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러시아 총선 사태

(140%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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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Time Person of the Year 2011
마크 저커버그
2010
시위자들
2011
버락 오바마
2012
width=100%
개표방송 DLP 화면과 그걸 보고 당황한 표정의 앵커. 위 득표율들의 총합은 146.47%.
그리고, 맨 위에 뻔뻔하게 올라와 있는 Единая Россия (통합 러시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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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목소리를 되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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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에 분노하여 시위를 벌이는 러시아 시위대.


2011년 12월 4일 벌어진 두마(러시아 의회 하원) 총선 과정에서 일어난 부정선거와 그와 연계된 일련의 사건들.

러시아가 전체주의 독재 국가라는 것을 확인사살한 사건

2011년 12월 때,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서 2013년까지 이어진 적이 있었는데 시위자들은 하얀 리본이나 하얀 간판을 들면서 반독재운동 및 푸틴 타도를 외쳤다. 유독 하얀색이 강조되면서 하얀색 혁명(White Ribbon Revolution) 혹은 눈꽃 혁명(Snow Revolution)이라고도 불렸다.[1]

1 배경

러시아 대통령이자 2011년 당시 차르총리였던 블라디미르 푸틴은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강인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내세우며 러시아에서 상당히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이후 다시 그가 대선에 나서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전세계 경제가 출렁이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경제도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경제발전 및 강인한 지도자를 내세우던 푸틴의 지지도도 낮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러시아 내에서 친푸틴 보도를 내놓던 언론의 위력이 약해지고 인터넷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러시아 내 반푸틴세력은 급속도로 커졌다.

결국, 2011년 하원 총선에서 푸틴의 통합 러시아당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론이 악화되었고, 다시 대통령이 될 야욕에 불타는 푸틴과 통합 러시아당은 이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2 부정선거 의혹

총선 당일이었던 12월 4일, 야당들을 지지하는 시민단체 사이트와 언론 사이트들이 DDoS 공격을 당했다.#
이것도 모자라서 선거 당일 대리투표 등의 부정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동원된 것으로 밝혀진 부정선거 수법으로는,

  • DDoS 공격
  • 투표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척 하면서 대리투표하기
  • 선거함 바꿔치기
  • 지워지는 잉크가 든 펜으로 투표시키기

등이 있다.

선거 결과는 여당의 승리로 끝나기는 했지만 전체 의석수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 과거의 영광을 거의 잃고 간신히 과반수를 확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부정선거 관련 증거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하면서 분노한 러시아 국민들이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러시아 선관위 내부에서 선거 조작에 대한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는데, 통합 러시아당의 득표율은 50%에 그쳤고 그나마 이것도 조작한 표로 얻은 거라 실제로는 25%~30% 정도밖에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 수치도 통합 러시아당이 주문한 거에 비하면 약과였다. 아예 65%~70%의 득표를 했다고 조작하라고 한 것. 저렇게 조작한 것도 그나마 원래 주문한 거에서 엄청나게 깎은 거다. 게다가 너무 티나게 조작을 하다보니 총 득표율을 계산한 결과 140%(!!)가 나오는 해괴한 상황이 발생했다. 엄밀히는 위 DLP화면에선 거의 60%대로 수정을 했고 총 득표율은 146.47%가 된다.

단순히 이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총 득표값이 100%가 넘는다는 사실은 개별 항목이 부풀려졌단 뜻인데, 저 수치가 만약 다른 야당의 %값은 그대로 두고 통합 러시아당의 %수치만 끌어올린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할 때, 바꿔 말하면 상단 DLP에 나타나는 결과의 경우 실제 결과는 통합 러시아당에서 46.5%를 빼야한다는 소리다. 즉 실제 득표는 13% 밖에 안 됐을 수도 있다는 뜻. 차라리 야블로코 당 같은 군소정당에 표를 더 주고, 통합 러시아당이 간신히 이겼다고 우기는 게 더 현명했을 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고 또 합쳐서 100% 넘기면 안되고

# 해외에서는 당연히 푸틴을 까는 소재로 쓰고 있고 러시아 내에서 반푸틴 진영의 열기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3 해외 반응

푸틴을 매우 싫어하는 서구권에서야 당연히 푸틴을 깠다. 유럽권에서는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를 표했으며, 미국에서는 강경한 태도로 러시아에서 일어난 부정선거 사태를 비난했다. 푸틴은 "시위대는 미국에게 선동되어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을 하면서 비난 발언을 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강하게 비난했다. 미국 인터넷에서는 '140%'의 총 득표율을 가지고 놀리는 온갖 개드립을 쏟아냈다. #, #

4 미완의 결집

선거 다음 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서 부정선거 규탄을 외치는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친푸틴세력과 반푸틴 시위대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러시아 군경이 반푸틴 시위대만 체포해가는 바람에 오히려 러시아 국민들의 반푸틴 성향이 더욱 강해지는 결과만 낳게 되었다.

10일에는 휴일을 맞이하여 소련 해체 이래 러시아 역사상 가장 큰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크렘린이 허가를 내줘[2] 언론들도 시위 보도를 할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야권은 푸틴을 정치적으로 골로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음에도 푸틴의 숨통을 끊기는 커녕 이 분위기를 끌어갈 만한 인물을 내놓지 못했다. 올리가르히(신흥재벌)[3] 출신 후보들은 신분상 시위대의 목소리를 대변할 인물이 되지 못했고, 러시아를 뒤흔들었던 시위대의 열기는 2012년 대선까지 이어지지 못한 채 블라디미르 푸틴이 삼선에 성공하는 결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이 선거에서도 체첸지역에서 득표율 107%인 지역이 나왔다. 또 부정선거(...). 33%의 민주시민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도 벌어지는 중. 그런데 2014 우크라이나 조기 대선 때도 부정 투표 의혹이 불거졌다. 중앙선관위에서 발표한 투표율이 약 60%인 1천 8백만여 명 수준인데, 문제는 최종 투표자 수가 2천 5백만여 명인데 7백만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5 관련 문서

  1. 만약이긴 하지만, 만일 러시아에서도 대규모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서 성공한다면 이런 혁명이 더 일어날지도 모른다.(아니면 유로마이단처럼 친서방으로 가자는 혁명이 나올 수도 있다. 참고로 러시아에도 친서방주의자가 적지 않으며, 한 때 러시아에서는 트로츠키 vs 스탈린처럼 러시아유럽으로 보느냐 러시아 독자로 보느냐가 정치적으로 간 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푸틴이나 크렘린 측이 이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적을지도...
  2. 관제 시위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3.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혼란 상황속에서 국영기업과 각종 부동산 등을 거의 헐값에 불하받아 급격하게 성장한 신흥재벌들. 이들은 구 공산주의 체제 시절 인맥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경제권력을 장악해서 러시아의 상위 1%로 부상했다. 당연히 러시아 보통사람들과는 엄청난 괴리감이 있고, 집권 초창기 푸틴의 절대적인 인기는 이 올리가르히들의 횡포를 강력한 국가권력으로 찍어누르면서 시작되었다.
  4. 베라의 명언(?) 중 “Baseball is 90% mental — the other half is physical.”(“야구의 90%는 멘탈이고 — 나머지 절반은 육체적인 것이다.”) 이 있다.90+5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