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가요

1 개요

기미가요(君が代, きみがよ)는 일본국가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말로 '우리 임금님의 치세'라고 불렸다. 키미다요 키미난다요가 아니다

일본 제국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옥음방송을 시작하기 전, NHK 아나운서의 '천황 폐하께서 말씀하십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온 후 이 곡이 흘러나온 뒤 전 세계에 공개적인 항복 선언을 했다.

2 탄생

기미가요도 한국의 애국가와 마찬가지로 가사가 먼저 나왔고, 나중에 곡이 붙었다. 가사는 913~914년에 편찬된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 수록된 단가 중 하나였다. 기미가요의 가사는 이후 천년에 가까운 긴 시간동안 사랑받으며 다양한 상황에서 불려졌다고 한다. 이 시기의 기미가요는 지금과는 달리 천황에 대한 노래가 아니었다. 고금화가집의 하가(賀歌) 부분에는 천황이 헨조 대사의 칠순을 축하하며 기미가요를 보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이다. 곡은 1880년에 지어졌다. 이후 국가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90년에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정식으로 국가로 제정되었다. 이 시기에 기미가요의 의미는 변화하여 천황예찬가로 자리잡는다. 현대 일본에서 기미가요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 노래가 사실 천황과는 아무 상관 없는 유행가였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별 상관 없는 모양.

최초 작곡자는 영국의 군악대장 윌리엄 펜튼으로 전해지지만 곡조가 너무 서양풍이고 위엄이 떨어진다며 퇴짜맞았다. 선율을 일본 정서에 맞게끔 다시 작곡한 이들은 메이지 덴노 집권 시기 궁내성 아악부의 음악인들이었던 오쿠 요시이사와 하야시 아키모리였다.[1] 오쿠와 하야시가 요나누키 음계[2]를 기반으로 만든 선율에 독일에서 초빙되어 군악대 양성을 담당하던 프란츠 에케르트[3]가 서양식 화음을 붙여 최종적인 형태로 만들었고 이것이 국가로 정식 승인되었다.

3 음악적 특징

아무래도 아악의 형태를 기본으로 만들다 보니 일본적인 느낌이 강하고 서양식 느낌이 약하다. 실제로 나가노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궁내청 아악부가 아악으로 기미가요를 연주했다.[4]

한편 요나누키 음계를 기반으로 만든 선율에 서양 화음을 끼워넣은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음악적인 시각에서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기미가요>를 들어보면 처음과 끝 두 마디는 화음 없이 그냥 주선율의 유니즌(동음)으로만 처리했는데 일본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외국인 에케르트가 서양 화성법의 논리만 가지고는 해당 마디들에 코드를 끼워넣을 수 없어서 썰렁하게 남겨놓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5] 어찌되었건 OECD 아니 올림픽 참가국 전체를 봐도 바로 그 나라 국가임을 알 수 있는 선율이기는 하다.

4 가사

君(きみ)が代(よ)は千代(ちよ)に八千代(やちよ)に
さざれ石(いし)のいわおとなりて
こけのむすまで
임금의 대는 천년만년[6]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7]
이끼가 낄 때까지

세줄 가량의 짧은 가사도, 멜로디도 실제로 들어보면 끝까지 안 부르고 중간에 멈춘 것 같다.

일본의 아이돌 마츠우라 아야가 부른 <기미가요> 동영상.[8]

가사에 천황을 찬양한다거나 하는 의미는 없다. 애초에 작자가 미상인지라 일본에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해석은 '君が代' 라는 부분. '君(그대)' 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에 따라 노래의 성격 자체가 바뀌기에 여러가지 설이 있다.

일단 상기된 가사의 해석상으로는 '君' 이 임금으로 되어있지만 사실 일본에서 君은 임금만을 가리키는 단어는 아니었다. 덴노를 가리키는 '大君(오오기미)' 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덴노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이 말은 점차 사용빈도가 줄게 되었고 이 노래가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헤이안 시대에 이르러서 君라는 단어는 단순히 경애하거나 친밀한 사람을 부르는 말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한때 덴노를 가리키던 大君가 겐지모노가타리에서는 여자 꼬시는 말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 또한 '君が代' 라는 가사도 고금화가집에 실린 원본의 가사인 '我が君' 가 후대에 들어 바뀐 것이다. 시대상을 감안하면 'Oh my baby' 라는 기름진 해석(...)도 가능한 셈.

덕분에 원래는 연인에게 바쳤던 사모곡이라는 설, 어르신에게 바치던 장수기원곡이라는 설, 주군(덴노)에게 바치는 곡이라는 설, 태평성대가 오래 가기를 기원하는 곡이라는 설, 심지어는 장례곡이었다는 설(...) 등 온갖 추측이 있다. 현재로선 연장자를 축하한다는 설이 유력하며, 기미가요의 원곡이라 할 수 있는 10세기 헤이안 시기 출간된 고킨와카슈 또한 덴노와 별 연관이 없다.

