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내각총리대신
87대 ~ 89대90대91대
고이즈미 준이치로아베 신조후쿠다 야스오
95대96 ~ 97대(현직)
노다 요시히코아베 신조
아베 신조
安倍 晋三(あべ しんぞう)
생년월일1954년 9월 21일
출생지일본도쿄신주쿠
본적지야마구치나가토시(즉, 舊 조슈 번)[1]
출생학세이케이대학교 법학부 정치학부 졸업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정치학 중퇴
전직고베제강 직원
아베 신타로(친아버지) 비서
정당자유민주당(세이와정책연구회)
종교없음[2]
칭호정치학사(세이케이대학교)
배우자아베 아키에(安倍昭惠)
가족[3]사토 노부히로(고조부의 아버지)
사토 노부히코(고조부)
사토 슈스케(증조부)
아베 신타로(증조큰아버지)
아베 히로시(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할아버지)
사토 에시사쿠(대숙부)
아베 신타로(아버지)
아베 노부오(남동생)
일본의 제90대 내각총리대신
임기2006년 9월 26일 ~ 2007년 9월 26일
일본의 제96대 내각총리대신
임기2012년 12월 26일 ~ 2014년 12월 24일
일본의 제97대 내각총리대신
임기2014년 12월 24일 ~ 현직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 국가간 관계를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1910년 한일합방에 대한 견해를 말하면서

서방 국가들에게는 믿을만한 조력자이지만, 일본 제국의 전쟁 범죄에 시달린 한국, 중국에게는[4]#[5][6] 에게는 최악의 시대착오적 총리이자 군국주의자라고[7][8][9][10] 비난받는 총리. 경제적으론 지난 20년 동안 줄곧 장기불황에 시달려온 일본을 다시 한번 살리려고 노력하는 총리.[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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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국제판 셋째 주 커버 페이지. 기사에서는 아베노믹스가 가능할 것인지에 의문을 던진다.

1 개요

한자의 한글 독음으로는 "안배진삼".

3번이나 연임하며 성공적으로 총리직을 수행한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뒤를 이어 처음 집권했을 때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미숙한 모습을 많이 보이며 권위가 실추된데다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단 1년만에 사퇴하면서 듣보잡단명 총리가 될 뻔했지만, 이후의 자민당 출신 총리들과 잠시동안 집권한 민주당 출신 총리들이 선보인 여러 번의 삽질 덕분에 화려하게 재기, 단명에 단명을 거듭하며 혼란했던 일본 정부 내각을 안정시키고 연임도 달성해 고이즈미 이후 처음으로 장기집권하고 있는 총리가 되었다.

한국중국을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제국에게 시달린 아시아 국가들의 입장[12]에서는 시대착오적 총리이자 군국주의 성향이 짙은 정치인. 게다가 국가간의 손익 관계를 떠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 그리고 일본의 외교적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거의 의도적으로 한일관계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한일관계는 상호호혜적인 관계라고 볼 수는 없다. 일본 국민들은 이처럼 왜곡된 한일관계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으며, 아베 신조 총리는 어정쩡한 기존의 한일관계를 한국이 아닌 일본이 주도하는 형태로 재정립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입장에선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변한 외교적 태도에 대해 반일감정이 더욱 높아진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본에 적응을 못해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ref>[13][14]#를 악화시키고 있는 인물이므로 상당히 경계하는 편.

심지어 같은 나라의 덴노아키히토도 아베와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다고 한다.#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아키히토 덴노가 2016년 8월 생전 양위를 결정한 배경에는 아베 정권의 선거 승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니 정말 사이가 안 좋은 것 같다.[15][16]#

하지만 한국을 제외한 서방 국가(또는 자유진영) 입장[17]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대표되는 믿을만한 우방이자 반서방 세력[18] 견제에 매우 중요한 조력자이기도 하다. 애초 회전문 총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1년을 못 넘기고 내각이 교체되던 일이 태반이던 일본이었는데 아베가 장기집권 체제에 들어가면서 강력하고 안정된 정부가 꾸준히 이러한 정책을 밀어주니 서방국가 입장에선 신뢰감을 느끼고 있다. 물론 새로운 일본의 행보나 역사인식 같은 경우 직접적 피해를 받은 네덜란드나 과거사 청산이 순조롭게 이행되었다고 국내에서 찬사받는 독일이 있다고 하나[19][20][21] 다수의 서방 국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동남아 상당수 국가에 대해서도 배상이 끝났으며, 당시 조약에 참여하지 못한 국가들도 한일기본조약 등으로 배상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 자기들 문제도 아니니까 정권 차원에서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도 위안부 문제 같은 경우 국회내에서 결의안도 내고 인권수호 측면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점도 분명 있겠지만, 그것 못지 않게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한국을 견제하고, 한미일 삼각동맹의 틀 안에서 한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양쪽을 조율하는 측면이 강하다. 오히려 이런 문제제기는 정권 차원보단 진보 매체(뉴욕타임즈 등)나 시민단체 등에서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G7은 자국에 불리하고 일본에 힘을 실어주는 아베노믹스를 묵인할 정도로 이미 일본에 우호적이었다. 그만큼 중국과 러시아가 성가시다는 뜻이기도 하고.

일본의 좌파,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 양심적인 일본인으로 평가될 정도로 일본의 주변국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베 신조는 극우의 상징 같기도 하다. 일본 우익 중에서도 넷우익에게 최고의 총리라 불리고 있으며 집권 후 극우 운동이 극심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22][23][24]사실 반대하는 사람들 중엔 과거사를 반성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헌되면 징병제가 실시될 수 있으며 거의 무조건 세금도 급증하는 실질적인 문제를 반대 논리로 내세우는 사람도 많은데, 실제로 개헌 반대 세력 중에서는 가뜩이나 돈 없는데[25] 뭔 군대냐는 의견도 상당하다.[26]

경제적으로는 망해가던 일본경제를 살리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취업률의 경우 취업 빙하기라고 불리우던 10~20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물론 이것이 아베노믹스보단 인구구조상 즉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일할 인구 자체가 줄어들어서 취업률이 늘어났다는 이견도 있고[27][28]#[29], 전반적인 경제가 무조건 좋은건 아닌지라 장단점이 있어서 곧 서술될 본문이나 아베노믹스, 아소 다로(...) 항목을 보면 의아할 수도 있지만, 일본은 20년 넘게 디플레이션에 시달렸기 때문에 물가 상승률이 안정된 것만도 큰 업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디플레이션이란 것이 그만큼 치명적이기 때문.[30]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도는 딱 찬성50:반대50 사이에서 계속 왔다리갔다리하고 있다. 1년도 안돼 나가리 사임하는(...) 경우가 많은 일본총리 역사를 보면 지지율이 꽤나 순항하고 있는 셈. 그래서 장기집권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반대 측 의견은 대체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는 여론이 많다. 실제로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아베 내각에 대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험악해진 민심을 회복시키라고 뽑아 놨더니 오히려 좌우 대립이나 국가간 대립만 격화시키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찬성 측에선 그나마 경제를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정도 총리도 드물었다며(...) 지지한다는 인식이 있다. 극우적 견해야 다수의 우파성향 일본 국민들 입장에선 용인가능한 수준이란 면도 있을테고. 망했어요 즉, 당장 이 사람 말고 대안은 딱히 없지만[31] 총리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데에 피로감이 늘고 있는 셈.

결론을 말하자면, 분명 문제점이 많지만 지금은 필요한 리더라는게 일본 여론이다. 실제로 아베노믹스로 일본의 경제지표 대부분이 도호쿠 대지진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과 더불어 2020 도쿄 올림픽 유치 성공, 쿠마모토 지진 등 재해 발생 시 정부의 적절하고 신속한 대응[32], 피아구분이 확실하면서도 실리는 챙기는 외교행보, 고이즈미 이후 쇠퇴한 미일동맹의 재공고화, 특히 미국 오바마 대통령히로시마 방문 성사라는 외교적 성과[33]#는 아베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34] 요미우리 신문에서 2016년 9/9~9/11일간 실시한 일본 전국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기존의 54%에서 62%로 8% 상승했다. 지지율이 60% 이상으로 올라선 것은 2014년 10월 이후 약 2년만의 일이다.[35]

2 집안

아베 신조와 관련해서 집안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며, 집권 초기까지 그런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이유는 그가 영향 받은 행동이 정치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일본엔 이런 세습정치인 가문이 많은데, 솔직히 아베 뿐만 아니라 오부치 게이조[36], 고이즈미 준이치로[37], 아소 다로[38], 후쿠다 야스오, 심지어 민주당 출신의 하토야마 유키오까지 집안의 권력 때문에 총리직에 오른 인물은 꽤 많았다. 정도의 차이지 어느 나란들 안그러냐만.당장 우리나라를 보자...

그의 출세에는 그의 집안 내력이 크게 작용했다. 일본의 경우 한국과는 달리 정치적 입지와 정치 진출에 있어 집안과 가문이 중요한데,[39] 노골적인 권력세습으로 자유민주당(일본) 의원의 40%가 이런 세습족들이다. 이 사람들은 사실상의 세습귀족으로 일반인들과 완전히 괴리된 삶을 살기 때문에 많은 폐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민당 뿐 아니라 민주당의 여러 정치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토야마 총리도 세습족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의 논리에 의하면. 아베 신조도 자기 집안의 후광을 받으며 정치인이 된 경우.[40][41] 이 때문에 그를 알려면 그의 집안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1954년에 아베 신타로와 기시 요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무척 화려한 정계 집안이다. 외할아버지는 A급 전범 용의자[42]이자 자민당 체제를 확립한 기시 노부스케 총리, 기시의 친동생이자 비핵 3원칙으로 유명한 사토 에이사쿠는 아베 신조에게는 외종조부(외작은 할아버지)다.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는 외무장관을 지냈을 만큼 집안이 화려하다.

위의 내용에 관련한 내용을 첨부하자면 2014년 3월 15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안중근 의사와 관련한 일본의 불법 재판 사건과 관련해[43] 현 아베 정부의 특성과 방향, 아베의 출신 가문, 사상적 배경을 추적했다. 이 방송에서 방영된 바에 따르면 아베의 외고조부는 일본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의 밑에서 사상적 영향을 받은 오시다 요시마사로 이 자는 청일전쟁 이전 경복궁을 기습하여 점거한 전적이 있는 일본 육군 대장 출신이며, 외조부는 위에서도 언급한 대로 기시 노부스케로 A급 전범이자 일본 우경화에 앞장선 인물이다. 이들은 조슈 번의 일본 전범, 극우 중에서도 거물로 꼽히는 인물들이다.[44]

그리고 자신도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고 [45]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말한 관방장관의 언행을 두둔하는 등 심각한 행각을 벌이는 인물이다. 참조 까놓고 말하자면 전범 가문 출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계열학교까지 입시를 치르지 않고 자동으로 입학하는 체계(일관교육)를 가진 사립학교인 세이케이 초등학교해 입학, 세이케이 중학교, 세이케이 고등학교를 거쳐서 세이케이 대학[46]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에 미국에 건너가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정치학과를 다녔지만 1979년에 중퇴했다. [47][48]

대학교에서 양궁을 배웠으며 후지TV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양궁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1960년대로 추정되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함께 한 어릴적 사진.

1972년, 고등학교 졸업사진.

3 정계 입문

미국 유학 뒤 고베 제강이란 회사에서 일하다가 1982년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7년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49]의 주선으로 모리나가(森永) 제과 마쓰자키 아키오(松崎昭雄) 회장의 딸인 아키에(당시 광고사 덴츠에 다니던 중)와 결혼한다.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유력한 총리 후보였으나 암 선고를 받고 1991년 사망했다. 아베 신조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1993년 아버지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 제1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하며 국회에 입성했다.

