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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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했던 해태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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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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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의 첫 로또포만루 홈런을 친 후.
NC 다이노스 No.27
이호준(李昊俊 / Ho-jun Lee)
생년월일1976년 2월 8일[1]
출신학교광주중앙초-충장중-광주일고
포지션투수[2] , 외야수[3] , 1루수 , 3루수[4] , 지명타자[5]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4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소속팀해태 타이거즈(1994 ~ 1999)
SK 와이번스(2000 ~ 2012)
NC 다이노스(2013 ~ 현재)
응원가SK 시절
Hep Stars- Speedy Gonzales[6][7]
현재
오기택 - 아빠의 청춘[8]
모차르트 세레나데 13번 제 1악장 [9]
2004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이호준(SK 와이번스)래리 서튼(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 등번호 17번
성영재(2000)이호준(2000-2001)안재만(2002)
SK 와이번스 등번호 27번
오승준(2001)이호준(2002~2012)백인식(2013.5)
김상현(2013~2014)
NC 다이노스 등번호 27번
김태우(2012)이호준(2013~ )현역
9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서재응(2013~2015)이호준(2016~)현직
SK 와이번스 역대 주장
김재현
(2010)
이호준
(2011)
박정권
(2012)
NC 다이노스 역대 주장
김동건
(2012)
이호준
(2013~2014)
이종욱
(2015~)
보유 기록
6회1경기 최다 볼넷 및 최다 연타석 볼넷[10][11]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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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홈런 4위의 베테랑 타자
NC 다이노스의 노장

해태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현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 선수로 주 포지션은 지명타자 겸 1루수.

2 상세

가장 널리 알려진 별명은 '로또준'. 부진할때라도 잊을만하면 가끔 터지는 홈런으로 인해 나온 별명.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34억짜리 경비원'[12]으로 불렸다. 팀에게 너무 피해를 주기에 또르노빌, 또쿠시마라고도 불렸으며, 워낙 SK 팬들의 애증의 대상으로 유명해서 야갤에서는 반어적 의미로 '씹솩의 소울'로 불렸다. 하지만 2012년 이후에는 팀에서 최정과 함께 거의 유일하게 쓸만한 타자가 되어버려서, 진심으로'SK의 쏘울'이 되었다.

NC 다이노스 이적 후에는 디시 엔갤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호부지'가 있다.# 호준+아부지라는데...젊은 타자들의 아버지 역할을 한데는 데서도 그렇지만, 가장이 그렇게 하듯 꾸역꾸역 타점 벌어다가 팀 먹여살리는 사람이라 그렇다나? 마침 응원가도 "아빠의 청춘"이다.

고졸신인으로 프로무대에 데뷔하였기 때문에 프로 경력이 굉장히 길다. 1994년에 투수로서 데뷔했으니 어느새 프로 23년차[13]로, 2016년 현재 KBO 리그에서 프로생활을 하는 선수 중 가장 먼저 데뷔한 선수. 가끔 야구 해설자들에게 1976년생 라인의 이승엽, 박진만, 임창용, 박정진 등과 동갑취급을 받을 때도 있지만 이호준은 빠른 76이기 때문에 이들보다 선배이다. 현역 선수 중 이호준과 같은 학번은 한화 이글스의 포수인 조인성(야구선수) 뿐. 이제 KBO에서 그보다 선배는 최영필, 이병규 뿐이며 프로선수 짬밥만 치면 최고(23년차)[14]다.

"인생은 이호준처럼" 이라는 말이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아래 참조.

3 프로 입단 과정

1993년 말에는 고졸 선수 스카웃을 둘러싸고 프로와 대학 간의 갈등이 극심했다. 동료 선수들과 함께 동국대학교로 진학하기로 되었던 주형광, 연세대학교에 가등록했다가 연세대의 일본 전훈 장소에 급파된 LG 스카우트와 계약한 김재현 등이 대표적이었지만, 김재현과 마찬가지로 연세대학교 가등록 상태였던 이호준 역시 만만치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고졸 선수 입단 교섭 마감일인 11월 15일[15]을 막 넘긴 가운데 해태 타이거즈 김경훈 스카우트가 연세대 숙소에 잠입해 계약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리고는 대학동창이 될뻔한 김재현에게 20-20가입을 도와준다 이러한 처사에 화가 난 각 대학 팀들은 프로와 대학 사이에서 진로 문제로 물의를 빚은 선수가 속한 고교 팀의 선수들을 사건이 발생한 시점부터 5년 동안 스카웃하지 않기로 결의했으나 이는 대학 팀들이 제 발목을 도끼로 자르는 격이어서 실질적으로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었고 1996년 말 프로 출신들에게 아마야구 지도자 자리가 정식으로 개방[16]되면서 사실상 폐기되었다.

