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失鄕民
대부분 나무위키위키니트들.

1 실향민이란?

고향을 잃은 사람. 대한민국에서는 6.25 전쟁 이전에 월남한 이북 출신들과, 댐건설로 인해 고향이 수몰된 사람들도 실향민이라고 한다. 단순히 이사이민 또는 국적변경을 한 사람은 언제든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경우 실향민이 아니다. 물론 도중에 전쟁이나 재난으로 고향으로 절대 못 돌아가면 실향민이 되겠지만.

새터민들도 고향을 떠나 다시 가지 못하는 신세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대개 고향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북한에 대한 반감이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기에 실향민과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이다. 물론 북한정권만을 증오하고 고향은 그리워하는 경우도 많다.

반공학생운동기념사업회에서 출간한 한국 학생건국 운동사(1986년에 출간)에 의하면 월남한 청년들(실향민)은 백색테러단에 많이 참가하여 테러단의 지원과 지시로 북한에 원정테러를 많이 하러 갔다고 한다. 이들이 이 단체에 많이 참가한 이유는 자신들의 고향을 뺏어간 북한정권에 대한 분노와 테러단 지도부의 교육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기회가 되면 고향에 한 번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실향민이라는 단어가 한반도에서 사용된 것은 1945년 남북분단 이후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제조선 양민들의 토지와 가옥 등을 모두 친일파매국노 성향의 조선인 대지주들과 일본인들에게 넘겨버렸거나 조선총독부가 총독령 명의로 소유화하는 바람에 졸지에 고향을 잃고 만주중국 등으로 월경하여 피난을 떠나거나 떠돌이 신세를 졌던 것을 계기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해방 후인 1945년 남북분단이 되고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북한을 탈출하여[1] 남한으로 넘어오게 된 북한 출신의 사람들이 밀집하게 되고 1953년 휴전 성립이 되어서 더 이상 북에 있는 고향에 갈 수 없게 되면서 이 때부터 실향민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실향민의 출자를 살펴보면, 황해도계가 35%로 가장 많고, 함경북도계가 가장 적다.[2] 다만 이산가족의 경우 평안도계함경도계가 비교적 많다. 남한과 가까운 황해도계 실향민들은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았고, 평안도계와 함경도계 실향민들은 단신 월남하거나 가족이나 형제들 중 일부만 월남한 사람들이 많았다. 전쟁 이전에 월남한 사람들은 주로 도시 지역에 정착했고, 전쟁 이후에 월남한 사람들은 군 지역에도 많이 정착했다는 통계가 있다.[3] 또, 실향민 2세를 대상으로 자신의 고향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는 설문에 응답자의 46%가 「자신이 태어난 남한의 고향을 말한 뒤 이북계라고 말한다.」라고 응답하였고, 응답자의 42%가 「아버지의 고향은 곧 나의 고향이므로 바로 북한의 지명을 말한다.」라고 응답하여 실향민 2세들의 계승의식이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만, 3세로 가면 전자는 몰라도 후자의 비율이 급감하는데, 10대~30대에 해당하는 3세들은 바로 북한의 지명을 말했다간 탈북자로 오해받기 쉬운지라 조부모의 고향에 대한 강력한 프라이드가 없으면 그냥 남한의 출생지를 말한다.[4] 그런 사람이 아예 없진 않지만, 2세들에 비해 찾기가 힘들다.[5] 하지만 옹진군은 다르지. 그냥 옹진 출신이에요라고 어물쩡 넘기기만 하면 남한의 인천광역시 옹진인 줄 알거든 알고보니

사실 젊은 세대들이 고향을 남한쪽의 고향으로 말하는게 당연하다. 일단 실향민 3세대가 되면 조부모 양쪽이 다 실향민일 가능성도 별로 없고 이미 그 실향민이었다는 조부모들도 남한에서 더 오래 살았을 마당에 자신의 조부모가 한국전쟁때 피난민이었다는 정도만 인식할 뿐이다.

한반도 실향민의 대표적 마을이나 지역으로는 주로 최북단(경기도 및 강원도 북부) 지역 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에 함경도 출신 실향민 집단촌인 아바이마을이 있다. 그 외에는 수용소가 있었던 경남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데, 부산이나 창원 등지에는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은 동네가 한두 군데씩 꼭 있으며 이북식 정통 냉면을 하는 가게도 도시마다 찾아볼 수 있을 정도.