모리 요시로 총리 시절에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추천으로 관방장관에 임명되었고 고이즈미가 총리로 취임한 뒤에도 유임했다. 참고로 관방장관은 총리 비서실장 겸 내각 대변인으로 총리 집무실 바로 옆방에 사무실이 있으며, 총리를 보좌해서 내각의 조정업무를 담당한다. 대변인으로 언론에도 매일 나오기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보통 정치세력의 차세대 에이스들이 관방장관으로 경험을 쌓은 뒤에 총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자민당에서 북한에 대한 강경파로 주목을 받았고 북한에게 무력 사용과 경제제재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해 인기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그 인기 덕인지 2003년 자민당의 간사장을 맡았다. 3선 밖에(!) 안 되는 젊은 정치인인 그에게 간사장직을 맡김은 2003년 11월 중의원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였는데, 실제로 11월 총선에서 자민당은 과반 이상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간사장으로서 아베 신조는 당내 개혁 조치를 폈지만 2004년 참의원 선거에서 목표치 51석에 못 미치는 49석을 확보하자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 그러나 후임 간사장의 요청으로 간사장의 밑인 간사장 대리를 맡는다. 어쨌든 간사장 대리로서 아베 신조는 우정개혁으로 촉발된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 반고이즈미파 낙선을 위한 소위 "고이즈미의 자객"으로 불린 미녀 후보들을 공천하는데 역할을 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4 1차 내각

이런 활약으로 고이즈미 총리의 후임으로 거론되기 시작해 2006년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해 경쟁후보인 덕후 아소 다로와 다니가키 재무상을 물리치고 자민당 21대 총재에 당선됐다.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 일본의 관례에 따라 제 90대 일본 총리에 올랐다. 전후세대 첫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총리 취임후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경색한 한일, 한중 관계 회복을 위해 2006년 10월 8일 중국후진타오 국가 주석과, 10월 9일에는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재임은 내각의 각종 스캔들로 얼룩졌다. 사다 겐이치로 행정개혁상이 사무실 재정운영 문제가 불거져 사임했고 마쓰오카 도시카쓰 농림수산상이 각종 비리 의혹으로 자살했으며 규마 후미오 방위상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어쩔 수 없었던 일[50]이라는 일본인에게 매우 민감한 발언으로 결국 주의 처분을 받고 사임했다. 후임 방위상은 고이즈미 총리가 2006년 자객후보로 공천한 고이케 유리코가 선임되었다.

이런 악재 가운데 열린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1989년 참의원 선거[51] 이후 사상 최악의 성과를 거두며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더해도 과반의석을 못 얻은 역사적 참패를 겪었다.[52] 아베 총리는 내각을 계속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지만 새로운 아베 내각에 국민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렇게 되자 아베 총리는 2007년 9월 10일부터 열리는 국회에서 테러 특별조치법을 연장시키지 못하면 내각이 총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인 9월 12일 총리 사퇴를 선언해 무책임하다는 비판만 받았다. 사임의 이유로는 아베 총리가 일본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대표와 협상을 가지고 테러 특별조치법 연장을 위해 노력했으나 오자와 대표가 이를 거부해 사퇴를 결심했다고. 물론 건강이 안 좋아진 것도 원인이지만 자민당 안에서 아베 총리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계파간 밀실 합의로 밀려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퇴임 뒤 수상 관저에서 나와 바로 병원으로 향했는데 이를 두고 영국 BBC는 '수상 관저에서 체크아웃해서 병원에서 체크인했다' 라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추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정말로 건강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그가 걸린 궤양성 대장염은 심하면 음식 먹은 지 5분 뒤에 대변으로 나올 만큼 심각한 병으로 그를 압박했으며 그의 부인 아키에 여사는 총리 직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다며 울면서 그를 설득했다고 한다.

이 당시 그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골골거리는 "도련님(봇짱)"이었다.

5 사퇴 뒤 재기

한동안 몸을 챙기다가 2008년부터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53]#[54]자민당 몰락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인물임에도 반성은 전혀 없이 자민당이 캐몰락한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도 당당히 자기 지역구에 출마해 당연히 당선했다.(...) 이후 고이즈미의 우정개혁에 반발해 탈당했던 히라누마 다케오를 자민당으로 복당시키고 총재선거에 출마하려 했지만 히라누마가 거부해, 자신의 측근인 니시무라 야스토시를 밀었지만 실패했다. 아마도 니시무라를 당선시켜서 막후에서 자민당을 이끌어보려고 했던 듯하지만 자민당 안에서는 니시무라의 총재선거 출마 선언에 웬 듣보잡이라는 반응이었다니... 망했어요

보수 정치인답게 민주당 각료들은 단 1명도 참배하지 않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고,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불리는 시진핑이 일본을 방문할 때 덴노를 예방하자 이를 격렬하게 반대하는가 하면 중국을 나치즘에 비유하는 등 안티 중국 활동을 벌인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일왕 사과 요구에 대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자 예의를 잊은 행동'이라고 맹비난했다. 물론 이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이 나중에 '사죄 발언은 오해였다', '총리가 여러 번 사과하는 것보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일왕이 말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라며 정정했으며 실제로 매우 심각한 발언이었다.[55][56]

한편 자민당은 다니가키 대표의 후임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아베 전 총리를 투표없이 대표로 추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자신의 보수신당에 아베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어서 느닷없이 다시 일본 정계의 태풍의 핵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본인은 자민당에 남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11월에 열릴 듯한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단독 과반 확보까지는 못 가더라도 제 1당일 가능성이 유력한지라 차기 당대표로 거론받는 아베 입장에선 다시 총리를 할 절호의 기회이고 자신이 다루기 어려운 하시모토와의 연대보단 이쪽이 훨씬 낫기도 할 테니...

6 2차 내각

2012년 12월 26일 96대 수상 취임으로, 전후 요시다 시게루 이후 처음으로 총리직을 공백기(5년 3개월)를 두고 2번 재임하는 총리를 했다. 공백기가 길기로는 역대 4위로 1923년 9년 5개월만에 정권을 찾은 야마모토 곤노효에 이후로 89년 만에 최초다.(참고로 일본 총리직의 역사가 고작 130년이다) 이보다 조금 짧은 게 이토 히로부미의 1차, 2차 내각의 격차가 4년 3개월, 마쓰카타 마사요시의 4년 1개월. 야마모토 이후로 아베 이전 공백기가 가장 길었던 와카쓰키 레이지로가 4년. 참고로 역대 최장 공백은 15년 5개월의 오쿠마 시게노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베처럼 잊혀졌다가 완벽하게 부활한 인물은 전후에 전무후무하다. 공백 뒤 2차 내각이란 기준으로 이번 중의원 임기 중 사임하지 않는다면 이토 히로부미(4년), 가쓰라 다로(3년)을 빼면 가장 긴 임기에 머물 수도 있다. 물론 공백이 아닌 단순한 2차 내각의 임기는 전후에도 긴 총리가 많다.

6.1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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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대 총리 취임 공식 사진

2012년 9월 26일 자민당 총재로 당선하고 11월 16일에 중의원이 해산해 2012년 12월 16일 치른 제46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공명당이 320석[57]이 넘는 의석을 확보하며 압도적인 승리로 96대 총리 및 아베 신조 내각이 재탄생했다. 총리 정식 취임일은 2012년 12월 26일로 결정했다.

선거철인 2012년 11월, 일본에서 무제한 양적완화를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기사. 그러면서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를 제일 먼저 짤라버리겠다는 공약은 덤. 그리고 총리에 당선되자마자 제일 먼저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한테 파면을 통보한다.(...) 이에 대해 시라카와 마사아키는 물러나기 전에 후임자 결정때까지는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는 규정을 이용해 버틴다. 결국 일본은행 총재 시라카와 마사아키를 굴복시키고 무려 10조엔에 달하는 1차적 양적완화를 폈다. 뉴스. 2013년 3월 31일까지 임기인 시라카와 총재를 곧이어 물러나게 하고 아베 신조의 측근을 심어서 양적완화를 하겠다는 뜻을 더더욱 밀어붙일 듯하다.

96대 총리로 당선하자마자 '센카쿠 열도는 일본 땅'이라고 발표했다. 기사.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수상 임기 동안 반드시 참배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기사.

대체적인 분석이, 아베 내각의 출현은 한국 입장에선 달갑지 않다.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야 차치하고라도 무제한 양적완화를 내세운 탓에 한국과 일본이 환율 전쟁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있다. 한편으로는 아베 내각이 한중과의 관계 개선을 안하면 일본 경제에 악영향이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동아시아 외교에서는 매우 강경한 공약을 내건 아베인지라 한중과의 관계 개선이 썩 쉽지는 않으니 문제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아베가 과연 일본을 부흥시킬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외조부 때부터 긴밀한 연을 맺던 박근혜 정부가 탄생했기 때문에 양자 사이의 친밀성으로 한일관계가 호전하라는 전망도 있다. 박근혜 당선인의 당선이 확정되자 아베는 박 당선인과 조속한 시일에 만나겠다는 의사도 보였다. 기사. 대놓고 "다케시마의 날 지정을 자기(아베) 임기 중에는 유보하겠다" 는 것으로 봐서 관계 개선의 의지가 정말 강한 듯 했다. 부인 아베 아키에의 한류 드라마 시청 재개 역시 관계 개선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걸 보여주는 듯. 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큰 센카쿠 열도 공무원 상주 공약 역시 유보했다. 그야말로 집권하자마자 외교정책 관련 공약을 하나도 지킬 생각이 없음을 천명하는 패기를 보였다.

12월 21일에 아베는 박 당선자에게 직접 친서를 보내고 누카가 후쿠시로 전 재무상을 특사로 파견하겠다는 발표를 했지만 박 당선자측에서 주말이고 해서 일정이 안 맞으니[58] 아베가 총리에 정식 취임하는 12월 26일 이후에 일정을 조율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아베가 일방적으로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서 박 당선자 측이 부담을 느꼈냐는 분석이 나왔으나 박 당선자 측은 일정이 안 맞았을 뿐 정치적인 이유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12월 26일 이후에 아베의 특사가 박 당선자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월 4일에 방문하였다.

12월 25일 내각 주요 인사를 내정, 한국에 각종 망언을 한 바 있는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재무부총리에 내정되는 등 극우 인사들을 대거 기용해 앞으로의 한-일 관계가 미궁 속에 휩싸였다. 하지만 12월 27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가 밝혔던 무라야마 담화를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기사. 이로써 선거할 때 내놨던 외교 공약은 전부 폐기처분 확정. 다만 고노 담화 수정 검토라든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추진하겠다고 밝혀 이것이 앞으로 한일 관계에 암초일 가능성은 있다.

그 밖에 탈원전 노선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원전 재가동을 밀어붙일 개연성이 높아졌다.

일본 국민들은 '닥치고 경제나 살려' 라는 여론이 큰 편이다. 평화헌법 개정에는 약 50% 정도가 반대의사를 나타냈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도 30% 정도가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이것은 우경화 바람에 반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경제가 어려운데 쓰잘데기 없는 데에만 신경 쓴다는 쪽에 더 가깝지만, 아베 내각은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이런 국민적 여론을 의식한 듯 우경화 정책을 보류하거나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갔다.

물론 아베 내각의 행보가 우경화를 절대 포기하지는 않으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 상황이 나왔는데 12월 31일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는 적절한 시점에 역사 문제에 입장표명을 하리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을 언제 발표할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대체적인 분석으로는 무라야마 담화는 그대로 두고서 새로이 아베 담화를 발표해 '침략전쟁이 피해를 준 것은 반성하겠지만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임을 드러내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발표 시점은 당장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본 여론도 좋지도 않고 한국의 박근혜 정권, 중국의 시진핑 정권 등 새로 출발하는 정권들과 구태여 초장부터 각을 세우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담화의 발표 시점은 일본 패망 70주년이 되는 2015년일 공산이 커보인다고. 2015년은 무라야마 담화른 발표한 지 20주년인 해이고 한일 기본조약(한일협상) 체결 50주년이기도 하다.[59] 장기집권 기반을 구축해놓은 뒤에 퇴행적인 역사인식을 드러내겠다는 복안으로 보여 우려를 낳는다.

제2차 아베 내각이 처음 성립되었을 때 아베 총리가 다시 일본 경제의 부흥기를 가져오겠다고 하자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아베 총리가 심도있는 경제 정책을 펴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고 사실은 경제에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고 비판하여 한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다.

6.2 참의원 통상선거

2013년 3월 구로다 하루히코일본은행 총재에 지명하고 4월 1일부로 앉혀서 아베노믹스 기조를 본격화했다.

2013년 7월의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를 앞두고 참의원 선거에서 이겨보기 위해 일본 엔화를 더더욱 떨어뜨리는 엔저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른바 아베노믹스. 각종 양적완화 및 경기부양책을 시행하는 것은 물론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해서 지속적으로 미국 달러유로화를 사들였다. 이에 따라 엔-달러 환율은 20% 넘게 올랐고(엔화 가치 하락) 일본외환보유고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심지어 닛케이지수는 30% 뛰어올라 14000 포인트를 찍었다. 이런 일방통행 행보가 일본인들의 지지를 얻은 때문인지 참의원 통상선거에서의 압승이 쉬울 듯 하다.