중고교 야구부 시절부터 힘들다고 가출이나 합숙소 탈출 등을 자주 했다고 하는데, 이때의 버릇이 남은건지 아니면 프로로 오는 과정이 부드럽지 못해서였는지 몰라도 입단한지 얼마 안 되어 프로선수가 된 이후에조차[17] 어릴때처럼 계속 숙소를 나가고, 집을 나가고 하는 짓을 자주 했다고 한다.[18] 오죽하면 프로에서 별명이 빠삐용. 그렇게 10년 동안 부모 속을 썩인 결과, 직업도 경찰[19]이었고 동네에서도 성격 무서운 걸로 유명해서 어릴때 가출하고 돌아온 이호준을 야구 방망이로 패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다는[20] 그의 아버지가, 프로가 된지 한참 되어서도 적응을 못하고 수원의 한 중국집으로(?) 가출을 했다가 돌아온 이호준을 붙잡고 엉엉 울면서 "네가 애비한테 원하는게 뭐냐? 애비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냐"며 눈물로 호소하는 바람에 강해보이기만 하던 아버지의 약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겨우 반성했다고 한다.

4 해태 타이거즈 시절

선동열, 김기태, 이강철, 이종범, 염경엽등의 선수를 배출한 광주일고 출신으로 처음에는 해태 타이거즈투수였으나 방어율이 너무 처참한 데다[21] 부상까지 입으며 1996년에는 타자로 전향한다. 투수 시절 당시 LG 소속이었던 김재현에게 20홈런째를 허용, 20-20 기록 달성에 도움을 줬다(!). 그리고 김재현은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시킨 계기를 마련해 준 값이라며 이호준의 FA 계약금 일부를 내놓으라고 말한다. 타자로 전향한 첫해에도 딱히 돋보이는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1997년 김성한이 해태의 타격코치로 부임하면서 당시 유망주였던 장성호와 더불어 짬뽕한그릇으로 끼니를 떼우는 지옥훈련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1997년 많은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적은 타수에도 불구하고 홈런을 8개나 치면서 장성호와 더불어 전년도(96년)에 비해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였다.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했던 1998년에는 4번타자로 발돋움하며 팀내 성님[22]홍현우보다 뛰어난 .303에 19홈런 77타점을 기록. 1번타자로 .312에 15홈런을 기록한 장성호와 더불어 이종범이 떠난 타선의 중추노릇을 했다. 당시 해태는 투수력은 좋았지만 타선이 부진해서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팀은 5위로 14년연속 4강에 실패한다.[23] 당시 무등아재들은 이종범 만큼 화려하지는 못했지만 이 어린 두명의 타자들이 성장하는 재미를 보는 것이 낙이었다. 99년에도 .276 16홈런으로 활약했지만, 워낙에 샌더스, 양준혁, 홍현우, 장성호가 수많은 대포불꽃을 수놓아, 묻혔다.

여담으로 이 시절에 2군감독이었던 김성근을 속여서 용돈을 받아서 나이트로 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시절부터 먹튀본능이...

해태시절만 놓고 보면 당시는 외국인용병 초창기엔 주로 타자들을 용병으로 많이 뽑는 관계로 그 희생양이 된 케이스이기도 하다. 98년에 숀헤어외에는 없는 해태에 99년 용병이 들어오자 여러 포지션을 전전, 3루, 1루, 외야를 돌아다니며 타격성적을 손해보았다. 그리곤 로또를 부르는 SK로 가서 보란듯이 로또를 지르게 된다 어찌보면 삼성의 최익성, 신동주와 비슷한 케이스라 봐도 무방..

99년 이호준이 3루수비를 하는 모습 풋풋했던 장성호정성훈도 보인다#

5 SK 와이번스 시절

5.1 2000~200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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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4번 타자로 뛰던 리즈 시절이던 2003년의 모습.