또한 후쿠오카 지방에 바위의 신을 모시는 시카우미 신사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기미가요와 가사가 거의 흡사한(게다가 풀 버전) 노래가 천여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서 기원은 이곳의 제사의식용 노래라는 설도 존재한다.

그 가사의 전문

君が代<だい>は 千代に八千代に さざれいしの いわおとなりてこけのむすまで
あれはや あれこそは 我君のみふねかや うつろうがせ身骸<みがい>に命<いのち> 千歳<せんざい>という
花こそ 咲いたる 沖の御津<おんづ>の汐早にはえたらむ釣尾<つるお>にくわざらむ 鯛は沖のむれんだいほや

志賀の浜 長きを見れば 幾世経らなむ 香椎路に向いたるあの吹上の浜 千代に八千代まで
今宵夜半につき給う 御船こそ たが御船ありけるよ あれはや あれこそは 阿曇の君のめし給う 御船になりけるよ
いるかよ いるか 汐早のいるか 磯良<いそら>が崎に 鯛釣るおきな

5 정치적 논란

기미가요에 대한 객관적 실체와 반응에 대해서 연구하는 목록.

일단 이 노래가 문제시 되는 이유는 욱일기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구 일제, 즉 전범의 상징이라는 것과 덴노에 대한 예찬가로 해석되는 것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조선총독부는 한국인들을 일본의 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위해 하루에 1번 이상, 또 각종 모임이나 학교 조회시간 때 일장기 게양과 경례 뒤에 반드시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일본의 가사인 기미가요를 당당히 불러야 한다는 것으로 일본에서는 학교 등에서 <기미가요>를 부르도록 해왔다.

일본에서 <기미가요>의 국가화와 제창은 1999년에 제정된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일본의 공식 국가가 된 이후부터다.

참고로 이 법령의 제정은 반대세력과 많은 대립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행사에서 일장기와 <기미가요> 제창을 의무화하고 있는 교육현장에서 일이 터지는 경우가 잦다.

<기미가요>의 국가 제정 초기에는 역사적 배경이나 좌익 계열 정치인들의 반대 등으로 일본 내에서도 '이걸 국가로 해도 좋은가' 라는 의견들이 있다. 나치식 경례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고 독일인의 노래 1절에 관한 논란과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2003년 10월부터 학교행사 때 국기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기는 비애국적 교사에게는 징계를 내리고 있다.

2011년 6월, 일본의 오사카 의회가 '기미가요' 재창시 교직원의 기립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조례를 통과시켰다.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어 기미가요가 공식국가가 된 후,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치고받는 유효한 떡밥이 되었다.

기미가요를 부른다고 해서 그 연예인들이 반드시 국수주의자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정치적인 풍조로 노래 부르기를 꺼린다든가 가사를 모른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일본 내에서도 국가로 자리를 잡았고, 위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예인들이 프로야구 개막식 등에서 <기미가요>를 부르는 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게다가 한국의 애국가와 같이 제창은 굳이 하지 않더라도 일본 국민 중에서 <기미가요>의 가사를 모른다는 소리를 했다가는 되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으며, 2000년도 후반 무렵부터 <기미가요>는 충분히 일본 내에서 국가로 확립된 상태이다. 슬슬 학교에서 <기미가요>를 국가로 제창하기 시작한 세대가 20대, 30대로 접어들면서 굳이 <기미가요>와 정치를 연관시키는 풍조도 2012년부터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반대로 일본에서 <기미가요>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자체가 이상한 것이 되어버린 것.

<기미가요>를 국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일본 국내에서도 갑론을박하고 있는데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긍정적인 의견
    • 국가(国歌)로서 불려져 왔던 메이지 시대부터의 전통을 중시해야 한다
    • 정치적 배경과는 상관이 없는 일본 풍의 곡이기에 국가로서 적합하다
    • 국민은 애국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기미가요>를 부름으로써 그 의식을 갖춘다
  • 부정적인 의견
    • 구 일본제국 시대 국가이기도 했으며 가사는 덴노 숭배의 의미가 강하다

또한 <기미가요>에 대한 대표적인 일본측 정치계 인사들의 의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년, 칸 나오토 전 일본 총리가 후생장관(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 장관에 해당)을 맡고 있던 시절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기미가요에 대해서 '좀 더 밝은 노래여도 좋을 것 같다. 가사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한 번 논의를 해보는 게 좋겠다' 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또한 2004년 도쿄에서 행해진 덴노와의 가든파티에 참석, 덴노와 담화 중 학교 현장에서의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에 대해서 '강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거 없다

리우 올림픽 폐막식때, 차기 하계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의 홍보공연에서 오프닝 음악으로 기미가요가 사용되어 국제적으로 공인된 일본의 국가(國歌)화가 되었다.그래도 우리나라에선 인정하지 않겠지

5.1 일본의 연예계의 기미가요 논란

동아시아권에서 인기 관리를 하고 싶은 연예인들이나 역사 쪽으로 일본에 부정적인 배경에서 태어난 연예인들(특히 오키나와 출신)은 <기미가요> 제창을 잘 하려 하지 않지만 일반적인 가수들은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다.

