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독일 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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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샤이데만 | ← | 구스타프 바우어 | → | 헤르만 뮐러 |
풀네임 | Gustav Adolf Bauer (구스타프 아돌프 바우어) |
출신 정당 | 사민당 |
생몰년 | 1870년 1월 4일 ~ 1944년 9월 16일 |
재임기간 | 1919년 6월 21일 ~ 1920년 3월 26일 |
1 개요
바이마르 공화국의 두번째 총리. 각종 사회보장 제도를 도입하여 1차대전 직후 어려웠던 독일 국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자 시도했지만 전후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으로 인해 총리로는 단명하고 말았다.[1]
2 생애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 근교에서 1870년 출생하였다. 실업학교를 졸업한 이후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였으며[2] 사무원 노조의 대표자로 활동하면서 두각을 나타낸다. 1912년 슐레지엔 브레슬라우에서 사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제국의회 진입에 성공하였으며, 원내 활동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독일 제국의 전쟁 수행 지지여부를 놓고 사민당은 사분오열하지만, 바우어는 굳건한 에베르트의 지지자로 남아있었으며, 1918년 11월 혁명으로 왕정이 붕괴된 뒤 뒷수습을 위해 제국 총리에 오른 에베르트는 바우어를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그간의 지지에 보답한다.
이후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고 필리프 샤이데만이 총리직에 오르지만[3] 그에 상관없이 바우어는 노동부 장관 자리를 유지한다. 애초에 바우어 본인이 주 40시간 근무, 건강보험, 보통선거 보장 등의 개혁책을 도입하면서 인기가 좋기도 했고 하지만 샤이데만은 취임한 지 불과 넉달만에 베르사유 조약 승인을 거부하면서 총리직에서 사퇴해버리고 똥을 치우는 담당으로 바우어가 그 뒤를 이어 제국총리에 오르게 된다. 바우어 내각은 울며겨자먹기로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할 수 밖에 없었고, 덕분에 바우어의 인기는 하루아침에 추락하게 된다. 어쨌든 바우어는 지옥과 같았던 종전 직후 독일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각종 개혁을 단행하였고, 부유세 도입/ 실업급여 지급 / 출산지원과 같은 당대 상황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정책이 수반된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을 위해서는 국가의 튼실한 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만한 상식인데, 전후 독일은 전쟁배상금 문제로 인하여 완전히 빈털털이였을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바우어의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던 재정장관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가 1919년 10월 정치적 극단주의 세력에게 암살당하면서 개혁은 완전히 추진력을 잃고 만다.
- ↑ 딱 219일 재임했다(...)
- ↑ 변호사는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사무실 직원으로 근무하였을 뿐.
애초에 변호사면 부르주아인데 부르주아가 사민당에서 활동할 가능성이... - ↑ 에베르트는 대통령으로 자리를 옮긴다.
- ↑ 하지만 헤르만 뮐러는 뭘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총선에서 참패하고 3달이 채 안되어서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애초에 베르사유 조약을 승인한 것 자체만으로 독일 국민들은 사민당에게 등을 돌린 상황이기도 했고.
- ↑ 이 과정이 무척 골때리는데, 애초에 공금 횡령의 증거로 제시된 것이 바우어의 아들의 진술이었다. 그런데 바우어는 결혼은 했지만 자식은 없던 상황(...)
나치가 얼마나 일단 정적들을 무작정 잡아넣고 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