참의원 선거에서 낙승이 예상됨에 따라 아베 신조 정권에서 우익 성향을 조금씩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013년 2월, 일본 유신회다함께당 등에 제안하여 헌법 개정안 발의 요건을 중의원, 참의원 2/3 서명에서 과반수 발의로 바꾸자는 개헌안을 내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사.

심지어 안보 법제 간담회의 야나이 슌지 위원장은 집단적 자위권에 '한국과 호주도 들어간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즉, 한국과 호주에 대한 공격도 일본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서 자위대를 파병하겠다는 것. 다만 일본이 한미일 동맹체제에 들어가 있음을 감안하면 이전부터 추진중이던 것이기는 했고, 무엇보다 두 나라 모두 일본의 육상자위대라면 모를까, 해자대와 공자대는 필요한 입장이다.

게다가 미일관계 복원을 외치면서도 도쿄 전범재판을 '승자의 판단으로 단죄한 재판'이라고까지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한 마디로 저 말은 '미국이 이겼으니까 지들 마음대로 처단했지?'라는 뜻이라서 일본 안에서도 미일 관계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2013년 3월 15일 TPP 협상에 정식으로 참가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다 요시히코총리가 참가하겠다고 선언했다가 보류한 뒤 다시 참가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2013년 4월 23일 기사.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전세계적으로도 확실치 않다며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르다"고 말해 논란이다. 이런 극우적 발언에 일본 안에서도 '외교 관계가 가뜩이나 나쁜데 제정신이냐'며 비판했다.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을 침략이 아닌 '진출'로 여기는 극우파의 역사인식을 대놓고 까발린 셈. 극우파 정치인들의 대규모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함께 외교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듯하고 이미 한국과 중국은 '이게 무슨 개소리야?'라며 격렬한 반응이다. 아사히신문은 '지지율 70%에 취해서 국제관계를 까먹었냐?'며 우려했다. 중의원 선거 이전에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할 의사는 없다며 눈치를 보다가 압승이 확실하자 강공으로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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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에는 '서울대 교수가 일제시대에 인구가 증가했다는 연구를 내놓은 바 있다'라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어 일제 통치의 정당성을 설파하냐는 논란이 있다. 그리고 4월 28일 미군정이 끝난 날을 기념해 주권 회복의 날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기념식을 거행하리라고 밝히는 등 우경화 폭주를 이을 기세다. [60]

끝내 미국까지 나서서 비공식적으로 일본의 우경화 폭주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한중일 3국 재무장관 회담까지 취소된 데다가 일본 내에서 심지어는 보수적 언론인 요미우리 신문까지 신중론을 제기하자 아베도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4월 26일, "역사 인식문제가 정치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통해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 것. 그러나 이런 행보는 일단 한 발 물러서는 척해서 현재의 국면을 타개하려는 제스처일 가능성이 높고 적당히 시기를 봐서 다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일본 안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니 아베가 폭주를 이으리라 생각해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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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식 전차에 오른 모습

4월 27일, 니코니코 동화[61]가 주최한 박람회인 '니코니코 초회의 2'[62]를 찾아 "반드시 강한 경제를 되찾겠다. 지금 일본 영해와 영토에 도전이 이어지지만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63] 이어 자위대와 주일미군 부스에 방문해 군복과 헬멧을 쓰고 육상자위대 최신 전차 10식 전차 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전차에 탄 총리는 아베가 전후 최초라고 한다. 당연히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한국과 중국의 우려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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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노 헤이카 반자이!

4월 28일, 주권 회복의 날 행사를 강행했다. 심지어 덴노 부처까지 동원해서. 이 때 한 기념사가 가관으로 "일본을 강한 나라로 만들어 전세계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하자". 게다가 행사 말미에는 패전 이후 공적인 장소에선 금기시하던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도 외쳤다. 그러나 우경화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알려진 아키히토 덴노 부부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나가서 불쾌감을 표현했다.[64][65]

침략의 정의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발언에 내각 차원에서 표현부족으로 벌어진 오해라고 국회에서 야당이 질의하면 해명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개헌을 앞두고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행보란 분석이다.

2013년 5월, 미국 의회조사국이 아베의 견해에 침략을 부정하는 수정주의자의 견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의 국익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아베 내각이 침략사실을 부정한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고 한다.

5월 5일에는 도쿄돔에서 프로야구 시구[66]를 하면서 등 번호를 96번을 달고 시구를 했는데 이는 일본 헌법 96조의 개헌 발의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라 어그로라는 비판을 받았다. 아베 총리가 96대 총리이기 때문에 썼다는 해석도 있어 당시에는 과민 반응이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현재의 행적을 보면 개헌 의지 맞다. 어차피 교진의 슈퍼스타 아베도 있는데 뭣하러 96번 같은 생뚱맞은 번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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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번 훈련기에 오른 모습

여기에 더해서 2013년 5월 12일, 아베 총리가 미야기 현의 항공자위대 기지를 방문해서 블루 임펄스 곡예비행단을 시찰했다. 이때 그는 훈련기 조종석에 앉아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는데 이 비행기의 번호는 731이다. 관련 기사. 이게 얼마나 미친 도발적인 행위인지는 731 부대 항목 참조. 어쩐지 731이라는 숫자 볼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했다 당장 중국은 명백한 도발이라고 맹비판했고, 한국에서도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하켄크로이츠 문양이 달린 비행기를 타는 일과 같은 행위라는 맹비판이 쏟아졌다. 우연히든 의도적이든 도발적 행위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이후의 폭주 행각들을 살펴보면 의도적인 도발임이 기정사실이 되었다.[67]

2013년 5월 14일,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가 문제가 되고 있으니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서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을 그대로 두겠다는 것이다.

2013년 7월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은 아베의 높은 지지율를 의식해서인지 아베와 부인 아키에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을 대거 공천했는데 이를 두고 정실 공천이라는 논란이 있다. 공천을 받은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가관인데 에이벡스 소속 가수인 이토 요스케,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츠카하라 미츠오, 개훈련 전문가 다나베 히사토 등은 모두 아베의 부인 아키에가 추천한 인물들로 알려졌다. 이토 요스케는 아키에의 아버지가 사장으로 있었던 모리나가 제과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고 츠카하라 미츠오는 아키에와 술친구라고 하며 다나베 히사토 또한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키에와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상 공천에 총리 부인이 개입한 모양새라 뒷말이 무성한 듯하다. 심지어 이토 요스케는 자민당 간사장인 이시바 시게루조차 "그게 누구지?"라 했다고(...) 아베 또한 자신의 고향 친구인 기타무라 츠네오를 공천한것으로 알려졌다. 이럼에도 상대당인 민주당은 인지도가 부족한 노조 출신들을 대거 공천했고 그나마도 공천을 포기하고 사퇴하는 인물들이 속출했다고 알려졌다. 개나 소나 공천해도 자민당의 승리가 유력하니, 일본 정치가 얼마나 개판으로 돌아가나 짐작할 만하다.

2013년 5월 19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야스쿠니 신사와 알링턴 국립묘지가 뭐가 다른가라는 망언을 했다. 너네는 전범을 묻어두거든? 한국과 중국에도 비판의 날을 세웠는데 몇 년 사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별다른 항의를 하지않다가 갑자기 이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뭐하나 아베 안 잡아가고

이런 가운데 치른 지방선거에서 자민-공명 연합이 6개 선거구에서 3개 선거구 당선에 그쳐서 자민당 내에서 충격적인 결과라는 지적이 있다. 특히 자민당은 사이타마 시장 선거에 아소 다로 부총리와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까지 지원유세에 투입하면서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홍보했으나 자-공연합이 내세운 후보가 현직 시장에게 패배했다. 아오모리와 나고야에서도 현직 시장들에게 패배했다. 득표 결과를 보면 공명당 지지층의 80%가 자-공연합에 투표했으나 자민당 지지층의 55%만이 자-공연합에 투표했다고 드러났다는 점에서 공명당이나 자민당이나 크게 우려하는 실정. 물론 이런 결과는 자민당이 고령의 지역 본부장이나 간사장을 공천해 비교적 젊은 현직 시장들에 맞서기에는 신선미가 떨어졌다는 지적이 많지만 이런 결과는 자칫 7월 참의원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겠다는 우려가 나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베노믹스의 성과가 지역까지 못 퍼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가운데 천조국에서 제프리 베이더 전 NSC 선임보좌관은 한 강연회에서 한 기조연설에서 "아베 정권이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하려 든다면 미국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베이더 전 선임보좌관은 아예 하시모토 도루의 위안부 망언에 "제정신이 아닌 짓"이라고까지 했다고. 그러나 평화헌법 개정에는 일본의 판단이니 미국이 간섭할 일은 아니라는 모순적인 발언도 했다. 평화헌법 개정과 우경화는 별개로 보는 셈.

하지만, 미국 부통령인 조 바이든은 2015년 8/15일 펜실베니아에서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유세현장에서 연사로 나와 트럼프의 일본 핵보유 용인에 대해 비판하면서 '일본은 우리가 만든 헌법에 의해 핵보유국이 될 수 없다'라는 외교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바이든 "일본 헌법 우리가 만들었다" 발언 논란. 물론 일본 헌법이 2차대전 패전 후 미 군정시 일본을 통치했던 연합군 총사령부(GHQ)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일본과 전혀 상관도 없는 미국 대선 유세현장에서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아베 신조 총리의 평화헌법 개정 논리에 힘을 실어주는 실언을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민진당 오카다 가쓰야 대표는 이 발언을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와중에 치른 도쿄도의회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이 전원 당선 기록을 세우면서 향후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선까지는 몰라도 안정 과반은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 첫번째 유세지역으로 후쿠시마를 선택하였다. 이 부분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가 터졌을 때 자기 지역구인 이와테를 버리고 도쿄로 도주한 오자와 이치로 일본 생활당 대표와 더욱 극명히 대비되고 있다. 기사.

6.3 2016년

그동안 밀어붙였던 아베노믹스 정책 중 하나로 도쿄 23구 전체를 투자촉진구역, 규제완화 시범구역으로 지정하는 승부수를 띄웠는데, 이에 일본 기업들 위주로 도쿄 도심 지역에 대규모 재개발, 재건축 사업을 진행중이다. 미쓰비시 그룹은 일본은행 맞은편에 일본 최고높이 마천루인 높이 390m, 100층 건물을 짓겠다고 계획을 잡을 정도.

취임 이후 미일관계에 신경을 많이 썼으며 결국 5월에는 버락 오바마히로시마 원폭 투하 장소를 방문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아쉬울 일이지만, 중국의 급부상을 견제하고 미일이 과거사까지 정리하며 힘을 합치는 것이 현실 속에 친중정책을 펴온 한국의 목소리는 완벽히 묻히고 있다. 미국의 든든한 우방이자 최전선 방파제 역할을 자처해 맡으려 하는 아베의 외교정책은 미국 입장에서는 아주 땡큐다.

2016년 8월, 아베 신조에 비판적인 언론인 도쿄신문은 전쟁금지 헌법, 日 총리가 제안” 맥아더 편지 발견,아베 “강요된 헌법” 주장 뒤엎어이라는 보도를 하여 평소 일본 헌법은 주권 국가로써 일본 국민 스스로 만든것이 아니라 점령국인 미국의 강요로 만들어진 헌법이기 때문에 개헌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던 아베 신조 총리를 공격하였다.

그런데 정작 이 보도가 있고 나서 며칠 후에 미국의 조 바이든 부통령이 트럼프를 비판하는 중에 바이든 "日헌법 우리가 만들었다"…트럼프 비판하며 언급 대놓고 아베 총리의 견해를 전적으로 긍정하고 기존 보도를 부정하는(트럼프 비판중의 발언이기 때문에 이런 목적으로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발언을 하여 이 보도를 한 도쿄신문은 체면을 구겼다..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 2020 도쿄 올림픽 홍보차 슈퍼 마리오로 분장해 깜짝 등장하여 국내외로 호평을 받은 것과 여러가지 외교적 성과로 인해 지지율이 60% 이상 폭등했다.# G20 정상회담에서도 곳곳에서 아베 마리오 미스터 마리오 라고 부르며 말을 거는 각국 정상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G20 정상회의 슈퍼스타는 아베 총리[68] 이 인기를 바탕으로 자민당 수뇌부에서는 아베를 위해 총재 임기를 3년 연장하여 총리직을 2021년 9월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성사될 경우 역대 최장수 일본 총리가 된다(...).

