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무리뉴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클럽별 감독
크레이그 셰익스피어
(레스터)
위르겐 클롭
(리버풀)
펩 과르디올라
(맨시티)
주제 무리뉴
(맨유)
스티브 애그뉴
(미들즈브러)
션 다이크
(번리)
에디 하우
(본머스)
클로드 퓌엘
(사우스햄튼)
데이비드 모예스
(선덜랜드)
폴 클레멘트
(스완지)
마크 휴즈
(스토크)
아르센 벵거
(아스날)
로날드 쿠만
(에버튼)
발테르 마차리
(왓포드)
토니 풀리스
(웨스트 브롬)
슬라벤 빌리치
(웨스트 햄)
안토니오 콘테
(첼시)
샘 알라다이스
(크리스탈 팰리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마르코 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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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
조제 마리우 두스산투스 모리뉴 펠리스[1]
(José Mário dos Santos Mourinho Félix)
생년월일1963년 1월 26일
국적포르투갈
출생지세투발
신체174cm, 74kg
소속 클럽히우 아브 FC (1980-1982)
CF 벨레넨세스 (1982-1983)
세심브라 (1983-1985)
코메리쿠 인두스트리아 (1985-1987)
지도자스포르팅 CP 코치 (1992-1993)
FC 포르투 코치 (1993-1996)
FC 바르셀로나 코치 (1996-2000)
SL 벤피카 (2000)
UD 레이리아 (2001-2002)
FC 포르투 (2002[2]-2004)
첼시 FC (2004-2007[3])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8-2010)
레알 마드리드 CF (2010-2013)
첼시 FC (2013-2015[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6- )
SNS인스타그램


FC 포르투 역대 감독
옥타비오 마차도
(2001~2002)
주제 무리뉴
(2002~2004)
루이지 델 네리
(2004)
첼시 FC 역대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2000~2004)
주제 무리뉴
(2004~2007)
아브람 그랜트
(2007~2008)
라파엘 베니테즈
(2012~2013)
주제 무리뉴
(2013~2015)
거스 히딩크
(2015~2016)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역대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
(2004~2008)
주제 무리뉴
(2008~2010)
라파엘 베니테스
(2010)
레알 마드리드 CF 역대 감독
마누엘 페예그리니
(2009~2010)
주제 무리뉴
(2010~2013)
카를로 안첼로티
(2013~201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감독
루이 판 할
(2014~2016)
주제 무리뉴
(2016~ )
현직


2010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주제 무리뉴
2위
비센테 델 보스케
3위
펩 과르디올라
2011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펩 과르디올라
2위
주제 무리뉴
3위
알렉스 퍼거슨
2012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비센테 델 보스케
2위
주제 무리뉴
3위
펩 과르디올라



1 소개

남다른 카리스마와 독설로 세계를 사로잡은 SPECIAL ONE.

부상과 그저 그런 기량으로 은퇴한 실패한 선수에서 오직 실력만으로 월드클래스의 감독이 된 인물.

같은 팀에게는 누구보다 믿음직하지만 상대 팀에게는 누구보다 졸렬한 양면을 보이는 감독.

그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세계 최고의 축구 감독 중 한 명. 별명은 Special One. 그리고 이제 그걸 넘어서 The Only One이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첼시로 돌아가고서는 Happy One. 근데 결말은 행복하지 않았다.

체육 교사, 통역관 등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내며 단기간에 탑 클래스 감독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축구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활동하면서 초기에는 포르투갈 1부 리그 소속의 히우 아베라는 팀에서 뛰었으나 기량이 그저 그래서 이후 하부 리그를 전전하다 1987년에 24세의 아주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선수 시절 개인 기록은 94경기 13골. 스스로도 자신이 일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것을 알아챈 순간부터 매 순간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준비했다고 한다. 이 까닭인지 그를 비선수 출신 감독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선수 시절의 무리뉴 (오른쪽 사진 - 아랫줄 맨 오른쪽)

뛰어난 선수 장악능력과 꾸준한 커뮤니케이션으로 팀의 활력을 높이는 감독으로 전략선택 역시 현재 팀에 맞춰 분배하는 식의 운영체제를 보인다. 본래 체육교사 출신으로 스포츠 과학, 스포츠 생리학, 심리학에 능통하며 이를 기반으로 선수들 쥐락펴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통역관을 오랜 시간 역임하여 외국어도 능통하다.

나의 팀에 소속된 선수들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다. 열심히 훈련하는 자는 기회를 받을 것이요. 그렇지 않는 자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다. 그 외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방침, 즉 내 말만 믿고 따라와라다. 이런 방침을 토대로 하여 FC 포르투와 첼시에서의 성공으로 명감독 소리를 듣게 되었고, 인테르에서도 트레블을 달성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려오고 있다.

한때는 젊은 감독의 대표주자로 꼽혔으나 더 젊은 1971년생인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르샤 감독 데뷔 후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그 명칭은 넘어갔다.[5] 그리고 그 둘은 철천지 원수. 엄청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현대 축구판에 재미있는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감독 최초 유럽 4개국 4개 리그(포르투갈,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정복[6], 트레블을 포함한 2회의 챔스 우승 등 커리어가 정말 화려한 편이다. 리그 성향도 모두 다르고 구단 특성도 제각각인 4개국, 4개 리그를 돌아다니면서 각 리그 내에서 들 수 있는 우승컵은 모두 들어본 경험이 있는 만큼 그 누구보다도 검증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위 안티풋볼, 수비위주의 빈틈없는 축구를 한다고 까는 사람들이 있다. 재미의 유무에 따른 호불호로 보이는데, 재미의 추구와 승리의 추구 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순전히 본인의 기호에 따른 문제이다. 다만 지속적으로 무리뉴의 축구스타일을 비판하던, 토탈사커 덕후 요한 크루이프만큼은 트레블 이후에도 깠다.

전술은 수비라인을 끌어내려 수비적으로 한 뒤, 피지컬과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을 뺏으면 바로 공격적으로 나가는 축구를 선호한다. 수비라인을 끌어내리기 때문에 다소 발이 느린 수비수들도 활약할 수 있고, 역습을 빠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미드필드에서 패스를 잘 뿌려줄 수 있는 선수나 활동량이 많은 선수를 필요로 하고 스트라이커들의 결정력이 매우 중요하다. 가장 높이 평가받는 것은 수비라인 구축 능력으로, 무리뉴가 이끈 역대 팀들은 무리뉴가 있었던 동안의 수비력이 최고라는 평가를 항상 받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술로 인해 수비적으로 나오는 약팀들에게 어이없게 당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이러한 현상은 공격수, 특히 스트라이커의 폼이 노답일 경우 극대화된다. 04-05 시즌부터 06-07 시즌까지 첼시에서는 디디에 드록바, 인테르에서는 디에고 밀리토사무엘 에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카림 벤제마곤살로 이과인이 있었지만, 의적이라고 조롱받은 13-14 시즌 첼시의 공격진은...

2 감독이 되기 전

축구 선수를 일찍 은퇴한 후, 어머니의 의사를 따라 경영대학원에 등록했지만 하루 만에 관뒀다고 한다. 대신 본인이 원했던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리스본 공과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국립체육교육학 코스를 밟았다. 이후 5년간 여러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체육 교사로 재직하면서 해당 코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코칭 코스까지 수료하며 축구 감독계에 입문했다. 체육 교사를 관둔 후에는 하부리그 구단이었던 에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의 수석 코치와 오바렌세의 스카우터 직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던 중 1992년에 스포르팅 CP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故 바비 롭슨의 통역관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포르투 시절의 바비 롭슨과 무리뉴바르셀로나 시절의 바비 롭슨과 무리뉴

스포르팅 CP를 시작으로 FC 포르투, FC 바르셀로나까지 바비 롭슨 감독과 계속 동행하며 그의 담당 통역관 및 코치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에는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자 당시 바비 롭슨의 후임이었던 루이 판 할과 일하기도 하였다. 2010년 인테르를 이끌고 판 할의 바이에른 뮌헨과 챔스 결승에서 마주한 것을 생각하면 꽤나 재미있는 과거.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와도 이 때 처음 만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통역관을 하던 시절 일화가 있는데 96/97 시즌 빌바오 원정에서 1:2로 바르셀로나가 패했던 경기에서 빌바오의 거친 플레이를 참지 못하고 당시 빌바오 감독이었던 루이스 페르난데스에게 폭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경기 후 열받은 페르난데스 감독이 무리뉴를 잡으러 갔지만 펩이 페르난데스 감독을 붙들곤 언쟁을 벌였고, 무리뉴는 그 사이에 도망쳤다.(...) 이 사건 후 무리뉴는 징계를 먹었다고 한다. 떡잎부터 남달랐다.

바비 롭슨은 그전 스포르팅 리스본에 있을 때부터 무리뉴의 재능을 알아보고 함께 전술에 대한 논의를 자주 나누곤 했고 무리뉴는 이 과정을 통해 전술적인 실력을 쌓아가게 된다. 바비 롭슨을 따라 바르셀로나로 온 무리뉴는 통역관뿐만 아니라 전술 어드바이스, 선발 선수 관리 등을 수행하며 지도자로써의 역량을 쌓았다. 마찬가지로 독설로 유명한 판 할 감독과는 서로 죽이 아주 잘 맞았다고. 롭슨과 판 할이라는 뛰어난 스승 아래 무리뉴의 전술적 역량은 나날히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워낙 통통튀는 성격 때문에 다른 스탭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수업을 받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와 극도로 다른 전술을 사용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

지금은 故 요한 크루이프와 사이가 안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바르셀로나에서 통역사-수석코치 시절에는 무리뉴가 크루이프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긴장해서 말도 못 걸고 벌벌 떨었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원정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우연히 크루이프 옆좌석에 배치되었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도 더듬으며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안스러운 나머지 크루이프가 먼저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무리뉴도 답변을 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긴장을 풀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판 할과 무리뉴 이젠 전임자와 후임자과르디올라와 무리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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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는 내 마음 속에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할 거야"
- 주제 무리뉴, FC 바르셀로나 통역사, 1997년 우승 축하 행사에서

하지만 그는 바르사의 철천지 원수가 되어 나타난다...[#]

둘의 라이벌리는 펩 과르디올라 항목 참조.

3 감독 경력

선수로는 별 볼일 없었지만 감독을 맡은 이후에는 그 준비의 결실을 맺고 결국 트레블까지 성공하여 펩 과르디올라, 알렉스 퍼거슨, 유프 하인케스, 파비오 카펠로와 같은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어 감독계의 정점에 이르게 된다.

3.1 데뷔~포르투 감독 시절

벤피카 시절의 무리뉴

FC 바르셀로나 수석 코치 커리어를 끝으로 코치 생활을 마감하고 유프 하인케스의 후임으로 SL 벤피카에 부임하면서 첫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라이벌 스포르팅 CP를 3-0으로 꺾는 등 성적도 나쁘진 않았지만 때마침 벤피카의 회장이 새로 선출되는 과도기를 겪으면서 코치 선임 문제 등 구단 수뇌부와의 충돌 끝에 결국 9경기만에 물러난다.[8]

01-02 시즌에 중소 클럽인 UD 레이리아의 감독으로 부임하는데, 리그 전반기에 포르투와 벤피카를 제치고 리그 3위를 기록하는 이변을 일으켜 포르투갈 리그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렇게 자연스레 리그 내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아오다가 해당 시즌 후반기에 당시 리그 5위로 부진하던 FC 포르투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다.

