 뛰고있는 셈.
- ↑ 이미 구한말 의병장인 신돌석(申乭石)에 이 한자가 쓰인 사례가 있다.
- ↑ 같은 원리로 박영훈은 대박(大朴), 박정환은 소박(小朴)이라 불리기도 한다.
- ↑ 단적인 예가 89년 당시 이창호 四단의 111국 기록. 존재하던 모든 기전에 출전하고 승단대회까지 참여하던 끝에 나온 다시는 나와서는 안될 기록적인 혹사이다.
- ↑ 중국은 이전부터 비슷한 규정을 사용했는데, 세계대회 우승 1회 혹은 준우승 2회를 거두면 그 즉시 자동으로 九단이 되는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의 대표적인 수혜자는 제7회 응씨배 우승자인 판팅위 당시 三단. 17세의 나이에 九단이 되었다.
- ↑ 1971년에 서봉수 당시 二단이 조남철 당시 八단에게서 명인위를 털어온 사례가 있었다.
- ↑ 이세돌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이었던 제15회 후지쯔배에 이어 2연속 제패.
- ↑ 2003년의 일로 이는 당시 역대 최단기간 九단 승단이다.
- ↑ 당시의 정황은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기원의 자체징계가 아닌, 우리나라의 모든 프로기사들이 모인 "기사회"에서 징계를 의결한 것이었다. 사실 바둑의 인기가 예전같지 못한 지금 상황에서 1인자이자 최고 인기기사인 이세돌의 바둑리그 참가는 모든 걸 다 떠나서 필수적이었으며, 심지어 신안군의 경우 그의 고향 비금도가 속한 기초자치단체로 이세돌의 참가를 바라며 "신안 천일염"으로 바둑리그의 참가를 결정한 상태였음에도 돌연 불참한 것이다. 당시의 징계를 주도한 사람이 이세돌을 아끼던 조훈현 九단이라는 것을 이유로 이세돌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의견도 있으나, 이것은 단순히 아전인수식의 해석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현재 프로기사회의 존재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보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조훈현 九단과 동시대 혹은 그 이전에 프로기사로 활동했던 그의 지인이나 선배들이다. 2016년 현재 이세돌이 프로기사회를 탈퇴하고 나서 이러한 결정의 의미가 (안 좋은 쪽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 ↑ 다만 한국기원의 잘못도 적지 않다. 이전까지 한국기원은 중국리그를 정식기전으로 인정하지 않아 한국리그 일정과 겹칠 때 대국일정을 전혀 조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리그와 중국리그 모두 계약을 맺은 이세돌은 예를 들면 중국리그 시합이 끝난 날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귀국하여 바로 한국리그 대국을 하는 등 꽤 고생을 했고 이는 당시 다른 정상급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중국리그를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기원은 중국리그 승리수당 10%를 공제하겠다고 주장하였고 이세돌은 일정조정을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한국리그 불참을 선언했다. 이 문제와 기보저작권 문제 등이 얽혀서 터진 것.
- ↑ 당시 이세돌은 징계를 주도했던 조훈현에 대해서는 한국 바둑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 분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며,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반성하고 고치겠다고 했다. 그러나 동료기사들에 대해서는 사석에서는 한국기원의 태도에 불만이면서 징계 투표시에는 찬성표를 던졌다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 ↑ 꼼수 같지만 꼼수와는 달리 프로기사가 와도 파해가 잘 되지 않는 수를 잔수라고 한다.
- ↑ 명인전 결승 5번기 + 바둑왕전 결승 3번기.
- ↑ TV아시아배는 각국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기전 우승자, 준우승자와 전기 우승자까지 합쳐 7명이 나간다. 이세돌 9단은 전기우승자이자 KBS바둑왕전 준우승자이기 때문에 남은 출전권 한 장은 KBS바둑왕전 3위인 신진서가 받았다.
