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AFC 아시안컵/사우디아라비아

중동의 축구 최강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가 2011년 AFC 아시안컵에서 겪은 굴욕의 일대기.

1 대회 개막 이전

2004년 대회에서 투르크메니스탄에 밀려 1무 2패로 조별예선 탈락의 아픔을 딛고 2007년 준우승으로 부활에 성공한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하지만, 이 환희도 한때뿐이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북한에 골 득실차로 밀려 플레이오프로 밀리고, 바레인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원정 다득점 원칙 때문에 탈락하여 본선진출에 실패한다.

그럼에도 사우디는 아시안컵 최다인 3회 우승이라는 저력을 지닌 팀이었고, 사우디 축구팬들은 월드컵 폐막 직후에 열리게 된 아시안컵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선수들도 마찬가지. 사우디 대표팀 주장인 알 카타니는 "사우디는 우승 외에는 원하지 않고 우리는 그럴 힘이 있다. 사우디가 우승 후보 중 가장 앞서 있다."고 선수들을 대표해 자신감을 표현했다.

사우디가 속해있는 B조는 일본이라는 강팀이 있었지만, 사우디는 예전부터 일본에게 강했고, 요르단과 시리아라는, 중동의 약체로 평가받는 팀들도 있는 2강 2약의 구도여서 그 당시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축구인들은 B조에서 일본과 사우디가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정작 B조의 뚜껑이 열리자 이야기는 전혀 다른 전개를 보여주게 되었다.

2 개막 이후

첫 상대로 시리아를 만난 사우디는 시리아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시종일관 시리아의 페이스에 끌려다니다가 어찌어찌 동점을 만들었지만, 3분 후 쐐기골을 맞으며 1:2로 패배한다. 사우디가 시리아에 패한 것은 1976년 이후 처음 있는 일.

이 충격적인 패배 이후 사우디 축구협회는 주세 페레이루 감독을 해임하는 어이없는 병크를 저지르고, 감독 본인은 너님들은 첫 경기 지고도 우승한 스페인 사례 모르셈? 하면서 강하게 반발했지만 결국 경질결정을 거스르지 못하고 쓸쓸히 팀을 떠났다. 그리고 자국출신의 나세르 알 조하르 감독대행을 세워 잔여 경기를 치를 것임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2차전에서 요르단을 상대한 사우디는 전반 막판에 요르단이 터뜨린 행운의 골 때문에 0:1로 패배. 같은 시각 일본과 시리아의 경기에서 일본이 2:1로 승리하면서 설사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에 승리하고 시리아가 요르단에 패해 동률이 되더라도 승자승 원칙 때문에 조 최하위를 면할 수 없게 되어 2패로 탈락이 확정된다. 2차전 후 이번에는 사우디 축구협회장이 해임되었다.

남은 것은 일본과의 마지막 경기. 이 경기는 한국-호주전과 함께 아시안컵 빅매치로 손꼽히는 경기였고, 많은 이들은 썩어도 준치라고 사우디가 자국의 명예를 위해 전력으로 일본을 상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본에게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임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전반전 시작한지 20분만에 일본이 3골을 기록하면서 깨지고 만다. 결국 일본은 사우디를 5:0으로 떡실신시키고 2승 1무의 성적으로 8강에 진출한 반면, 사우디는 3전 전패 1득점 8실점의 굴욕적인 성적을 기록하면서 아시안컵에 진출한 16개 팀 중 가장 먼저 짐싸는 팀이 되었다. 안 그래도 한 경기 남겨놓고 2전 전패로 광탈 확정인데 부관참시(?)를 당하다니 안습...

2010 월드컵의 프랑스도 1점이지만 승점을 딴 데 비해 이쪽은 승점셔틀 신세가 되고 말았다.

3 몰락의 이유

사우디 축구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것은 그들이 세계축구의 흐름에 어두워졌기 때문. 그리고 자국 대표팀 감독을 참을성 없이 1차전 패배와 동시에 광속으로 경질한 병크 때문일 것이다. 최고의 선수들을 갖추고도 축구 외적인 문제 때문에 자멸한 2010년의 프랑스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사우디 대표팀에는 해외파가 없고, 선수 전원이 국내파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2007년까지 사우디 자국리그 보호를 위해 자국 선수들의 해외 이적을 법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유럽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국가 리그에서도 사우디선수가 없는건 이 때문. 각주에 나온 알 자베르는 국가에 특별허가(!)까지 받고서 겨우 진출한 경우 그것도 임대였음에도... 그러다 2002 월드컵, 2006 독일 월드컵과 2004년 AFC 아시안컵등에서에 참패로 해외파에 필요성을 절감하고는 이 규정을 철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자국 선수들에게 많은 연봉을 지급하다 보니 선수들은 자연히 위험부담이 큰 해외 진출보다 국내 잔류를 택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해외로 선수들이 많이 진출한 한국/일본/이란이나, 해외 선수들의 귀화 장려로 새로운 중동 강호로 발돋움하려는 카타르 등 세계의 흐름을 읽고 점점 실력을 키워나가는 다른 팀들에 비해 세계축구의 흐름을 읽으려는 노력이 뒤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것은 실력의 차이로 증명된 것이다.

그리고 승패에 집착하여 장기적인 안목으로 감독을 바라보지 못한 것도 몰락에 한몫 했다. 한국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차범근 감독을 대회 도중에 경질시키는 병크를 저지르고 2002 월드컵 이후에도 감독 교체가 자주 일어나면서 독이 든 성배 자리를 만들긴 했지만, 이쪽은 말 그대로 파리 목숨이었다. 2000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감독만 무려 12명이다. 평균 수명이 채 1년도 안 된다. 1년도 못 버틴 감독이 7명이며, 1~2경기만 하고 관둔 지도자도 3명 있다. 그나마 주세 페레이루 감독은 월드컵 본선진출 실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었고, 선수들로부터도 신망이 있었다. 또한 페세이루 감독은 대표팀을 맡기 전 사우디 명문클럽 알 힐랄의 감독을 맡아 사우디 선수들에 대해서도 밝았다. 이런 사람을 성적 때문에 대회 도중에 경질한 것은 매우 큰 실책이었다. 사우디가 2/3차전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플레이의 원인으로 감독 교체에 따른 사우디 선수들의 반발성 태업이 지목되기도 했다. 기사

일이 이리 되자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협회는 비상이 걸렸다. 그나마 잘하는 스포츠가 축구 뿐인데(농구나 핸드볼이나 다른 구기종목들은 아랍권에서 최약체이다.) 축구로 계속 부진하면 안 그래도 와하비즘 사상 때문에 민심이 요동칠 것이라는 분석까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이다. 덕분에 나지 마사리가 울산 현대에 입단하고 한국이나 일본을 무시하지말고 유럽에 선수를 보낸다고 난리법석이지만 아직 확실한 성과가 없다. 정작 한국에 온 나지 마사리는 벤치 신세이다.

그럼에도 2014 브라질 월드컵 3차예선에서 탈락. 아직 사우디의 몰락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이번엔 이기기만 하면 오만과 태국의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최종예선에 자력으로 진출할 수 있었음에도 2:1로 이기고 있던 도중 불과 3분새 3골을 내리 먹으면서 자멸했다. 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