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축구 관련 인물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부회장 | |
하비에르 아델마르 사네티 (Javier Adelmar Zanetti) | |
생년월일 | 1973년 8월 10일 |
국적 | 아르헨티나[1] |
출신지 | 부에노스아이레스 |
신체 조건 | 178cm, 75kg |
주로 쓰는 발 | 오른발 |
선수시절 등번호 | 4번 |
포지션 | 좌우 풀백 및 윙백, 중앙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2] |
프로입단 | 1991년 타예레스 입단 |
소속팀 | CA 타예레스 (1991 - 1992) CA 반필드 (1992 - 1995)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5 - 2014) |
프런트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부회장 (2014 - ) |
국가대표 | 143경기 또는 145경기 5골[3]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 |||||||||||
로베르토 아얄라 (2003~2007) | → | 하비에르 사네티 (2007~2008) | → |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2008~2011)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영구결번 |
No.4 |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오랜 기간 동안 없다고 안타까워하지 말라. 그대들에겐 그 어느 우승컵보다도 위대하고 빛나는 주장이 있지 않은가." - 프란츠 베켄바워[4]
1 소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철인
Il Capitano di Sempre
네라주리 군단의 영원한 캡틴, 큰형, 삼촌 혹은 아버지[5]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였고, 현재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부회장(Vice-President)이다. 밀란에 프랑코 바레시와 파올로 말디니로 이어지는 위대한 계보가 있었다면 인테르에는 주세페 베르고미와 하비에르 사네티가 있다. 국내팬들은 사주장이란 애칭으로 부른다.
어디에서나 좋은 움직임을 보이는 사네티를 처음 보는 초보 축구팬들은 사네티의 원래 포지션이 어디냐고 묻는다. 본래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이지만 마이콘과 산톤이 중용된 이후에는 왼쪽 풀백,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오른쪽 윙 등 최전방을 제외한 거의 모든 포지션에서 매 경기 나왔다.
2 클럽 경력
어린시절 벽돌공인 아버지를 도우며 학업과 축구를 병행했다. 어릴 때부터 다재다능하였다. 19세 때 CA 타예레스에 입단했고, 이듬해 아르헨티나 2부 리그의 CA 반필드로 이적해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하면서 점차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더. 그런 사네티를 눈여겨 보던 인테르의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의 적극적인 구애로 1995년 인테르에 입단한다.[6]전설의 시작
그때만 해도 아직 재능있는 젊은 선수 A 수준이었기에 입단 당시 잡음이 좀 있었지만, 사네티 자신이 이탈리아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고[7] 그라운드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게 된다.
이후 95년부터 2012년까지 주욱 인테르에서 활약해왔다. 1999년 인테르의 전설적인 수비수 주세페 베르고미로부터 주장 완장을 넘겨받은 이래 외국인 선수인 그가 인테르에서 거친 감독은 주제 무리뉴가 15번째, 라파엘 베니테스가 16번째, 레오나르두가 17번째, 가스페리니가 18번째,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가 19번째, 안드레아 스트라마초니가 20번째, 발테르 마차리가 21번째다.에라이 무리뉴 이후로 싸이클이 급격히 빨라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98년에 UEFA컵 결승전에서 결승골로 팀에 우승컵을 가져다준 이후 한동안 인테르나 사네티나 상복이 없었다. 이른바 7공주 시대 때도 호나우두, 크리스티안 비에리 등 주전 공격수들의 부상으로 울어야 했고, 챔스에서는 밀란과 달리 번번히 초반 탈락했다. 7공주 시대는 피오렌티나, 파르마, 라치오, 로마가 재정난으로 몰락하며 막을 내렸지만 인테르는 유벤투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가 좋은 조건으로 여러번 구애를 보냈다고 한다. 실제 2000년대 초반에 이적할 뻔하기도 했으나, 모라티 구단주의 간곡한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이후 칼초폴리로 인해 유벤투스가 몰락하고 인테르가 리그에서 독주하며 우승의 한을 풀었고,[8] 주제 무리뉴와 함께하며 그토록 바라던 빅이어도 들었으니 사네티와 인테르 모두에게 좋은 결정이었다.