FC 포르투에서 남은 후반기 리그 경기를 11승 2무 2패의 호성적으로 마무리하며 3위로 리그를 마쳤고, 다음 시즌에는 포르투를 리그 챔피언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무리뉴는 포르투의 전력과 장단점을 빠르게 파악하여 여름 이적 시장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선수단을 꾸렸는데, 임대 갔던 조르제 코스타를 다시 복귀시키고, 친정 팀인 UD 레이리아에서 누노 발렌테데를레이, 비토리아 FC에서 파울로 페레이라를 데려왔으며, 벤피카에서 윙어였던 마니셰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하여 중미로 컨버팅시키는 등 갖은 노력 끝에 단기간에 스쿼드를 완성시킨다.

02-03 시즌에 27승 5무 2패로 2위 벤피카를 11점차로 제치며 전 시즌 선언한대로 리그 우승을 거두고, 포르투갈 컵 우승, 그리고 UEFA 유로파 리그 우승까지 차지해 미니 트레블을 달성하며 유럽 무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03-04 시즌에도 역시 25승 7무 2패로 리그 우승을 하며 리그 2연패를 달성하였다. 또한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토너먼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기는 이변을 일으키더니 기어이 챔스까지도 우승하며 FC 포르투를 17년만에 유럽 챔피언 자리에 등극시키고 전세계의 이목을 끌게된다.

포르투로 UEFA컵UEFA 챔피언스리그를 연달아 우승하는 엄청난 성공을 계기로 무리뉴는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2004년 첼시 FC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이후 FC 포르투의 포르투갈 선수들은 자국에서 개최한 유로 2004에서 준우승의 주역이 된다. 이는 2016년 프랑스 유로컵 대회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로 최고성적이다.

포르투를 이끌며 유럽을 정복하다

3.2 첼시 감독 시절

첼시 제국의 시작과 전성기를 이끌다
무리뉴의 왼쪽은 프랭크 램파드, 오른쪽은 존 테리

부임 이후 첫 시즌이었던 04-05 시즌부터 리그 25경기 무실점, 리그 최소 실점 (15실점), 역대 최다 승리 (29승), 역대 최다 승점 (95점)[9]등 엄청난 리그 기록들을 세우며 클럽 역사 50년만의 EPL 우승과 리그컵 우승을 달성했고, 05-06 시즌에도 리그에서 압도적인 포스를 이어가서 전 시즌과 같은 29승을 찍으며 EPL 2연패와 커뮤니티 실드 우승을 달성하며 첼시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06-07 시즌에는 리그는 6점차로 맨유에 내줬지만 리그컵과 FA컵을 들어 올리며 컵 더블을 달성했다. 당시 주전 수비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인해 리그 우승 경쟁에서 맨유에 뒤쳐진 것을 염두에 두고 다음 시즌 구단에 수비수 영입을 요청했으나 보드진은 이를 무시하며 이거 어디서 본거 같은데불화를 겪었고[10], 마침 시즌 초반부터 성적 부진과 보드진과의 불화로 인해 결국 2007년 9월 30일에 첼시와 상호 계약 해지하였다.

무리뉴가 첼시 시절 구축한 강력한 피지컬로 막강한 중원 장악력을 가진 미드필더진에 의한 4-3-3 전술은 그가 떠난 지금까지도 무리뉴식 4-3-3 으로 불리며 첼시의 대표전술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첼시 역사에 공헌한 바가 매우 크고, 특유의 스타일로 타 팀팬들에게 맹렬히 까이는 대신 자기 팀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 그의 해임 후에 아예 첼시팬을 관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은데 특히 그랜트부터 스콜라리에 이어지는 암흑기에 그런 흐름이 절정이었다. 히딩크 때부터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요샌 그리워하거나 다시 돌아와달라는 소리는 많이 줄었으나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기자들이 브루스 벅 회장에게 무리뉴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냐 물었을때 이제 그의 시간은 지나갔다고 대답해서 로만이 구단주로 있는 한 가능성이 희박할 듯 싶다...는 게 그동안의 관측이었다. 무리뉴 자신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는 다르니 인테르의 라이벌팀으로 갈 일은 없다고 못박았지만 첼시에서는 아마 힘들것으로 보이기에 앞일은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팬들이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2013년 6월 3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에 감독이 되기위해 지원을 했었던 것.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이 경질 된 이후인데 [11], 에이전트인 호르헤 멘데스가 먼저 바르셀로나에 접촉을 해왔고, 바르셀로나는 딱히 무리뉴를 감독으로 임명할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구상이나 들어보자는 의미로 프리젠테이션에 응했다고. 이 때, 무리뉴가 들고 온 바르샤 관련 자료집은 前 바르사 감독이었던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것보다 훨씬 방대했다. 당시 무리뉴의 구상도는,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에 대해서 굉장히 열심히 연구를 해놓았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프리젠테이션에 참석했던 바르셀로나 보드진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리뉴는 감독으로서 선수 영입, 전술, 코치진 임용 전권을 요구했고 잉글랜드와는 달리 스페인에선 이런 관행이 드물었기 때문에 영입 시도는 파토났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B팀 코치였던 펩 과르디올라를 자신의 수석코치로 임명해달라는 조건도 있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무리뉴의 제의를 거절하고 새로운 감독으로 펩 과르디올라를 선임하였으니... [12],

퍼거슨과 무리뉴. 경기장에서는 경쟁자, 경기장 밖에서는 동반자였다.

EPL 시절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역시 언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알렉스 퍼거슨과 좋은 맞수를 형성했는데 그 탓인지 그가 퍼거슨의 뒤를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다. 명확하게 드러낸 적은 없지만 무리뉴 본인도 맨유의 감독직에 관심이 없지는 않은 듯한 뉘앙스의 인터뷰를 여러번 했었다. 맨유의 보드진과 선수들 사이에서도 종종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알렉스 퍼거슨과는 우승을 놓고 다투며 고도의 심리전을 펼칠 때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친한 사이다. 퍼거슨이 은퇴를 발표하기 한두달 전에 따로 무리뉴를 불러 자신의 은퇴 계획을 미리 터놓았을 정도.

퍼거슨은 경기가 끝나고 나면 상대팀 감독과 와인 한잔 걸치는 것을 좋아하기에 경기를 치른 후 둘 중 한 명이 와인을 준비해서 같이 마시곤 했다고 한다. 과거 포르투 감독 시절 맨유를 누르고 챔스 8강에 진출했을 때 퍼거슨은 무리뉴를 불러 함께 와인을 마시며 그를 격려해주었는데 무리뉴는 그 이후로 퍼거슨을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첼시로 부임한 이후에도 같이 와인을 즐겼고, 무리뉴가 첼시 감독에서 해임되었을 때, 퍼거슨은 "이제 경기 끝나고 누구랑 와인을 마시나?"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인테르 감독 시절 챔스 16강에서 맨유를 만났을 때 좋은 와인을 준비해뒀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 6월현재 정말로 맨유의 감독이 되었다!

그 외에도 2011년도 엘 클라시코에서 무리뉴가 폭력 사태와 관련해 폭풍 까임을 당할 때, 퍼거슨 감독이 이를 변호해주기도 했다. 딴 나라 리그로 간 전직 라이벌 팀 감독의 문제에 변호를 해주는 걸 보면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 젊은 시절에는 자기도 그랬다면서 시간이 지나면 무리뉴도 좀 더 침착해질 것이라고 했다. 뭐, 딱히 퍼거슨이 무리뉴한테만 쉴드 쳐 주는 건 아니고 감독들이 비난을 받으면 동업자 의식이 발동해서인지 전반적으로 감독을 옹호하는 인터뷰를 많이 한다.[13]

3.3 인테르 감독 시절

무리뉴의 커리어 역대 최고의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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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지

기자 : 첼시에서의 램파드나 에시엔 같은 선수가 세리에 에서도 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14]
무리뉴 : 왜 첼시 선수들에 관한걸 나한테 질문하는 겁니까?
기자 : 왜냐하면 그들에 대해 개인적인걸 물을 순 없기 때문입니다.
무리뉴 : 네...(한숨을 쉬고) 네, 네, 네...(기자들이 웃는다) 하지만 난 바보가 아닙니다(Ma io non sono un pirla).[15]

무리뉴가 오기전 이미 세리에 A 3연패를 달성했기에 리그에서의 독주 체제와는 달리 챔스에서는 다소 실망스런 행보를 건던 인테르였기에 만치니를 해임하고 챔스에서의 호성적을 기대하면서 2008년 여름 인테르는 무리뉴에게 감독직을 맡겼는데 08-09 시즌 챔스 16강에서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별다른 힘도 써보지 못하고 완패하면서 탈락을 한탓에 언론의 집중포화에 시달리며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받쳐줄 윙어들을 데려왔는데, 하필이면 만시니와 콰레스마였다. 하나만 있어도 끔찍할 먹튀들이 쌍으로 아주 제대로 말아먹으니 선수보는 안목은 있냐고 더 까였다. 한때 밥장군까지 눈여겨봤지만 다행히 밥티스타는 로마측에서 잔머리 굴리느라 거절해서 안사왔으니 잘된걸지도?

하지만 09-10 시즌 들어 이탈리아 특유의 수비축구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데 성공하고 주급만 많이 먹던 잉여 자원들을 내보내고 착실하게 리빌딩을 단행해 자신만의 팀을 만들어 나갔다. 즐라탄을 바르셀로나로 이적시키면서 그 이적료로 사무엘 에투를 데려왔고, 스네이더디에고 밀리토를 영입하면서 공격진 보강과 바이에른에서 루시우까지 데려오면서 수비진 보강에도 성공하였다. 그러면서 이 선수들을 적극 활용하여 시즌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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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프 누 스프링쿨러 구장에서 바르셀로나를 잡고 챔스 결승에 진출하자 기뻐하고 있다.

먼저 AS 로마를 꺾고 코파 이탈리아 대회도 우승하며 2시즌만에 이탈리아 내에서 들어올릴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차지했고 38라운드 시에나와의 경기에서 디에고 밀리토의 골로 멋지게 승리하며 팀의 리그 5연패를 이끌었다. 그리고 챔스에서는 지난 시즌의 부진과는 달리 첼시, 바르셀로나 등 강팀들을 연달아 격파하면서 마지막엔 바이에른 뮌헨까지 물리치면서 인테르의 반세기 가까이의 오랜 숙원이었던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사상 4번째로 트레블을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에른스트 하펠과 오트마 히츠펠트의 뒤를 이어 2개의 클럽으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한 3번째 감독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데려온 스네이더르, 판데프, 루시우, 에투, 밀리토, 모타의 대활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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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09-10 시즌 UEFA 올해의 최우수 골키퍼(줄리우 세자르), 수비수(마이콘), 미드필더(베슬리 스네이더르), 공격수(디에고 밀리토) 등 사상 최초로 전 포지션 수상 부문을 한 팀에서 모두 휩쓸었을 정도로 이 시즌의 인테르는 공격과 수비 모두 흠 잡을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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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FIFA 발롱도르의 월드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문을 수상한 베슬리 스네이더가 수상 소감에서 특별히 무리뉴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 적이 있는데, 이는 레알 마드리드 시절 갈피를 못 잡고 부진에 늪에 빠져있던 스네이더를 전화통화로 설득해서 인테르로 데려온 장본인이 무리뉴이기 때문이다. 인테르로 온 이후 트레콰르티스타로 기량을 만개하며 트레블 팀의 공격 구심점으로 등극하고, 올라온 폼을 바탕으로 월드컵 준우승까지 이뤄냈으니 스네이더로서는 인생을 바꿔준 은인이라고 여길만하다.

