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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구티 (Guti) |
본명 | José María Gutiérrez Hernández (호세 마리아 구티에레스 에르난데스) |
생년월일 | 1976년 10월 31일 |
국적 | 스페인 |
출신지 | 토레혼데아르도스 |
신체 조건 | 183cm, 76kg |
포지션 | 미드필더(Midfielder) |
유소년팀 | 레알 마드리드 CF (1986~1994) |
클럽 경력 | 레알 마드리드 CF (1995~2010) 베식타쉬 JK (2010~2011) |
국가 대표 | 13경기 3골 |
지도자 경력 |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팀 (2013~) |
레알 마드리드 전설의 미드필더 중 한 명.
1 프로필
1976년 10월 31일생이며 국적은 스페인이다.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이며 커리어의 대부분을 마드리드에서 보낸, 라울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다.
본래 유스 시절에는 공격수였지만 이후 미드필더로 전향,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을 책임졌다.[1] 1995년부터 2010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542경기 77골을 기록한 공격형 미드필더로, 특히 레알 마드리드의 라 리가 5000호 골과 유럽 클럽 대항전 500호 골을 모두 득점한 것은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특기는 유려하면서도 기상천외한 킬 패스였는데, 이게 잘 되는 날에는 정말 잘 됐는데 안 되는 날에는 말 그대로 말아먹는 경우가 많았다. 비단 킬 패스뿐만 아니라 구티의 플레이 자체가 기복이 유달리 심했다.
때문에 구티의 그날이라는 용어가 생겼으며, 이 그날은 구티의 플레이가 흥하는 날을 일컫는다. 대체로 축덕들의 평가는 '구티의 그날 > 지단의 그날 > 지단 > 구티(...)'.
2 기복 논란
2.1 옹호 의견
허나 이건 좀 우스개에 가깝다. 구티는 정말 기복이 없는 플레이어였다. 구티가 공격형 미드필더? 그건 구티의 수많은 포지션 중 하나일 뿐이다. 마드리드 말년 시절에야 공격형 미드필더로 정착했지만, 전성기 구티의 진정한 포지션은 전천후 땜빵. 쟁쟁한 멤버들 사이에서 베스트 11은 아니었지만 교체 및 선발로 정말 온갖 포지션을 다 뛰었고 또 그 포지션에서 레알 마드리드급 퀄리티를 보여줬다.
이런 면에선 진정한 축구 천재. 온갖 감독이 거쳐간 마드리드에서 온갖 포지션을 전전하면서도 짱짱했던 플레이어로, 그 재능의 크기는 정말 놀랄 만하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가 시즌 도중 뻗어 버리자 공격수로 올라가서 14골을 뽑아냈던 시즌이나 어시왕을 먹었던 07-08 시즌이 아마 외형적으로는 가장 빛난 시즌이 아니었을까.[2]
구티의 플레이가 기복이 큰 것처럼 보여지는 가장 큰 원인을 추정해 보자면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된 갈락티코스 시절에 구티가 주전으로 많이 뛰지는 않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특히 공격적인 역할로는). 지네딘 지단이 있었던 시절에는 플레이 메이킹도 지단이 도맡아 했고 경기가 답답하다고 해서 지단을 교체한 적은 별로 없었다. 이러니 평상시의 공격적인 번뜩임은 지단>구티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지단이 지단이기도 하지만은.
프리 킥과 같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데드 볼 상황도 베컴, 루이스 피구, 호베르투 카를루스, 지단 등이 번갈아 찼고, 공격적인 교체 요원들도 구티 이외에 마이클 오웬이나 솔라리, 카사노 등 화려한 선수들이 많았다. 이 시절은 사실상 로테이션 요원인데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박지성도 구티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어쩌다 한 번씩 터지는 박지성의 인상적인 플레이에 착안해 박지성도 그날이 있는 선수라고 불린다고 해도 위화감이 적을 것이다.
갈락티코스가 해체된 이후는 EPL의 전성기로, 스페인과 마드리드에는 그렇게 큰 관심이 기울여지지 않았다. 이때 본격적으로 공격적인 역할을 맡으며 활약했지만 관심이 적었고 이미 노장이라 그 활약의 기간도 짧아, 이후 어느 정도의 기량 하락은 사실 자연의 섭리.