평소 얌전하던 사람이 한번 미치면 어떻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예
동년배인 히바우두, 에드가 다비즈, 크리스티안 비에리, 로베르 피레스, 라이언 긱스같은 선수중에서 긱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노쇠화로 몰락하거나 하향세를 보인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라이언 긱스도 나이 들어 신체 능력이 떨어지며 준주전급 멤버로 돌아갔는데, 사네티는 그런 것조차 없어서 체력 소모가 가장 많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도 잘만 뛴다. 쉽게 말해 일반적으로 말하는 회춘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 매시즌 거의 전경기에 거의 풀타임으로 출장하며 리그 정상급 실력을 과시하는 것을 두고 회춘이라고 할수는 없잖은가?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도 그렇고 대부분은 사네티정도의 연배가 되면 피지컬적인 약점을 노련함으로 메꾸는데, 이 아저씨는 그런 것도 없다. 활동량, 순간속도, 주력 모두 전성기와 비교해서 큰 하락이 없다. 이쯤 되면 자기 관리도 자기 관리지만 엄청난 강골로 타고난 것. 사네티와 비슷한 연배로 육체적인 왕성함과 높은 클래스를 유지하는 선수는 브라질의 제 호베르투뿐이다. 그런데 얼굴만 봐서는 믿기지 않지만 사네티가 제 호베르투보다 한 살 더 많다.
12/13 시즌 들어서는 시즌 중반 후반 로스타임에 상대진영까지 전력질주 드리블로 돌파하는데에 30대 초반인 안토니오 카사노가 헉헉거리며 역습 스피드에 못 쫓아가는[9] 미친 노익장을 선보였다. 한국 나이로 40이 넘었는데...
롤모델이 철인 로타어 마테우스인데 이 사람(?)이라면 마테우스처럼 40살까지 무난히 뛸수 있지않을까? 선수 본인은 인테르에서 두번째 별은 달고[10] 은퇴해야겠다고 말 했는데, 인테르는 최소 2년은 사주장과 함께할 것이고 주세페 베르고미의 최다 출전 기록도 경신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자기보다 10살 어린 젊은이보다 젊어보이는 동안에[11], 머리스타일까지 몇년동안 똑같아서 차두리도 그렇듯이(?) 이 사람이 로봇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파문전사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언급한 강철체력과 더불어 이 점때문에 사주장을 슈퍼맨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그야말로 영웅은 노쇠 따원 안 한다네.
하지만 2010년말 근래 들어 가장 큰 고민이 뭐냐고 하니 탈모라고 한다. 머리가 몸보다 더 빨리 늙었다 팀 동료 디스
그리고 사네티는 40살때까지는 무조건 현역으로 축구선수를 하겠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이루어진다면 잘하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대표팀으로 활약하는 사네티의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2012년 4월 14일 세리에 A 57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파올로 말디니의 647경기, 잔루카 팔류카의 592경기에 이은 역대 3위의 기록.
2013년 2월 8일 세리에A 592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하며 공동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시각으로 2013년 4월 28일, 인테르의 부상병동 속에서도[12]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철인'은 팔레르모와의 리그 경기 중 아킬레스건 파열로 쓰러지며 6~9개월간 그라운드에 돌아올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이대로 커리어를 마감하는 게 아닌가 우려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본인은 "I will be back"을 천명했고, 결국 그 해 11월 10일에 리보르노와의 경기에서 후반 82분에 교체 투입되면서 복귀전을 치뤘다.
영원할 것만 같던 철인이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한다.
그간 이 선수가 인테르에서 남긴 기록들은 이렇다.