이후 갈라타사라이 시절 경기를 보러온 관객석의 무리뉴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서로 다른 팀이 되었지만 둘 사이는 여전한듯.

챔스 우승 직후 레알 마드리드로 갈 것이란 떡밥을 투척했다. 이탈리아 축구계와 언론 특유의 외국인 감독 죽이기에 어지간히 질리기도 했고 유럽 3대 리그에서 모두 챔스 우승을 거두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우겠다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레알로 가기로 결정. 모라티 구단주는 어지간히 아쉬운 모양인지 떠나기 전에 떠난다는 말 한마디도 안하였다고 불평했지만 선수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 마음이 약해질것 같아서라고. 그래서 챔스 결승전이 끝나자 마자 떠나려 했지만 가는 도중에 마르코 마테라치를 보고서 부둥켜 안고 울었다.[보러가기]

이후에 인테르 감독 자리를 떠나고 레알 마드리드 감독 신분으로 FIFA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나는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지만 이 자리에서는 인테르의 구성원으로서 이 상을 받는다 라는 간지폭풍 발언을 했다. 갑자기 떠나버려서 무리뉴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고 있던 인테르 팬들이 많았지만, 이 발언 이후 그는 인테르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첼시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무리뉴를 나쁘게 생각하는 첼시, 인테르 팬들은 거의 없다. 09-10 시즌 인테르 시절에 첼시를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만났을 때, 무리뉴는 첼시팬들에게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는 이 때 '나의 첼시'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인테르는 무리뉴가 떠난 이후로 후임인 베니테즈의 삽질과 구단의 만년 적자로 인한 본격적인 투자 감소로 인해 트레블을 이룬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이적 및 구단 내외부적인 뻘짓이 연이어 겹치면서 팀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니 인테르팬들의 무리뉴에 대한 애정은 첼시 팬들보다도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번 팀을 옮겨다님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몸담았던 팀과의 관계가 상당히 좋은 감독으로, '좋게 떠난다는 것'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엄격하게 규율을 잡는걸로 유명한 무리뉴지만 사실 팀과 선수들에게 애정이 많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진짜 츤데레가 맞는 것 같다.


3.4 레알 마드리드 시절

기대를 받고 취임했으나, 절반의 성공만을 거두다 [16]

2010년 6월 1일.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으로 공식 취임했다. 기자회견에서 "축구선수든 감독이든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커리어가 없다면 그것은 완벽한 커리어라고 볼 수 없다.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도전을 하는 것은 매력적이다"라며 기자회견을 했다.

부임하자마자 갈락티코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레알의 화려하지만 무계획적이고 효율 떨어지는 영입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계약파기 시 아무런 보상없이 물러나겠다는 간지폭풍 계약을 맺었다.

부임하면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던 사미 케디라메수트 외질, 포르투갈 리그 최우수 선수로 뽑혔던 앙헬 디 마리아 등을 영입한다. 디 마리아의 이적료가 2500만 유로, 외질이 1500만 유로였는데, 이 해 말에 레알 마드리드 최우수 영입선수로 디 마리아가 뽑혔다. 선수들과의 관계도 괜찮았다. 여담으로 레알에 남아 있는 케디라를 제외한 디 마리아와 외질은 각각 7500만 유로, 5000만 유로를 레알에 안겨주며 이적했다. 활약과 이적 모두 역대급 꿀영입. 갈락티코는 끝났다면서 갈락티코를 만들어서 내보냈다

1라운드 때 마요르카와의 원정 경기에서 비기면서 시작이 썩 좋지는 않았다. 물론 마요르카가 09-10 시즌에 안방불패를 자랑하던 돌풍의 팀이긴 했지만 10-11 시즌에는 아두리스 등 주축 선수를 팔아넘겨서 상당히 약체화되었다고 평가받는 팀인데 일부 선수들이 삽질을 거듭하며 승리하는데 실패했다. 그 사이 바르셀로나는 라싱을 상대로 3:0으로 완승을 거두면서 시작부터 까였다. 다만 레알 마드리드는 05-06 시즌 이후 어떤 감독이 들어오든 개막전에 좋은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다.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과 팬들의 의견.

그후 10-11 시즌 12라운드 까지 한번도 지지 않았으나 13라운드 엘 클라시코에서 5:0으로 대패 했다. 이 정도로 일방적인 스코어가 나온것은 94년 이래로 처음이고, 경기 내용도 08-09 시즌의 6:2 관광보다 일방적으로 패했다. 인테르에서 보여줬던 수비적 전술 대신 라인을 올리고 맞불작전을 놨으나 미들 싸움에서 완패하면서 주도권을 뺏겼고 아예 공격 자체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여기에 수비조직력이 흔들리면서 공간침투에 이은 킬패스에 연신 약점을 노출하며 패배의 쓴맛을 보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후 "승리할 가능성이 없었기에 받아들이기 쉬운 패배였다. 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하지도 않았다"며 그답지 않은 무력한 발언을 하였다.

이후 컵대회인 코파 델 레이에서 바르셀로나를 제압하고 레알 감독으로 첫 우승컵을 가져다 줬지만, 챔스 4강에서 바르셀로나에 패하며 챔스 우승의 꿈은 접어야 했다.

지네딘 지단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여 지단을 코치로 섭외하고, 박치기한 지단과 패드립마르코 마테라치를 화해시키는데 성공했다... 고 알려졌으나 이후 지단은 마테라치와 화해한 적이 없으며 이후에도 그럴 일을 없을 거라고 못박았다. 그리고 정작 그 자신도 레알 마드리드의 사무총장이였던 호르헤 발다노와 끝내 화해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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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와 발다노. 둘은 무리뉴가 첼시에 있을 때 이미 앙숙이였다.

호르헤 발다노와 무리뉴와의 갈등은 단순한 개인적인 갈등을 넘어 많은 것을 의미한다. 둘의 갈등의 가장 핵심원인 중 하나는 축구철학의 차이였다. 무리뉴가 선수들의 견고한 수비력과 왕성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예리하고 재빠른 역습축구를 구사하며 팀의 조직력을 강조하는 반면, 발다노는 선수 개개인의 뛰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화려한 공격축구를 추구한다. 이러한 축구철학의 차이 때문에, 발다노는 무리뉴의 선수기용과 전술에 비판을 많이 했다. 결국 여기서 갈등의 골이 깊어져,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발다노의 축구철학은 한 개인의 의견을 넘어서 레알마드리드가 추구하는 이미지이자, 축구철학이기도 하다. 또한 레알 마드리드의 많은 팬들 또한 발다노처럼 레알 마드리드가 화려한 개인기량을 통해 늘 상대를 압도하는 공격축구를 구사하기를 원하며 이에 대해 큰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다.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 재임시절에도 이러한 견해의 차이 때문에 그를 비판하는 여론도 많았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무리뉴와 레알마드리드는 애초부터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라고도 볼 수 있다. 페레스 회장은 당시 무리뉴의 손을 들며, 10-11 시즌 종료 후 발다노를 해임했다.[17]

그리고 2년차에 접어든 11-12 시즌. 코엔트랑, 바란, 사힌, 알틴톱, 카예혼 등 이름값이 아닌 실리를 고려한 영입을 하며 시즌을 준비했고 스피디한 속공과 화려한 패스웍을 살린 가공할 공격축구로 초반부터 1위를 질주했다. 그간의 수비적이라는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무지막지한 파괴력으로 89-90 시즌 달성한 팀의 시즌 최다골 기록(107골)도 가볍게 갈아치웠다. 4월 22일, 바르셀로나 캄프 누 원정에서 108, 109호 골을 쏘아올리며 2:1로 이기면서 리그 우승도 거의 확정되었고 원정 승리로 바르셀로나 전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선 바이에른 뮌헨과 1승 1패 동률로 승부차기까지 벌여 패하면서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다.


라리가 파업으로 5월 2일(마드리드 기준)로 연기된 20라운드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이겨 커리어 첫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포르투갈,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그동안 감독을 맡았던 4개의 리그에서 모두 우승하였으며, 유럽 3대 빅리그를 모두 우승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리그 우승 행사에 입장하면서 선수들에 절을 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우승에 대한 공을 선수들에게 돌리고 싶었던듯.

2012년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수페르 코파마저 우승하면서 포르투갈,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 4개 리그에서 리그, 리그컵, 슈퍼컵 등 가능한 타이틀을 모두 우승한 첫번째 감독이 되었다.

승점 100점 기록을 달성하며 우승으로 마친 11-12 시즌과는 달리 12-13 시즌에는 차츰 부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팀 내 내분을 조장하고 있다는 악소문이 돌게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스페인파와 非스페인파(호날두 등 포르투갈 선수들의 비중이 높다.)로 나뉘었을 때 포르투갈 선수들을 옹호했다는 것이다.

이 불화설은 이케르 카시야스가 12-13 시즌 개막 이후 최악의 폼을 보이자 보다 못한 무리뉴는 17라운드 말라가 전에서 카시야스를 벤치에 앉히고 서브 키퍼였던 안토니오 아단을 선발명단에 넣자 절정에 달했다. 이에 카시야스는 감독의 처사를 이해할 수는 없으나 그의 마음을 충족시켜 다음경기 선발명단에 뽑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페레즈 레알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는 모두 마르카의 악질적인 보도이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표하였고 주장단인 카시야스와 라모스 또한 무리뉴 감독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일단은 봉합하려고 하는 듯 하다.

페레즈는 무리뉴를 위해 클럽 레전드급인 발다노도 내치고 무리뉴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뉴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은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맘에 들지 않아도 대외적으로는 무리뉴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 페레즈는 자기에게서 클럽의 경영권을 뺏으려고 하는 세력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이 발언을 토대로 언론이 페레즈를 공격해야 하기 때문에 무리뉴를 집중해서 비난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불화설에 대해 카시야스의 여친인 사라 카르보네로가 자신이 진행하는 TV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레알 마드리드 드레싱 룸의 분위기는 절대로 좋지 않다. 선수들은 감독과 같은 의견을 공유하지 않고 있으며, 드레싱 룸 안에는 선수들끼리도 두 개의 파로 나뉘어져있다. 무리뉴가 시즌 끝까지 마드리드에 남아있을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지켜봐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현재 그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때 레알 마드리드는 코파 델 레이 4강 1차전 하루 전날이었고 상대는 바르셀로나였다. 당시 불화설 및 파벌설은 여론에서 잠잠해지고 있었는데, 무려 카시야스 여친이 엘 클라시코를 앞두고 하루 전에 불화설을 여론을 통해 주장해서, 레알마드리드의 팀 분위기를 해쳤다고 현지 및 국내 팬들에 의해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카시야스 또한 여친관리와, 여친에 의해 다시 떠오른 불화설에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오히려 여친 페이스북에 포스팅 된 불화설에 관련된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 불화설에 불을 지폈다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덧붙여 카시야스는 여친이 "호날두가 나한테 관심있어서 카시야스랑 사이 안좋아졌어." 라는 둥 안좋은 소리만 해대는데 쉴드치기에 바빴다.

