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성요배

한자로는 宮城遥拝.

1 개요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신사 등지에서 일본제국 내외지 주민 및 외국 교포에게 강제로 도쿄황거를 향해 무슬림들이 메카에 하듯 절하도록 한 행위.왜슬람교[1]

신정이나 천장절[2] 등 일제시대의 주요 명절에 조선인들을 포함하여 온 국민에게 강요했으며, 특히 학생들에게는 매일 아침 조례 때 이를 행하게 하였다. 시기적으로는 국민들의 전의고취를 목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가장 극성이었으나, 패전 이후 사라졌다.

요배란 단어가 멀 요(遥)에 절 배(拝)를 써서 멀리서 절함을 가리킨다. 결국 궁성요배란 궁궐을 향해 멀리서 절한다는 뜻. 같은 뜻으로 황거요배(皇居遥拝)라고도 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동방요배(東方遥拝)라고도 부른다.

2 의의

하는 방법은 간단해서 덴노가 머무는 곳, 즉 황거(皇居)가 있는 방향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이는 최경례(사이케이레이, 最敬礼)를 취하면 된다. 덴노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는 공적 의례로, 기미가요, 일장기, 어진영[3] 등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일본과 그 영향권 안에 있는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됐다.

국가신토의 교리에 따라 일왕을 신으로 떠받드던 일제는 덴노의 황궁이 있는 도쿄를 신성한 곳으로 간주, 일본인들에게는 물론 식민지의 주민들에게도 이를 강요하였다. 하지만 압제자 군주에게 강제로 절하는 것에 대해 식민지 주민들은 당연히 매우 혐오하였다. 일본의 패전 이후에는 따로 금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3 유사 사례

만주국은 이와 유사하게 제궁요배를 실시하였다. 이는 만주국 황제 푸이가 살고 있는 황제의 궁성인 신징(장춘)으로 절을 올리도록 한 행위. 만주국에서는 이를 궁성요배와 병행했다. 동쪽에 절하고 북쪽에 절하고 정신 없었을 듯

고려조선에서도 망궐례(望闕禮)라고 해서 궁성요배와 비슷한 의례가 있었다. 궁궐(闕)을 바라보며(望) 하는 의례라는 뜻인데, 정식으로는 궐(闕)이라는 글자를 새긴 나무 패, 즉 궐패에 대고 절을 하였으나, 이런 패가 없을 경우 정말로 궁궐이 있는 쪽으로 절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궐(闕)이 아니라 전(殿)이라고 새긴 패(전패)를 사용하지만, 중국 황제를 대신하는 의미로 별도로 궐패를 만들어 안치하기도 했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전패를 없애고 대한제국 황제를 뜻하는 의미로 궐패를 사용하도록 명했다. 조선시대의 전패, 대한제국 시기의 궐패는 임금을 상징하므로, 이를 함부로 대하거나 파손할 경우 처벌을 받았다. 대한제국 시기에 궐패 대신 고종의 어진과 태극기로 망궐례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궁성요배와 다른 점은 모든 백성이 아니라 관리가 주로 한다는 것이다.음력 초하룻날과 보름, 임금과 중전의 생일, 그외 명절에 하였다. 고을 수령이 특별한 날에 백성들을 이끌고 하기도 했지만, 궁성요배처럼 모든 백성에게 요구하거나, 혹은 매일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관리조차도 매일 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정신나간 우익들은 한다고 카더라.

해방 이후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시 동방요배하듯 허리를 90도 숙여 태극기에 절하게 한(...) OME스러운 일이 있었다.
  1. 그러니까 조선에서는 동쪽을 보고 절을 하게 되지만, 미크로네시아를 비롯한 일본령 태평양 군도에서는 서쪽을 보고 절을 한다.
  2. 天長節. 황제의 생일을 가리키는 중국식 한자용어들 중 하나. 일제시대 일본에서는 천황의 생일이란 의미로 사용했다. 대한제국에서는 황제의 생일을 만수절이라 하였다.
  3. 덴노황후의 사진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일제강점기에 어느 일본인 교사는 학교에 불이 났을 때 어진영부터 챙기다가 못 나오고 죽은 사례도 있을 정도로, 어진영을 덴노 그 자신처럼 대하도록 가르치고 또 강요했다. 그리고 이 한심한 행태는 북한김일성 김정일 사진 모시는 것으로 고스란히 물려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