- - 인테르 역사상 최다 출장(858 경기)
- - 인테르 역사상 최다 수상(16 트로피)
- - 인테르 역사상 밀란 더비 최다 출장(47 경기)
- - 인테르 역사상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 출장(105 경기)
- - 인테르 역사상 세리에A와 코파 이탈리아, UEFA대회에 최다 출장
- - 세리에A 인테르 선수로 최다 연속 출장(137 경기)
- - 세리에A 외국인 최다 출장(615 경기)
- - 세리에A 외국인 최고 연령 출장(vs 라치오(2014.5.10), 40세 274일)
- -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 경기 주장 역임(82 경기)
- -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최다 경기 출장(143경기)
- - 클럽월드컵 최고 연령 득점(37세 127일)
2014년 5월 11일 리그 37라운드, SS 라치오 전에서 은퇴했다.
사네티의 은퇴 경기가 진행되던 도중 경기 후반에 그를 만나고자 경기장에 한 남성팬이 난입을 했었는데 경기의 흐름이 끊어지는것으로 인해 선수의 입장으로써 불쾌할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남성팬을 달래주면서 '자신이 직접' 경기장 바깥으로 에스코트해주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다시 한번 진짜 멘탈갑임을 인증했다.
[1]
그의 은퇴를 기념해 특별 제작한 주장 완장. 깨알같이 작은 글자들 속에는 지난 세월 사네티와 인터밀란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 전원의 이름이 들어있다.
THE RECORD MAN, JAVIER ZANETTI 4 EVER
3 국가 대표 경력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으로 처음 이름을 올렸지만 조 본프레레가 이끄는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탈락.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16강 잉글랜드 상대로 동점골을 넣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8강에서 거스 히딩크의 네덜란드를 만나 탈락. 그리고 2002년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항목에 잘 설명되어있다. 국가 경제가 파탄난 와중에 사비를 들여 힘들게 출전한 대회였으나 정말 안습한 월드컵이었다.
이후 06년 독일 월드컵, 10년 남아공 월드컵에는 최종 엔트리에 들지못하며 출전하지 못했다. 06년엔 호세 페케르만이 후안 파블로 소린을 밀어주기 위해 소린과 사이가 나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을 배척하느라 베론과 친한 사네티도 뽑지 않았던 것이며, 10년엔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캄비아소도 같이 안 뽑았단 점을 들어 마라도나가 나폴리 레전드라 안 뽑았단 설까지 나왔다. 어쨌건 2006년에는 박빙의 승부 끝에 승부차기에서 독일이 준결승에 진출한 것이고 2010년의 경우가 수비에 구멍이 되어 8강에서 독일에게 패했는데, 많은 팬들이 이때 사네티만 있었어도 라고 탄식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디에고 마라도나가 경질된 이후 후임으로 아르헨티나의 감독이 된 세르히오 바티스타와는 마음이 잘 맞아서 바티스타는 부임하자마자 사네티를 다시 국가대표에 캄비아소와 같이 가장 먼저 포함시켰다. 바티스타가 부임한 이후 사네티는 꾸준히 아르헨티나 A매치 출전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 엔트리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8강 탈락을 막지는 못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공수겸장 풀백.
커리어를 통틀어 풀백 포지션에서 1인자라고 할 만한 기간은 없었지만, 항상 정상급의 기량을 유지했던, 숨겨진 괴수.
