嘉禾三寶, 골든 트리오
목차
개요
가화삼보 (嘉禾三寶) 란 80년대 홍콩 영화계를 주름잡던 골든 하베스트 사의 흥행을 주도하던 성룡, 홍금보, 원표 트리오를 일컫는다. 이 셋은 홍콩의 우점원 중국희극학교(경극 학교)의 동창이기도 한데, 홍금보가 제일 선배고 4년 후배가 성룡, 그 4년 후배가 원표이다. 당시 학교에서 각각 원룡, 원루, 원표라는 예명을 달고 '칠소복' 멤버로 활약했다.[1]
이들이 처음 같이 등장한 영화는 1976년 작품인 소림문이다. 당시 신인이던 그들은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출연한다. 진정한 가화삼보의 전설은 1983년 작품 프로젝트A부터 시작된다. 이후, 그들은 오복성(1983), 쾌찬차(1984), 칠복성, 복성고조(1985), 비룡맹장(1988) 등 총 6편의 영화를 함께 찍으며 명작들을 낳고 흥행 신화를 기록한다.
저 6편의 영화는 셋이 모두 출연한 것들만 센 것인데, 80년대에 이들의 협업은 실로 대단한 수준이어서 일단 성룡 - 홍금보 콤비는 1985년 용적심을 같이 찍었고, 성룡 - 원표 콤비는 1989년 미라클을 같이 찍었으며, 홍금보 - 원표 콤비는 1986년 동방독응, 부귀열차 등을 같이 찍었다.
이들의 영화는 일단 엄청 웃기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액션의 대가 셋이 뭉쳤기 때문에 액션의 퀄리티가 어마어마하게 높은 편이다. 주로 개그 캐릭터지만 놀랄 만큼 날렵하고 강한 홍금보와, 화려한 발차기 기술을 가진 원표, 올라운더 성룡의 조합은 그들이 함께 낸 영화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 남았다. 남성 팬들을 미치게 만든 액션 외에도, 그들의 귀엽고 잘생긴 외모 덕에 여성 팬도 상당했다.
그러나 이들의 조합은 1988년 비룡맹장 이후로 볼 수 없었는데, 성룡과 홍금보의 불화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들리는 바로는, 성룡이 서부극과 쿵푸를 혼합한 영화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홍금보에게 같이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는데, 홍금보가 그런 영화는 홍콩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성룡이 1986년 용형호제를 찍다가 부상으로 활동을 중지하고 있는 사이 생각이 바뀐 홍금보가 원표를 데리고 부귀열차 라는 서부극과 쿵푸가 조합된 영화를 찍고 개봉해 버린 것이다. 이에 화난 성룡은 동방독응의 출연을 거절했고, 프로젝트A의 속편을 단독으로 찍게 되면서 이들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진다.
가화삼보의 사실상 해체 이후 그들은 위에도 적었듯 간간히 협업을 이어간다. 성룡과 홍금보의 불화는 후에 개인적으로 풀었다고 전해지며, 1995년 성룡이 제작한 썬더볼트에 홍금보가 무술 감독으로 참여하고 1997년 작 나이스가이의 경우 홍금보가 연출을 맡아 준 것을 보면 사실 완전히 풀린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들은 종종 공, 사석에서 함께 있는 모습이 비춰지며, 서로 언급도 꽤 자주 하고, 가끔씩 카메오나 조연으로 출연하는 등 친구로 지내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1980년대 당시 그들의 포스는 그야말로 대단했다는 점을 기억하자.
여담으로, 정말 유명한 카더라로 삼합회의 지속적인 성룡에 대한 간섭을 홍금보가 막아 주었다는 설이 존재한다. 카더라 통신 치고 너무 유명한 일화인데, 삼합회 관련 루머는 원체 알 수가 없는 것이니 걸러서 듣자.
하지만 이연걸과 주성치가 항상 삼합회에게 뒷덜미를 잡혀 고생한 것에 비해 성룡은 젊은 나이에도 자유롭게 자신이 찍고 싶은 작품들을 마음 껏 찍었다. 특히 이연걸 같은 경우는 대놓고 헐리우드 표절 영화를 많이 찍었는데, 이는 대부분 삼합회의 입김이 들어간 영화라고 한다. 그에 비해 자신만의 세계에서 확실한 스타일을 정립한 성룡은 삼합회의 손에서 자유로웠고, 이는 홍금보의 배경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