하지만 투수진이 붕괴된 타이거즈의 사정상[24] SK 투수 성영재와의 트레이드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는데, 여기에는 김응용 감독이 그 당시 장성호에게 신임을 해 왔으며 이에 이호준을 투수로 전향하려 했지만 이호준은 그 것을 끝까지 고집했었고 김 감독에게 미움을 사 쫓겨나듯 이적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25][26] 이적 후에도 부진했지만 2002년부터 사실상 4번타자 자리를 꿰차고 있다. FA 이후 자주 부상을 당하니 그게 문제지만...(…)

2000년 손목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고 2001년에는 부진하더니 2002시즌 26홈런을 치면서 SK의 중심타자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2003년에는 36홈런 102타점을 기록함으로써 홈런 4위에 올랐는데, 이게 대단한게 1~3위 그리고 바로 아랫순위인 5위는 각각 이승엽,심정수, 마해영 그리고 양준혁이라는 당대의 대타자들이었다(...). 2004년에는 30홈런 112타점으로 2년 연속 30홈런-100타점을 기록하면서 시즌 타점왕에도 올랐으며, 이는 역대 한 시즌 최다 타점 16위의 기록이다. 지금도 불리는 별명인 '로또준'은 원래 당시에 로또 맞은듯 홈런을 치고 타점을 쓸어담는다고 하여 붙은 것이었다. 이 별명이 생긴 계기는 2005시즌 하위권에 처진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렸기 때문인데, 6월달에만 11홈런을 쏘며 날아다녔기 때문.[27] 그러나 2003년에 이승엽이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기록하여 묻혔다.

그냥 2003시즌만 놓고보아도 홈런왕을 달성한 타자 중 그해 이호준보다 홈런을 많이 친 타자는 1992년의 장종훈, 1998년의 타이론 우즈, 1999년, 2001~2003년의 이승엽, 2000년의 박경완, 2010년의 이대호, 2013~2015년의 박병호로, 단 6명뿐이다. 거기에 2009년의 김상현과는 타이 기록이다.

2004년 시즌 후 프로야구 병풍 사건에 연루되었으나[28] 2005년까지 입영을 연기하고 정상적으로 경기에 출장하였다. 그리고 2006년에 공익 근무를 시작했지만 근무한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무릎 문제로 의병 제대했다.[29] 이후 2007년에 팀에 복귀하여 우승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FA시장의 최대어로 떠오르면서 4년간 최대 34억의 FA 계약을 맺으면서 SK에 남게 되나…

5.2 2008 시즌

팀의 4번타자임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심하게 없었다. 2008년에 무릎 부상으로 한 해를 통째로 쉰 탓에 SK 최고의 먹튀(팀내 최고 연봉)였음에도, 팀은 압도적으로 1위를 해 버린다. 그 후 복귀했으나, 없는 게 팀에 도움이 될만큼 당당한 SK 구단 역사상 최악의 먹튀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 최훈 카툰에 얘들아 관심 좀 먹튀라고 라도 불러봐 라고 절규한다.

5.3 2009 시즌

2009 시즌에 결국 소원대로(?) 팬들에게 신나게 까였다. 최종성적은 타율 .298, 16홈런, 55타점. 4번타자임에도 불구하고 겨우 55타점이라는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주로 테이블 세터로 나온 정근우박재상, 하위타선인 나주환보다도 적다. 타석대비 타점수는 아주 나쁜편은 아니지만 상대에게 위협이 되어야 할 4번타자치고는 너무나도 형편없는 성적이다. SK팬들은 09시즌 이호준이 4번 타자로써 날려먹은 기회/실책으로 인한 패배만 아니었으면 정규시즌 1위도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타점이 적기는 하지만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심하게 까이는 이유는 FA로 08년을 날려먹은것이 크다. 의외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SK는 FA제도가 시작되고 나서 쪽박을 차본적이 없는 팀이다. SK가 FA로 다른팀으로 보낸 선수도 밥값은 하는편. 그러다보니 SK팬들의 FA먹튀에 대한 면역력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지적이다.