- ↑ 1997년 5월에 IBM에서 만든 인공지능 딥 블루가 러시아의 체스 세계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와 대전하여 2승 1패 3무로 승리한 적 있지만, 바둑은 체스보다 경우의 수가 훨씬 많고 복잡해서 웬만한 인공지능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고 여겨졌었고, 게다가 이번 판 후이와의 대국엔 5판 전승이라는 점에 더욱 놀라고 있다.
- ↑ 김여원 캐스터는 박정상 九단의 부인이다. 김여원 6단의 멘트는 "만약 자기 캐스터 차례 때 이세돌이 알파고에 이긴다면 할 멘트"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미리 준비한 거 같다.
- ↑ 알파고가 경우의 수를 확률로 계산해 알파고가 승률이 10% 이하라고 생각하면 스크린에 팝업 창을 띄우게 되고 이를 알파고의 대리 기사인 아자 황 박사가 실제로 돌을 거두게 된다고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가 밝힌 바 있다.
- ↑ 이는 몬테카를로 트리 검색(MTCS)의 특징상 일어나는 일이다. 이 알고리즘 하에서는 반상 위에 눈에 띄게 좋은 수가 없는 경우 악수와 나쁘지 않은 수 사이의 구분이 어렵게 된다. 바둑처럼 경우의 수가 많은 게임일수록 이 측면이 극대화된다.
- ↑ 반대로 알파고가 백돌을 잡았을 때가 흑을 잡았을 때와 비교해 강하다는 말이 된다.
- ↑ 복기하면서 '이 九단이 옳았던 것 같다. 더 나은 수가 안 보인다.'라고 평했다. 더불어 자신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둬도 알파고의 큰 그림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더욱 멘붕했다.
- ↑ 대만 출신의 일본 원로 기사. 보통 기성으로 불린다. '우칭위안'이라고도 말하며, 린하이펑의 스승이기도 하다. 유명한 정석 해설서인 '오청원 전집'의 저자기도 하고, 무엇보다 조훈현의 사형이다. 그리고 전 세계 바둑 팬들이 역대 최고의 기사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기사 중 한 명. 일반적으로 1933년 오청원과 기타니 미노루가 제안한 신포석을 현대바둑의 출발점으로 본다. 저 언급의 이유는 현재 자신 바둑공부에 도움이 되느냐의 대답으로 생각된다(실제로 기타니 기보의 내용은 최신바둑 트렌드에 밀리지 않지만 오청원 기보의 내용은 현재와는 거리감이 먼 편이며, 도움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기는 함).
- ↑ 중국 갑조리그에 처음 진출했던 2004년의 이야기. 이후엔 중국 요리를 좋아하게 되어 매우 즐긴다. 특히 술에 있어서는 독주를 좋아하는 애주가인데, 맥주는 입에 대지도 않고 소주는 와인보다 조금 독한 정도라 하여 빼갈을 몹시 애호한다고 밝히기도. 금연을 하고 나서 훨씬 더 주량이 늘었다고 한다.(...)
니코틴 중독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듯 - ↑ 웹툰 탈에서도 패러디 되었다.
- ↑ 하지만 결국 결혼 잘 해서 딸까지 낳았다.
- ↑ 사실 이 발언은 도요타덴소베에서 우승하고 나서 일본 기자가 "1회 때는 이창호가 우승하였고, 2회 떄는 당신이 우승하여 계속 한국인이 우승한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물었을 때 "일본에서 만든 대회이니 주최측은 일본인이 우승하기를 바랄 텐데 내가 우승한 것이 미안하다. 다음에 열리는 대회는 내가 아니라면 일본인이 우승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이 원본인데, 전해지다 보니 다른 내용이 되 버린 듯 하다.
- ↑ 10번기 중계방송에서 김성룡 해설이 소개한 일화로 이 말을 했던 당시에는 진짜로 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 ↑ 해당 인터뷰처럼 이세돌 九단은 다른 건 몰라도 이창호 九단에 대해서는 자신을 낮춘다.