축구 선수라면 사실 당연히 컨디션이 나쁜 날도 있고, 끗발 서는 날이 있기도 하고 물론 구티도 그렇다. 그치만 기복의 폭이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크긴 했다. 그러니까 긍정적인 방향으로 컸다. 안 되는 날은 그냥 평범하게 안 되는 날이었지만 되는 날은 정말 많이 되는 날 같은 느낌으로. 그렇지만 이렇게 포지션 땜빵질을 하면서도 퀄리티를 유지했다는 것이 대단한 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마드리드로 이적해 와서 가장 놀라움을 준 플레이어로 구티를 뽑는 경우가 많다. 판 니스텔로이 같은 경우는 왜 스페인이 구티를 안 뽑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카카나 호나우두 같은 경우는 정말 놀랐다, 구티는 천재다라는 발언을 하는 등 선수 사이에서도 비범함을 뽐냈다.
반면 노력 같은 것과는 별로 안 친한 모양인데, 스페인 국대 감독인 델 보스케가 이르길 '저 놈이 라울만큼 연습했다면 시대를 이끌 축구 천재가 하나 탄생했을 텐데'.
예측불허의 패스만큼이나 성깔도 예측불허인 면이 있어서 가운데 손가락질이나 뻘 발언, 퇴장 등에도 능했다.
2.2 반대 의견
우선 짚고 넘어갈 점이 있는데, 간혹 구티의 기복 문제를 옹호하기 위해 나오는 '구티가 여러 포지션에서 전천후 땜방을 뛰느라 기복에 시달렸다'는건 어디까지나 구티의 문제점을 외적인데서 찾고자 하는 팬들에 의해 처음 주장된 것이고 다름 아닌 구티 자신이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구티의 기복 문제는 초창기부터 약점으로 꼽히던 키핑과 탈압박 능력의 부재로 생긴 것이고,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옹호 의견은 아예 핀트 자체를 잘못 잡고 들어가고 있다.
또한 어느 포지션에서도 레알 마드리드급 퀄리티를 뽐냈다고 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레알 마드리드는 왜 구티가 자리잡은 포지션에 계속해서 다른 선수들을 영입해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유스 출신에 스페인 내에서의 인기도 많았던 구티의 스타성을 감안하면 정말로 구티가 어느 포지션에서든 레알 마드리드급 퀄리티를 뽐냈다면 구티가 자리잡은 포지션에 대한 추가적인 영입은 불필요했을 것이나[3][4] 레알 마드리드는 끝없이 새로운 선수를 영입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거기에 갈락티코스가 시작된 이후 구티는 전천후 땜방이라기 보다는 수비형에 가까운 중앙 미드필더 보직이 자신의 1옵션이었고, 그 포지션 내에서 마케렐레, 콘세이상과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실패하였기에 이후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5]
그리고 포지션 경쟁자인 마켈렐레가 사라진 이후에는 그 공백을 전혀 메우지 못해 새간의 '마켈렐레 이적 후 갈락티코스가 실패했다'라는 이미지가 박히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는 발락, 에메르손, 비에이라 등 마켈렐레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선수 영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한편 국가 대표팀에서도 펩 과르디올라, 바라하, 챠비, 사비 알론소 등에 밀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고작 13경기에 출장하는 것에 그쳤으며,[6] 이 시절에 구티가 팀에서도 국가 대표팀에서도 주전 경쟁에서 밀린 가장 큰 원인은 소위 '구티의 그날'으로 요약되는, 취약한 키핑 능력과 탈압박 능력으로 생기는 기복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티의 그날'은 구티 자신의 컨디션이나 폼보다는 상대 팀의 압박 강도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상대 팀의 압박 강도가 약할 때는 환상적인 경기력을 보였지만, 상대가 하위권이라도 강력한 압박이 걸리는 경기에서는 되도 않는 플레이를 연속하며 자멸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구티는 간간히 터지는 환상적인 킬 패스에 비해 중앙 미드필더로서는 중원에서 안정되게 공을 돌리거나 경기를 운용하는 능력은 떨어지다 보니 스페인 국가 대표팀의 중앙 미드필더 계보가 과르디올라, 바라하 이후 구티를 건너뛰고 곧바로 챠비와 사비 알론소, 그리고 10대 후반의 핏덩이였던 세스크 파브레가스로 이어지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정말로 구티가 전천후로 레알 마드리드급 퀄리티를 보였다면 애초부터 주전 경쟁에서 밀릴 이유도 없었고, 국가 대표팀에서도 주전 경쟁에서 밀릴 이유가 없었다. 구티가 좋은 선수이긴 했지만 스페인 국가 대표급으로는 부족하고, 갈락티코스 레알 마드리드 입장에서도 주전으로 쓰기에는 미심쩍은 전천후 백업 수준으로,[7]
