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낙원

郭樂園
1859 ~ 1939

구한말 여성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의 어머니이며 1859년 황해도 장연군에서 태어났다.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백범을 출산하게 되어서 아명을 창암이라 지어주었고 어머니로서 아들인 백범을 키워왔다. 1896년 백범이 20세 때 치하포 주막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혐의로 투옥되자 아들을 걱정하며 자주 면회를 찾아가 아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백범이 탈옥하게 되자 탈옥자 부모라는 이유로 남편이자 백범의 아버지 김순영과 함께 체포되어 옥고를 치뤘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고 남편인 김순영이 옥고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되면서 가난한 환경과 가정생활을 견디며 백범을 키워왔고 백범이 중국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임정 식모를 자처하며 가정부 노릇을 하였다가 1926년 귀국하였고 1934년 백범이 이봉창, 윤봉길 의거의 배후로 일제가 지목하자 다시 상해로 건너와서 백범을 격려하였으며 백범이 생일비용으로 주었던 돈을 독립군 자금 및 무기비용으로 충당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최고령으로 인한 노환과 건강악화로 임정이 여러번 자리를 옮기던 중 병을 얻게 되었고 1939년 끝내 바라던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향년 81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으며 원래 중국에 안장되었다가 후에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일화로 곽낙원 여사의 생일이 다가오자 임정 사람들이 생일상을 차리려고 했는데, 여사가 내 먹을 것은 내가 마련할 터이니 돈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생일날 모인 사람들 앞에서 여사가 내놓은 것은 권총 두 자루였다고.[1]

또 다른 일화로는 백범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귀국해달라는 요청을 읍소하였는데 이에 곽 여사가 회초리를 들면서 백범에게 종아리를 때렸다는 일화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백범이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짙었으며 이를 통해서 자랑스런 아들을 키워낸 어머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사상으로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등과 함께 빛낸 어머니상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1. 비슷한 일화가 김상옥 의사에게도 있다. 상해에서 죽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관을 살 돈으로 권총을 샀다고 한다. 물론 관은 관대로 마련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