- ↑ 이후 2016년 1월 14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서 사석에서 했던 얘기라고 밝혔다(사석에서 한 얘기가 약간 와전되었다고 밝혔다). 이세돌 "바둑은 즐거워야 된다…그것이 핵심이라 생각" 격투게임계의 거성 우메하라 다이고도 패배를 알고 싶다. 패배가 뭔가?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 ↑ 한마디로 3-2로 승부가 갈리는 아슬아슬한 승부가 아닌 완벽하게 어느 한쪽으로 승패가 완전히 기울어지는 승부가 될 것이라는 말. 그리고 이세돌은 '내가 이길까 질까'를 고민하는게 아니라 '내가 5-0으로 이길까, 4-1로 이길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알파고가 판 후이 2단과 겨루었을 때의 기보를 보고 자신에 한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 ↑ 불과 하루 뒤 예상치 못한 발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1국 후 이 발언은 재평가중
- ↑ 실제로 겸손과 예의를 미덕으로 삼는 우리나라에서 이세돌의 언행들은 굉장히 튀어보일 수 있다. 이는 본인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본인의 발언들이 바둑계에서 자주 이슈 메이킹이 되니 프로 바둑기사로서는 본인을 제대로 프로모션하는 셈이다. 실제로 바둑의 인기가 줄어든다는 인식에 경각심을 가지고서 바둑계 일각에서는 이세돌 같은 개성있는 기사가 여럿나와서 바둑 시장을 활성화시켜주길 기대한 적도 있다. 프로 바둑기사들이 본인들의 기풍과는 상관없이 성격들은 대체적으로 모난 구석없이 정형화된 언행으로 매스컴을 대하는 심심한 인상을 가진 바둑기사들이 많아서 바둑계의 흥행을 주도하는 이슈 메이커가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컸다. 지금은 다각도로 대중들에게 바둑 자체를 어필하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 ↑ 예전에 컨디션만 좋으면 이창호 9단을 꺾을 수 있다는 등 패기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지금은 어찌 감히 제가... 하며 선배에 대한 존중을 보여줄 만한 멘탈이 되었다.
- ↑ 실제로 이세돌은 1회 단발성이라면 바둑 해설을 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바둑 해설보다 바둑 보급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다.
- ↑ 내제자였던 이창호에게 패하기 전까지 그의 담배 애호는 대단해서, 평창동 자택 지하실에 장미 담배 1만보루(...)를 사재기 해놓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창호도 젊은 시절 스승 조훈현의 모습을 "가느다란 장미 담배를 문 날카로운 인상"으로 기억할 정도.
- ↑ 90후, 95후 세대가 계속 합류하는 중국 바둑에 비해 한국 바둑의 인재층이 얇다는 문제 때문에 당장의 해결책으로 입단폭을 크게 늘린 점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 ↑ 실제로 김지석의 성적이 좋지 않은 건 아니다. 국내&국제대회의 순위권에 자주 올라가는 편이다. 그럼에도 스타성과 실력에 비해 2016년까지 세계기전 우승이 하나 밖에 없어서 국내용인가 하는 아쉬운 평가가 많다.
- ↑ 이세돌이 소속되어 있던 광시 팀은 허난아태바둑클럽으로 이름을 바꿨다.
- ↑ 참고로 이미 한국기원에서 기원 발전기금으로 대회 상금의 10%를 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 ↑ 다만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노동조합으로 볼 수 있는 MLB 선수협회에서는 실제로 선수 연봉의 일정 %를 강제로 연금 명목으로 적립하게끔 하고 있다. 이러한 수단을 취하지 않으면 모든 MLB 출신 은퇴선수들에게 연금을 지급할 재원을 달리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고액 연봉 선수가 훨씬 많은 연금 적립액을 뜯기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다. 프로기사화 또한 상금 수익으로부터 일률 공제한 비용 대부분을 은퇴기사 퇴직금(2016년 현재 약 4000만 원 상당)으로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분노를 안 하는 게 이상한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세돌 九단의 기사회 탈퇴 선언에 대해 동료 기사들의 시선이 싸늘한 이유다. 하지만 MLB 선수 협회는 기사회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일단 선수협회는 MLB 구단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선수의 권익을 지킴과 동시에, 그 자금 운용이 투명하다. 또한 더 많은 연금을 적립한 은퇴선수에게 더 많은 돈이 돌아가는 구조이다. 기사회의 수뇌부는 사실상 기원의 수뇌부와 동일하여, 선수들의 권익을 대변하기보단 기원과 항상 같은 의견을 공유해왔고, 실제로 그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그 운영이 투명하지 않고 폐쇄적이라, 장부도, 정관도, 홈페이지도 공개되어있지 않은 단체이다. 만약 MLB 선수협회처럼 기사회가 운영되었다면, 이세돌이 탈퇴 요구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세돌이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단체이기 때문. 게다가 단순한 친목단체인 기사회는 법인인 MLB협회와 같은 역할을 넘어선 탈권적 영향력을 가질 근거가 없다.