중앙일보 9/2일자 기사에서 전문가 31명에게 실리외교를 가장 잘 한 국가지도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9명(65.5%)실리외교 잘한 지도자 1위…“얄밉지만 아베”를 차지하여 1위로 선정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지난해 2015년 같은 설문조사에서 아베 신조 총리는 단 5표(15.2%) 밖에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1년 사이에 이처럼 극과 극의 평가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국익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자기희생, 동맹국인 미국과 최상의 관계를 만들어 내면서도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와의 영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호관계를 놓치지 않는 실리외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에서 거론되는 쿠릴 열도 문제에서 아베 신조 총리는 러시아에 우선 2개 섬(하보마이, 시코탄)의 반환을 요구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으며 대신 기존에 살던 러시아인의 거주권을 보장해 주며,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추진하겠다는 당근 정책을 제시하였다.일-러 쿠릴 열도 4개섬 분쟁 해결책 찾을까?

만약 러시아가 일본의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여서 북방 2개섬이 일본에 반환될 경우 아베 신조 총리는 역대 일본 총리 중 누구도 하지 못한 전후 북방 영토문제 해결의 거대한 진일보를 한 총리로 남을 것이며, 공공연히 거론되는 3번째 총리 임기연장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보통 국가'화를 위한 헌법개정 역시 문제없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69][70][71]

2017년 1월에 중의원 해산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지율이 높을 때 갈아엎고 중의원을 완벽하게 장악하려는 모양. 임시국회에서 개헌론을 논의해달라고 연설하였다.#

전날 국회 연설에서 자위대 등에 경의를 표하자며 기립박수를 유도해 집권 자민당 의원들이 단체로 기립박수를 친 것에 대해 다음 날, 야권측이 항의하였는데# 비난이 거세게 쏟아졌다. 결국 자민당은 사과했다. #[72][73]

또, 개헌론에 대한 여론전을 펼치려는 이야기가 나왔다. # 이례적으로 북방영토를 바꿀 생활 전반의 경제협력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74][75]

하지만 아키히토 덴노의 생전 퇴위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궁내부 장관을 경질한 걸로 알려져있다. 관저 관계자가 “보복 인사”라고 말할 정도로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76]

중의원 예산위원회 문답 과정에서 지난해 12월 한일간 위안부 문제 합의에 추가해 일본측에서 위안부 피해자에 사죄 편지를 보낼 가능성이 나돌았는데, 직접 생각조차 없다고 말했다. #

일본 주요 언론사들의 최근 가장 관심있는 외교 이슈는 러시아와의 북방영토에 관련한 부분이며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는 이미 지난 한일 합의협정을 끝으로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종료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측에서는 한국 측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문제 해결은 등한히 하면서 이미 최종적으로 끝난 협정에 억지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고 보고 한국측의 요청을 들어주지도 않을 생각이라 전하고 있으며,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외교부장관) 역시 협의문에 적시된 이행사항 외에 추가적인 조치는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일한 양국이 서로 합의한 내용을 이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사실상 한국에 대한 협의문 내 합의된 내용의 이행을 강하게 요구했다.[77][78] .

2017년 1월 중의원 해산에 대해 생각하지 않다고 말했다. # 임기를 마칠 2021년까지 자유민주당 총재 임기 완화 규정할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 그리고 2021년까지 보장되었다.#

# #일본의 외무상(= 외교부 장관)인 기시다 후미오는 10/14일 국무회의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엔 교육 과학 문화기구 (UNESCO)에 대한 일본의 올해 분담금 등 약 44 억엔(약 440억 원, 2016년 분담금 38억 5천만 엔 + 기여금 명목의 5억 5천만 엔)을 현재 지불하지 않은 것을 밝혔다. 이는 중국이 유네스코에 신청한 기억 유산인 '난징 대학살 문서'가 공식 등재되자 이에 대한 반발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79]

10월에는 야스쿠니 신사의 가을 대제사가 있어서 총리 명의의 공물을 봉납했다.# 지지율은 다시 60%에 돌파했다.#

7 외교 정책

아베 신조/외교 정책 항목 참조.

8 역사적 성향

군국주의 냄새가 짙은 전형적인 일본 우익.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 다른 일본 우익들처럼 구 일본제국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미국이 쓸데없이 끼어들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그만두었다[80]고 생각하며 일본이 침략하면서 벌인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죄라는 인식이 희박한 것으로 보이고, 일본의 이익을 위해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나오고 있다. 물론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태평양 전쟁 등 2차 세계 대전 관련으로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저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편 한국, 중국, 대만 등 만만한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역사왜곡과 막말을 일삼으며 제대로 어그로를 끌고 있다. 다만 보통국가를 내세우며 사실상 제국주의로의 회귀를 바라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 아베와 별도로 일본 여론은 평화헌법 개헌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81][82] 다만 2016년 한국 의원들 방일시 헤이트스피치를 일삼는 혐한들은 자기도 일본인으로서 부끄럽다고 한 것으로 보아 재특회급 막장은 아닌듯 하나, 그걸 법적으로 강하게 제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도긴개긴도찐개찐이긴 하다. 일명 립서비스?

9 경제 정책 - 아베노믹스

자국민들조차 상당히 싫어하는 온갖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이 이렇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83]

적극적인 친서방 정책을 바탕으로 G7에게 암묵적 동의를 받아 실시한 아베노믹스는 확실히 큰 성과를 얻었고, 경제 성장률이 아예 정체 상태인 박근혜 정부는 확실하게 앞질렀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본이 부활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주요 수출품이 겹치는 일본을 경계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

경제와 친서방 행보를 동시에 잡는 정책의 일환으로 당초 일본은 미국이 권유하는 TPP(다자간 FTA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가 여부를 놓고 저울질했다. 그러나 당시 내각이 민주당인 데다가 농가의 타격을 우려한 만큼 농촌을 기반으로 하는 자민당의 반대가 많아 소극적이었으나 아베는 높은 인기를 기반으로 TPP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2013년 4월 TPP 참가국들의 참가 협상 승인을 받았고 # 미국은 자국 의회에 정식으로 일본의 TPP 협상 참여를 통보하였다. # 이것으로 한국의 FTA 행보(특히 한미 FTA)에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던 일본이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TPP가 성사되면 일본의 국내 총생산은 0.66%(3조 2,000억엔)이 증가할 것이고, TPP 참여국 가운데 미일만으로 90%의 경제 규모를 차지하는 만큼 환태평양 경제권의 리더로 재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 수치조차 보수적인 예측으로 피터 페트리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니혼 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TPPA 참여는 일본 경제 생산성을 높여줄 것"이라며 GDP를 10조엔(약 98조원) 정도 늘리는 효과가 있으리라 추산했는데 이것은 일본 정부의 예측치 3조 2천억엔의 3배를 넘는 수치다. # 일단 기대치는 그런 상황. 또한 일본의 갈라파고스화한 시장과 규정을 TPP 참여로 단숨에 글로벌 규격에 맞추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긍정적인 측면만큼 부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일단 일본 국민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한 모양이다. 아베 정권은 2013년 상반기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70%를 넘는 고공 행진을 하는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식 경제 개혁은 좋게 끝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만만치 않다. 양적완화는 반드시 장기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일본 경제는 구조적으로 국채 금리 상승에 취약해[84][85]불안을 가중시킨다. 또한 세계 시장 사정이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 엔화 약세가 일본의 무역 수지 회복으로 안 이어진다. 애초에 (자국 내의 국채지만) 빚더미 나라가 돈을 더 풀어봐야 국민만 더 가난해질 뿐이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은 아베를 지지하겠지, 안될거야 아마[86]

일본 닛케이 지수는 아베가 본격적으로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이자 하루에 3~4%가 넘는 급상승세를 펼쳐 5년 4개월만에 15,000선을 돌파했다. 그러나 2013년 5월 23일, 중국 제조업 지수(PMI) 하락과 폭등세에 대한 반동 때문에 2년만에 최대 급락폭인 7%까지 떨어지면서 불안을 나타내었다. # 그러나 6월 10일에는 다시 5% 증가. 이후 11월 말 다시 급반등하면서 15,000선을 재돌파한 뒤 안정됐다. 2014년 2월 18일 지금 기준으로는 15,000선 밑에 있다. 2015년 5월 6일 기준 19,500이 넘는다.

사족으로 통화 정책은 그 연구를 가장 활발히 하던 1980년대에도 국가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정책으로서는 연구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미국에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경기 부양책으로 대대적인 세금 감면과 기술 개발의 정부 보조 등을 약속하는 와중에 이러한 조세 정책만으로는 자본이 제대로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비판을 받자(Timing Problem), 보다 단기적인 대책으로 통화 정책이 부상한 것이다.

10 기타

발음, 특히 か행(카키쿠케코)이 아주 나쁘다.

그의 발음을 단적으로 알만한 영상. 아베 지지자들도 이걸 보고 어떻게 못하냐며 한탄했다. 근데 자동자막이 왜 프랑스어지?

7초경 부터의 자막이다.

それが、本来の日本の姿です。
取り戻す!取り戻す!取り戻す!
日本を取り戻す!
皆様と共に総力で!
自民党!
그것이, 본래 일본의 모습입니다.
되찾는다! 되찾는다! 되찾는다!
일본을 되찾는다!
여러분과 함께 총력으로!
자민당!

본래는 이런 말이지만 2ch에서는 저 영상을 보고

それが、ほんあいのりっぽんのすあたです
とりもろす!とりもろす!とりもろす!
いっぽんをとりおろす!
みなさんともにソウルまで!
自民党!
그것이, 봉내 릴본의 모읍입니다
닭고기도 등심! 닭고기도 등심! 닭고기도 등심!
닐본을 끌어내린다!
여러분 모두 함께 서울까지!
자민당!

이렇게 해석(...) 졸지에 서울 관광 홍보영상...이 아니라 서울까지 진격하자는 뜻인가?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서울까지 진격하겠다는 것도 일본을 끌어내리겠다는 것도 진심인 듯하다. 이제 보니 발음이 나쁜게 아니었네

의외로 영어를 잘한다! 외신에선 "일본인들은 보통 영어 못하는데 잘한다"가 기본적 견해다. 내 일본어 발음이 좋지 않았던 건 영어실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총리 취임 뒤로 총리 관저에 들어가질 않아서 총리 관저의 귀신 때문에 못 들어가냐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실제로 일본 총리 관저에서 1932년 5.15 사건이누카이 츠요시 총리를 비롯해 여러 명이 피살된 이후로 이곳에서 전직 총리들이 귀신을 봤다는 소문이 있었다고.[87] 국회까지 이 문제를 거론하자 아베 총리는 귀신 때문에 관저에 안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소문은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한편으로 6월 1일 요미우리 TV 방송에서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관저에서 귀신의 다리를 봤다는 이야기를 해서 귀신 때문에 못 들어가냐는 소문은 식을 기미가 없다.

나무위키에 있는 역대 일본 총리 항목 가운데 가장 내용이 방대하다! 총리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인 이토 히로부미고이즈미 준이치로 항목보다 더 길다! 게다가 그의 정책인 아베노믹스는 따로 항목까지 있어 아베노믹스 항목까지 더한다면 나무위키에 개설한 일본 정치인 가운데 내용이 가장 많다. 그에 대한 한국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고 볼 만하다. 비판이 반 이상이라 특이한데(...) 사실 아베 총리 스스로 부른 측면이 크다. 2013년 여름까지만 해도 이 항목은 최소한 객관적인 업적을 꽤 호의적으로 적었다. 그랬던 항목이 현재 이 모양임은 그만큼 짧은 기간에 수많은 병크를 터뜨린 탓이다.

페이스북을 매우 적극적으로 쓰는 총리로 하루 평균 1.8개의 페북 소식을 올린다고. '인터넷 재상이 분?'이라고 불릴 만큼 독보적 인기를 누리는데 늘 휴대하는 태블릿 PC로 전직 관료, 현직 야당 의원 등을 심하게 까내리면서 호평과 혹평을 함께 받는다. # 참 문제 많은 행태지만 일본의 보수와 젊은 세대들은 열광한다고. 특히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아베는 "폭거다. 점령하는 쪽이 도발적 행동을 하면 몰상식하다"는 글을 올렸고 반나절 만에 2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좋아요"를 연발했다.(...) 여하간 일본에선 대단히 보기 드문 유형인 인터넷 활동이라, 분명 대중적 인기를 끄는 총리다.

