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야스오

일본 내각총리대신
90대91대92대
아베 신조후쿠다 야스오아소 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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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田康夫(ふくだ やすお)
복전강부
1936년 7월 16일 생. 키 171cm

기자: "원주율(圓周率=파이)은 '3.14'로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약 3'이 좋을까요?"

"원주율이 3이면 외울 수 있어도 3.14면 외울 수 없다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나는 더 길게 말할 수 있어요. 3.14159265358…."

일본의 유토리 교육(창의력을 강조하고 내용을 줄인 한국의 7차 교육과정과 비슷하다.)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문답.#

하지만 자신의 임기 중에 뜻을 이루진 못한 듯. 참고로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출신이다. 본격 문과도 아는 원주율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일본 제91대 총리.

2 생애

출신지는 군마현이며 아버지는 일본의 제67대 총리를 지낸 후쿠다 다케오. 일본 헌정사상 최초의 부자 총리 기록을 세웠다. 전임 총리 아베 신조처럼 회사에서 근무했지만 아베 신조와는 다르게 본래 정치를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아내인 미네 요시코와 결혼 할 때 정치가의 아내는 시키지 않겠다고 서약까지 할정도. 마루젠 석유회사에 취직해 과장까지 승진했으나 아버지가 후계자로 점찍은 동생 이쿠오가 병사하면서 1976년 회사를 그만두고 1977년 아버지 다케오의 내각총리 비서를 거쳐 1990년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제 39회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이래 6선 의원의 자리를 지켰다. 용케 이혼은 안 했네

외교가 전문이었던 아버지처럼 주로 외무정무차관과 자민당 외교부장을 거쳐서 2000년 모리 요시로 내각에서 관방장관을 맡았다.(부장관은 아베 신조)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도 관방장관에 유임되어 2004년 5월 국민연금 미납파문으로 사임할때까지 3년 반(1289일)여를 재직해 최장수 관방장관 재임 기록을 세웠다.

이후 2007년 9월, 아베 총리가 사임하고 열린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아소 다로 간사장을 제치고 총재에 당선되어 일본 제91대 총리가 되었다.

총리로서 후쿠다는 공무원 제도를 개혁하고 행정경비 절감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 시절의 참의원 선거 참패로 일본은행 총재 임명동의안이 번번히 민주당이 장악한 참의원에서 매번 부결되고 30%대에 머무는 낮은 지지율로 머물렀다. 심지어 2008년 6월 11일에는 전후 헌법으로 최초의 참의원 문책 결의안이 발동되어 자민당이 장악한 중의원에서 신임표결까지 해서 살아남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결국 9월 24일 사임을 선언했다. 2007년 9월 25일부터 재임해서 딱 365일동안 재임하고 물러난 셈.

아베 신조보다는 온건한 이미지로 총리가 되었지만 자민당의 몰락 크리를 막는데는 역부족이었다. 그의 후임은 덕후 아소 다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일본 측 조문 사절로 국민장에 참석했다. 2012년에는 박태준 묘소에 참배.

사실 후쿠다는 신중거사(愼重居士)라는 별명처럼 재임기간 중에 별다른 업적도 없고, 거꾸로 큰 실책도 없는, 그냥 묻어가는 총리가 될 뻔 했으나, 밑의 일로 나름 강한 임팩트를 주고 퇴임했다. 바로 총리 사퇴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의 질문 때문이었다.

기자 : "총리의 회견이 국민들에게는 보통 남의 일처럼 들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오늘 사임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솔직히 그런 인상을 갖게 되는군요."

(一般に、総理の会見が国民には他人事のように聞こえるというふうな話がよく聞かれておりました。今日の退陣会見を聞いても、やはり率直にそのように印象を持つのです。)

후쿠다 : "기자님은 남의 일 같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도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는 있습니다. 당신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그런 점도 같이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他人事のようにというふうにあなたはおっしゃったけれども、私は自分自身を客観的に見ることはできるんです。あなたと違うんです。そういうことも併せ考えていただきたい。)

이 미묘한 어감으로 유명세를 탄 "당신과는 다릅니다"는 2008년 신조어/유행어 대상에 입상하기도 했고, 인터넷 유행어 대상을 타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기자와는 다르다! 기자와는!

3 트리비아

한국과도 약간 괴랄한 인지도가 있는데 바로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가 이 때 나온 이야기다. 그의 재임기간에 한국은 정권교체가 있기도 했다.


2007년 10월 28일, 사이타마 현 아사카 기지 육상자위대 훈련장에서 자위대 창설 53주년 행사 사열식.

수트를 가장 잘 입는 총리 가운데 하나였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컬러풀한 패션과 비교된다. 실제로 고이즈미 총리 때도 "노 타이는 꼴불견"이라고 주장하며 각료 가운데 홀로 노타이를 거부했지만, 총리 재임 이후 책임감을 느꼈는지 이후 타이 없이 컬러셔츠만 입고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아들인 후쿠다 타츠오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고 은퇴했다.

클래식과 와인 애호가이며 헝가리 음악을 좋아한다. 예술 분야에서도 박식해서 만남을 가진 연예인들도 감탄할 정도라고 한다. 명문 정치가 집안이라 전체적으로 매우 품위있고 귀족적인 기품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