2 국내 실향민 및 2세 실존인물

실향민/대한민국 문서로.

3 관련사항

4 실향민 캐릭터

4.1 가상 세계관의 실향민 캐릭터

5 외국의 실향민

20세기는 실향의 시대라 할 만큼 실향민들이 많이 발생했으며, 아래의 사례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독일, 베트남, 예멘의 경우 통일이 완수되어 자국 영토 내에서는 실향민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즉, 국외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는 이야기. 독일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폴란드로 넘어간 프로이센 지방의 실향민들이 있으며, 베트남의 경우는 베트남 공화국을 지지하는 실향민들이 세계 각국(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에 망명하였고, 자유 베트남 임시 정부라는 망명 정부도 있다. 근데 베트남의 경우는 실향민보다는 난민의 개념에 더 가까운지라(……). 예멘의 경우 자세한 사정을 아는 분은 추가바람

폴란드에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게 넘어간 구 동방영토 출신 실향민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구 독일령이었다가 폴란드에 넘어간 프로이센 영토에 정착한 경우가 많다.

제1차 중동전쟁을 거치며 발생한 팔레스타인의 실향민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며,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 이웃 국가들에서도 팔레스타인인 난민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요르단 같은 경우는 팔레스타인 실향민이 토착인보다 더 많을 지경이 되었다.(...)

그리스터키의 경우에도 1923년 인구 교환으로 막대한 실향민이 존재한다. 특히 터키에서 그리스로 교환되어온 그리스계들은 자신들이 살던 지역 이름을 따서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아테네 인근의 네아(새로운)스미르니 같은 경우. 테살로니키의 축구팀인 PAOK FC도 정식 명칭에 콘스탄티노플이 들어가는데, 원래 뿌리가 이스탄불의 그리스인 축구팀이기 때문이다.

키프로스는 아직도 분단 상태인 곳인지라 국내에도 실향민이 존재한다.

중화민국에서는 실향민들을 외성인이라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에도 타이완 성 출신인 사람들 일부가 실향민으로 살고 있지만 그 수가 극히 적고, 더구나 중국의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존재감이 없다.(..) 이 양국의 경우는 상대국이 평양의 공산정권마냥 말이 안 통하는 천하의 개쌍놈 꼴통집단이 아닌지라 1980년대말 이후로는 통행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일본의 경우는 과거 일본 제국 시대에 제국주의적 정복으로 얻은 영토[13]에서 태어났다가 나몰라라 먹튀 뒤통수 쓰리콤보를 맞고 현지에서 죽을 고생을 해가며 쇼생크탈출을 찍고 간신히 귀국한 사람들이 실향민으로 있다. 이런 사람들을 히키아게샤라고 한다. 외지에서 인양된 사람들이라서(...) 사람이 무슨 침몰선이냐 가라후토(사할린)과 치시마(쿠릴)에서 꼽사리로(...) 함께 일본으로 쫓겨난 아이누족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위의 경우와 달리 제국주의 정복으로 빼앗은 땅에서 태어났다가 쫒겨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실향민의 경우와는 달리 그다지 동정대상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근데 본토 일본인들도 이런식으로 그들을 차별하여 사회문제가 되었었다고 한다.[14]

프랑스에도 피에 누아르라는 프랑스판 히키아게샤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과거 식민시절 알제리로 건너가 그곳에서 터를 잡고 오랫동안 특권층으로 군림하였으나 알제리 전쟁 이후 토지와 재산 등을 잃고 프랑스로 도망쳐와야 했던 자들로 이들 역시 침략으로 남에게서 빼앗은 땅에서 태어났다가 쫓겨난 경우이기에 동정의 가치는 없다.알제리인들은 이놈들 쫓겨난거 보고 기뻐할듯하다.[15]