보수 성향 정치인임에도 뜻밖에 한국계라는 떡밥이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보통 넷 우익들의 한국계 드립은 하토야마 유키오간 나오토 같이 진보 성향의 정치인에 쳤지만 아베 신조는 극우 성향임에도 한국계설이 나돈다. 대표적으로 참의원 선거 때 파칭코 업계에게 5천만엔의 정치 자금을 받았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파칭코나 야쿠자 정치 자금설은 어느 정치인에게나 흔하니 비방성 루머로만 그쳤지만 한국계 떡밥을 결정적으로 불지핌은 아베 신조 1차 내각이 나온 2006년 9월 주간 아사히가 아베가에서 40년간 가정부로 일해온 구보 우메와의 인터뷰에서였다. # 인터뷰에 따르면 아베 신조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가 스스로 "자신은 조선(인)이다. 조선(私は朝鮮(人)だ。朝鮮)" 이라 말한 적이 있었으며 입관식 때 본 그의 골격이 조선인 체형이었다고. 출처가 어디까지나 가십 기사로 먹고 사는 주간 아사히이니 신뢰성에 의문은 있다. 이것 말고도 그의 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와,[88] 그들의 피를 이어받은 아베가 한국계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아베 신조 얼굴에서 한국인같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2006년 당시의 아베신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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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아베 신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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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같은 강경보수끼리 통한다고 조갑제 기자와 친분이 깊다. 이미 오래 전(2005년 간사장 시절)부터 서로 면식과 인터뷰를 한 경험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3년 집무실에서 인터뷰(녹음)도 했다. 조갑제 닷컴의 기사. 여하간 양국 관계가 나쁜 상황에서 한 아베 재취임 이래 한국언론 최초의 인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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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행보 때문인지 히틀러 분장을 당해 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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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5월 1일 현역 수상으로써는 이례적으로 일요 아침 예능 방송인 와이도나쇼(버라이어티성격의 시사프로)에 출연하였다.# 현 정권에서 보육원에 대한 정책 방향을 비롯해 인터넷에서의 비방이나 국회에서의 야유에 대한 생각, 그 밖에 음주와 관련된 에피소드등을 진솔하게 이야기하였다. 음주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과거 고베 제강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대장염으로 인해 전혀 음주를 하지 못했지만 야유회에는 참여했는데, 바로 운전수 역할이었다는 얘기.

미국에서도 존 올리버에게 드디어 까이기 시작했다. 그와중에 도조 히데키 의문의 1패

2016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일본회사에서 만든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마리오로 분해서 등장했다. 차기 올림픽 개최지의 대표로서 등장한 것이다.[89]

10.1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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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는 한류 팬으로 유명한 걸로 알려졌는데 박용하가 자살한 뒤에 부부 명의로 조화를 보내고 부부가 함께 조문도 했다. 2012년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남편의 정치적 위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한류 드라마 시청을 끊었다고 밝혔으나[90], 한일 관계가 다시 진정국면에 들어가자 다시 한류 드라마 시청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자기 페이스북에 한국 뮤지컬을 소개하고 감상한 글도 올렸다. 한일 관련 행사에도 자주 참가해 주일한국대사와도 꽤 자주 만나는 사이라고. 모 행사에선 한일 관계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빛이 바래버렸다

가톨릭계인 세이신(聖心) 여학원 출신. 하토야마 유키오의 부인 미유키 여사 이래로 가장 활동적인 총리 부인이다. 도쿄 금융가 뒷골목에서 우즈(소용돌이)라는 유기농 선술집도 열었으며[91] 활발한 페이스북 활동 속에 TPP나 원전 노선[92][93]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진정한 가정의 야당인 모습을 보인다. #

애초에 1기 임기 취임 당시에도 "첫 해외 순방길에 나섰을 때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아키에 여사가 총리의 손을 잡는 모습이 공개돼 대중을 놀라게 했다", "아침에 헝클어진 머리에 졸린 표정을 한 총리의 모습과 늦은 밤 소파에 앉아 파자마 차림으로 빙과류를 먹는 모습" 등을 대중에 공개해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켰고 "한 번은 아베 총리가 젓가락으로 고기 조각을 '로이'라는 이름의 닥스훈트 애완견에게 먹이는 사진을 아키에 여사가 게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정치적 의견 차이가 금슬과는 전혀 무관한 모양. 그녀의 이런 활동이 정치적으로 도움을 주는지 평가는 엇갈리지만, 적어도 아베의 강성 이미지를 완화시키는 데는 톡톡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아베 퇴임 기간 미얀마의 교육정책에 석사 논문도 썼을 만큼 뛰어난 인재다. 다만 불임이며[94] 개인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전쟁 반대와 평화 기원이란 목적임을 내세우는, 즉 아베의 강경함을 희석시키는 보완적 역할인 그녀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도긴개긴이라고 보긴 어렵고 강온차이가 있으나 상보적이며 전면적 반대는 아니라고 봐야 옳다.

남편과는 어느 정도 다른 정치적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둘 사이에 갈등이 있었으며 어떨때는 부부싸움까지 했다고 직접 고백하기도 했다. #

2014년 3월에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이 모여사는 "나눔의 집"을 몰래 방문해 일본 정부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돌아간 가운데 나눔의 집 측에서 이 관계자들에게 아키에를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이 제안을 아베와 그녀가 어찌 생각할지는 미지수.

그런데 2015년 8월, 아베 아키에가 한일 혼혈출신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불륜을 저질렀다는(...) 기사가 언론에 터져나와 역시 한류팬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일각에선 아베 신조를 보고 국가는 커녕 가정도 제대로 못다루는 남자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다만, 해당 내용의 기사 이후 추가되는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볼 때 단순 해프닝 또는 찌라시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이 사진에서는 호테이 토모야스가 일본에서는 잘하지 않는 매너손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공식적인 자리와 사석에서의 행동이 다를 수 있겠지만 당시의 사진에서는 둘만의 은밀한(?) 자리가 아니라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참석하고 있는 자리로 보여진다.

2015년 12월 한일 양국이 위안부 합의를 맺은 직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서, 야스쿠니 문제만큼은 아베와 같은 입장 아니냐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 위안부 합의로 인해 뿔난 일본내 극우들 민심 달래기용으로 아베가 부인을 야스쿠니에 보낸 것이란 분석도 있지만[95][96], 애초 그것부터가 잘못된 행동이긴 하다.

11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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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 신조 대론집 : 일본을 이야기한다(安倍晋三対論集 日本を語る) : 2006년 4월 출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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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나라로 아름다운 나라로 완전판(新しい国へ 美しい国へ 完全版) : 2013년 1월 출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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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모두 2016년 기준 국내에는 번역 출간되지 않은 상태이다. 출간되면 불쏘시개 분서인증용으로 많이 팔릴 거 같은데 노이즈 마케팅하기 좋아보이는 책들이다 저 책은 해로운 책이다[97]

