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연쇄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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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4월 4일 MBC 뉴스데스크
잡히기 전
1987년 4월 8일 MBC 뉴스데스크
잡힌 후. 범인 강창구의 모습이 나온다.

1 개요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충청남도 공주에서 있었던 연쇄살인사건으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유사 사건이다. 다만 차이점은 범인이 체포되었다는 것.

2 시작

1983년 7월 31일 오후 한 여성이 사라졌다. 실종자는 충청남도 공주시 XX면에 사는 홍 씨(여•50)였다. 실종 당일 홍 여인의 행적에는 이렇다 할 특이점이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집 근처 밭에 일을 하러 나간 것이 홍 여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가족들은 평범한 주부였던 홍 여인이 갑자기 집을 나갈 이유가 없다며 곧 돌아올 거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가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홍 여인은 며칠 후 우성면 용봉리의 소룡골 계곡에서 싸늘한 사체로 발견된다. 발견 당시 홍 여인은 옷이 벗겨진 상태로 물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외상이 없는 데다가 계곡 주변에서 홍 여인이 멱을 감은 흔적이 발견돼 홍 여인의 죽음은 심장마비에 의한 단순변사로 처리됐다. 1980년대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는 무더운 여름에 멱을 감다 변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발생한 한 여인의 죽음은 그렇게 ‘단순 사고사’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7개월 후인 1984년 2월 21일 공주에서 또 한 명의 부녀자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실종자는 역시 공주시 **면에 사는 이 씨(여•51)로 실종 당일 반포면 내흥리에 소재한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며 집을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약 두 달 후 이 여인 역시 내흥리의 한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국과수 감정 결과 외상이 없는 데다가 위액에서 독극물도 발견되지 않는 등 타살로 단정지을 만한 단서들이 발견되지 않아 이 여인의 죽음도 단순 변사사건으로 처리되고 만다.

몇 달 간격으로 발생한 두 부녀자의 죽음이 범죄에 연루된 낌새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이 씨가 사망한 그해 여름, 공주시 ○○면에 사는 박정순 씨(가명·21)가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에게 변을 당할 뻔한 사건이 발생하면서였다. 8월 19일 오후 2시경 박 씨가 우성면 용봉리에 소재한 소룡골 산길을 지날 때 사건이 일어났다. 인적이 드문 길이긴 했지만 대낮인 데다가 평소 익숙한 길이라 박 씨가 별 경계 없이 길을 가고 있었는데 웬 남자가 숲에서 뛰쳐나왔다고 한다. 그 남자는 박 씨를 가로막고 낫으로 위협하며 ‘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박 씨를 깊은 산속까지 끌고간 그 남자는 박 씨를 성폭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박 씨가 소리를 지르며 격렬히 반항하자 그 남자는 포기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박 씨는 저항하는 과정에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변을 피할 수 있었다. 벌건 대낮에 마을 야산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강간미수사건은 소리소문 없이 퍼져 부녀자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3 다시 시작된 범행

주민들의 경계 때문이었을까. 한동안 공주에서는 이렇다 할 강력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채 예전의 평화로운 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하지만 마을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박 씨 강간미수사건이 발생한 지 약 1년이 지난 1985년 8월 말 또 한 건의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공주시 반포면 마티고개 인근의 한 계곡에서 한 여성의 변사체가 발견된 것이다.[1]사체는 완전히 부패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현장에는 범인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더구나 나중에 알고보니 피해자는 외지인인 탓에 실종신고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사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어떤 수사도 진행되지 않았던 셈이었다. 한참 후에 밝혀진 사실이었지만 네 번째 피해자는 21세의 젊은 여성이었다. 하지만 부패가 워낙 심해 사인규명조차 어려웠다. 관광객인 이 씨는 마티고개 인근에 있는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목격자가 없었다. 결국 타지에서 온 젊은 여성의 석연찮은 죽음은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만다.

그로부터 1년 5개월 후인 1987년 1월 29일 조용한 시골마을을 또다시 공포에 떨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다섯 번째 피해자는 공주시 ○○면에 사는 주부 김 씨(47)로 암자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며 집을 나선 것이 마지막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그녀가 평소 다니는 길과 사찰 주변, 인근 야산 등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헛수고였다. 그런데 이런 경찰의 수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 달 후인 1987년 2월 28일 공주시 ○○면에서 여섯 번째 사건이 일어났다. 이곳에 사는 서 씨(57)가 또다시 사라졌던 것이다. 수사 결과 사건 당일 서 씨는 마을 외곽에 위치한 교회에 간 것으로 확인됐다. 실종 당일 저녁 8시경 버스 정류장에서 서 여인을 봤다는 목격자가 있었다. 정황상으로 볼 때 서 여인은 예배를 마친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는 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사흘 후 서 여인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발견 당시 서 여인의 사체는 볏짚으로 덮여진 채 농로에 버려져 있었는데 목에 찰과상이 있는 데다가 버선과 팬티가 벗겨져 있는 상태였다. 명백한 강간살인이었다.

공주시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부녀자들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관할서는 발칵 뒤집혔다. 특히 서 씨의 사건을 계기로 수사팀들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끼게 된다. 홀로 길을 나섰던 부녀자가 홀연히 사라져 사체로 발견되는 사건들이 분명 어떤 연관이 있음을 짐작케했던 것이다. 그간 사인을 알 수 없었던 피해 여성들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가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일곱 번째 피해자가 발생하기까지는 불과 한 달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1987년 4월 1일 공주시 ○○면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이금순 씨(47)가 사라진 것이다. 실종 당일 장사에 필요한 간이 상수도 호스를 점검하러 간다며 집을 나선 것이 마지막이었다.