커리어 그 자체가 전성기였던 선수.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에 고령에도 피지컬이 아주 좋아서 상대 공격수와의 몸싸움이나 속도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 그 수준은 리오넬 메시나 아르연 로번같은 초절정 드리블러들조차 쉽게 돌파하지 못할 정도. 그 전성기의 카카의 치달을 스피드만으로 쫓아가서 태클해 내는 장면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다만 티에리 앙리에게는 처절하게 털린 적이 있다.[14]
공격력도 준수한 편인데, 레프트백으로 나오는 경우에는 주로 수비적인 플레이를 하지만, 라이트백으로 나오는 경우에는 역대 사이드백들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힐 만한 단독 드리블 능력으로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카푸나 다니 아우베스처럼 날카로운 킥력까지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상대 좌측 수비진에 틈이 보인다 싶으면 슬금슬금 드리블을 하면서 올라가는데, 기술적으로 화려하진 않았지만, 강철 같은 몸을 활용해서 공을 지키고 수비들을 튕겨내며 전진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15] 그 덕에 나온 별명이 트랙터. 풀백으로서는 단연코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라고 할 만했다. 남미 최고가 못된 건 이 양반 때문에.. 90년대 밀라노 더비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 대부분의 팀에서 풀백의 공격 가담을 중시하기 시작한 최근에[16] 커리어를 쌓았다면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공격 재능을 만개하며 선수로서 좀 더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견해도 있다. 특히 공격 가담을 중시하는 풍조임에도 개인 전술만으로 상대 수비를 분쇄할 수 있는 선수는 여전히 많지 않기 때문에...물론 지금도 평판이 좋지만 묘하게 인품만 갖고 얘기가 나오는 형편이라
한편, 그는 2000년대 중후반 소속팀 인테르가 오른쪽에 마이콩을 영입한 후 수비수로서 입지가 좁아질 수 있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실제 그 당시에 이미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으므로 주전에서 밀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양새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오히려 중앙 미드필더로[17] 포지션을 바꾸어 출전했고 마이콩이 특유의 공격력을 마음껏 펼치려 오버래핑하면 사네티가 뒤를 받쳐 주는 형태로 플레이하면서 휼륭한 플레이를 펼쳤다. 이외에도 크리스티안 키부가 플레이에 기복이 심하고 부상도 자주 입었기 때문에 레프트백으로 경기에 출전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말년에는 다시 본포지션인 라이트백으로 돌아가기도.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꾸준함이다. 사네티의 플레이는 보지않고 나이만 본 사람들은 "세리에 A는 노땅들만 뛰니까 젊은 다른 선수들이 아니라 사네티 같은 늙은이가 나온다"고 폄하가기도 하지만, 사네티를 논할때 항상 나오는 말이 몇 년이 지났지만 거의 똑같다.라는 것이다.
5 멘탈갑을 넘어선 멘탈갓
프로 선수의 모범
이 사람을 설명할때 빼먹을 수 없는것이 바로 대인배, 군자의 마음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성인, 모범주장으로 멘탈 좋은 축구선수를 꼽으라고 하면 아는 사람은 모두가 사네티를 떠올릴 정도로 좋은 사람.
남성적인 카리스마로 이끌어가기 보다는 친절하고 세심하게 팀원들을 돌보는 타입이라 말디니나 토티에 비해 존재감이 옅어 보이지만 99년 주장완장을 찬 이후 단 한번의 반발도 없이 인테르 선수라면 누구나 사네티를 잘 따르는 것에서 그 위대한 리더쉽이 드러난다. 몇몇 문제아들은 좀 안 따르는 것같지만 이해가 안된다면 밑의 업적들을 보도록 하자.
- 주말마다 팀원들을 직접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 자리까지 준비.
- 선수 생활 대부분을 수비수로 뛰었음에도 레드 카드를 안 받은 시즌이 두 자릿수가 훌쩍 넘어감.
- 병결이나 국대 차출을 제외하고 훈련장 불참횟수 0회.
- 인테르 라이벌팬들이 뽑은 최고의 인기 선수 1위.[18]
- 매년 연봉의 30~40%를 기부. 아예 재단을 만들어서 기부하고 있다. 재단에 대해서는 후술.
- 마라도나가 마스체라노에게 주장 완장을 주자 분노한 팬들이 마스체라노의 차를 박살냄. 그러자 사네티가 마스체라노에게 새 차를 사줌. 그리고 A매치 끝날때 마다 마스체라노에게 문자를 보내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에이전트가 구단에 더 높은 주급을 요구하자, 에이전트를 직접 해고.