12 관련 웹 사이트

  1. 아베 신조의 정치적 고향이라고 일본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며 실제로 아베 총리는 휴가나 정치적 구상을 위해 자주 이곳에 방문하곤 한다.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2. 이젠 문서에서는 신토라고 언급되어 있었으나 종교는 '교리'와 신앙의 대상이 명확해야 하는데, 신토는 교리가 불명확한 우리나라의 '무속 신앙'처럼 민속문화나 관습에 가까우며, 신앙의 주체 또한 일원화되어있지 못하고(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천주교는 성모 마리아, 불교는 부처 이런것처럼)지나치게 많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명절에 제사지내고 이사나 결혼때 무당에게 '좋은 날'을 받아온다거나 연말연초에 토정비결을 본다 해서 그 사람의 종교를 '무속 신앙'으로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신토는 종교가 아니다.
  3. 증조부와 아버지의 이름이 같은데. 오타가 아니다. 칸지로도 다르고 히라가나로도 다르기때문이다.
  4. 동남아 국가들은 한중처럼 일제의 침략을 안 받은 건 아니지만 전후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와 아시아 여성기금(Asian Women's Fund)으로 보상과 경제적 원조 및 투자를 해오고 있고, 더욱이 반일감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현재는 동아시아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인해 중국의 대항마인 일본과 정치/사회적으로 더욱 긴밀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사실상 동남아시아는 일본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다. 일본이 지난 수십년간 공을 들여왔으니
  5. 작년 2015년 2/27일 워싱턴 D.C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웬디 셔먼 전 미 국무부 차관보의 이른바 '값싼 박수' 발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비록 그 발언을 한 장소가 미국내 보수적 성향의 세미나였긴 했지만, 그동안 중국과 한국이 국민 내부 불만과 정치적 위기 타개를 위해 과거사를 정권의 입맛대로 이용해 온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웬디 셔먼의 '값싼 박수' 발언은 비록 미국 내에서도 쓸데없이 동맹국을 자극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미국 정치권, 행정권에서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는 관료나 정치인이 많고, 이들이 목소리를 차츰 내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 볼만한 일이다.
  6. 실제로 동남아시아 국민들은 일본이 전후 70여 년간 아시아에 공헌한 바가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나 다른 아시아 지역 친구들도 60~70년 동안 일본이 아시아에 기여한 바가 많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물론 특정 국가의 생각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한국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논리다.
  7. 그동안 일본은 전수방위 목적의 군사력 보유가 가능했기에 GDP의 1%만을 국방비 지출로 써왔고 이는 경제성장에 일조했다. 만약 일본이 우리나라 국방비인 GDP의 2.1%를 쓴다면 일본은 세계 군사비 지출이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에 해당하게 된다. (러시아는 현재 420억 달러 내외이고 영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방비가 러시아를 제쳤다. 현재 GDP의 1%를 쓰고있는 자위대는 410억 달러 정도 우리나라 국방비인 GDP 대비 국방비를 쓴다면 800억 달러가 될 것이다. 이는 러시아의 거의 2배에 해당하고, 영국의 국방비 658억 달러와 사우디의 568억 달러를 가뿐히 제칠 것이다.) 2010년대 들어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대리인'으로서의 군사력 확대를 은연 중 요구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국방비 지출이 매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2017년도 국방비 예산에서 대학지원 국방 연구비를 전년도 대비 무려 18배나 늘렸는데,(일본,대학 지원 군사기술 기초 연구비 18배 늘려) 이는 지금의 국방비 증가가 단기적인 목적이 아닌 선진기술 도입 및 개발과 같은 장기적인 목적으로 진행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8. '군국주의'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아베 총리가 군국주의 성향이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과거와는 달리 미국과의 군사적 안보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추세에 있으며, 이에 따라 자국의 군사력의 증강을 요구받고 있으며 미국은 이를 지지하고 있다. 또한 아베 총리는 최근 고속증식로인 '몬쥬'를 폐로 결정 하였는데# 일본은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 외 유일하게 플루토늄의 생산과 보유를 이 몬쥬를 통해 정당화 해왔다. 물론 몬쥬의 엄청난 유지/관리비와 사고 위험성 때문에 폐로 결정한 부분이 있지만 일본은 최근 몇년 전부터 자국 내에 보유한 플루토늄을 제 3국 또는 미국에 자진 반출시켜 보유량을 줄여왔다. 정말로 군국주의 성향이 있는 전쟁광이라면 강력한 무기화의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반출해 오고 있으며, 몬쥬를 폐로할 이유가 있을까? 돈이 많이 든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경제력으로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다. 또 일본은 기존 900량의 전차 가운데 74식 전차 전량(700량)을 퇴역시키는 감축안을 실행 중인데, 지상 전력의 펀치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전차를 이렇게까지 감축하면 타국에 대한 침략전쟁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9. 러시아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긴 하나 러시아는 일단 일본과 북방 영토 문제,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력의 동아시아 최전선이라는 부분에서 지역 헤게모니 고수를 위해 마찰을 빚고 있는 국가이기에 일본에게 호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건 대체로 아니다. 다만 한/중과 일본과의 과거 전쟁범죄 문제로 인한 갈등은 한미일 동맹을 흔들어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세력을 흔드는 일이므로 결과적으로 러시아에게는 유리한 일이 되기에 일부 동조해주는 의견을 내미는 것이다.(러시아는 독소전쟁으로 2천만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여 독일에게 적대감을 넘어선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고, 나치가 패망하자 당시 소련군들은 독일 전 지역에서 나이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강간을 저질렀고 당시 신생아의 30%가 러시아 혈통이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의 전쟁 범죄를 저지른 어두운 과거가 있다. 러시아, 당시 소련의 이러한 행위는 과거 코소보 사태때 알바니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인종 정화' 즉 적대 민족의 여성들을 강간을 통해 그들의 후손을 '정화'시킨다는 논리의 선조격인 셈이다.) 즉 어디까지나 정치적 스탠스의 차원일 뿐이지. 일제 전쟁 범죄의 직접적 피해자도 아닌 러시아가 동조해준다고 전 세계가 합심해 한/중처럼 일제의 전쟁 범죄를 가지고 아베 신조를 위시한 "현재의 일본의 행태"에 비난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크나큰 착각이다. 중국도 일제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현재의 중국은 동아시아의 지역적 헤게모니를 차지하려는 패권국가를 지향하는 상황인데 이러한 중국의 행보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미국의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 즉 동아시아에 주안점을 두는 미국의 외교정책과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과의 3각 동맹이다. 중국은 미국의 동아시아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공통된 역사적 이슈를 갖고 있는 한국과 손을 잡고 미국이 중심인 3각동맹을 흔들려는 목적에서 우리나라와 가까이 하는 것 뿐이다. 즉, 국가간의 외교에서 아무런 의도없는 순진한 행실을 바라는 것자체는 유감스럽게도 불가능에 가깝다.
  10. 이전 글에서는 중국의 상임이사국 권리를 이용한다고 언급되어 있었는데 좀더 자세히 애기하면 상임이사국의 안보리 의사결정은 만장 일치제 이기 때문에 일본에 제재를 가한다던가 하는문제로 안보리 차원에서 중국의 의향을 투영하는건 불가능하다.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항상 반대표를 던지기 때문에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역시 요원한 것이다. 당장 전 세계 최악의 막장 왕조국가인 북한에게조차 안보리는 원론적인 수준의 외교적 비판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북한 김씨 정권에게 실질적 타격이 될 만한 결의안 및 제재는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그런데 서방 선진국 모임인 G7의 일원이자 세계 3위 경제대국을 상대로 중국이 독자적인 외교적 제재를 가하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 중국의 국제 외교역량이나 국제적 역할은 일본에 비하면 한참이나 뒤떨어진 수준이다.
  11. 일명 아베노믹스라고 불리운다. 물론 장단점이 모두 다 지적되곤 있는데, 자세한건 후술항목 참조.
  12. 중국과 한국 한정.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 대리인이자 중국에 외교/군사적으로 대항할 만한 유일한 국가이다.
  13. 현재 일본은 한국은 무슨 이유를 들어서라도 일본을 비난할 것이고 일본의 실적에 대해서는 전혀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일례로 한국의 IMF 외환위기 당시 선진국 지원 80억 달러 중 일본이 30억 달러를 부담했고, 미국은 17억 달러를 지원했다.) 더 이상 일본이 한국에게 저자세로 일관하거나 한국을 특별대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여론이다. 위안부 협상 문제부터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를 대외적으로 시끌벅적하게 추진하는 것 역시 지난 1965년 한일협정이 양국 정부간 밀실 협약으로 추진되어 협정 내 정보가 양국간 서로 다르게 전달되었기에 일본은 돈만 내어주고 과거사 문제가 확실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기 떄문이다.
  14. 기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아베 신조 총리는 미일 동맹을 확고하게 강화하고 중일관계가 최소한 중립적인 선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한국은 과거처럼 국내정치를 위해 한일관계를 이용하지 못하고 일본이 주도하는 대로 끌려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은 한국을 거의 배제하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이로 인한 반일감정이 고조되고는 있지만 이에 못지 않은 피로감이 가중되고 있으며, 결국 일본이 원하는 대로 미/일 관계 격상에 따라 한국은 원하지 않는 형태로 미국의 주도 하에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로 끌려들어가고 있다.
  15. 덴노의 생전 양위에 대해 일본 내각의 대변인 격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덴노의 뜻은 존중하지만 생전 양위는 아키히토 덴노의 경우에 한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아베 신조 총리 역시 여성 덴노의 즉위 문제에 대해 남성 덴노가 계승해온 역사적 무게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전통을 깨는것에 대해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해 아키히토 덴노의 생각은 우익 성향이 있는 차남 후미히토 친왕의 적장자이자 황손인 히사히토 대신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같은 장남인 나루히토와 그의 장녀인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를 후계로 결정하고자 함인데, 아베 신조 총리는 이러한 덴노의 생각을 에둘러 반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6. G20으로 해외순방중인 아베 신조 총리는 덴노의 생전 퇴위문제는 우선적으로 시행하겠지만, 여계 일족의 궁가(宮家)창설이나 여성 덴노와 같은 문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는 것이 중요하면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전의 반박에서 추측이라고 비판했었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남성 후계자인 히사히토 황태손을 제쳐두고 현재 덴노인 아키히토가 여성 덴노와 같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현재 황태자인 나루히토와 그의 외동딸인 도시노미야 아이코를 차기 후계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17. 미국, 영국, 호주 등 영미권이나 유럽연합 등.
  18. 러시아, 중국.
  19. 다만 한가지 알아둘 점은 독일의 사과나 배상은 나치 독일의 2차대전 전쟁 범죄에 주로 해당되며, 18~19세기 식민지 제국주의 시절 동아프리카에서 자행한 비인간적 만행에 대해선 나치문제만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이중적인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독일이 동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제공한 배상은 지금의 일본과 마찬가지로 피해자들에게 이루어진 사과나 배상이 아닌 각 피해국 정부를 대상으로 금액이 지급되었으며 이 금액 역시 독일이 자행한 만행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도 못 미친다.(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지급된 금액 자체가 푼돈 수준이며 정부 차원의 배상이 아닌 '기억-책임-미래' 재단을 통해 위로금 형식으로 지급되었다 그리고 일본 역시 '아시아 여성기금'이란 정부출연 재단을 통해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피해 여성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한 바 있다.) 다만 2016년 동아프리카 피해국 중 하나인 나미비아 정부에 대해 '인종 학살, Genocide'(헤레로족 6만 5천명 학살)에 대해서만큼은 공식 사과하긴 했다. 하지만 이 사과는 대량학살에 대해서 사과한 것이지, 식민지배 자체가 부당한 것은 아니니 배상의 법적 근거가 되지 않으며 배상금 역시 지급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20. 물론 독일의 나치 독일의 전쟁 범죄에 대한 사과와 배상은 귀감이 될만 하지만, 유럽 한복판에 위치해 있으며 나치 독일의 악행을 씻지 않는 한 유럽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것이 불가능에 가까울수 있었던 당시, 그리고 현재 독일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애매모호한 독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한국민들이 바라는 초점은 배상문제보단 진정성 있는 사과에 맞춰져있는 것으로 볼때, 성향에 따라 자꾸 총리의 언행이 바뀌고 심지어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현 일본의 태도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안 맞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태평양전쟁의 전몰자 247만 명의 넋을 기리는 일본 국내의 문제이므로 외국이 내정간섭을 해서는 안 되며, 또한 앞으로는 절대 한국에게 사과할 일이 없다는 입장이다.
  21. 독일 같은 경우에도 한국 언론들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메르켈이 일본에게 직격탄을 날렸다고 보도했으나, 실제 메르켈은 당사국의 속죄 못지않게 이웃나라들의 관용과 화해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거론했으며, 더욱이 독일은 일본을 어드바이스할 자격이 없다고 못박았다. 네덜란드의 문제 역시 어디까지나 지엽적인 문제로서 사실 메이지 유신 이전 일본과 가장 가까운 서양국가가 네덜란드였다는 점을 상기해둘 필요가 있다.
  22. 다만 2016년 위안부 합의 이후엔 일본내 극우한테도 꽤나 욕을 먹고 있는 중. 실제로 그 전부터 영토분쟁 관련해서도 선거에서나 큰소리쳤지 실제론 여러번 극우들의 뒤통수를 치긴 했다.(...) 자세한건 후술내용 참조.
  23. 2016년 위안부 합의로 10억엔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일본 극우세력들은 일본이 가해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며 반대했지만, 50여년 전 한일협정때는 일본 외환 보유의 57%인 8억 달러를 협정 배상금으로 퍼주고도 한일 과거사를 매듭짓지 못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단 10억엔으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란 문구를 달아가며 매듭지었기 때문에 극우들의 주장을 어느정도 만족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소녀상 이전 문젠 향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애초 일본 극우세력들의 주장을 죄다 들어줄 만큼 막 나가는 총리는 아니다.