이 사건에서 카시야스가 여친을 통해 레알마드리드의 락커룸 분위기 및 내부 사정을 언론에 알린 것이 드러나면서, 카시야스가 무리뉴가 말한 조직의 골칫거리(Black sheep, 검은양)가 아니냐라는 의견에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무리뉴는 이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에게 불화설을 일축하며 '선수단은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느 조직이나 그렇듯이 조직을 헤치는 3명의 조직의 골칫거리(Black sheep, 검은양)가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무리뉴와 카시야스 사이의 갈등은 거의 기정 사실화 되었다. 가뜩이나 역사상 최고의 바르샤를 상대하는데 감독과 주장의 싸움이라니 레알팬들 복장만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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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 vs 카시야스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카시야스파에는 라모스, 호날두, 페페 존ㄴ 세다... 등이 있고 친무리뉴파 선수로 알론소, 케디라, 외질 등이 있었다고 알려졌는데 '무리뉴는 아르벨로아를 박아둔 뒤 라인을 짠다.'고 불릴만큼 그가 아낀 알바로 아르벨로아가 같은 팀 팬들에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야당 대표'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열렬히 무리뉴를 지지했다. 무리뉴에 대한 아르벨로아의 인터뷰. [[1]] 카시야스와 아르벨로아는 원래 친한 사이였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대립하면서 카시야스가 포르투로 이적하기 직전까지도 냉전기를 겪었다. 무리뉴는 아르벨로아에 대해 "내가 감독 생활을 하며 가장 아꼈던 선수 중 하나. 그는 좋은 선수이자 이례적일 정도로 특별한 사람. 나의 제자이자 나의 친구이다." 라고 말했고 2016년 아르벨로아가 고별전을 펼칠 때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엄청난 애정을 드러냈다. 덕분에 당시 카시야스보다 무리뉴를 지지한 팬들이 아르벨로아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코파 델 레이 4강 2차전에서도 바르샤를 만나고 바로 라 리가 엘 클라시코가 진행되는데다 그 다음에는 챔스 16강에서 맨유를 만나는 빡센 일정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축구협회에 공식적으로 일정 변경을 요청했다. 하지만 레알이 제시한 대안이 단순히 바르샤가 양보를 하는 게 아니라 데포르티보나 세비야도 일정을 변경하는, 많은 팀들이 개입되는 안이기 때문에 변경될지는 미지수. 게다가 이전에 무리뉴가 바르샤를 겨냥하여 "경기 일정에서 항상 이득을 보는 팀이 있다. 축구협회의 비호를 받는 팀이 있다."고 바르샤와 축협 둘 다 엿먹인 이야기한 전적이 있어서 괘씸해서라도 변경은 힘들 것 같다는 예측이 대다수이다. 라리가 22라운드 그라나다전에서 호날두의 자책골로 패배하자, "한 가지는 명확하고, 그리고 그 한 가지는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똑같다. 팀은 일정 조정을 할만한 힘도 없고, 요청을 해도 수락되지 않는다. 수요일 날 두 팀은 힘들고 큰 경기를 했다. 하지만 그 중 한 팀은 2일을 쉬고 토요일 날 바로 경기를 했고, 다른 팀은 3일을 쉬고 일요일 날 경기를 앞두고 있다. 언제나 이러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일정에 대한 불만을 또 다시 표출했다.

그 빡센 일정사이에서 엘클라시코를 코파 1차전에선 비겼고 레알에겐 바르샤만큼이나 지옥같은 원정인 리아소르 원정에서도 2진으로 원정에서 이겼으며 코파 2차전에선 누캄프에서 바르셀로나를 3:1로 탈탈탈 털어버렸고 수비진을 제외하면 완벽하게 2진이 선발로 나왔던 리그 엘클에서 사비를 제외하곤 주전으로 나온 바르샤를 2:1로 털어 엘클 2연승을 올리더니 OT원정에서 뛰어난 전술로 맨유를 이기고 팀을 8강에 진출시켰다.

챔스 4강에서 도르트문트에게 도합 4-3의 스코어로 패배, 다시 현지팬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2013년 5월 3일에 무리뉴가 연봉 1000만 파운드(한화로 약 17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3년 계약을 맺어 첼시로 돌아온다고 하였다...! 하지만 영국 언론의 추측성 기사인 점을 감안할 때 아직 확정적이라고 말하기는 이를 듯.

말라가 전 기자회견에서 "마드리드에 남을 것입니다" 라고 선언. 이케르 카시야스와의 문제는 디에고 로페즈의 좋은 폼과 공중볼에 강한 플레잉 스타일을 언급하면서 팀의 스타팅 멤버 권한은 자신에게 있고 철저한 분석끝에 결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페페와의 문제는 19살에 불과한 라파엘 바란에 의해 주전 입지가 위협받는 것에 대한 당혹감이라고 말했다. 여하튼 카시야스 때문인지 스페인 언론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감독의 고유 권한인 선발 멤버 결정에 간섭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무리뉴는 그것을 향한 불만을 주로 표출했으며 설명 과정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전임 감독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케르는 감독으로써 나에 비해 페예그리니를 선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디에고 로페스를 카시야스에 비해 선호한다. 내가 감독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일 것이다."와 "모든 인간들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다. 이케르 또한 델 보스케나 페예그리니가 감독으로써 더 좋다는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이다.

에스파뇰과 무승부를 거두며 바르셀로나에 리그 우승을 넘겨주었고,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AT 마드리드에게 2-1 역전패를 당하며 무관 확정. 망했어요 사실상 레알 잔류는 힘들게 되었다. 마르카, AS 등 현지 언론들은 다음주 중으로 무리뉴와 레알이 결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5월 20일, 레알 마드리드는 무리뉴와의 계약을 상호 해지한다고 발표했다. 상호 해지 후 인터뷰에서 무리뉴는 앞서 말한 카시야스와 불화설에 대해서, 카시야스와는 아무 갈등이 없었고 호날두와 전술상의 의견차이로 아주 사소한 갈등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38라운드 오사수나 전에 앞서 서로 이별의 포옹을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고, 후에 호날두가 2013년 발롱도르 후보에 오를 때, 무리뉴가 호날두는 내가 지도한 선수 중 가장 프로이며 최고의 선수라고 지지발언을 했다.
뒤에 호날두가 '무리뉴와 관계를 안 좋은 감정을 가졌을 때가 분명히 있었으나 그 시기는 서로 넘겼다.' 라고 발언을 한 것을 보며 서로 감정 상했을 때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이나 앙금이 남아있진 않은 것 같다. 반면 카시야스는 여러 정황과 당시 주변인물들의 증언을 볼 때, 카시야스와 무리뉴의 갈등은 사실이었으며 꽤나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카시야스는 무리뉴가 해임 되고 안첼로티가 부임하자 "무리뉴보다는 안첼로티, 그는 선수 출신이라 선수들을 잘 이해해." 라고 간접적인 디스를 날렸었다. 지금까지도 무리뉴의 팬들은 카시야스를 매우 싫어하며, 카시야스 팬들 역시 마찬가지다. 친무리뉴=반카시야스, 반무리뉴=친카시야스가 정설.

2016년, 페레즈가 안첼로티 해임 이후 무리뉴 리턴을 계획했었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무리뉴는 "카시야스, 라모스, 호날두가 나가지 않는 이상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에 언급한 검은 양 3마리는...

3.5 다시 첼시로 복귀


Happy One으로 돌아오다Unhappy One으로 나가다

무리뉴의 감독 인생 최악의 실패이자 실수
자신이 사랑하는 클럽에서 2번의 경질을 맛보다

2013년 5월 20일 상호 해지 발표 이후, 많은 이적설이 떠돌았으나 첼시로 복귀한다는 루머가 가장 유력하게 들려왔다. 로만과의 관계가 어떤지에 따라 달라질 거라는 팬들의 추측이 있었으나 그 모든 추측을 뒤로한 채 2013년 6월 2일 월요일 부로 첼시와 4년 계약을 맺고 첼시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소식 단 하나만으로 온갖 축구 팬사이트들이 들썩였다. 퍼거슨 경의 은퇴와 아스날을 제외한 강팀 셋의 감독이 모두 바뀐 13-14 시즌 EPL의 판도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커진 것. 무리뉴는 첼시에 처음 왔을 때 자신을 스페셜 원이라고 칭하며 상당히 거만하고 독창적인 첫번째 첼시 감독으로서의 인터뷰를 했을 때와는 다르게 좀더 차분해지고 겸손한 태도로 첼시 감독 선임으로써의 소감을 밝혔으며, 스페셜 원이 아니라 나는 여러분 중 한명이다(I'm one of you), 나는 행복한 사람(Happy one)이다. 여러분 또한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겠다 라는 발언을 했다. 아무래도 정말로 첼시로 돌아오고 싶었던 모양이다. 보통 감독이 한 팀을 떠난 후에도 그 팀에 애정을 보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또 감독으로 재선임되는 경우는 이례적인 경우 중 하나기 때문에 첼시 팬들의 감회가 남다를 듯 하다. 다른 어중이떠중이 감독도 아닌, 비록 레알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인 무리뉴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13-14 시즌을 앞둔 프리시즌 인터뷰에서, 올 시즌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10년 정도 첼시에 머물 계획이라고 밝혔다.드디어 1시즌마다 갈아치우는게 끝났다 그의 13-14 시즌의 목표는 팀의 조직력을 기르는 것, 팀에 자신의 빛깔을 입히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10년을 계획하고 첼시를 리빌딩하는 것 이었다.

한편 ESPN과의 보도에서 브라질의 호나우두를 언급할 때 '크리스티아누 말고, '진짜(Real)' 호나우두' 라고 언급하며 잠시 논란이 되었다.[18]

13-14 시즌 맨유와의 리그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본인의 EPL 100승을 142경기만에 달성(물론 이전에 첼시에 있었던 때의 기록까지 포함한 것이다)하면서 EPL 최소 경기 100승 기록을 달성했다. 참고로 2위가 알렉스 퍼거슨의 162경기.

무기력하게 우승권 경쟁에서 탈락하던 이전 시즌들과 달리, 시즌 절반이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1위팀과 2점차이의 맹추격을 하고 있으며, 역시 첼시는 무리뉴, 무리뉴는 첼시라는 말을 듣고 있다. 잦은 감독교체로 인해 지나치게 비대해진 팀 스쿼드 또한 정리하고 있는데, 2시즌 동안 팀의 에이스 노릇을 했던 후안 마타를 맨유로 이적시키고 케빈 더 브라위너, 마이클 에시엔 등을 내보내며 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토레스는 여전히...

그러나 주변의 평가와는 다르게 본인은 '첼시의 목표는 4위권 진입이다' 라고 계속 언급하는 것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13-14 시즌은 과도기 정도로 여기는 모양인 듯. 다만 이것도 무리뉴의 언플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선두를 유지하다 아스톤 빌라, 크리스탈 팰리스 전에서 뜻밖의 패를 당하고 난 다음에는 '리그 우승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인터뷰를 했다.[기사]

13-14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막강 화력을 자랑하는 PSG를 만나 1차전 파리 원정 경기에서 3대1로 무기력하게 패하며 팀의 완성도나 경기력, 폼을 비교했을 때 첼시는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일주일 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후반 86분 장군님의 골로 2대0으로 승리를 따내며 원정다득점 룰로 첼시를 기어이 챔스 4강에 올려놨다.

두 번째 골이 86분 경에 극적으로 터졌는데, 흥분해서 세레모니하는 선수들에게 급하게 뛰어가서 선수들을 하나 하나 붙잡고 전술 변경을 지시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로써 무리뉴는 커리어 5년 연속 챔스 4강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8회) 감독으로 등극하였다. 무리뉴가 FC 포르투 감독으로 부임하여 본격적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게 12년 정도 되었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5년간 맡아왔던 팀들이 인테르 밀란 - 레알 마드리드 - 첼시로, 리그와 클럽을 두 번이나 옮겨가며 이룬 성과다. 참고로 2위는 알렉스 퍼거슨(7회)이다.