- 팀에 새로 이적해 온 선수가 있으면 출신국적을 불문하고 직접 발 벗고 뛰면서 팀 적응을 도와줌.[19]
- 발로텔리가 에투의 페널티킥을 차겠다고 떼쓰자 하프라인 뒤부터 뛰어와서 발로텔리의 손을 잡고 페널티박스 밖으로 끌어냄. 발로텔리는 사네티한테 불평하기는 커녕 순순히 따라나옴.
이게 제일 대단한거같다
페르난도 가고 등 뜻이 맞는 선수들과 합심하여 자선 경기를 자주 여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수익은 모두 기부한다. 애처가로도 유명하여서 19살때 만난 부인과 금실좋게 잘 살고 있다.
주제 무리뉴가 레알로 떠날 때 속이 넓기로 소문난 모라티 구단주도 너무 아쉬웠는지 불평을 했는데, 사네티는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 라고 아쉬워 하면서도 무리뉴의 결정을 존중해주자 라며 감독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베법사한테는 사네티마저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20] 첼시 FC가 15/16시즌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주제 무리뉴가 선수단의 태업으로 첼시를 떠나가는 상황에서 사네티의 리더쉽이 재평가되고 있다. 존 테리 보고있냐
언제는 지각한 동료들로부터 지각 벌금을 걷은 적이 있는데[21], 그 돈을 멕시코의 저항세력인 사파티스타로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들과 친선경기까지 할 뻔했으나 성사되진 못했다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디스라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22] 어쨌든 즐라탄의 말에 따르면 인테르 내에서는 용병 파벌이 있다고 한다. 워낙 인테르가 다국적 선수들의 집단이긴 하지만 세력이 큰 두 집단이 있는데 아르헨과 브라질이라고. 실제로 선수들 수도 얘네들이 제일 많고. 이들 때문에 다른 용병들이 불편해 한다. 그렇지만 어느 클럽이나 같은 국적출신의 선수들이 모이면 파벌은 형성될 수 있으며 20년 가까이 되는 인테르 생활 동안 선수들과의 관계에서 미미한 마찰조차 언론에 누설되지 않은 사네티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어보인다. 보드진이 병크를 터트린다면 몰라도 그렇기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전설의 나잡아바로 사건 때는 그조차도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6 은퇴 후
은퇴 후 곧바로 인테르 보드진에 합류하여, 인테르의 부회장으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또한 전설적인 풀백이자 구단주였던 지아친토 파케티의 3번 이후 두 번째로 인테르의 영구 결번 선수가 되는 영예를 누렸다. 국내 보도가 잘못되어 부회장 선임 직후 지정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는데 실제로는 곧바로 지정된 것은 아니고 1년 뒤에 정식으로 영구결번이 지정되었다. 그 사이 1년간 아무도 4번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 감히 누가 달았겠느냐만은
부회장이 된 이후에는 무난히 클럽을 잘 이끌고 있다. 토히르 회장은 이탈리아에 연고가 전혀 없고,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아서[23] 인테르의 일에만 전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부회장인 사네티가 클럽의 일상 업무들을 총괄해서 맡고 있는 상태.
얌마 너 그래갖고 나이 사십까지 축구할 수 있겠어?
요즘 애들은 너무 약해 빠졌단 말이야...
7 기타
정치적으로는 좌파로 알려져 있다. 상술했듯 사파티스타에 성금을 보내기도 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을 전해서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우리는 세계화가 이뤄지지 않은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이라 믿습니다. 또한 각자의 문화적 차이와 관습이 존중될 때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자기 뿌리를 지켜내고 이상을 위해 싸우는 당신들의 투쟁을 우리가 지지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기부 재단도 갖고 있는데 자신의 별명을 딴 PUPI 재단이다. 본래는 2001년 아르헨티나의 금융위기 이후 빈곤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돕기 위해 시작했으나 현재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활동한다. 돈만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매번 빠짐 없이 하고 아르헨티나에 돌아갈 때면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축구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테르에서 전세계의 축구 유망주 중 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을 대상으로 학업과 축구를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인테르 캠퍼스를 모라티 회장 시절부터 운영 중인데, 사네티가 부회장으로 부임한 이후 많은 관심을 보이는 분야 중 하나가 이 인테르 캠퍼스라고 한다.