  24. 유럽 첫번째 소녀상이 반대에 부딛쳐실패한 것처럼 실제로 미국과 호주에 건립된 소녀상은 한인 단체들의 입김이 센 일부 지역에 해당되며 재미 일본인 사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 대처중에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미국 내 친한파 정치인으로 알려진 마이크 혼다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의 경우도 미국 내 소녀상 건립과 의안부문제에 대한 미국 내 주의 환기에 큰 공헌을 하였지만 최근 일본인 사회의 조직적인 견제로 미국의 소녀상 건립 및 위안부 문제 공론화에 차질을 빚고 있다.
  25. 일본의 국가부채라는 것은 사실상 부채가 아니다. 95% 가량이 정부가 민간으로부터 빌린 것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일본 은행에 돈이 쌓이기만 하고있으니 일본 정부가 저금리로 빌려간 것이다. 거래는 전액 엔화로 결제되었고, 인류 역사에서 자국 통화로 결제한 거래가 채무불이행되는 사례는 없다. 최악의 경우라도 일본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고, 일본중앙은행에서 통화 발행을 해가지고 채권을 매수해버리면 그만이다.
  26. 실제 평화헌법으로 인해 국방비를 극도로 줄일 수 있었던 일본은 패전 후 20세기 중후반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27. 일본 경제가 안정 궤도에 들어선 게 맞다는 의견의 논거는 시중에 풀린 통화량이 늘었다는 건데, 이건 사실 중앙은행에서 의도적으로 돈을 풀면 늘어나는 수치이다. 반면 정작 일본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인 노령 인구 문제에 있어서는 연금 사태 등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8. 물론 이 부분에서도 독보적인 회계 부정을 저지른 부실 기업에까지 거침없이 투입되는 한국 연기금은 몇십년 뒤 지급 불이행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지만 일본 연기금인 GPIF는 워낙 규모도 크고 지켜보는 눈도 많으며 관료가 한몫 챙겨먹을 수 없는 특유의 제도 덕분에 상당히 투명하므로 한국보단 사정이 낫다.
  29.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편의점 점장의 눈물겨운(?) 알바 공고문이다. 물론 일본의 취업자 수(공급)에 비해 구인을 하려는 기업의 수(수요)가 많아 구직자들이 취직회사를 골라서 가는 일본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일본의 인력난 양극화가 꽤 심각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취업률은 97.7%로 1997년 관측시작 이래 최고치이며, 대졸자 취업률은 74.7%로 역대 최고치인 반면, 노인개호시설과 같은 3D 업종이나 기피직종의 경우 인력난이 매우 심각하여 노인 개호시설의 경우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 국가의 인력을 일본에서 교육도 시켜주며 자격증을 취득시 장기간 일본체류도 허용해주는 등 인력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30. 일본은행자민당에서 요구하는 정도의 양적완화는 시행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던 걸 당시 총재 시라카와의 모가지를 날려가며 밀어붙였다. 그 때문에 오히려 총리가 강경파인 것이 이로울 수 있다는 의견들도 꽤 나왔다. 물론 총재가 괜히 반대한건 아닐테지만
  31. 2016년 9월 기준 호헌파 최대 정당인 민진당의 총재 렌호 씨의 경우 대만계 일본인 여성 정치인으로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높은 스타 정치인이지만, 대만-일본 이중국적 문제로 당 총재까지는 몰라도 대만 국적문제가 처리되지 않는 한 총리 직책까지는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또 이시바 시게루 전 지방창생담당상은 현재 아베 총리와 대립각을 가장 강하게 세우고 있는 자민당 내 최대 정치 파벌 거두로 평가받지만, 문제는 정치인으로서의 스탠스나 카리스마, 인지도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다음으로 기시다 후미오 현 외무성 장관(=외교부장관)이 있는데 이시바 시게루보다는 언론에 많이 비춰지고 있어 대중 인지도면과 재임 기간 굵직한 국제외교 문제에서 나름 성과를 내어 능력 부분도 검증이 되어 현재까진 아베 총리가 강력히 밀어주고 있는 이나다 도모미 현 방위상(=국방부장관)과 더불어 '포스트 아베' 의 강력한 후보이다. 문제는 기시다 후미오나 이나다 도모미나 각료로서의 능력은 몰라도 총리로서의 자질이 있는가에 대한 부분은 논란이 있다. 그래서 아베가 자민당 총재 기간을 연장하여 총리기간도 연장한다는 안이 솔솔 피어나고 있고 심지어 공식 논의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32. [1]
  33. 전후 처음으로 피폭지를 방문한 미국 대통령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역사적인 성과라고 불릴만 하다.
  34. 특히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2015년 아베의 방미 당시 미국의 최고급 환대와 더불어 최대 외교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일본과 미국의 관계는 순항 상태로, 이것만으로도 아베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아베 반대파 중에서도 이건 잘 했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35. 북핵문제에 대한 아베 내각의 비교적 발빠른 대처, 국제사회와의 공조노력, G20 회의에서 센카쿠 열도 문제에 대한 중국과의 외교적 노력, 북방영토(쿠릴 열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와의 외교적 노력 등에서 일본 국민들의 신뢰가 가시적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난 듯 보여진다. 하지만 북방영토 문제에서 실제로 가시적 성과로 이어질지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부정적인 답변이 71%로 과반 이상이었으므로, 노력이 구체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지율 상승이 꺾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36. 아버지가 중의원, 형은 정장 (町長, 우리나라로 치면 군수정도).
  37. 할아버지부터가 의원이었으니까....
  38. 집안발 분야의 끝판왕. 심지어 본국의 발음조차 틀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리고 오타쿠
  39. 일본은 '개인의' 정치적 텃밭 물려주기가 굉장히 심하다. 지역유지, 토호들로 구성된 사조직(후원회)에 이권을 몰아주고 선거때 정치자금과 고정표를 보장받는 식으로 정치를 하다가 은퇴하면서 자신의 아들, 사위 혹은 비서관에게 사조직을 그대로 물려주는 식이다. 물려받은 사람도 사조직을 기반으로 편하게 당선.
  40. 한국 정계에서도 어느정도 집안발로 먹고 들어가는 일이 있긴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러한 일이 유독 많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일본은 한국보다 여러 면에서 선진적인 부분이 많긴 하나 정치 면에서는 한국보다도 후진적이라 볼 수 있는 것. 참고로 말하자면 비교적 과격 항쟁이 적다고 알려진 일본에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정부에서 투입한 과격파 극우 단체와 야쿠자까지 격파하고 총리를 물러나게 만든 일이 있었는데, 이 총리가 바로 아베 신조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이다. 일단 아베가 뽑힌 이유는 비록 문제가 있어서 국민들에게 쫓겨나긴 했지만 망해가던 경제를 살리는 등 유능한 모습을 보였던 기시의 외손자였기 때문인 것이다. 일단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경제를 살릴만한 인물이 필요할테니. 여담이지만 과거에 기시 내각에 맞서 시위에 참여했던 한 노인은 현재 아베의 행보를 보면 기시 전 총리가 떠올라 불안하다는 뜻을 밝혔다. 헌데 더 큰 문제는 정부에 불만을 품은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 목청을 높여가며 정부에 맞서던 옛날과는 달리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정치에 관심이 적어졌고, 그나마 관심있는 젊은이들은 거리에서가 아니라 SNS 상에서 정부 비판글 올리기만 바쁘고, 정작 선거때가 되면 '아, 뽑을 사람이 없네' 하고는 투표를 안하는 탓에(...) 결과적으로는 아무 것도 개선하질 못한다는 언급도 했다.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건 지역정당이 독점하는 한국의 호남영남 지방에서 흔히 일어나는 문제다.
  41. 하지만 이런 세습 정치인의 경우가 일본만의 경우도 아니고 후진적인 행태도 아니다. 당장 미국 역시 상/하원 대부분이 3선 이상의 장기선출된 의원들이 많으며 미국 대선의 힐러리 후보 역시 남편인 클린턴의 후광을 입은 정치 가문에 속하며, 현재 주일 미 대사관장인 캐럴라인 케네디 역시 미국의 유력 정치가문인 케네디 가문의 장녀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선거로 자주 국회의원이 교체되는 경우가 오히려 독특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장기선출을 위한 치적쌓기용 대규모 토목공사, 선심성 공약 남발과 같은 폐해 역시 한국 공직사회의 병폐로 대두되고 있으며, 잦은 교체로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져 결과적으로 비효율성이 증가하는 것 역시 간과해선 안된다.
  42.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석방 처리.
  43. 아직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지도 않았음에 불구하고 일본이 조선인에 대한 재판을 감행한 사건. 이것만이어도 엄청나게 큰 문제가 되는데, 당시 구라치 데츠키치 외무성 정무국장이 정부의 지시를 일본 사법부에 중개하여 실행하도록 한 것도 큰 문제가 되었다. 이는 행정부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사실상 짓밟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기 때문. 하긴 이 당시 군국주의제국주의, 파벌에 미쳐돌아가던 일본에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대응을 기대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긴 하다.
  44. PD수첩은 아베 신조가 기시 노부스케와 어릴적부터 생활하면서 기시와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그대로 흡수해 지금처럼 극우인사가 된 것이라고 추정기도 했다.
  45. 물론 요시다 쇼인은 정한론 외의 다른 이론이나 능력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이중적인 인물이긴 하다.
  46. 도쿄도 무사시노시 소재.
  47. 이건 어찌보면 아베의 콤플렉스인데 세이케이 대학은 일본에서도 3류 대학으로 대접을 받는 곳인데, 그마저도 일본 특유의 중고일관제로 들어갔기 때문.(...) 게다가 도피유학내가 물씬 풍기는 미국유학도 졸업은 결국 못해 지금도 일본에선 그의 학력을 두고 비아냥이 많이 나오고 있다.
  48. 하지만 정치인의 학벌이 꼭 정치적 유능함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문제만 해도 우병우는 1984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불과 3년만인 1987년에 사법고시를 최연소인 20살에 합격한 당시 수재중 수재였다. 또한 공직자중 가장 부자이자 역시 넥슨 비리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진경준 검사장 역시 서울대 법대 3학년에 사법고시 합격, 이듬해에 행정고시에 합격하였으며, 하버드 로스쿨을 수료해 미국 변호사 시험중 가장 어렵다는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한 최고 엘리트였다. 하지만 이 두사람은 자신의 명석한 두뇌와 높은 학벌을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한 곡학아세의 대표적 인물들이다. 관료제의 성격 상 최고 관리자의 덕목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효율성을 높이고 조직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선견지명과 이를 조직 구성원들이 따르게 이끄는 리더쉽이 중요하지 학벌은 부차적인 덕목이다. 당장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중 한 명인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그의 최종학력은 고졸에 불과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고졸 학벌에 대해 비아냥 대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49. 재미있게도 아베의 후임으로 총리를 한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아버지다.
  50. 전문은 다음과 같다.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 투하가 많은 인명의 희생을 야기했고 또한 일본 역사에서 비극이 아닐 수 없으나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로서 미국의 원폭 투하는 역사의 대 역률적 관점에서 볼 때 합당한 일이며 또한 원폭 투하로 군부의 불필요한 전쟁의지를 억제하고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켜 많은 일본인의 생명을 구하고 또한 지금의 일본의 밑거름이 된 데에 다행으로 생각한다. 맞는 말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실제로 죽은 수십만의 희생자 앞에서 필요한 희생이었다 운운하는 것이 제대로 된 말인지 곰곰히 생각해보시길. 칼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다.
  51. 이 선거에서 자민당은 36석을 확보하는 데 그친다.
  52. 자민당이 83석,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20석으로 모으면 103석, 여당계 무소속 2석을 더해 105석인데 민주당이 단독으로 확보한 의석 109석에도 못 미쳤다. 거기에 일본 공산당과 사민당이 7석, 5석을 확보했고 국민 신당과 신당 일본이 4석, 1석을 확보하고 야당계 무소속까지 모으면 139석이어서 자민당의 입장에서는 기록적 참패였다.
  53. 현재 관방장관으로 재직중인 스가 요시히데가 아베 신조의 정치 재개를 설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스가 요시히데는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오랜기간 내각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집권당인 자민당에 적을 두지 않는 과거 우리나라의 고건 총리와 같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잘 지키고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중 한 명이다.
  54.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최근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총리의 임기를 기존 연속2번 총 6년의 규정을 개정하고 총리 임기를 연장하는 것에 대해 '바람직하다'라고 공개적으로 찬성하는 등 아베 총리를 정치적으로 많이 돕고 있다. 현재 아베 총리 주변의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각료들은 '포스트 아베' 로서의 의중을 은연중에 언론에 내비치고 있다.
  55. 히로히토가 죽은지 수십년이 지난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엄금된 허수아비인, 하지만 일본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덴노에게 최근의 극우 행보에 대한 반감으로 사과 요구를 하는 건 외교적으로 매우 부적절했다.
  56. 그리고 과거 전두환 정권때 공식 방일하여 히로히토 덴노가 만찬회장에서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과거 침략과 전혀 상관도 없는 후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국내 정치용으로는 매력적인 장치일지 모르지만 국제외교에선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부적절한 행동임에 분명하다.
  57. 중의원 2/3
  58. 결정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을 아직 시작조차 않은 상태이다.
  59. 여담으로 패전 60주년이었던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답습, 계승하며 야스쿠니 신사에 (적어도 2005년 당일) 참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한중의 반응은 냉랭했는데 만약 "아베 담화" 가 강경어조로 나온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격랑이 일 듯.
  60. 이 발언으로 인해 오키나와 현민들의 민심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오키나와에서 내지(內地)라고 불리는 본토의 경우 이 날을 기점으로 미군정이 끝난 것이 사실이나, 오키나와는 그 후에도 한동안 미국의 점령하에 남아있었던 탓이다. 아베의 이 발언에 일부 오키나와 현민은 TV 인터뷰에서 "우리는 일본이 아닌거냐?" 라는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다.
  61. 2ch와 같이 넷우익 성향이 강한 사이트이다.
  62. 이날 같이 온 유명인사는 그를 비롯한 일본의 정치인들 뿐 아니라 니시무라 히로유키(개최자), 빌리 헤링턴, moot, ZUN 등도 있었다.
  63. 1차 중일전쟁은 청일전쟁
