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尙中. 일본의 정치학자.
1 생애
1950년 8월 12일 쿠마모토 태생이다. 재일 한국인 2세로 통명으로 나가노 테츠오(永野鉄男)란 이름을 썼다.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한국인, 즉 대한민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72년 한국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때부터 통명 대신 본명을 쓰고 있으며 일본 내에서는 Kyo Shocho란 일본 독음으로 주로 쓰인다.[1] 2010년대에는 Kang Sangjung이라는 독음으로 후지 TV에서 비정기 코멘터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탓도 있어서 한국식 독음으로 인지하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다.
2013년, 정년을 남겨두고도 도쿄대학을 퇴직한 후(여전히 명예교수이긴 하다.), 세이가쿠인대학(聖学院大学)의 학장(총장)이 되었다. 일본 소재 대학에 한국인이 총장으로 선출된 것은 최초라서 화제가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은 2015년 3월, 이사장과의 갈등으로 사직했다.
2016년 1월 1일부로, 고향인 쿠마모토 현립극장의 이사장 겸 관장으로 취임하였다.
2 여담
재일 한국인을 한국과 일본 두 조국을 둔 귀순자로 표현한다. 일본 근대사의 여러 관점에 비판적이며 새뮤얼 헌팅턴에게도 비판적.
일본에선 NHK 등 시사 프로그램에 자주 나온다. 미중년으로 유명하며 어떤 상황에도 절대 흥분하지 않는 태도로 유명하다. 그때문에 혐한 등에서 강상중을 묘사할 땐 반대로 꼭 화가 난 것처럼 그려놓는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NHK교육TV의 일요일 미술관이란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았다. 나이 50세에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하이쿠를 좋아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야구에 몰두했었다고 한다.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였으나, 야구를 포기한 후 깊이 실망하였고, 독서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언어의 감옥 등을 썼던 같은 재일 한국인 학자인 서경식과는 약간 핀트가 다른 편이다.[2] 서경식이 민족주의, 즉 조선적 등에 애착이 강하다면[3] 강상중은 좀 더 일본에 수용적이다.
아라키 히로히코가 강상중의 저서인 고민하는 힘을 추천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3 저서
한국에 번역된 책만 기재한다.
-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1997)
-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2002)
- 세계화의 원근법(2004)
- 내셔널리즘(2004)
- 재일 강상중(2004)
- 고민하는 힘(2009)
- 어머니(2011)
-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2012) - 현무암과 공저.
- 살아야 하는 이유(2012)
- 도쿄 산책자(2013)
- 마음(2014)
- ↑ 이상일과 비슷한 케이슨데 이상일은 한술 더 떠서 영화 영어 크레딧에 자기 이름을 Ri Shoichi가 아닌 Lee Sang-il로 적어버린다. 최양일은 Sai Yoichi로 통한다.
- ↑ 서경식은 책에서 자신이 아름다운 일본어 에세이를 쓰는 걸로 상을 받았을 때 모어가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인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아무리 자신이 한국어를 배워도 한국인들은 한국어 잘 하는 일본인으로 받아들인다고.
- ↑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서경식이 특별히 민족주의적인 학자는 아니다. 국민주의와 근대국가에 대한 그의 저술들에서 느껴지는 향기는 좌파 자유주의자의 그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