시즌 후반 SK가 13연승을 달리는 동안 줄곧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어 있었다가 선발로 출장한 9월 16일 잠실 LG전에서 SK는 연장혈투 끝에 2-2로 비겨서 연승 흐름이 한번 끊겼다. 전날 경기에서 15안타를 친 SK는 이날 8회까지 단 3안타의 빈공에 시달렸다. 결국 이게 다 로또효과 때문이라며 또 까였다. 부연하자면 로또효과는 이호준만 없으면 팀 타선이 괴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또, 로또함수라는것이 있는데 이는 상대팀과의 점수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호준의 타율이 올라가는 공식이다. 상대팀과의 점수차가 10점차가 넘어가면 그때부터 이호준은 배리 본즈급 타자로 돌변한다. 지독할정도로 영양가 없는 성적을 보고 비꼴때 쓰는 말이다.

시즌 내내 대차게 까였지만 한국시리즈 6차전 선제 홈런포를 날리면서 윤석민 지못미! 한국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갔다. 하지만 팬들은 여전히 깐다.

5.4 2010 시즌

2010시즌 복귀해서 대타로 나올 때마다 안타를 쳐냈다. 고원준에게 노히트 노런으로 지고 있을 때 안타를 쳐내 팀을 굴욕에서 구출하기도 했다. 홈런도 적절할 때 몰아치기도 하는 등 명불허전 로또였다.7월 5일 두산과의 경기에서는 희생플라이로 팀을 승리하게 만들었다. 물론 로또타임. 양신의 은퇴경기에서는 아슬아슬한 리드를 이어나가던 팀의 승기를 굳히는 타점을 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하튼 2010시즌 후반기에 살아나면서 명실상부 팀의 4번타자가 됐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서 선발 1루수 겸 4번타자로 출장하여 13타수 2안타 1볼넷 2타점 2득점, 타율&장타율 .154, 출루율 .214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5.5 2011 시즌

이호준/2011년 문서로.

5.6 2012 시즌

이호준/2012년 문서로.

6 NC 다이노스 시절

한 줄로 요약하자면 NC 입장에서는 경기 외적으로든[30] 경기 내적으로든 신의 한수였던 영입이었고, SK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피꺼솟(...)

SK에서의 첫번째 FA 먹튀 이미지가 있던지라(...) 두번째 FA인 NC에서는 어떨지 주목되었으나, 오히려 중심 타선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고 주장답게 젊은 선수단을 잘 이끌고 있다는 평이다.

6.1 2013 시즌

이호준/2013년 문서로.

6.2 2014 시즌

4월 5일 팀 시즌 첫 그랜드슬램을 때려내며 4타점을 올리는 대활약을 했지만 팀은 이민호, 임창민, 손민한이 차례대로 털리며 팀은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 후 한동안 부진했으나 5월 7일 넥센전에서 5타수 4안타(2홈런) 7타점으로 맹활약했다. 첫번째 홈런은 NC 창단 사상 첫 백투백투백 홈런이었고 두번째 홈런은 시즌 2번째이자 개인 통산 8번째 그랜드슬램, 그리고 NC의 첫 원정 그랜드슬램이었다.

5월 20일 마산 SK전에서 다시 친정팀에게 대못을 박는 결승 스리런 홈런을 때려 2-8 대승에 일조했다.안그래도 바람 잘날 없는 친정팀은 또다시 멘붕(...)

6월 17일 마산 롯데전에서 김성배의 공을 받아쳐 나성범을 불러들이는 적시타로 통산 1000 타점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11번째 기록.

10월 19일 LG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솔로 홈런을 때려냈으나 이미 3:13으로 크게 지고 있던 9회말에 나온 홈런이어서 묻혔다.

10월 24일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6회초 2:2 동점 상황에서 역전 솔로 홈런을 때려냈고, 이 경기의 결승타가 되었다. 개인 통산 10번째 포스트시즌 홈런이 되었다.

시즌 이후 주장직을 이종욱에게 넘기게 되었다.

6.3 2015 시즌

나이 40에 타점 커리어하이, 로또 당첨상품이 회춘

저는 이제 로또의 세계를 완전하게 은퇴하려합니다. - 불암콩콩코믹스 공룡시대 中
이승엽은 화려했고, 이호준은 묵묵했다. 이승엽은 임펙트있게 꾸준했고, 이호준은 소리없이 꾸준했다. 결국 강한자도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자도 강했다. - 이승엽, 이호준이 올스타 득표 1, 2위 발표가 난 기사의 어느 베댓

4월 5일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홈경기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한 배영수를 상대로 투런홈런을 쳤다.