  64. 최근 아키히토 덴노의 생전 퇴위 및 양위문제를 볼때 총리를 비롯한 일본 극우 진영에 자신들이 이용당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을 가능성도 있다. 여성 덴노의 문제도 거론되는 이유 역시 현재 덴노인 아키히토가 히사히토 황손이 있는 차남인 후미히토 친왕 보다는 현재 덴노와 정치적 성향이 같은 나루히토 황태자의 장녀인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65. 아키히토 덴노의 '생전퇴위'에 대해 아베 내각에서는 '특별 입법'을 통해 현재의 덴노(아키히토)에 한해서만 생전퇴위를 검토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유는 생전퇴위를 제도화 할 경우, 미래의 덴노가 정치적 압박을 받아서 강제로 퇴위되거나, 자기 마음대로 지위에서 물러나는 경우를 배제시키기 위함이다.
  66. 이 날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와 교진군을 거쳐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맹활약하며 월드 시리즈 MVP 등의 업적을 남긴 마쓰이 히데키가 일본 국민영예상을 받는 시상식을 가진 날이다.
  67. 소설 삼국지에도 아베 총리의 행동과 비슷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바로 유명한 조조의 허전(許田)사냥이다. 조조는 헌제를 자신의 본거지인 허창으로 옹립한 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반대파를 탐색하고 도발하여 처단할 목적으로 허전 사냥대회를 열었고 이때 의도적으로 헌제에게 불경한 행위를 하여 한실대의파들을 자극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낚인 국구 동승과 태의 길평 등 조조 반대파들이 암살음모를 벌였다. 물론 이는 모두 발각되어 이들의 3족을 죽여 반대파들을 소탕하게 된다. 아베 역시 이러한 대외적 도발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며 자신의 지지세력인 극우파들의 호의를 얻고자 함도 있겠지만, 반일감정을 가진 국가들의 반대 수위를 파악하여 도발의 마지노선을 정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이때 이후 위와 같은 대외적 정치 도발을 시행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68.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아베 총리의 슈퍼 마리오 복장으로 등장한 리우 폐막식의 영상을 통해 사춘기로 관계가 서먹해진 16세 아들과 대화가 다시 이루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며 개인적인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69. 현재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에 의한 미국 및 유럽연합의 경제제재로 러시아의 경제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일본이 현제 러시아에 제시하고 있는 경제개발 및 지원금액이 러시아로선 가뭄끝 단비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에# 돈 때문에 영토를 내어줬다는 러시아 내 정치적 부담만 해소시킬 수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제안만은 아니다.(과거 러시아는 미국에게 알래스카를 헐값에 넘겨준 사례가 있다. 당시에는 알래스카를 '냉장고' 쯤으로 여기긴 했지만..) 또한 앞으로 러시아와 일본의 정상이 만날 기회는 두 차례 더 있으며, 2016년 12월 15일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현에서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때 어느정도 쿠릴 열도 문제와 양국간 평화 조약 체결이 구체화될 전망으로 예상되고 있다.
  70. 9/2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양국 정상간 선물 교환에서 일본은 일본 전통갑옷을 준데에 반해, 러시아는 국보급에 해당되는 쇼와 덴노의 즉위식에서 사용된 12개의 명검중 1개를 선물로 제시하였다. 이는 일본과의 회담에서 러시아의 높은 관심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며, 회담 후 푸틴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 협력에 대해 '유일한 올바른 길'이라 평했으며 쿠릴 열도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 해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였다.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베 총리의 제안을 높이 평가푸틴의 명검, 아베의 갑옷
  71. 선물 교환식에서 갑옷을 받은 푸틴이 '이 갑옷을 입고 일을 해야 하나?' 라고 농담을 건네자 회담에 배석했던 세코 히로시게 러시아 경제분야 협력 담당상이 '총리가 이 칼을 직장에서 사용하지 않게 해달라' 라고 재차 농담으로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총리가 덴노가 즉위할때 썼던 칼을 쓸 수 있는건가?
  72. 국회 의정연설 도중 주제와 상관없는 이슈로 박수를 유도하여 장내를 소란하게 한 부분에 대해 사과한 것이며, 자위대에 대한 경의의 표시에 대한 사과는 아니다.
  73. 이날 국회에서 야당인 민진당의 렌호 총재와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 츠키치 시장 이전문제 등으로 수차례 언쟁하며 맞붙었다. 재미있는것은 이날 아베 총리는 의정연설에서 '세계 제일을 위해 노력하자'라며 '세계'라는 말을 8번이나 사용하였는데#, 일본의 정치 평론가들은 2010년 렌호가 예산 재배분 작업에서 세계 1위를 고집하기 위해서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슈퍼컴퓨터 사업에 대해 '세계 1위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2위는 안되는 겁니까?(世界一になる理由は何があるんでしょうか?2位じゃダメなんでしょうか?)'라는 발언이 2010년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는데, 렌호 총재의 발언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렌호: 2인자가 되자 vs 아베: 1인자가 되자
  74. 크림 반도 점령으로 인해 국제적 제재를 받고 있으며, 전 세계적 불경기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빠져있는 러시아에게 일본이 파격에 가까운 대규모의 경제적 협력을 양국이 추진하고 있는 것이며, 북한을 통해 공공연히 태평양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중국을 일본과 러시아가 견제하고자 하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중국은 그리스가 경제위기에 빠지면서 공공자산을 매각하기 시작하자 그리스에서 가장 큰 항구인 피레우스 항구의 지분 과반을 사들여 소유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여러 곳에 항구를 구입하거나 신규 건설하는 등, 대양 진출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태평양 지역만큼은 변변한 진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북한을 통해 간접적으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과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협력하며 가까워지려 하는 것은 '작은 문제(북방 4개섬)' 보다는 '큰 문제(중국의 태평양 진출)'에 양 국간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75. 또한 일본은 일본 열도 최북단 섬인 북해도와 러시아 사할린 섬을 해저터널로 연결하여 최종적으로 일본과 러시아를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연결하려는 계획을 러시아와 협의중에 있다.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 및 중국관계로 인해 한국이 추진해 온 한반도종단철도-시베리아철도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일본이 러시아에게 경제협력과 함께 먼저 선수를 치려는 것으로 보여진다. 앞서 미국과의 관계가 격상되면 한국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게 된다고 언급된 바 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와의 관계가 강화되면 일본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역시 큰 이점을 얻게 된다. 일본이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에 나서는 것도 결과적으로 보면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76. 일본의 상징적 존재인 덴노 가문을 보좌하는 '집사'나 '비서실'과 같은 존재가 바로 일본의 궁내청이다. 하지만 덴노는 정치, 행정적 실권이 없고 궁내청 역시 엄밀히 따지면 행정부 내의 한 부처기 때문에 행정부 수반인 총리의 의지로 경질하는 것이며, 또한 덴노의 '생전 퇴위'가 일본사에 전례가 없었던 파격적인 일이라는 점에서 사전에 행정부와 조율하지 못하고 기습 발표하여 사회적 파장을 야기한 부분에 대한 책임 역시 있기 떄문에 엄밀히 말하면 절차상 하자는 없긴 하다. 다만 그동안 아베 총리와 아키히토 덴노의 정치적 노선이 달랐다는 점과 '생전 퇴위'라는 초강력 카드가 아베 총리에 대한 정치적 공격의 수단이 되었다는 부분에서 일종의 보복성 조치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77. 일본은 10억엔의 거출금(= 일본에서는 '거출금' 내지는 '인도적 지원금'으로 인식하며 한국에서는 '배상금'으로 인식한다.) 물론 합의문상 적시된 내용으로는 위로금의 성격이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 중 배상금을 식민지국에게 건넨 나라는 1965년 한일협정때 지급한 일본 뿐이다. 그때 이미 지급했으므로 일본에서는 지금의 금액을 인도적 지원금 또는 거출금의 성격이라고 의미를 단정하고 있다.
  78. 또한 한국의 합의 이행은 다름아닌 '소녀상의 이전 또는 폐기'이다. 물론 이를 실행한다면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히게 되며 다음 정권 재창출은 물거품이 되므로 당장 이행은 못하고 시기를 보고 있으며, 이 부분까지는 일본이 암묵적으로 용인해주고 있었다. 문제는 합의이행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총리의 사죄편지라는 합의문 외의 추가요구를 하는 상식 외 외교를 보여주는 한국에 대해(물론 최초의 요구는 일본 내 시민단체가 했지만 우리나라 외교부가 기자회견으로 이에 '동조'하며 기대한다는 코멘트를 하여 모양새가 이상해졌다.)일본이 예상보다 강한 수위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왜냐면 10억 엔의 금액 성격에 대해 일본 극우/보수층에선 '1965년 한일협정때 줬는데 또 줘야 하나'와 같은 반발심리와 한국에 휘둘리는 것이란 부정적 반응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지지층의 불만을 야기시키지 않기 위해 한국의 요청을 강한 어조로 무시해 버린 것이라 해석될 수 있다.
  79. 일본은 명목상 미국(22%)에 이어 2번째(9.6%)로 많은 유네스코 분담금을 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팔레스타인 문제로 분담금을 거부하고 내지 않아 사실상 일본이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이 분담금을 내지 않고, 앞으로도 장기간 분담금을 거부한다면, 유네스코의 지위나 역할은 엄청나게 축소될 것으로 보여진다.
  80. 일제는 '전쟁을 그만 둔' 게 아니라 미국에 시비를 걸며 써커 펀치 선전포고도 없이 선빵을 갈겼다가 되려 박살나서 패전한 거다.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81. 당장 여론조사만 봐도 2016년 기준 반대가 60~70%, 찬성이 20~30%다.
  82. 하지만 현재 내각 구성상 개헌안 발의선인 의석수 2/3은 달성한 상태이며 여론도 50%반대까지 떨어진 상태이다. 아베 정권의 높은 지지율과 북방 영토문제, 도쿄 올림픽, 총리 임기 연장 등 여론을 우호적으로 조성할 만한 정치적 이슈가 앞으로 많다는 점에서 향후 개헌 가능성이 완전히 부정적이진 않다. 다시말해 이미 조건은 갖춰진 상태고 여론의 반대가 문제인데 이 반대여론을 완화시킬 껀수(?)가 앞으로 많다는 뜻.
  83. 자국민들이 싫어하는데 매 선거때마다 압도적으로 승리한다는건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물론 자민당 자체가 아베 이전부터 일본의 제1당을 고수해온 원체 거대정당이긴 하다만(...), 실제로 아베 총리의 자민당의 세대별 지지율은 대부분 국가의 보수성향 정당 지지 성향과는 달리 2~40대 지지율이 높으며 50대 이상 장년층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 자주 언급된 대학생 시위단체인 '실즈(Sealds)'의 영향력은 실제로 재특회와 같은 극우단체들의 규모와 비슷한 군소단체이다. 다시 말해 아베 총리에 대한 반감은 2차 대전의 피해를 겪은 전쟁 세대와 평화주의 성향의 일부 젊은층 뿐이다.
  84. 이미 국채 자체가 GDP의 2배를 넘어간 지 오래고 이 상태에서 국채 금리가 올라가면 국가 신뢰도가 바닥을 친다. 안 그래도 못 갚을 수준의 빚을 더 못 갚으니까.
  85. 하지만 이런 논리면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부채가 2014년 말 기준 620조원 정도이며 가계/기업/정부부채를 합산하면 무려 4,500조로 국내 총생산(GDP) 1,500조 원의 3배에 달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국가 신뢰도는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부 부채의 규모가 국가 신뢰와 직결되진 않는다. 일본은 외환 보유량, 대외채권, 해외자산등이 매우 탄탄한 편이다. 일례로 현재 무디스가 책정한 국가신용등급으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일본, 중국보다 높고 미국과 동률이다. 그렇지만 국제경기가 불안하면 외국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주식을 내다팔고 엔화와 달러를 구매한다.
  86. 양적완화나 경기부양책의 성공은 기업들의 낙수효과와 소비심리 회복이다. 최근 일본은 최저 시급을 전국 평균 24엔 인상하여 전국 평균 시급을 798엔에서 822엔으로 끌어올리는 정책을 노사정 위원회에서 결정하였다. 또한 8/2일 총 28조 엔(305조 엔)에 달하는 역대 3번째 규모의 경제대책을 발표하였는데, 대부분 여성 사회진출/저소득층 바우처 지급, 공공사업, 지진복구 등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일부 경제지에서는 비관적으로 평가하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추천' 정책은 외국인 노동자 수용이나 고용제도 개선(=고용의 유연성) 같은 정책이다. 그리고 이런 '추천' 정책을 가장 잘 수용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87. 하타 쓰토무 전 총리는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귀신을 직접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88. 기시의 동생이 사토 에이사쿠가 자신도 한국계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떡밥이 있다.
  89. 이 장면은 도쿄올림픽 공식 홍보영상에서도 등장한다.
  90. 당시 일본 극우들에게 SNS 테러를 무지하게 당했다.(...)
  91. 적자는 간신히 면하는 정도라고. 아베는 1년 한 뒤 적자 내면 때려치라 했다는 평가다.
  92. 해당 기사에 따르면 "한 야당 의원은 아베 총리가 자신의 '이너서클(즉, 아키에 여사와 고이즈미 전 총리)'에서조차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고 조롱도 했으나 아베는 웃으면서 "이 두 사람이 내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인물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우리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보장시켜야 한다"라며 무마했다고.
  93. 후쿠시마 원전사건 이후 일본은 이후 3년간 2,700억 달러(270조 원) 가까이 화석연료 수입에 쓰고 있다. 현실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총리 입장에서 이상론인 원전 반대보다는 현실론을 택할 수밖에 없다.
  94. 그래서 자녀가 없는 총리 부부가 강아지 로이를 키운다고. 3대 세습 우려는 없다. 물론 형제세습 가능성은 충분하겠지만.
  95. 이와 관련해 아베가 부인 소원(위안부 관련 문제 해결) 들어주고, 부인이 아베 소원(야스쿠니 참배) 들어주는 딜을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96. 조금만 생각해도 이 말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알 수 있다. 아베 총리는 협상을 담당한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에게 '반드시 최종적, 불가역적'이란 문구를 협정문에 넣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협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 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다시말해 아베 총리는 사죄의 목적으로 협정을 체결하려 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더이상 과거사(=위안부)문제로 발목을 잡지 못하게 매듭을 지어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협정을 체결하려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같이 부인과 주고받는 딜의 형식이라 보는건 맞지가 않다.
  97. 우리나라에서 아베 신조에 대한 내용을 담은 최신 도서는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이란 책이다. 아베 신조의 출생부터 지금 일본 정치의 최정점인 총리대신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인생을 서술한 책이다. 아베 신조라는 인물에 대해 보다 면밀히 알 수 있는 책이지만 작가의 성향이나 시각이 다소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비판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 또한 책이 완성된 시기에서 보여지는 아베 신조의 행적과 현재의 행적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의 반영이 누락된 부분은 감안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