6 외국의 실향민 실존인물

6.1 중국

6.2 일본

6.3 프랑스

6.4 독일

  • 울리히 벡 (포메른 주 슈톨프 출신)
  • 귄터 그라스 (단치히 출신)
  • 오토 그로테볼 (서독 브라운슈바이크 출신. 동독 초대 수상)
  • 에리히 호네커 (서독 노인키르헨 출신으로, 동독 공산당 서기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서독지역 출신이었다. 1987년 서독 방문시 고향에 들르기도 했다. 독일 통일 후에는 실향민에서 망명자로)

6.5 폴란드

  1. 일부는 정권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전쟁을 피해 이리저리 옮기다 보니 남한으로 오게 된 경우도 있다.
  2. 반면에 탈북자의 경우는 함경북도계가 압도적으로 가장 많고 황해도계강원도계와 더불어 극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둘 다 지리적인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3. 경상남북도강원도, 충청북도에 많이 정착을 한 반면 전라남북도충청남도에서는 극소수이다.
  4. 그러나 그렇다고 실향민 집안의 사람들에게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식의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다 새누리당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니 정치 성향도 물어보는 것도 무리 가뜩이나 조부모 내지 부모한테 "고향땅 못가게 만든" 북한에 대한 각종 원망-증오-분노에 가까운 발언들을 들어온 이상 당연히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 실향민 집안들의 정통주의가 센 집안은 명절에도 이북식으로 조반상을 차린다!!!(떡국대신 만두국 혹은 온면/냉면류로 명절음식을 낸다고 이야기 하는 집안이 있다면 거의 그쪽 집안이니 참고하는 것이 좋다.)
  5. 그리고 보통 그렇게 대답하는 3세들은 실향민 정통주의에 심취해있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남한 생활을 조부모의 피난 생활의 연장선상으로 간주한다. 뭐,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니 그런 사람 만나더라도 괜히 편견 가지고 대하다가 오해 사지 말자.
  6. 마오카이가 태어난 뒤틀린 숲은 원래 자운 근처의 리그 경기가 벌어지는 오염된 숲이었으나, 이후 그림자 군도 패치로 그림자 군도에 있는 숲으로 설정이 변경되었다.
  7. 올드 시즌에서는 단순히 원수 그 이상이나 이하도 아니였지만, 뉴 시즌에선 둘 다 고향인 갈리프레이를 상실했다는 점을 공유하면서 닥터가 마스터를 미워하면서도 동정하게 되었다.
  8. 원래는 사자자리의 눈동자에 해당되는 L-77성의 울트라 일족의 왕자 형제였으나, 사벨폭군 마그마 성인과 그의 수하 괴수인 기라스 형제에 의해 고향이 멸망했다.
  9. 두 종족 모두 대격변에 추가되었다.
  10. 드레나이는 원래 에레다르라는 종족으로 모성은 아르거스였지만 드레나이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벨렌의 지도 아래 아르거스를 탈출한 에레다르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타락하여 만아리 에레다르라는 악마가 되어버린 동시에 아르거스가 불타는 군단의 영토가 되어버렸다.
  11. 저그의 침공으로 아이어가 털렸다. 아이어는 저그 손에 있지만 칼날 여왕이 아닌 아몬의 통제 아래에 있었고 공허의 유산 시점 이후 프로토스가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12. 하지만 네라짐, 특히 젊은 네라짐들의 고향인 샤쿠라스를 잃었다
  13. 가라후토(樺太) 청 관할지 출신이나 만주국 출신, 일제 치하 조선 출신, 대만 출신 등등
  14. 일본 본토에 있던 일본인들이 일본 본토로 쫓겨난 히키아게샤들을 차별한 것은 히키아게샤들이 애초에 식민지로 이주되기 전에 일본 본토에서 빈곤층이자 하층민(여기서 말하는 하층민은 일본의 피차별 계층이자 일본판 천민계급인 부라쿠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을 의미한다.)이었던 것의 영향이 큰 것도 있다.
  15. 일례로 피에 누아르 중 대표적인 인물인 카뮈의 연구에 참여한 김화영 교수는 알제리에 가서 카뮈에 대한 흔적이 철저하게 없어진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그가 보여준 알제리에 대한 인식을 똑같이 식민지를 겪은 한국인으로선 받아줄 수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고 하였다(김화영, 《알제리 기행》 참고).
  16.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 연고는 타이난이다. 아버지가 시안에 머물렀을 때 태어난 것.
  17. 現 우크라이나 리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