레알 마드리드급 퀄리티를 뽐냈다면 모를까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복이 컸다거나 하는 수준의 선수는 아니었다.[8]
한 마디로 그냥 주전으로 한 포지션에 정착할 실력이 아니라 백업으로 그리고 여러 포지션 땜방으로 밀린 것인데, 이것이 윗글처럼 미화될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라 리가에 대한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다. 플레이 성향상 구티와 비교되었고 거의 모든 면에서 공방업 버전인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바르셀로나 초기 시절 적응 실패와 포지션 경쟁에서의 우위 실패로 전천후로 돌려졌는데, 구티가 딱 비슷한 상황임에도[9] '구티의 그날'이라는 식으로 미화될 수 있던 것은 한국에서 구티가 포지션 경쟁에서 밀려 어쩔 수 없이 전천후로 돌려지던 시기의 라 리가에 대한 중계나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다. 2011-2012 시즌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터지는 날을 '세스크의 그날'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
혹은 구티의 후계자 격으로 갈락티코스 2기의 공미로 활동했던 외질이 강팀과의 경기에서 지워진다는 이유로 탈압박 논란과 양학 논란에 휩싸이며 비난받았다.[10]
구티는 하위권 팀과의 경기에서도 강한 압박이 들어오면 지워지곤 했는데, 이 상황이 국내에 방영됐다면 어떤 평가가 나왔을까? 그리고 이럼에도 구티가 한국에 방영되지 않았기에 평가에서 피해를 본 선수라 할 수 있을까? 득을 봤다면 봤지 피해를 봤다고 하긴 힘들 것이다.
그나마 2004-2005 시즌 종료 후 피구가 인테르로 이적하면서 구티는 주전으로 나올 수 있었고, 노련미가 붙으면서 어느 정도 탈압박 능력이 정착되어 기복이 적어지고 소위 '그날'의 빈도가 높아지면서 팀의 중심으로 또 2007-2008시즌엔 리그 17도움으로 도움왕을 차지하는 활약을 할 수 있었다.[11] 나이 문제인지 다음 시즌부터 사그라들긴 했지만, 옹호 의견에서 언급한 구티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레알 마드리드급 퀄리티를 보인 시기는 이 시절일 것이다.
다만 구티가 주전으로 또 팀의 중심으로 활약하던 시기는 레알이 16강 마드리드라고 불리우던 시절이고, 이는 자연스레 어째서 탑클럽팀과 격돌하는 유럽무대에서 구티의 천재성은 발휘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결국 여러 면에서 클래스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하는 선수라고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2.3 결론
확실히 구티의 상징성, 프렌차이즈 스타로서의 레알에서 위치는 부정할것이 없다.
허나 대부분의 의견이 구티는 추억에 덧입혀진 실력이라는게 중론으로 모아진다. 또한 실제로 이제와서 구티를 2000년대의 수많은 선수들 사이에서 꺼내지는 않을 만큼 그의 실력에 관해서 더이상의 논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스텟으로서도, 스텟 외의 부분에서도 결코 그의 단짝이던 라울에게 미치지 못하며 시대를 빛낸 선수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레알 마드리드 역사에서 손꼽힐만큼 상징성이 있는 선수였지만, 실력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간 수많은 선수들에 지나지 않는다. [12]
3 말년
15년 동안 선발과 로테이션을 오가며 레알 마드리드를 지키던 구티였고 최근까지도 꽤나 활약했지만, 주제 무리뉴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로 오며 라울과 함께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구티는 터키 리그의 베식타쉬 행을 결정.
이때 팬들이 아쉬워했는데 구티, 라울처럼 마드리드를 대표하던 선수들은 레전드로서 그 클럽에서 은퇴했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리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때문에 무리뉴를 까기도 한다.
하지만 최고의 승부사로서 확실히 노쇠해진 구티와 라울을 선발로 쓰기에는 주제 무리뉴 감독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옵션이었을 테고, 은퇴가 아닌 현역 생활의 연장을 희망한 것은 라울과 구티였다. 누군가를 욕할 상황이라기보단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무리뉴 감독은 라울과 구티가 남아주길 바랐지, 나가길 원하지는 않았다. 이과인, 벤제마를 제외하면 중앙 공격수가 없었기 때문.