13-14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만나 도합 3대1로 패배하며 13-14 챔스 성적은 4강에 그치게 되었다. 챔스 4강도 나름 훌륭한 성적이긴 하지만 6번째, 4년 연속으로 4강에서 미끄러지는 묘한 상황이다. 토에바데리고 4강이라니

스페인 마드리드를 연고로 하는 스포츠 신문인 마르카[19]는 무리뉴를 the semifinal one이라며 조소하였다. 결국 13-14 시즌 첼시는 승점 82점으로 리그 3위, 챔스 4강의 성적으로 마치며 무리뉴는 12-13 시즌에 이어 2번째로 커리어에 무관 시즌을 기록하게 되었다.

14-15 시즌은 무리뉴 2년차인데다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코스타와 파브레가스를 필두로 착실한 보강이 있었으니 기대해 봐도 좋을 듯. 여담으로 여름 이적시장 이후 묘하게 사기꾼 기믹이 붙고 있다.[20]

20라운드 토트넘 원정에서 해리 케인에게 완벽히 털리며 3-5로 패했고 노 로테이션의 한계를 보였다. 그로인해 바짝 추격해오던 맨시티와 승점과 득실까지 같아지는 선까지 갔었다. 하지만 이후 급부진한 맨시티와의 승점차를 7점까지 벌려내며 선두 자리를 유지. 역시 EPL

토트넘과의 리그컵 결승에서 커트 주마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용병술이 제대로 통하며 2대0으로 가볍게 승리를 따내며 리그컵 우승을 쟁취했다.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하였는데] 이 와중에 벵거가 까이고 있다. 2년 동안 무관인 무리뉴지만 9년간 무관인 벵거에 비하랴

챔스 16강 무대에서 지난 시즌 8강 상대였던 PSG를 만나서 원정에서 1-1, 홈에서 2-2로 2무를 거두며 탈락하였다.


리그 35라운드째에 총 25승 8무 2패를 거두며 2위와의 승점차를 16점까지 벌려내었고, 결국 5년만의 첼시의 EPL 우승을 확정지으며 더블을 달성했다.

2015-16 시즌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아스날에 0-1로 패하면서 벵거와의 맞대결 무패 행진이 깨졌다.

이후 첼시와의 4년 재계약에 합의, 2019년까지 계약을 연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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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계약 연장 이후 리그 첫 경기인 스완지 시티 AFC와의 경기에서 2-2로 비긴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에당 아자르가 애슐리 윌리엄스의 태클에 의해 필드 위에 쓰러지자 상태를 살피러 들어간 팀 닥터진의 행동에 상당히 분노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에바 카네이로와 물리치료사 Jon Fearn을 강력히 비판했고, 지난 수 년간 팀을 위해 헌신한 에바 카네이로 경기 중에 관여할 수 없게 하는, 회사로 치면 책상을 치우는것과 같은 행위를 했다.

데일리 메일 지에 따르면 이는 단순히 무리뉴의 화풀이가 아닌, 에바가 SNS에 올린 글 때문이라고 보도했으나 텔레그라프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무리뉴가 불공정하고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희생양을 만든것이라고 보도했다. 디에고 코스타의 햄스트링과 관련해서 메디컬 스탭들과 갈등이 있었다고 하지만 첼시의 메디컬 팀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우수한 실적을 내왔다.그러나 최근 축구계에서 가장 선구적인 여성 팀닥터로 꼽히며 동시에 팀을 위해 헌신해 국내/해외에 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는 에바 카네이로를 지위 확보를 위해 내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며, 앞으로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21]

무리뉴는 선수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피치 위로 들어갔다며 메디컬 팀을 비난했는데 비디오 분석 결과 아자르가 심판 마이클 올리버에게 메디컬 팀을 불러달라고 요청해서 카네이로가 들어갔었다. 때문에 프리미어리그 의사 협회는 카네이로는 적절한 절차에 따라 자신의 의무를 수행했다며 이례적으로 성명서를 발표, 무리뉴가 불공정하고 전례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성적 또한 무리뉴의 경력에 있어 최악을 달리며 현재 경질설까지 떠돌고있는 처참한 실정이다. 리그 초반 8경기에서 첼시는 2승 2무 4패를 기록하며 승점 8점만을 기록했다. 실점은 리그에서 두번째로 많다. 참고로 지난 시즌의 첼시는 리그에서 가장 적은 실점, 즉 스무번째로 많은 실점을 기록한 팀이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위상이 급추락한 것. 맨시티에서 0-3으로 완패하고 크리스털 팰리스를 상대론 굴욕적인 홈 패배를 당하며 위기론이 대두되었으나, 천적인 벵거를 클린시트로 무너뜨리고 코스타의 비매너 행위로 인한 가브리엘의 퇴장이 결정적이긴 했다. 챔스, 리그컵 대회 포함 3연승을 달리며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 허나 이같은 기회가 찾아오기 무섭게 리그 꼴찌 뉴캐슬을 상대로 겨우 무승부를 기록하며 다시 불안감을 조성하더니, 포르투 원정에서 1-2로 패하고 사우스햄튼을 상대로 또 한번 1-3 굴욕적인 홈 패배를 기록하면서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음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무리뉴는 지금까지 5시즌이 넘도록 첼시를 이끌며 리그에서 단 1번의 홈패배만을 기록했었다. 허나 이번 시즌에만 벌써 크리스탈 팰리스, 사우스햄튼, 전력상 첼시보다 아래로 평가받는 팀들을 상대로 2패를 당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온갖 구설수가 난자했던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조차 이렇게 축구를 못하진 않았기에 팬들은 그야말로 멘붕상태.

10월 31일 11라운드 리버풀전 홈경기에서도 1:3으로 패하며 현지에서는 경질설이 떠오르는 중. 세번째 골을 실점하고 일제히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팬들의 모습을 보면 팬들의 지지도 잃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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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포기하고 해탈한 듯한 저 표정
최근에는 경기중에 이러한 표정을 짓는 일이 굉장히 많아졌다. 감독생활중에 이렇게 최악인 상황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본인도 당황스러울듯 하다.

찌라시들에 따르면 11월 8일에 치뤄지는 스토크 시티 와의 경기에서 승패와 관계없이 경질된다고 한다. 그리고 에바 카네이로 전 첼시 팀닥터가 무리뉴에 대한 소송을 준비중인 와중 축협으로 부터 경기장 출입금지 징계 까지 받은 상황. 이론상으로 자신이 지휘하지 못하는 경기의 결과로 경질되고 고소미를 먹는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무리뉴 2기 전까지의 로만 구단주의 성향을 의식한 보도일 뿐이었으며 12월 현재까지 감독직 유지 중. 사실 현재 첼시의 문제가 세대 교체 & 여름이적시장 대처 실패와 안뛰는 선수들 인걸 생각하면 이전에 로만 구단주가 행했던 감독 내치기만으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긴 하다. 04/05 우승 멤버는 이제 존 테리만 남았고, 그 테리마저 부상과 노쇠화로 전력이 되어주지 못하는 판이라 사실상 구심점이 될 베테랑 선수를 선정하고, 새로운 영입이 절실한... 팀 리빌딩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쳐 날뛰는 코스타를 길들일 인간이 필요하다


3.6 첼시에서의 해임

2015년 8월 8일, 첼시 측은 2019년까지 무리뉴와 4년 감독 계약을 연장했다. [22]

15/16 시즌 들어 초반에 삐걱거리더니 7라운드까지 2승 2무 3패 8승점을 기록, 지난 시즌 통틀어 기록한 패배를 5경기만에 달성하며 17위를 찍고 말았다. 11라운드까지 3승 2무 6패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커리어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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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 표준시 기준, 2015년 12월 17일 오후 11시 55분, 첼시 FC는 무리뉴 감독을 해임하였다.[23]암온퐈 [기사] 계약 조항에 따라 위약금 대신 재취업 전까지 남은 계약기간동안 첼시측이 임금을 지급한다.

국내 시간으로 12월 20일, 첼시는 거스 히딩크를 무리뉴의 후임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계약 기간은 이번 시즌 말까지이며 지난 08-09 시즌에 이어 첼시의 2번째 구원 투수인 셈.

무리뉴는 경질 이후 휴식이 필요없다고 선언하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며 마찬가지로 갈수록 부진에 빠지며 최악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차기 행선지로 유력하게 떠오르는 중이다. 맨유팬들 : 우리무!또한 이미 한 번 맡은 적이 있는 레알 마드리드AS 로마도 거론되고 있다. 다만 레알은 차기 감독으로 지네딘 지단을 선임하면서 레알 복귀설은 없던 일이 되었다. 언론에 따르면 연봉 50% 삭감도 불사할 정도로 맨유 감독직에 강한 열망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 돈에 연연할 레벨은 벗어난 사람이지만 이건 아무래도 얼마 후에 있을 맨유와 첼시의 경기를 노리는 것 같다는 의견이 흥하는 중. 복수귀 맨유 구단 측은 주급 삭감에 대해 언급은 없었지만, 언행과 유소년 기용을 지킬 수 있는지를 중요시 여기는 것 같다.[기사]

무리뉴는 맨유의 계약에 거의 합의했고 구단주의 승락만이 남아져있다[*]는 기사도 나왔지만, 26일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에 구단주의 선택이 달렸다는 의견도 있다.그래 경기도 좋게 졌으니 어서 들어와

하지만, 이 기사가 나오고 2라운드가 지났지만, 맨유 보드진은 판 할로 계속 유임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판 할을 경질한다면 전임 감독인 데이비드 모예스처럼 또다시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라는 의견도 있다. 아직까지는 선수단과 보드진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24] 아직 챔스권 경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단 수뇌부들은 유임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팬이 암이 걸릴뿐이지

첼시가 히딩크 이후 순항중인 것으로 보아 그가 팀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선수단의 태업도 태업이지만[25] 분명 팀을 통제하지못하고 팀을 말아먹은 점은 큰 비판을 받아야한다. 다만 07/08시즌과 비슷하게 팀 보강의 필요성을 느낀 무리뉴가 영입을 요구한 선수는 사줄 생각도 없던 보드진이 더 큰 문제였던건 사실이며, 지지만 않을 뿐이지 비기는 경우가 많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전히 무기력하게 패하며, 모든 대회에서 떨어진 2016년 3월 현재는 무리뉴 잘못이 아니었구나 하는 의견이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 윌리안과 코스타, 쿠르트와를 제외하면 아직도 제 폼이라고 말할만한 선수는 없다. 올 시즌 부진했던 이바노비치의 경우 로만 구단주가 마음같아서는 모든 선수단을 갈아치우고 싶었을 것이고, 한 명이 모두 감당할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하며 감독은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였지만 일어서지 못한 선수들의 잘못임을 어느 정도 시인했다. [26]

또다시 무리뉴가 맨유행에 거의 근접했다는 기사가 났다, 하지만 기존에 보냈던 찌라시와 달리, [공신력이 있는 BBC에서 보도했다.] 마타야... 형이랑 큰그림 한번 그려볼래?
이번 시즌 끝나는대로 판 할 사임 아니면 경질을 시키고 다음 시즌 부터 부임한다는 것이다.[27] 무슨 말이 必要韓紙? 타팀팬들은 웁니다 텔레그레프, 미러, 데일리메일 등 복수의 외신에서도 친구들에게 이미 자기는 맨유 감독의 내정자며, 스쿼드와 전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루이 판 할 감독은 사실무근이라며 무리뉴 감독 부임 관련 소식에 대해서 부정했다.