- ↑ 위의 각주와 달리, 언론에 노출되고 있는 익명의 기사들의 반응은 다양하며 싸늘하다기보단 기사회의 위세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정작 바둑전문 기사들은 해당 기사를 일절 내놓고 있지 않다. 탈퇴선언에 대해서는 과하다는 입장이 주를 이루는 것 같으나 내심 이세돌의 문제의식에는 동조하는 기사들도 적지않다는 것이 각종 뉴스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의 MLB노조와 달리 한국기사회는 법인이 아닌 임의단체이며, 감사에게 자유롭기 때문에 운영의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러가지로 상황이 다르다. 약 65억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음에도 정관 공개는 커녕, 장부 공개 조차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상위 기사이며 십여년간 최대 납부자로 자리매김한 이세돌조차 그 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고 있다. 딴지일보의 김곤먀에 따르면 기사들을 대상으로 대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현행법상 단순한 친목단체가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 ↑ 2009년 휴직 사태 당시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았는지라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한 듯 하다. 당시 이세돌 9단이 랭킹 1위였다고는 해도 지금처럼 인기인이 아니었고, 징계의 이유도 표면적으로는 이세돌의 한국바둑리그 불참이었기 때문에 명분도 부족했던 데다, 나이도 어리다 보니 사실상 깊게 생각하지 않고 들이받은 측면이 크다. 이 때는 바둑의 인기가 하향세였던 시기였고(세계 대회 우승이 한국 독식에서 점차 중국에게 자리를 내주던 시기.), 그걸 만회하기 위해 한국바둑리그가 얼마 안된 시기였다. 그리고 2009년 바둑리그에는 이세돌 1지명권을 담보로 이세돌의 고향인 신안군에서 창단한 신안천일염 팀이 참가했기 때문에 바둑리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이세돌은 바둑계의 개혁을 바라는 바둑 팬들 입장에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 ↑ 이세돌 본인의 말로는 10번기 이후부터 프로기사회 탈퇴를 준비해 왔다고. 이미 명분은 있으니 자기 주장을 당당하게 펼칠 수 있는 때를 기다려온 듯 하다.
- ↑ 당시 준우승자였던 조한승 기사도 준우승 상금을 전액 기부했다.
- ↑ 애초에 법적으로 문제가 있던 부분만 수정한 것이기에 사실상 총회에서 변경된 사항은 없지만 (공정거래법 위반 + 노동법 위반 크리) 한발 물러서 양보한 것처럼 스텐드를 취하고 있다
- ↑ 이 정도 규모면 애초에 친목 단체가 아니다. 다른 선수협처럼 법인 등록을 하여 투명하게 관리되어야할 규모이다. 각종 대외 활동과 수익 사업을 활발하게 해야할 현금을 저렇게 쌓아둔 것 자체가 확실히 효과적인 집단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 ↑ 실어증이 오면 목소리 내는 것이 매우 괴롭다. 티가 안날 수가 없다. 이세돌은 단순히 실어증 때문에 성대가 상한 것이 아니라, 장시간 병원에 가지 않고 억지로 목소리를 내려다가 상한 것이다. 주변 어른 누구 하나 14~15살의 그에게 병원행을 권하지 않았다.
- ↑ 기사회 기금이 복지에 쓰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세돌 표정이 급격히 굳으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디에 쓰시는지 알고 싶네요."라는 말은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