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전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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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px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의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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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해성고등학교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호남제일고등학교(* 전국단위 모집 고등학교)
파일:Uz0Fjep.png
교명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
한자紀全女子高等學校
영문Kijun High School
개교1900년
유형일반계 고등학교
성별여자
운영형태사립
소재지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홈페이지[1]

1 개요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紀全女子高等學校)는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사립 일반계 고등학교이다.

2 개교

1900년 4월 24일 개교했다.

3 연혁

  • 1900. 04. 24 - 미국 남장로교 최마태(Mattie Tate) 선교사가 여학생 6명으로 학교 시작
  • 1909. 07. 29 - 교명을 젼목사 긔렴여중학교(Junkin Memorial School for Girls)로 정함
  • 1910. 10. 03 - 지금의 예수병원 자리에 붉은 벽돌 서양식 2층 건물을 신축 이전
  • 1919. 03. 13 - 전주지역 3·1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함
  • 1930. 01. 24 -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
  • 1937. 10. 05 -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부하고 자진폐교
  • 1946. 11. 26 - 인문과 4년제 학교로 복교
  • 1956. 05. 26 - 화산동 1가 187 에 교사 신축 이전
  • 2005. 03. 03 - 효자동 3가 393 서부 신시가지로 신축 이전

4 교훈

교훈: 경천(敬天), 순결(純潔), 애인(愛人)

5 교가

추가바람

6 학교 상징

교목: 히말라야시다
교화: 아카시아

7 역사

1900년 미국 남장로교 최마태(Mattie Tate) 선교사가 여학생 6명을 교육하기 시작한 것이 학교의 모태이다. 1902년 9월 1일 미국 남장로교 여선교사 W. 전킨이 여자청년학교를 설립했고, 1907년 9월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 설립과 더불어 전주기전여학교로 개칭되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3.1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 등 반제국주의 및 민족주의적 교풍을 이어왔다. 결국 1937년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일제가 학교를 폐교하려 하자 자진 폐교신청을 하고 동년 10월 5일 학교를 자진 폐교하였다. 해방 이후 1946년 학교를 다시 열었고, 이 후 변동된 학제에 따라 중고를 분리하였다. 본래 지금의 예수병원 자리에 위치하였으나 1956년 전주신흥고등학교 옆으로 이전하였으며 다시 2005년 전주 서부 신시가지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8 졸업생

9 기타

9.1 학교위치

학교 위치가 3번 변했다. 처음에는 지금의 예수병원 자리에 위치한 서양식 건물에서 학교가 운영 되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학교가 잠시 폐교되었다가 해방 이 후 복교한 후 1956년 신흥고등학교 옆으로 이전하였다. 학교가 전주천변에 위치했는데 문제는 접근성이 무지 안좋았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인근 중화산동을 비롯한 완산구쪽에 거주하였는데 이 쪽에서 등교를 하는 경우 캠퍼스가 예수간호대와 신흥중고등학교에 둘러져있어서 학교를 한참 돌아서 들어가야 했고, 전주천 건너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은 직선거리는 가까우나 직선거리에 놓인 다리가 없어서 역시 학교를 돌아서 들어가야 했다. 눈 앞에 학교가 보이는데 지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그나마 나중에 전주천에 징검다리가 생기면서 전주천 건너편 학생들은 직선거리로 등교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악천후나 장마철만 되면 징검다리를 건널 수 없어 우회해서 등교해야 했다. 2005년 서부 신시가지로 학교가 이전하면서 이러한 모습은 추억으로 사라졌다. 대신이전 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이 매우 어려웠다. 이는 기전여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전주 서부 신시가지 전체의 문제였다. 10년 넘게 세월이 지나면서 이러한 불편함은 많이 사라졌으나 여전히 학교를 바로 연결하는 대중교통 수단은 조금 부족한 편이다.

9.2 학교 이전 문제

1990년대 말부터 학교 이전이 논의 되었다. 기전여고가 위치한 곳이 장소가 협소한데다 전주기전대학[1][2], 기전여고, 기전중학교[3]가 부지를 나눠 써야 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땅이 부족했다. 시설을 개선하고 늘리고 싶어도 학교를 위로 높이 쌓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기전여고가 이주 한 후의 일이지만 결국 기전대학교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기숙사를 전주천 건너에 지어야 했을 정도다. 이로 인해 기숙사에 사는 기전대 학생들은 지금도 전주천을 건너서 등교해야 한다. 이 처럼 협소한 부지 탓에 문제가 심각해지자 기전여고와 기전여중을 서부신시가지로 옮기고, 기전대가 남아있는 부지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계획이 잡혔다. 구체적으로는 기전대학이 소유 하고 있는 서부신시가지내 3만평의 땅과 기전여중·고가 중화산동에 당시 소유하고 있던 건물과 부지를 맞교환하는 방식이었다. 기전여중·고는 기전대학과 맞바꾼 3만평의 부지중 1만평을 학교 시설부지로 사용하고 나머지 2만평을 판 매각대금으로 학교건물신축비 140억원을 충당하려 하였으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땅을 처분하고도 90억 밖에 확보하지 못해서 이전이 지지부진 해졌다. 결과적으로 학교가 언제 이전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펼쳐졌고, 이에 따라 학생들과 학부모의 혼란이 가중 되었는데 근린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학교가 갑자기 이전되면 통학거리가 늘어나서 문제였고 이전부지 쪽에 사는 학생들은 언제 이전할지 모르는데 계속 장거리 통학을 해야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기전대학교에서 빨리 학교를 비워주라고 독촉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며 학교를 이전해야는 이유로 유지 보수마저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아 학교에 비가새고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지기 까지 했다. 당시 신문기사 제목이 "기전여고 거리에 나앉을 위기"였으니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결국 2004년 우여곡절 끝에 기전여중·고가 이전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되었으나 당시 학교를 다니던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1. 이하 기전대학교 또는 기전대로 표기한다.
  2. 당시에는 기전여자대학교였다.
  3. 당시에는 기전여자중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