이후 소식은 많이 잠잠해진 상태다. 경질 이후 언론 매체에서 맨유와 강력하게 연결되었지만, 철밥통 노인네가 도무지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그리고 시즌 막판 맨유는 챔스권 경쟁에서 탈락하며 리그 5위로 마치면서 판 할의 경질이 유력할 것으로 추측되었으며,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FA컵 결승전에서 맨유가 팰리스를 2-1로 꺾고 우승했는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BBC 등 주요 언론들은 무리뉴가 맨유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얼마 후, 루이 판 할이 경질되면서 사실상 확정. 다만 과거에도 발목을 잡았던 초상권 문제가 다시 발생하며 오피셜이 늦어지고 있는 상태. 5월 26일 초상권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었고 발표만 남았다면서 맨유행을 목전에 두었다.

3.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Is He the Chosen One?

생존이냐 퇴보냐?
무리뉴 커리어의 최대 고비.

무리뉴가 첼시에서 사임하자마자 맨유와 연결되고 있음이 언급되었다.

서로 리그에서 라이벌로 만났을 때 언론을 통해서 죽도록 싸웠지만 퍼거슨은 무리뉴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무리뉴도 퍼거슨이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그렇기에 맨유 팬들은 무리뉴에 대해 크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퍼거슨을 상대로 상대전적이 우위인 몇 안되는 감독이고 퍼거슨 이상의 언플 능력과 스타성을 가지고 있다는건 맨유 팬들도 인정하고 있었다. 무리뉴도 인터뷰를 통해 맨유 감독직에 관심이 있다는 반응을 보였고 맨유 이사진과 선수들 사이에도 무리뉴가 퍼거슨의 후계자로 오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한다.

2007년 첼시에서 중도 사임했을 때, 퍼거슨은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었고 무리뉴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 2008년 인터밀란의 감독으로 갔다.

두번째는 2013년에 레알에서 첼시로 돌아갈 때. 2014년 스페인 기자 디에고 토레스가 쓴 책에 따르면 무리뉴는 퍼거슨이 자신을 후계자로 선택할거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러나 알다시피 맨유는 퍼거슨의 후임으로 모예스를 선택하였고, 무리뉴는 첼시로 컴백했다. 후에 이야기에 따르면 무리뉴는는 배신감과 원망감에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또한 그 여파로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서 코파 델 레이도 집중하지 못했다고. 퍼거슨은 무리뉴를 후계자로 삼고 싶었으나, 모두가 알다시피 무리뉴는 레알 3년차일때 수많은 구설수를 만들어냈고 팀이 큰 변화를 겪는 시점에서 무리뉴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 맨유 보도진들은 안정적으로 에버튼을 운영해 온 데이비드 모예스를 선임하였다. 당시 안정성을 중요시 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퍼거슨 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길 등 맨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보드진들도 사임하였기 때문.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에서처럼 보드진과의 불화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한 맨유는 모예스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맨유는 멸망했다. 루이스 반갈이라는 스승의 부진을 지나 마침내 돌고 돌아 그에게 기회가 왔다.맨유 디스 안할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5월 27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주제 무리뉴 감독과 정식으로 계약을 완료하면서 맨유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음을 발표하였다. 계약 기간은 3년+연장 옵션으로 2020년까지 계약이 가능하다. [출처 : 맨유 공식 홈페이지]

MUTV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맨유는 자이언트 클럽이고 자이언트 클럽은 최고의 감독(Best manager)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난 준비가 되어있다." 라는 말을 하며 특유의 자신감을 드러내었다. 맨유팬들은 지난 3년을 잊어주고, 그 이전을 기억해달라면서 팬들을 달래주고, 자기가 했던 언행 중 하나를 인용해, 맨유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2016/17 여름 이적 시장에서 에리크 바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헨리크 미키타리안, 폴 포그바를 신속하게 폭풍 영입하며, 맨유와 무리뉴의 결합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28]재미있는 점은 그동안 감독을 맡았던 팀[29]에서는 자신이 소속된 조르제 멘데스 사단의 선수[30]을 주로 영입했다면 맨유에서는 미노 라이올라 사단의 선수 위주로 영입하고 있다. 즐라탄, 므키타리안, 포그바 모두 라이올라 사단이다.

8월 8일 커뮤니티 실드에서 레스터 시티 F.C.를 상대로 2 : 1 승리를 거두며, 맨유에서의 첫 트로피를 획득하며 훌륭한 출발을 보였다.

리그 개막전부터 헐시티와의 3라운드까지의 경기를 모두 승리를 거두며 맨유 역사상 첫 4경기를 모두 승리한 감독에 등극하였다!!

4연승 직후 펩 과르디올라에게 전술적으로 밀리면서 2:1패배, 유로파 리그에서 페예노르트 상대로 1:0패배,왓포드에게 3:1 패배를 당하면서 3연패를 달성하면서 팀은 30년만에 왓포드에게 패배하고 본인 커리어 중에서 14년만에 3연패를 하는 굴욕을 겪었다. 본인의 말로는 아직 선수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우습게도 왓포드 감독인 발테르 마차리는 세리에 아 시절, 인테르 감독이던 무리뉴랑 으르렁거려서 무리뉴가 "당나귀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봤자, 혈통 좋은 종마가 될 수는 없다"라고 까던 인물이다. 그래서 왓포드 팬들은 당나귀가 종마를 걷어차버렸다고 고소해하며 비웃었다.

이후 리그 경기에서는 레스터 시티를 홈에서 4:1로 압도했으나 리그 최하위권에서 고생하고 있던 스토크 시티에게 홈에서 1:1로 비겼다. 그나마 기세가 좋은 리버풀에게 원정에서 0:0 무승부를 거두고 유로파 조별리그에서 2연승을 거뒀지만, 리그 9라운드에 친정팀 첼시 원정에서 경기시작 30초만에 페드로 로드리게스에게 실점하는 어처구니없는 경기끝에 0:4 참패를 당하며 체면을 크게 구겼다.경기 직후 귓속말로 심경을 전달했다.

첼시전 다음에 있었던 리그컵 16강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홈에서 1:0으로 제압하며 8강에 진출했다. 경기가 끝나고 홈팬들에게 첼시전 참패를 사과하는 제스쳐를 보였다.

4 전술 스타일

강력한 수비, 신속한 역습, 철저한 균형

대체로 수비라인을 내리는 강력한 수비축구를 지향하나 수비 일변도 뿐만 아니라 중요한 타이밍 때 신속하게 역습하여 상대의 허를 찌르는 이탈리아식 선수비 후역습에 충실하다. 이런 방식의 축구로 인해 라인을 올려 속공을 하는 방법이 잘 듣지 않는다. 이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무리뉴식 전술이 들어간 팀의 구성이 수비수가 많은 데다 미드필더들도 수비에 잘 들어가서 상대방의 침투를 원천 봉쇄하여 상대방의 침투를 수적우위로 밀어 버려 공격수들의 침투가 극악하게 어렵다.

둘째, 만약 무리뉴가 지휘하는 팀이 수비로 상대의 침투를 막기만 하면 다행인데 축구가 막기만 하는 스포츠인가?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패스를 침투가 뛰어난 공격수에게 정확히 전달하면 라인을 올려서 생긴 뒷공간이 다 뚫려 상대 수비가 말 그대로 초토화 된 모습을 볼 수 있고 골키퍼와 1대1 상황으로 넘어가 버렸다.

이런 이유로 인해 속공을 위해 라인을 올려 공격하는 전술을 쓴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바르샤의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 피본적이 엄청나게 많다. 아예 벵거의 아스날이 이긴 것은 첼시가 망가지기 시작한 2015/16시즌 커뮤니티쉴드뿐이다. 그나마도 첼시가 초토화된 15/16시즌이 시작한 직후에는 아예 이기지를 못했다.

라인을 내려 역습하는 방법 외에도 팀의 전체적 밸런스를 중시하는 모습도 보인다.

또한 수비축구, 버스전술만 쓴다는 비판과는 달리 무리뉴가 맡은 팀의 득점은 항상 리그 3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31]15/16 첼시 제외하고 한준희 해설위원이 무리뉴 감독에 대한 편견에 대해 원투펀치에서 반론한 적이 있다. 안티풋볼에 대한 이미지가 박힌 것은 챔피언스리그 4강이나 결승, 컵 대회 결승, 리그 우승을 가리는 중요한 경기 등에서 지나칠 정도로 수비-역습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그런 인식이 생긴 것이다.

다만, 점유, 부분전술, 그리고 압박이라는 키워드가 대두되고 있는 현대 축구의 흐름 속에서 과연 무리뉴의 전술이 대세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는가는 질문은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다. 이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21세기 축구에 한 흐름을 만들어낸 펩 과르디올라부터 최근에 들어 많은 각광을 받고있는 디에고 시메오네, 위르겐 클롭 그리고 토마스 투헬 등의 전술적 역량과 무리뉴의 그것을 비교해 볼 때 무리뉴의 전술은 좋게 말하면 직선적이지만 나쁘게 표현하자면 피지컬과 라인 내린후 역습 한방에 의존하는 단순한 전술이라는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은 무리뉴의 첼시 2기에 팀을 강등권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이끌고 나서 경질되고,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부임했지만 좋지 않은 경기력이 지속되면서 더더욱 부각되고 있다. 최근에는 카펠로처럼 위대한 10년이후에 무너지는 테크를 타는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여러모로, 이번 맨유에서 성적이 그의 커리어에 큰 분기점이 될 것이다.

5 특징

5.1 독설 및 논란

항목이 길어져 따로 분리하였다. 주제 무리뉴/독설 및 논란 항목 참조.

5.2 무리뉴 2년차


현재까지의 무리뉴 2년차 커리어에 우승한 트로피 리스트. 총 5번의 2년차 시즌을 겪으며 도합 12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무리뉴 2년차라는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무리뉴가 맡은지 2년차가 되는 팀은 그 해 시즌에 유독 뛰어난 퍼포먼스와 조직력을 보여주며 우승컵을 여럿 들어올리는 특별한 징크스가 존재한다. 인테르 시절 트레블도 2년차에 이룬 성과고, 무엇보다 유럽에서 4개국, 4개 리그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팀들의 감독을 맡아봤음에도 아직까지 무리뉴 2년차의 팀이 리그 우승을 놓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무리뉴 2년차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던 시기는 레알 마드리드 감독 2년차 시즌 무렵으로,[32] 11-12 시즌 전의 레알 팬들의 여론은 무리뉴는 2년차까지는 믿고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과 아무리 무리뉴라도 역대급 멤버진이라 칭송받는 바르셀로나를 제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 등으로 분분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탄탄한 조직력으로 완성된 팀의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에서 라 리가 역대 최다 승점인 100점 기록으로 기어이 리그 우승컵을 들었고, 수페르코파까지 우승하며 승승장구해오던 바르셀로나의 행진에 제동을 거는데 성공한다.

첼시에 복귀해서도 이것이 그대로 이어지는지 14-15 시즌 리그 11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하는 등 시즌 초중반부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중이다. 결국 14-15 시즌 3월 초에 캐피탈 원 컵을 제패했고, 리그에서도 35라운드에 2위와의 격차를 16점 차까지 벌려내는데 성공, 자력으로 우승을 미리 확정지으며 앞서 언급한 2년차 때 리그 우승을 거두는 징크스를 어김없이 이어나갔다.

