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옹

촉서 「허미손간이진전(許糜孫簡伊秦傳)」
허정미축손건간옹이적진밀

簡雍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는 헌화(憲和). 유주 탁군 사람.

쭉 유비와 함께했던 촉한의 개국공신 중 한 명이다.

2 정사

삼국지집해에 따르면 본래 성씨는 경(耿)이었지만, 유주 사람들이 간(簡)으로 발음했기 때문에 발음에 따라 성을 바꾸었다고 한다. 만약 계속 경씨 였다면 간손미가 아니라 경손미였겠다.

유비와 동향이자 친구. 누구랑 비슷한데? 어려서부터 유비와 친하여 유비가 거병한 이후로 그의 막료로 활약했다. 유비의 신하들 중에서는 전체 다 따져서 관우, 장비와 함께 최고참. 간손미의 리더격이다.

유비가 형주에 이르자 간손미가 함께 종사중랑(從事中郞)이 되었다.[1] 간옹은 항상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었고, 주로 사신 역할을 받았다.

익주 정벌 시절 간옹이 유장에게 사자로 나서자 유장이 그를 보고 매우 아꼈다. 후에 유비가 성도를 포위하자 간옹을 보내 유장을 잘 설득해서 항복시켰고, 간옹은 소덕장군(昭德將軍)에 임명되었다. 익주가 평정되자 대우를 이적, 손건 등과 버금하게 했다.

유유자적한 풍채와 생각에다, 성품은 찬찬하지 않고 오만하고 방종하며 질탕했다. 유비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몸을 기대어 있었다. 이렇게 예법에 맞는 몸가짐이 엄숙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였다. 제갈량 앞에서 회의에 참석할 때도 혼자 걸상 하나를 차지하고 목에 베개를 베고 누워 말하니 참으로 뻔뻔했다.[2] 그래도 아무런 벌이나 미움을 사지 않았으니 왠지 미워할 수 없는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특히 EDPS에 능했다고 하며 그에 관련된 일화도 있다. 어느 날, 유비가 곡식을 아끼기 위해 금주령을 내리고 술을 만드는 기구를 가진 사람까지 처벌하는 명령을 내리려 하자 갑자기 간옹이 지나가던 남녀를 가리키며 둘이 간음을 저지르고 있으니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비가 무슨 이유냐고 묻자 간옹은 저 둘이 간음을 하는 도구(성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고 유비는 웃으면서 명령을 그만뒀다고 한다.

그러나 유비군의 익주 평정 후부터는 간옹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이 없어 말년이 어땠는지, 최후에 어땠는지 알 수가 없다. 어찌되었던 유비가 거병한 이래 끝까지 변심하지 않고 유비를 따르다 죽은 충신이라고 할 수 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점술 능력도 가지고 나오는데 당양 벌판에서 조조군에게 추격당하기 직전, 깃발이 부러지는 사태가 발생하자 점을 쳐보고 유비에게 뒤따르는 난민들을 버릴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유비는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고 간옹은 싸움에 휘말렸다가 길바닥에 쓰러진 채 조운에게 발견된다.

또한 연의에서는 유장에게 사자로 갔을 때 이때 간옹이 위세를 부렸다가 과거의 지인이라는 진복에게 꾸짖음을 듣고 얼른 행동을 고치는 일화가 나온다.

4 미디어 믹스

  1. 종사중랑은 참모의 직위이니 책사 역할도 했다는 뜻이다.
  2. 의자는 입식 문화권으로 바뀌는 당나라, 송나라 때에나 등장하는 것으로 삼국지 시대에는 의자가 있긴 있었으나 보급이 잘 되지 않았고 각 사람마다 돗자리를 깔고 거기에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예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