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프로이센

독일어:Ostpreußen
영어:East P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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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州旗)주장(州章)
동프로이센의 위치
국가독일 -> 폴란드 / 러시아/리투아니아[1]
주도(州都)쾨니히스베르크

1 개요

1945년까지 독일 동북부에 존재했던 지방. 주도는 쾨니히스베르크. 면적 36,992 km² 에 인구는 2,488,112명(1939년)이었다. 독일어 발음을 그대로 옮긴 '오스트프로이센'으로 불리기도 하나, 동프로이센 쪽이 구글 검색에서 압도적이므로 이 표기를 썼다.[2]

2 역사

프로이센 공국프로이센 왕국의 초기 중심지였다. 1829년부터 1878년까지는 서프로이센과 함께 프로이센 주라는 행정 구역에 묶여있었으나, 이후 분리되었다. 독일 제국의 핵심인 프로이센 왕국에서도 중심지였지만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바이에른, 라인란트, 베스트팔렌과 같은 라이벌 지역에게 발전도에서는 뒤쳐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지역은 보수 꼴통성향의 귀족 출신의 지주 융커들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3]

이후 1차대전에서는 포젠이랑 더불어 제정 러시아의 합병 목표로써 초기 동부전선의 주요 전장이 되는데,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전국적 영웅으로 떠오르는 탄넨베르크 전투가 이 곳에서 벌어졌던 것. 탄넨베르크의 참패 이후 곧바로 러시아 군은 동프로이센에서 쫓겨나 방어에 급급했기 때문에 전쟁으로 인한 별다른 피해는 입지 않았다.[4] 그렇지만 전쟁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고,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베르사유 조약에 의거해서 폴란드 제2공화국에게 18세기 1차 폴란드 분할 이전 폴란드의 영토였던 지역을 양도해야만 했다. 소위 폴란드 회랑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을 넘겨준 결과 동프로이센은 독일 본토와 분리된 월경지가 되었다. 이 때 동프로이센 일대는 약간의 영토 변화를 겪는데, 메멜 지역을 리투아니아에 넘겨준 대신, 폴란드 회랑 동쪽의 서프로이센 지역 중 일부분[5]을 흡수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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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켕트신(Kętrzyn)[7]의 건물에 있는 동프로이센의 흔적

이후 2차대전 시기에 독일의 패배가 자명해지자 소련군의 보복을 피해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독일 본토로 달아났다. 1945년 독일의 패전과 동시에 스탈린은 동프로이센 전체를 소련이 차지하거나 동프로이센 북부 3분의 2를 차지하려 했지만 관대하게(...) 폴란드에게 동프로이센 남부 3분의 2를 넘겨주었다.[8] 이 지역에 대한 독일의 영유권 주장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당연히 거주하던 독일계 주민들도 모두 추방[9][10]. 건국 초기 서독은 이 지역에 대한 폴란드와 소련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동방정책을 외교정책으로 채택한 이후 외교노선에 변화를 주어 실질적으로 이 지역을 포기했으며, 공식적으로는 1990년의 독일통일 과정에서 영구히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포기할 것을 선언한다. 포기 안하면 통일 동의를 안해줄테니까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로 칼리닌그라드 일대에서 독일로의 재편입 움직임이 일기도 했지만 정작 독일 당국은 시큰둥한 반응.[11] 독일 당국은 이 일대 독일계 주민들에게 그냥 독일 국적을 부여하는 정도로 넘어가려는 분위기라고 한다. 한편 볼가 강 일대 거주중이던 독일계 러시아인들이 요새 많이 이 곳으로 이주해오는 추세라고 한다

3 관련항목

  1. 2차대전 종전 이후 남부는 폴란드가 북부는 러시아가 분할. 최북단지역 메멜란트는 리투아니아에게 반환됨
  2. 혹은 프로이센의 영어식 명칭인 프러시아를 따와서 동프러시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3. 공업 발전이 안되니, 이 지역의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공업지역으로 떠나고 일손이 모자라서 농업이 흔들리는 악순환이 19세기 후반부터 나치 독일 때까지 계속 이어지게 된다.
  4. 다만 러시아가 독일 측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동원을 마치고 동프로이센을 침공해서 슐리펜 계획이 다 틀어지고 만다. 전략적으로만 따지면 동프로이센을 잠시 포기했다가 프랑스를 먼저 깨고난 뒤, 러시아에게 전력을 집중해서 탈환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었지만 독일 군부는 융커로 이루어져있었고 이 양반들이 자기의 농지가 로스케에게 넘어가는 꼴을 그냥 지켜볼 리가(...)
  5. 엘빙, 마리엔베르더, 마리엔베르크, 슈툼, 로젠베르크
  6. 기본적으로는 폴란드 분할 이전 폴란드가 가지고 있던 옛 영토가 반환의 기준점이 됐지만, 이미 독일화가 많이 진행된 지역의 경우 독일계 주민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기에 주민투표를 거쳐서 몇몇 지역은 독일에 잔존하는 쪽을 선택해서 벌어진 일.
  7. 독일 지명으론 라스텐부르크(Rastenburg). 이곳 동쪽의 숲속엔 히틀러가 2차 대전 당시 군을 지휘하던 벙커인 '늑대굴'(Wolfsschanze, 볼프스샨체)이 있었다.
  8. 다만 주도인 쾨니히스베르크나 부동항인 필라우 등 알짜배기는 소련이 먹은데다가 소련이 독소전쟁에 대한 보상으로 커즌 선 이동의 폴란드 영토를 요구해서 전쟁 전 폴란드 영토 중 18만 km2에 달하는 영토를 집어삼킨지라... 이건 거의 개평 수준. 뭐 폴란드도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독일 영토를 합병하면서 소련에게 잃은 영토 손실을 벌충하긴 했다.
  9.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구 독일 영토에 살던 독일계 주민은 피난민과 추방민을 합쳐서 대략 800만 명 정도로 당시 독일 인구의 10% 정도. 체코, 헝가리 등 중부유럽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추방당한 독일계 주민들까지 포함하면 1500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 서독을 정착지로 택한 난민들 중 다수가 종전 후 '추방민협회'라는 이익단체를 조직해서 1970년대까지 서독 정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10. 폴란드와 소련 당국에 의한 추방과정은 꽤나 잔혹해서 수십만 명 가량이 도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 그렇지만 이게 다 나치의 업보로 인한 자업자득이니 누굴 탓하리..여담으로 폴란드 쪽은 오늘날에도 '이주'라는 표현을 쓸 뿐, '추방'이라는 단어에 엄청난 거부감을 보인다.
  11. 그럴수밖에 없는게, 주변의 국가들이 칼리닌그라드 편입을 묵과할 리 자체가 없는데다가 이미 독일이 동독과의 통일에 따른 호된 경험을 해봤던 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