UEFA 챔피언스 리그/2015-16 시즌 16강 대진 추첨자로 등장해 인테르의 레전드답게 유벤투스를 바이에른 뮌헨과(...), AS 로마를 레알 마드리드(...)와 붙여 버렸다. 덤으로 아스날 FC의 상대로 FC 바르셀로나를 뽑으며 레바뮌을 혼자 다 뽑는 후덜덜함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 팀들은 당연하게도 전부 광탈했다.[24] 웹툰 작가 와싯이 이를 보고 그린 작품이 몇 개 있다.
사신 사네티 벵거 : 나는 왜....
신계 브로커 사네티 다음은 나폴리를 노린다고 한다
또한 밀라노에서 식당도 운영한다. #
8 경력
-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5/95 - 2013/14)
- 이탈리아 세리에 A (5) : 2005/06, 2006/07, 2007/08, 2008/09, 2009/10
- 코파 이탈리아 (4) : 2004/05, 2005/06, 2009/10, 2010/1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4) : 2005, 2006, 2008, 2010
- UEFA 챔피언스리그 (1) : 2009/10
- UEFA 컵 (1) : 1997/98
- FIFA 클럽 월드 컵 (1) : 2010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 1995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준우승
- 1996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
- 1995 팬아메리칸 게임 은메달
-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준우승
- ↑ 이탈리아 이중 국적을 갖고 있다. 여담으로 아르헨티나의 국적법은 국적 포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 ↑ 마이콩이 있을 때에는 레프트백,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래도 그를 상징하는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이다.
- ↑ 출장 경기는 집계하는 곳마다 차이가 있으나, 어느 쪽이든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기록이다.
- ↑ 그리고 결국 그 주장은 만 36세의 나이에 팀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09/10시즌 인테르의 트레블을 이끌었다.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건 비밀 - ↑ 워낙 고령이다보니 20살 차이가 나는 선수들과도 같이 뛰는 경우가 있었다. 실제 그가 같이 뛰어본 선수 중 가장 나중에 태어난 선수가 마테오 코바치치와 인테르 유스 출신인 마르코 베나시인데, 코바치치는 94년 5월, 베나시는 94년 9월 출생으로 20년도 넘는 차이. 게다가 단순히 나이 때문만은 아니고 주장이라는 직책에서 풍겨 오는 이미지와는 달리 너무나도 자상한 인품으로 인해 모든 선수들에게 존경받아 생긴 칭호.
하지만 아드리아누나 발로텔리가 출동한다면 어떨까? - ↑ 모라티가 구단주로 부임한 후 처음으로 영입한 선수다.
- ↑ Zanetti란 성씨가 이탈리아의 성씨인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예를 들자면 인테르에서 같이 뛰었던 크리스티아노 차네티(Cristiano Zanetti)가 있고, 이탈리아의 유명 커피 브랜드 세가프레도(Segafredo Zanetti)도 있다) 사네티는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으로 이탈리아 여권을 인테르 입단시부터 보유하고 있었다. 사네티가 아니라 자네티라고 불러야 할지도(다만 이탈리아에서 z은 ㅊ에 가까운 발음이 되므로 이탈리아식으로 부른다면 차네티로 부르는 것이 맞다). 다만 사네티 본인은 '사네티'라고 불러주길 원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네티 라고 부르는 팬들도 많지만 정작 애칭으로는 '자주장'이 아닌 '사주장'으로 많이 불리니... 사실 생각해보면 독일계 성씨를 가졌다고 해서 하인츠라라고 부르지 않고 스페인어 발음으로 에인세라고 말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네티는 이탈리아계이지 이탈리아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영문 위키 백과의 발음 기호 역시 사네티에 가까운 쪽으로 표기하고 있다.