4 여담
축구선수 은퇴 후 골프선수가 될 거라고 했는데 레알마드리드 유소년팀 코치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감독을 맡고 있으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적 후 꾸준히 SNS로 자신의 현재 팀과 레알마드리드를 같이 챙겨주고 지금도 마드리드 선수들에 관련된 글을 올리는 등 클럽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더니 결국 레알로 돌아왔다. 얌전해보이는 분위기와 달리 의외로 직설적이고 상당히 터프한 성격에 헤라르드 피케가 레알에 대한 도발을 하면 빠짐없이 맞대응한다. 비유하자면 선대 알바로 아르벨로아. 아르벨로아가 스페인 베스트11에 피케 대신 나초 페르난데스를 넣어 욕을 먹은 적 있는데 구티는 무려 사네티와 아르벨로아의 비교에 아르벨로아 편을 들어준 적이 있다. 안쪽으로 엄청나게 굽은 팔도 닮았다.
금발에 파란 눈, 작은 얼굴에 긴 다리, 한마디로 매우 잘생겼다. 베식타쉬로 이적한 후 잡지의 모델로 나올 만큼의 외모를 자랑한다. 이을용보다 한 살 아래다 미남 마드리드답게 라울과 구티에서 카시야스, 라모스로 미남 주장단 계보가 이어졌는데 지금은......... 마르셀로가 부주장, 페페가 3주장이라는것만 말해둔다 4주장이 호날두라서 그나마 다행 일단 라모스부터가 나이먹으면서 점점 아저씨스럽게 변한다는건 넘어가자...
- ↑ 물론 전향 이후에도 공격수로 많이 뛰었다.
- ↑ 비슷한 플레이어로 네덜란드의 검은 튤립 루드 굴리트가 있다. 덧붙이자면 굴리트는 센터백,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구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발롱도르 수상자이자 역대 최고 수준의 선수였다는 것.
- ↑ 라울, 카시야스, 그리고 갈락티코가 아니었으나 자연스레 갈락티코로 군림하게 된 호베르투 카를루스 등 그런 예는 레알 마드리드에 충분히 존재한다.
- ↑ 아니, 시즌 중에 여러 포지션으로 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루드 굴리트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분은 주포지션에서 뛰다 구멍이 나면 땜방을 들어간 경우라 엄연히 다른 케이스다.
- ↑ 갈락티코스가 시작되고 포지션이 중앙 미드필더로 사실상 고정된 2001-2002 시즌부터 2004-2005 시즌까지 20, 16, 10, 13경기를 교체 출장했다. 선발 출장은 6, 18, 19, 16경기.
- ↑ 포지션 경쟁자들을 보면 알겠지만, 주전에서 밀려서 전천후 땜방으로 돌려졌을 뿐 이 당시 구티의 주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다.
- ↑ 이 표현조차 약간 과대평가성이다. 구티는 본래 포지션인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밀린 후 중앙 미드필더에서조차 주전 경쟁에서 밀렸기에 백업으로 돌려진 것이다. 정리하자면 말년에 어느 정도 탈압박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레알 마드리드 주전급 실력이 아니었고 밀린 것일 뿐이다. 실력이 됐다면 옛적에 어느 포지션에든 정착했을 것이다.
- ↑ 이 설명은 구티보다 클라렌스 세도로프에 더 적합하다. 안 될 땐 안 되더라도 터지면 말 그대로 미쳐 날뛰었던 선수이다.
- ↑ 그나마도 클래스나 활약 자체는 세스크가 더 높았다. 그것도 제법, 월등히. 여기에 의문이 있다면 2005-2006 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으로 자리잡은 구티가 국가 대표팀에서 누구에게 밀렸는지 떠올리면 간단하다. 정답은 19살의 세스크.
- ↑ 세스크와 마찬가지로 외질이 터지는 날을 '외질의 그날'로 칭하는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 ↑ 이 시점에도 국가 대표팀에선 세스크에게 밀렸다. 그러니 초반의 논리대로라면 챠비 > 이니에스타 > 세스크 > 풀 핏 구티 > 지단이라는 말도 안 되는 공식이 나온다. 우스개소리이기는 하지만 '구티의 그날'을 미화라고 비난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풀 핏 구티라고 해도 볼 배급이나 볼 순환, 수비 등은 여전히 미흡했고, 이런 약점 때문에 '그날'이라도 탑 클래스로 보긴 힘들었다.
- ↑ 사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선수이긴 하다.
- ↑ 외국에서는 조각같은 외모의 남자가 외모가 평범하거나 그 이하, 나이 차이가 많은 여자와 결혼하면 게이들의 위장결혼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전자의 경우에 마르키시오나 요아힘 뢰브 도 포함. 실제 마르키시오는 동성결혼을 지지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