그러나 일각에선 반대로 무리뉴 3년차라는 말 또한 있을 정도로 2년이 지난후 무리뉴가 감독으로 부임한 지 3년째가 되면 팀이 부진하는 양상을 보여 3년차 징크스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좋은 성적을 단기간에 거두기 위해서 주전 멤버들을 혹사시키고 유스 육성 등에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라는게 중론. 하지만 무리뉴의 커리어를 찬찬히 살펴보면 '무리뉴 3년차는 부진했다' 라고 명시할 정도로 부진했던 시즌은 두 번으로 첫 번째로 커리어 최초 무관의 수모[33]를 당했던 레알 마드리드 3년차와 두 번째로 리그 하위권까지 추락했던 첼시 2기 3년차다. 이전 팀인 포르투 3년차에는 리그 우승과 챔스 우승에다 FA컵 준우승이니 웬만한 빅클럽 잘나가는 시즌보다 낫다을 거머쥐었고, 첼시 1기 3년차에도 FA컵 우승과 칼링컵 우승에 리그 준우승, 챔스 4강을 찍으며 나쁘지 않은 시즌을 기록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확정짓기에는 애매한 징크스.

무엇보다 어느 나라 할것 없이 소위 빅클럽 감독들은 성적이 부진하면 바로 파리목숨이 되어 3년은 고사하고 2년째를 맞이하기도 힘들고, 1년차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사임하거나 해고되는 감독도 많은 상황에서 "징크스"를 논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클럽에서 여러 시즌을 보냈다는 점이 역으로 무리뉴의 커리어가 화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6 기타


05/06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받은 우승 메달을 관중석으로 던져버린 적이 있다. 이 메달은 경매에 붙여 한화로 약 3000만원에 거래되었다. 또한 발롱도르 감독상 트로피도 경매로 내놓았다고... 무리뉴는 우승으로 받은 부상품보다는 우승 그 자체에 더 만족하는 듯 하다. 연봉으로만 100억 이상을 받는데 돈이 필요해서 경매에 붙인 건 아닐테니까

첼시에서 감독을 할 때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어느 소년이 딸에게 "너네 아빠는 전혀 스페셜하지 않아"축알못라고 놀리자 바로 초등학교로 찾아가 그 소년의 귀를 잡아당겼다는 보도가 났었다. 신체적 접촉은 없었다고 결론이 났으나 혼내러 간건 확실하다고. 아무래도 자기때문에 괜히 딸까지 시비걸리니까 더 화가 난 모양.

헌데 2011년 10월에 그 동안 무리뉴가 가정형편 때문에 축구학교를 그만둘 지경에 처한 어린 학생들의 수업료를 남몰래 대신 납부해왔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무리뉴는 이 사실을 몰래 했지만 그 학교의 교장이 그의 자선을 널리 알리고 싶어했다고. 10명이 넘는 학생의 수업료를 대신 내왔고 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천만원에서 수백만원대의 금액이라고. 이 기사를 접한 국내의 해외축구팬들은 팬이든 적이든 일단 끌어모으는 무리뉴라면서 훈훈한 기사라는 반응을 보였다.

불성실한 선수를 매우 싫어하기로 유명하지만 유일하게 갱생하려고 정성을 쏟아부었던 선수가 있는데 그가 바로 아드리아누이다. 당시 인테르 구단주인 마시모 모라티의 신임과 기대가 있었다 해도 재능만큼은 확실한지라 포기하지 않고 갱생을 시키려고 죽을 똥 싸가면서 노력했지만 결과는 아시다시피 팀 무단이탈 및 은퇴뻥카로 되돌아 왔다. 훌리오 크루즈도 깽판을 부렸지만 이내 꼬리를 내리고 사과했다.

가족관계에서 매우 자식들을 아끼고 아내에게도 매우 약한듯. WWE 보러갔다가 딱 걸린적도 있고 항상 가족, 아내 이야기를 많이 한다.

게다가 인재를 보는 안목도 본좌급이라 2010년 월드컵이 끝나자 자신의 팀에 여러 선수들이 영입되었다. 무리뉴는 이 중 앙헬 디 마리아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디 마리아를 골라서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훈련을 매일 꾸준히 시켰다. 2012년 말에 레알 마드리드의 주요 수비수들이 부상을 당하자 무리뉴는 이 특별한 훈련의 성과물을 검증하기 위해 [디 마리아를 왼쪽 풀백]으로 집어넣고 도르트문트전에 출전시킨다는 언플을 하기도 했었다.[34] 이에 대해 디 마리아는 "팀에 기여할 수 있다면 어느 포지션도 고마운 마음으로 뛰겠다."고 밝혔다.

축구에도 농구처럼 작전타임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작전타임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감독이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경기 흐름을 읽고 끊임없이 수정해서 상황에 맞게 수정된 감독의 전술이 선수들 한명 한명에게 완전히 녹아들어가게 함으로서 축구의 질적 수준을 더욱 높이자는 취지"라 한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부 최전방 스트라이커들과 악연이 있다. 우선 척을 진 사이인 호르헤 발다노가 86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의 9번 롤이었고[35] 이후 첼시 FC에서 자신의 전술에 더 부합하는 디디에 드록바를 중용하기 위해 에르난 크레스포를 벤치로 보냈고, 결국 다시 인터밀란으로 되돌아갔다.[36] 다만 인테르에서 만난 디에고 밀리토는 그야말로 트레블의 주역이었고, 곤살로 이과인도 레알 시절 꽤 쏠쏠하게 써먹었기 때문에 그닥 들어맞는 말은 아니다. 특히 이과인은 10/11시즌 25경기 14골 6도움, 11/12시즌 54경기 26골 13도움 12/13시즌 44경기 18골 9도움으로 확실히 수준급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0/11시즌은 좀 덜 뛴 것 같아보이지만 부상을 입어 못 나온 것 뿐이다. 심지어 12/13시즌엔 맨유와의 챔스 16강 2차전, 도르트문트와의 4강 2차전 등 큰 경기에서는 이과인을 쓰기도 했다. 오히려 이과인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나폴리로 이적한 시즌은 무리뉴가 아닌 안첼로티 시절인 13/14시즌이다. 결론은 그냥 발다노하고만 사이가 안 좋은 것일뿐, 나머지 아르헨 스트라이커들과는 악연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앙숙인 아르센 벵거를 매우 잘 잡는다. 그것도 경기장 안과 밖 모두. 첼시 감독으로 복귀하고 시즌을 치루면서 선두를 질주중인데 우승 가능성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첼시는 우승 전력이 아니라며 엄살을 부렸는데, 벵거가 "자신의 팀이 우승 전력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공격하자 "벵거는 실패의 전문가다. 8년이나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지 못하다니, 내가 그랬다면 런던으로 다시 돌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되로 주고 말로 받네 반격해버렸다. [37] 둘 간의 맞대결은 무리뉴 입장에서 8승 6무 1패로 절대적인 우세. 특히 2014년 3월 22일 경기는 벵거의 감독 통산 1000번째 경기라는 기념비적인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6:0으로 압살했다.


14-15 시즌 아스날과의 홈경기 도중 그 동안 무리뉴에게 매번 경기에서 당하기만 한 벵거와 논쟁이 벌어졌고 그에게 1밀침을 당해 화제가 되었다. 경기는 첼시의 2-0 승리로 끝났고, 무리뉴는 그 동안 자신이 많은 잘못된 행동들을 해왔어도 이번 건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벵거도 추후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시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있으며, 이를 사과한다고 언급했다. [기사]

주로 디스로 점철되는 언론에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장난끼가 많고 인간적인 면모가 넘치는 편이다.

첼시 재직 시절 현지 TV 패널들의 성향에 대한 불만을 장난식으로 토로하는 영상



기자회견 도중 빵 터진 무리뉴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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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 난입하며 장난치는 무리뉴 [#]

[[2]]
무리뉴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영상 중 하나로 암투병을 했던 기자가 돌아왔을 때 그 기자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하는 영상이다. 기자에게 이제 몸은 괜찮냐고 하면서 서로 안부를 묻는다. EPL 에서 언론하고 티격태격 하는 이미지이지만 은근히 친한 기자들이 상당히 많다.

[첼시 1기 때 EPL에서 가장 싸우고 싶지 않은 감독으로 샘 알라다이스를 꼽은 적이 있다.] 워낙 거구로 유명한 감독이어서 장난식으로 지명한듯. 하지만 첼시 2기 때 빅 샘의 우주방어에 무를 캐자 결국 선디스를 시전했다

2014년 6월에 UNICEF 자선 축구 경기에 세계 올스타의 감독으로 나섰다. 상대는 샘 알라다이스가 이끄는 잉글랜드 올스타. 시즌 중에 빅 샘과 서로 디스전을 펼쳤어도 실제로는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 않은듯하다.



자선 경기 전 빅 샘의 엔트리를 엿듣다가 걸린 무리뉴


2014년 5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위치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인 파라다이스 카지노의 모델로 발탁되었다. 코트간지


2016년 기네스북 4가지 부문[38]에 이름이 등재되며 기네스북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기사 바로가기]


[2015년 GQ 편집자들이 뽑은 올해의 남자 특별상을 수상했다.] 무간지

2015년 12월 26일 영국 데일리익스프레스에서 로멜루 루카쿠의 인터뷰가 [기사]로 나왔다. 루카쿠는 그의 이적에 대해 무리뉴가 자신을 내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고싶은 마음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며, 무리뉴는 오히려 자신에게 행운을 빌어주었으므로 존경한다는 내용. 무리뉴가 그토록 까이는 이유들 중 하나가 케빈 더 브라위너로멜루 루카쿠등의 벤치멤버들을 내쫓았더니 펄펄 날아다닌다는 것인데, 루카쿠만큼은 내쫓은게 아닌 모양.

내청코에서 포스터로 등장한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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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보다시피 수트빨을 참 잘받는 남자다.오오 무간지 오오

FIFA 17에서 홍보모델로 발탁이 됐다. 처음 티저영상에서 나레이션을 했고, [E3 발표회에서 ~~난입~~출현했다.] 물론 대본이지만, 발표자가 무리뉴의 출현에 당황하는 모습에 백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하고 난 후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3달동안 꽤 활발하게 게시물을 올리다가 정규시즌 시작 직전에 인스타그램 중단을 선언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에 진지해질 필요성을 느꼈다고...[39]

7 어록

난 어릴 때부터 내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세계 최고가 되기로 결심했다. 매년 하루 한 시가 미래의 감독직을 위한 대비였다.
나를 주변에 널린 시시한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난 Special One이다.
중압감은 1등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2등이나 3등에게 오는 말이다.
축구에 관한 내 철학은 축구에는 오직 단 하나의 승자밖에 없다는 것이다. 2등은 꼴찌 중에 1등일 뿐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위선자가 돼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보다는 솔직한게 낫다. 나는 선수들에게 가는 압력을 덜어내기 위해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 뿐이다.
바르샤 기자 : 당신은 바르샤에서 통역관이나 했던 주제에 왜 이렇게 바르샤에 무례하느냐?
무리뉴 : 그때는 통역관이었지만 지금의 난 첼시의 감독이다. 그런데 내가 통역관에서 명문팀 감독이 될 동안 당신은 여전히 삼류 기자 나부랭이에 멈춰있다. 지금까지 뭐했나?