- ↑ 칼초폴리 이후를 기준으로 하면 레알의 리그 우승 횟수보다 인테르의 우승 횟수가 더 많다(....).
- ↑ 물론 카사노가 심장 수술로 인해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 하는 체력임을 감안해도…
- ↑ 세리에에선 10회 우승당 1개의 별이 달린다. 인테르는 18번 우승으로 별 하나.
- ↑ 인터밀란 시절 그의 얼굴 변화
대체 뭐가 변한 거지다르게 보면 어릴때부터 원래 좀 노안이기도.. - ↑ 사미르 한다노비치와 후안 제수스, 안드레아 라노키아를 제외한 주전, 준주전 전원이 병상에 누워 있다.
- ↑ by 와싯
- ↑ 앙리에게 털리는 장면을 최근 개리 네빌이 축구 프로그램에 출현하여 재조명하였는데,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오히려 매우 훌륭한 수비였다고 추켜세웠다. 공간을 내줌으로써 오히려 슈팅 각도를 좁혀, 골키퍼가 쉽게 방어할 수 있도록 짧은 시간안에 판단했다고, 다만 상대는 그 앙리인지라 그 와중에도 골을 기록했다
- ↑ 다만 안정성과 견실함을 기반으로 삼았고, 뛴 곳도 수비 안정성을 중시하던 세리에 A였기 때문에 공격 재능을 마음껏 펼쳐 봤다고 할 수는 없었다.
- ↑ 물론 이전에도 공격력 좋은 풀백들이 있었지만, 이건 어떤 전술적 흐름에 따른 것이었다기보다는 소수의 축복 받은 선수가 감독으로부터 그린라이트를 얻어 발휘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풀백하면 역시 체력과 수비력.
- ↑ 정확히는 4-3-1-2 포메이션의 오른쪽 미드필더.
- ↑ 인테르를 싫어하는 축빠들도 사네티만은 인정한다.
- ↑ 09/10시즌 새 얼굴들을 대거 영입한 인테르가 트레블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리뉴의 카리스마와 함께 사네티의 역할도 컸다. 디에고 밀리토는 사네티의 세심함 덕에 적응이 쉬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또한 나가토모 유토도 인테르 이적 초기에 사네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인터뷰 했으며 아드리아누가 각종 깽판과 우울증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던 시절엔 직접 막스웰과 함께 "아드리아누가 팀에 남아줬으면 좋겠다"라고 응원해주기도 하였다.
- ↑ 베니테스는 선수들과 교류하지 않기로 유명한 감독이다. 어찌나 심하면 소통 사망꾼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 게다가 자기 팀의 선수들은 잘 케어해주고 베니테스와는 차원이 다른 성과를 거둔 무리뉴와 비교하면 베니테스는 성과도 없고 오히려 구단과 다투면서 팀 케미를 망쳤다. 사네티가 디스할 정도면 말 다한 셈이다.
- ↑ 참고로 옛날에 라울 곤살레스는 니콜라 아넬카가 지각했을때, 아넬카의 물품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물론 이건 아넬카가 잘못하긴 했지만, 라울이 아넬카를 왕따시키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했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괜히 라커룸의 제왕 라울이 아니다? 아드리아누나 마리오 발로텔리 같은 놈들이라도 저런 짓을 할 사네티가 아니다.
- ↑ 외향적이고 거침없기로 유명하지만 언론 플레이를 즐기는 독설가이기도 하다. 이적 후에 꼭 한 마디씩 이전 팀에 대한 디스를 해 주곤 했다.
- ↑ 본인이 갖고 있는 회사도 있고, 미국에도 경영에 참여하는 스포츠 클럽들이 있어서 거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 ↑ 그나마 유벤투스는 연장까지 갈 정도로 꽤 접전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