2008년에는 가수 각트아무로 나미에가 이 <기미가요> 제창 문제로 화제가 되었는데 둘 다 오키나와 출신이나 각트는 사랑의 노래라며 불렀고 아무로 나미에는 부르지 않았다. 특히나 각트가 욕 먹은 이유는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 왕국이라는 독립적인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으나 1609년에 사츠마 번(가고시마 현)의 침략으로 속국이 되었고, 1879년에 류큐 처분을 거쳐 일본의 영토가 된 경우라 일본 내에서도 깍두기 취급받는 지역 중 하나고 오키나와 내에서도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반감이 한국 못지않게 높기 때문이다.

6 대중문화에서의 기미가요

니코니코 조곡도 이러한 정치적 문제 때문에 문제가 된다. 드래곤 퀘스트 서곡과 파이널 판타지 주제가가 나오는 부분[9]에 이 노래의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는 여러가지 절묘한 테크닉으로 이를 피해 나간다.[10] 하츠네 미쿠를 이용한 한국어 버전 니코니코 조곡의 경우는 안익태애국가 가사와 이 노래의 가사를 번역한 가사를 반씩 넣었다. 이내의 한국어판은 아예 이 부분 가사를 도려냈다.

맨발의 겐에서도 나카오카 겐이 이 곡을 까는 장면이 나온다.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에서는 애국가와 섞어서 한일전 버전의 음악을 만들었다. 감상평은... 딱 한 번 사흘 정도 한 뒤 역사 속으로.

개그우먼 조혜련이 이 노래에다 박수를 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4년 10월 27일 JTBC 비정상회담에서 일본인 패널의 입장 장면에 기미가요를 BGM으로 내보내어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비정상회담 기미가요 삽입 사건 항목 참고.

7 기미가요 행진곡

일본 제국 시대에 실제 군가로 편곡된 바 있다. 행진곡풍의 반주에 기미가요의 가사와 멜로디를 삽입했다. 1절은 기미가요 원곡을 그대로 따라 부른다. 2,3절은 번역 추가바람.

가사 전문.

君が代は
千代に八千代に
細石の
巖となりて
苔の生すまで

來れや來れやいざ來れ
皇國を守れや諸共に
寄せ來る敵は多くとも
恐るる勿れ怖るるな
死すとも退く事勿れ
皇國の爲なり君の爲

君が代は
千尋の底の
細石の
鵜のゐる磯と
現るゝまで

8 관련영상

가사 자막만 나오고 연주만 나오는 영상 NHK에서 방송 끝날때쯤 볼 수 있다.

노래방판 기미가요

메이지시대 초기에 나온 초대 기미가요

기미가요의 하츠네 미쿠[11]

메이지시대 초기에 나온 기미가요의 하츠네 미쿠판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개막식 영상으로, 위에서 언급한 아악판 기미가요이다.
  1. 다만 이 새 <기미가요>를 공표할 때의 작곡자는 아키모리의 아버지로 궁내성 아악부를 총괄하던 하야시 히로모리로 되어있었다.
  2. ヨナ抜き/四七抜き. 서양 7음계 기준으로 4번째인 파(F)와 7번째인 시(B)가 빠진 형태의 5음계. 도-레-미-솔-라.
  3. 그는 이후 대한제국의 국가인 대한제국 애국가의 작곡을 담당했다.
  4. 애국가도 국악 연주 버전이 있긴 있다. 올림픽 같은 데서 연주를 안 해서 그렇지.
  5. 이러한 비판적 시각으로 유명한 이로 작곡가 겸 지휘자 아쿠타가와 야스시가 있다. 한국에도 <나의 음악 이야기>로 번역본이 나온 음악 에세이집에 두 차례나 언급하면서 깠을 정도.
  6. 원문은 보시다시피 직역할 경우 '천 대에 팔천 대에' 지만 이 단어를 검색해보면 '영원히' 의 옛날식 표현이다.
  7. '작은 조약돌이 뭉쳐져서 큰 바위를 이룰 시간만큼 오랜기간을 뜻한다.
  8. 일본프로야구 다이에와 오릭스의 대만 원정경기에서 부른 것.
  9. <니코니코 동화 중독자들에게 바치는 한 곡>.
  10. 주로 맨 앞의 '君(きみ)' 를 생략하거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서 그 언어를 쓰는 나라의 국가를 넣는다(예 : 영어성조기 or God save the Queen).
  11. 하츠네 미쿠판 기미가요는 유튜브와 니코동에서 '初音ミク 君が代' 라고 검색하면 여기에 올려져 있는 것 말고도 다양한 버전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