아스날은 훌륭한 선수와 훌륭한 감독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축구가 승리해야 하는 스포츠라는 것을 망각한 듯 하다. 첼시는 멋진 경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승리한다.
맨유 퍼거슨 감독이 이적시장에 거액을 쏟아붓는 첼시에 돈으론 성공을 살 수 없다고 비판하자 나도 퍼거슨의 말에 동의한다. 돈으로 챔피언이 될 수 없고 승리를 보장 받을수도 없다. 난 맨유의 10% 예산인 포르투를 이끌고 맨유를 박살냈다 그것이 그 증거다.
리버풀 팬들은 늘 첼시를 보고 역사가 없다며 조롱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 리버풀은 리버풀대로 역사가 있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있다.리버풀의 역사는 위대하고 나 역시 그들의 역사를 존중한다. 하지만 리버풀은 지난 17년간 리그 우승을 못했고, 반면 첼시는 지난 3년간 2번의 우승을 이루어냈다. 역사는 박물관에, 나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일한다.
고개를 들어라. 저 턱 밑까지 숨이 차도록 뛰어준 선수들에게 환호하라. 그들은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나에게 박수를 보내지 말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라. 그리고 기 죽지 말고 고개를 들어라.
무리뉴 : 압박감요? 무슨 압박감요?
기자 : 2게임 연속으로 진 것에 대해서요.
무리뉴 : 자녀에게 먹을 걸 사다줘야 하는데 돈이 전혀 없는, 전세계 수백만의 부모가 느끼는 것. 그런 걸 압박감이라고 합니다. 축구에선 없습니다.

두려운 것은 신 뿐이다. 축구에서 두려울 것이 뭐가 있나. 맨유보다 조류독감이 더 걱정이다.
팀이 이긴다면 그것은 선수들이 잘한 것이고, 팀이 진다면 그것은 내 전술이 잘못된 것이다.근데 패배 후 항상 남탓한다..
관중들을 돋구는건 4 : 0 이 아닌 1 : 0 일 때나 해라 굴욕적이니까-2016년 10월23일 첼시와의 원정 경기에서 4대0으로 패배 후 콩테에게 한 귓속말

8 기록

8.1 감독 기록

8.2 수상 기록

  •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2) : 2005, 2010
  • FIFA 올해의 감독 (1) : 2010
  • IFFHS 올해의 클럽 감독 (4) : 2004, 2005, 2010, 2012
  • 포르투갈 올해의 감독 (2) : 2002-03, 2003-04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감독 (3) : 2004-05, 2005-06, 2014-2015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3) : 2004년 11월, 2005년 1월, 2007년 3월
  • 이탈리아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2) : 2008-09, 2009-10
  • 알보 판치나 도르[43] (1) : 2009-10
  • 미구엘 트로피 (2) : 2010-11, 2011-12
  • UEFA 올해의 감독 (2) : 2002-03, 2003-04
  • UEFA 올해의 팀 (4) : 2003, 2004, 2005, 2010
  • 월드 사커 매거진 선정 올해의 감독 (3) : 2004, 2005, 2010
  • LPFP 어워드 올해의 해외팀 소속 포르투갈 감독 (2) : 2008-09, 2009-10
  • BBC 스포츠 올해의 감독 (1) : 2005
  • 가제차 스포츠 선정 올해의 스포츠 맨 (1) : 2010
  • 국제 스포츠 기자 협회 선정 올해의 감독 (1) : 2010
  • Prémio Prestígio Fernando Soromenho (1) : 2012
  • Football Extravaganza's League of Legends (1) : 2011
  • Globe Soccer Awards Best Coach of the Year (1) : 2012
  • Globe Soccer Awards Best Media Attraction in Football (1) : 2012
  • Portuguese Coach of the Century (1) : 2015
  1. 이름을 발음 그대로 한글로 옮기면 주제 모리뉴에서 Jos'É'로 "제"에 강세가 들어가, 강세가 없는 o는 약모음 u로 소리가 변해 주제가 되고, Mourinho에 있는 ou는 이중모음처럼 생겼지만 항상 ㅗ로 발음한다. 제목처럼 ou를 ㅜ로 발음하는건 오히려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도 조제 모리뉴지만 한국에서는 절대 이렇게 불리지 않는다. 언론이나 축구 팬들이 부르는 이름 중에는 모리뇨, 모링요, 모링유, 모링뇨, 모링뉴, 무링뉴, 무링유, 무링요, 무링뇨, 무리뇨, 무리뉴 등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영국에선 '조세 뭐뤼뇨'에 가깝게 불린다. 그딴 것 신경쓰지 않는다.
  2. 시즌 도중 부임
  3. 2007-08 시즌 도중 사임
  4. 2015-16 시즌 도중 성적 부진 및 선수단 장악 실패로 인한 상호 합의 계약 해지.
  5. 풋볼 매니저는 패키지 표지로 하관까지만 드러나는 축구감독 사진을 쓰는데, 2005 이후 꾸준히 무리뉴 스타일의 사진이었다가 2010 무렵부터 머리숱도 많이 부족하고 수염도 깎다 만것 같지만 수트빨은 쥑이는 사람사진으로 바뀌었다.
  6. 리그, FA컵, 슈퍼컵 등 각 리그 내에서 우승 가능한 모든 타이틀들을 획득했다.
  7. 무리뉴 앞에 있는 선수는 바르셀로나 시절의 루이스 피구. 펩 옆에 있는 선수는 현 바르셀로나 감독인 루이스 엔리케이다.
  8. 당시 벤피카 회장이었던 빌라리뉴는 다시 이 때로 돌아간다면 무리뉴와의 계약을 연장할 것이라고 회고했다. [##]
  9. 무패 우승을 달성했던 아스날보다도 더 많은 승점이다.
  10. 이때 수비자원은 부상으로 골골대던 파울로 페레이라, 셰브첸코 아니었으면 죽을뻔한 위기를 넘기고 병실에 있던 존 테리, 그리고 히카르도 카르발료, 애쉴리 콜, 15/16 시즌의 질로보지처럼 사놓고 계륵이 된 탈 벤 하임, 마지막으로 바르셀로나에서 데려온 벨레티 이렇게 단 5명만 가용자원이었고, 존 테리나 카르발료가 빠지는 날은..
  11. 2008년 중순
  12. 해당 기사 링크 : [무리뉴, 바르사 감독직 원했다...구단 부회장 밝혀]
  13. 전직 리버풀 감독 라파엘 베니테스는 빼고. 무직자 드립도 그렇고 베니테스가 퍼거슨에게 미운털은 단단히 박힌 듯.
  14. 직역하자면 그들이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는데 불편함이 없겠습니까?
  15. 기자 당신이 나에 대해 이상하게 기사 쓸거 아니까 난 대답 안할거야
  16. 무리뉴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이끌 것+전성기 바르샤를 왕좌에서 몰아낼 것+ 마드리디스타들의 영원한 소망인 라 데시마를 달성해야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러나 바르샤는 너무나 강한 적 이었고, 챔스 16강 징크스를 깨는데 성공했지만 4강에서 연달아 바르셀로나, 뮌헨, 도르트문트에게 패배하며 준결승을 넘지 못했다.리그와 코파 델레이를 따내기는 했으나 기대에는 못 미치는 활약으로 인해 사임했다. 그 대신 그가 남긴 유산을, 카를로 안첼로티가 완벽한 전술로 완성시키며 라 데시마를 달성하며 이루기는 했다.
  17. 발다노는 12-13 시즌이 끝나고 무리뉴가 레알마드리드와 상호간의 계약을 해지한 이후 곧 다시 레알 마드리드로 복귀한다. 사실 미리 정해져 있던 것이다. 그만큼 발다노의 비중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크다.
  18. 무리뉴는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이렇게 해명했다. 게르트 뮐러였을 경우 토마스 뮐러와 구분하기 위해 진짜(Real) 뮐러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진짜(Real)라고 말한 것은 앞서 선수생활을 한 선수를 지칭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나중에 2013년 발롱도르 후보에 호날두가 오르자, 호날두는 '내가 지도한 선수 중 가장 프로이며, 최고의 선수' 라고 말하며 지지한 것을 보아 그의 해명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말한 '진짜(Real)'라는 표현은 그 상황에서 적합한 표현이 아닐 뿐더러 오해의 소지를 살 만했다.
  19. 친-마드리드 성향의 스페인 스포츠 언론으로, 무리뉴를 싫어한다.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 재임 당시에도 그에 대한 좋지 않은 논조의 기사를 써 무리뉴를 매우 흔들었으며, 12-13 시즌 도중에는 무리뉴가 이번 시즌 종료 후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지 않으면 폐간하겠다라는 말까지 했었다. 심지어 그가 첼시로 떠났음에도 계속 그를 조롱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
  20. 다비드 루이스를 역대 수비수 최고 이적료를 받고 PSG로 이적시켰는데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월드컵에서 대형 사고를 치며 주가가 폭락했고, 로멜루 루카쿠를 에버턴 역대 최고 이적료를 받고 내보냈지만 막상 루카쿠가 돈값을 거의 못하며 부진의 늪에 빠졌다.
  21. 결국 에바 사건이 첼시의 부진과 무리뉴 경질의 시발점이 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22. 이 부분은 제법 많은 토론거리를 양산해냈다. 위약금만 500여억 원으로 사실상 무리뉴를 계속해서 믿어보겠다는 보드진의 생각으로 보인다.
  23. 형식은 상호계약해지다. 사실상 경질이 맞긴 하지만..
  24. 실제로 데 헤아나 루니등의 주축 선수들도 판 할을 지지한다는 인터뷰를 한다. 근데 데 헤아는 어떻게 봐도 레알로 튀려다가 수틀리니 태세전환한거로 밖에 안보인다
  25. 사실 유력 기자 맷 로의 폭로가 있긴 했지만, 정말 100% 태업이었는지 아닌지는 당사자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26. 기자들은 데일리 메일의 기사를 선수들이 나가야 했다는 식으로 오역했기에 팬 번역본으로 링크,
  27. 우드워드 단장 입장에서도 4500억이나 들이부었는데 자르면 이미 확정이지만 대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으므로 챔스권이라도 기원하면서 맡기는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28. 양반이 몇 시즌 전부터 각성하면서 선수영입을 매우 잘해주고 있다.에메날로 보고있나?
  29.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 첼시
  30. 대표적으로 파비오 코엔트랑, 히카르두 콰레스마, 디에고 코스타 등이 있다.
  31. 2년차 레알 마드리드 시절엔 100골 이상을 들이박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32. [무리뉴 2년차를 다룬 골닷컴 기사], [레알 마드리드 공식 홈페이지에도 올라왔다!!]
  33. 재직 기간이 1시즌 미만이었던 벤피카, 레이리아 시절 제외
  34. 이 경기에서 왼쪽 풀백 자리에 에시앙이 뛰면서 낚시임이 드러났다.
  35. 실제 등번호는 11번. 발다노와 10번 마라도나, 7번 부르차가는 당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 대표팀의 삼각편대였다.
  36. 다만 크레스포와 사이가 나쁘거나 한건 절대 아니다. 실제로 크레스포는 무리뉴에 대해 긍정적인 인터뷰를 많이 했고, 무리뉴도 레알 재직 시절 크레스포를 초청하여 경기 전 훈련을 함께 참관할 정도. [기사]
  37. 다만 벵거 본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영국 타블로이드가 그렇지 뭐
  38. EPL 역대 최고 승점 기록(95점), 한 시즌 최소 실점 기록(15실점), 최다 홈 무패행진(77경기), 최연소 챔스 100경기 달성(49세)
  39. 다만 완전히 중단한 것은 아니고 크리스마스 때 가족과 함께하는 사진으로 다시 찾아오겠다고 밝혔다. 물론 선수들은 자유다.
  40. 01/02 시즌 도중 부임
  41. 포르투갈 FA컵
  42. 2015년 12월 17일 성적부진으로 경질
  43. 이탈리아 축구협회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