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관
말 그대로 '밥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의 한자어(食母).[1] 1960년대에서 70년대 한국의 도시사회에 나타났다가 현대에 와서는 사실상 사라져버린 여성 직업 중 하나이다.[2]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의 집에서 숙식하며 그 집의 부엌일을 위주로 각종 가사노동을 도맡아해주던, 10대~20대 정도의 어린 여성들을 뜻하던 말이었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요즘도 식당에서 보조로 일하는 아줌마들을 식모라고 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남의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가사일을 한다는 것만 놓고 보면 그냥 가정부나 메이드랑 별 차이가 없어보이나, 그들은 노동만큼의 월급을 받는 반면에 식모는 가난한 시골에서 '굶어죽지나 않으려고', 즉 가족들이 입 하나라도 줄이려고[3] 도시로 식모살이 보낸 여성들이었다. 대충이나마 먹고살 만한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나중에 선자리 주선해서 시집보내거나, 시집갈 때 장롱이나 하나 장만해주는 조건으로 그녀들을 고용했다.
때문에 아무리 못살아도 세끼는 꼬박 챙겨먹을 수준이면 식모를 한 명 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쓸 수 있었으니까. 드라마 육남매에서 장미희의 가족도 가난했지만 식모 소녀 한 명을 데리고 사는 모습이 나온다. 한 마디로 돈을 받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소리. 먹여주고 재워만주면 되었던 것이다.
197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를 보면 부엌 쪽에 자그마한 쪽방이 있는 경우가 꽤 많았는데, 이 방의 이름은 "식모방"이었다. 식모를 많이 두던 시대상이 아파트 설계에도 반영된 결과이다.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여공들을 구하는 공장들이 많아지자 식모라는 직업은 사실상 사양길을 걷기 시작한다. 식모들은 당연히 돈 못 받는 식모보다야 제때제때 월급받는 여공이 되길 택하거나 안내양 등의 다른 직업을 택해 떠나버려서 나중엔 식모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다른 집의 식모를 빼내오려다가 그 집이랑 대판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을 정도.[4] 이후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식모는 대부분 사라졌고, 그 빈자리는 돈 주고 고용하는 파출부나 가정부가 대체했다.
각종 창작물에서의 가사도우미들이 그렇듯이, 주인댁 사장님이랑 불륜을 저지르거나 강간을 당하는 등의 클리셰에 쓰이기도 한다.
2 관련항목
- ↑ 과거 조선시대의 '~모'들과 비슷한 작명이다. 옷을 바느질하는 '침모'(針母), 반찬을 만드는 '찬모'(餐母) 등... 동명의 만화로 알려지게 된 '다모'(茶母)도 마찬가지.
- ↑ 안내양도 이 중 하나.
- ↑ 끼니조차 잇기 힘들 정도로 가난한 집에서는 입 하나 덜어주는 걸로도 엄청난 효도였다. 당시의 한국 경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 박완서 씨의 단편소설집인 '친절한 복희씨' 중 '그리움을 위하여'라는 단편에 이런 언급이 나온다.
- ↑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식모 역을 맡았다가 이 이미지가 꽤 오래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