불과 두 달 사이에 3명의 부녀자가 연달아 변을 당하자 경찰은 비상이 걸렸다. 이들 부녀자가 사라진 지점 일대를 중점으로 대대적인 수색작업에 나선 경찰은 다음날 허벅지 부분에 자상을 입은 한 구의 변사체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바로 1월 말 실종됐던 김 씨였다. 그리고 김 여인의 사체가 발견된 다음날 경찰은 눈 언저리에 피멍이 든 채 죽어있는 이금순 씨의 사체를 추가로 발견하기에 이른다. 3년 9개월 동안 공주시에서 부녀자 6명이 실종돼 사체로 발견됐고 한 명이 ‘변’을 당할 뻔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4 검거

충격을 받은 경찰은 무려 60여 명의 강력반 형사들을 차출해 수사팀을 꾸렸다. 수사팀은 그간 사인불명으로 변사처리됐던 사건들까지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홀로 집을 나선 부녀자들이 변을 당했고 살인 전에 강간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 사체가 인적이 드문 야산이나 계곡 등지에 유기되어 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범행수법이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리고 낮시간대 인적이 드문 곳에서 범행을 시도한 것으로 보아 범인은 공주 일대 지리에 익숙하고 또 일부 피해자의 발견 당시 상태로 보아 돈이나 금품갈취보다는 성적인 욕구에 집착하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피해자를 강간한 후 살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이 제기됐다.

동일범에 의한 연쇄강간살인으로 가닥을 잡은 수사팀은 공주시내 동일수법 전과자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실시했다. 그러던 중 수사팀은 한 스님으로부터 중요한 진술을 듣게 된다. ‘키 165cm가량의 30대 남자가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티고개 정상에서 내리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 남자는 항상 검정 옷을 입고 다녔는데 눈이 사팔뜨기였다’는 진술이었다. 스님의 진술대로라면 그 남자는 분명 수상한 인물이었다. 불자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불공을 드리러 가는 사람들이 주로 타는 버스를 타고가다 아무 것도 없는 고개 정상에서 자주 내렸다는 사실은 충분히 의심할 만했다.

그리고 얼마 후 수사팀은 또 한 건의 중요한 첩보를 듣게 된다. 당시 공주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1985년에 공주시 ○○면에서 한 남자가 같은 마을에 사는 부녀자를 상대로 몹쓸 짓을 벌인 사건이 있었는데 당사자끼리 합의를 보고 조용히 무마했다’는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형사들의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1984년 여름에도 한 남자가 동네 주민을 상대로 성폭행을 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었던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공주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과 동일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형사들은 당시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결국 당시 피해자와 합의를 본 남자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문제의 남자는 충남 공주시 옥룡동에 사는 30살 독신남 강창구였다. 놀랍게도 강 씨는 스님이 목격한 수상한 사내와 인상착의가 비슷했다. 은밀히 내사를 진행한 수사팀은 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하고 강 씨의 집을 급습했다. 잠을 자고 있던 강 씨는 “잡으러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라는 말로 순순히 경찰의 체포에 응했다. 조사 결과 강 씨는 홀로 외진 길을 지나는 부녀자들을 위협, 강간하고 범행은폐를 위해 목을 졸라 살해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간 단순 변사처리됐던 여성들도 모두 강 씨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5 드러난 범행

강 씨의 첫 번째 범행은 1983년 7월의 마지막 날, 아주 우연히 시작됐다. 공주시 우성면에 소재한 한 계곡 근처로 꼴을 베러 간 강 씨는 계곡에서 멱을 감는 주민 홍 씨를 발견하고 몹쓸 마음을 품게 된다. 강 씨는 홍 여인의 머리를 물에 집어넣어 실신시킨 뒤 강간했다. 그리고 범행을 숨기기 위해 홍 여인을 익사시킨 강 씨는 사체를 물속에 넣어 유기한 뒤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첫 번째 범행이 의외로 쉽게 성공하자 강 씨는 외진 길에 혼자 다니는 부녀자들을 상대로 성적 욕구를 풀기로 마음 먹었고 이후 이를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순진한 시골 총각이었던 강 씨는 어쩌다 강간·살인마가 된 것일까. 강 씨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몹시 어려운 생활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정형편상 국민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강 씨는 형의 집에 얹혀살면서 시멘트 미장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강 씨는 사팔뜨기인 데다가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갖고 있었으며 10대 때부터 간질병까지 앓아왔다고 한다. 게다가 강 씨의 주변에는 그를 보듬어줄 사람도 그가 의지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강 씨는 항상 외톨이였고 어릴 때부터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여자들은 강 씨가 쳐다보기만 해도 기겁을 하며 도망가거나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했다고 한다. 외적인 콤플렉스와 그로 인한 주변사람들의 놀림과 왕따가 계속되면서 강 씨의 마음속은 분노로 가득차 갔다. 특히 결혼도 하지 못하고 여성들에게 무시당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해오던 강 씨는 서서히 여성에게 증오심을 품게 되고 급기야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여성들을 상대로 자신의 비뚤어진 성욕과 분노를 표출했던 것이다.

6 결말

6명의 무고한 여성들을 강간·살해한 강 씨는 뒤늦게 자신의 범행을 참회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재판으로 사형이 판결되었으며, 1990년 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강 씨는 참회의 표시로 자신의 눈과 신장을 기증했다.
  1. 마티고개 지역은 앞서 두 사건이 일어난 내흥리와 가까운 동네로, 차량으로 10분이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