5월 15일 경 0.336(8위) / 9홈런(8위) / 41타점(1위)을 기록하며 뛰어난 타격감을 보이며 NC의 타선을 이끌고 있다. 5월 26일 시점으로 13홈런 52타점으로 타점 부문 선두를 지키고 있으나 이날 테임즈가 3홈런 8타점이라는(...) 미친 활약을 선보여 2위 테임즈와 2점 차로 좁혀졌다. 그래도 300홈런 달성에 단 두 개만 남겨놓아 기록 달성은 시간 문제일 듯.다만 동갑내기는 400홈런에 두 개를 남겨 놓아서 왠지 좀 묻히는게 함정(...) 그래도 300홈런도 대단한 기록인데

5월 30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7회초 4:5 2사 만루에서 홈런을 쳐 8:5 역전을 만들었다. 이제 통산 300홈런에서 -1개. 재미있게도 이 날 먼저 경기 치른 삼성의 이승엽도 홈런 하나를 쳐서 통산 400홈런에 단 1개를 앞두게 되었다. 과연 어느 쪽이 먼저 아홉수를 깰지 나름 흥미진진하다 인생은 누구처럼? 이호준처럼!

6월 11일 현재 스탯은 타율 0.320, 홈런 14(리그 8위), 타점 64(리그 1위), OPS 1.004(리그 7위)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질주중이다.

6월 18일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1회초 정성곤을 상대로 300홈런을 기록했다. 홈경기가 아니라 아쉽지만...아홉수를 극복했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공은 구단 관계자에게 무사히 회수되었다.[31] 그리고 이날 1099타점으로 김동주를 넘어서 타점 단독 4위가 되었다.

6월 19일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한 배영수를 상대로 301호 홈런을 날려 1100타점을 돌파했다. 눈에 익은데 통산 홈런순위도 박재홍을 제치고 하루만에 7위로 점프...[32]

9월 15일 kt와의 홈경기에서 만루홈런을 기록하면서 시즌 100타점을 넘겼고 이로서 NC다이노스는 kbo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클린업트리오 세 타자가 100타점을 넘긴 팀이 되었다.

최종성적은 0.294 24홈런 110타점 장타율 .510 출루율 .381 OPS .891

6.4 2016 시즌

이호준은 무려 3억원이 인상된 7억5000만원에 도장을 찍으며 최고 대우를 보장받았다. FA 당시, 3년 20억이라는 헐값혜자에 계약했기 때문에 구단에서 더 올려준 듯. 사실상 4년 27억 5천 역시인생은 이호준처럼 선수협회 새 회장이 되었다.프로야구선수협 새 회장에 이호준 "사랑받는 협회로" 아이고 이 회장 반가워요

그리고, 개막전, 양현종을 상대로 2회 무사 1루인 상황에서 시즌 개막축포를 쏘아올렸다.

4월 29일 롯데전 5번 선발 출전해 2사 1루 상황에서 테임즈가 고의4구로 2사 1,2루가 된 뒤 타석에 들어섰고,손승락의 2구 째를 받아쳐 그대로 담장을 넘겨버린다!팀의 승리를 이끄는 쓰리런포. 개인 통산 312호 홈런으로 KBO 통산 홈런 단독 6위에 올라섰다.

6월 19일 kt전에서 팀 타선의 대폭발과 함께 홈런을 추가하며 통산 홈런 5위에 올라섰다. 이제 7개를 더 치면 무려 심정수를 넘어선다. 게다가 이 페이스로 1년만 더 뛰면 양준혁까지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7월 14일 두산전에서 통산 3번째 1300타점을 달성했다

7월 한달간 타율 0.149, 무홈런, 5타점에 그치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8월 1일자로 1군에서 말소되었다.

8월 16일 1군 복귀 경기에서는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다음날 경기에서는 4타수 2안타 3타점으로 활약했다.

8월 21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3회 투런 홈런을 쳐내며 1군 복귀 첫 홈런을 쏘아올렸다. 시즌 14호.

8월 25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7회 시즌 15호 홈런을 때려내며 통산 1800안타에 달성했다. 역대 12번째.

9월 22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시즌 20호 홈런을 포함해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이로써 이호준은 토종 최고령 한 시즌 20홈런 달성에 성공했고, 통산 329호 홈런으로 통산 홈런 순위에서도 심정수를 제치고 4위에 입성했다.

10월 5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4번 타자로 나서 4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홈런은 시즌 21호 홈런.

10월 21일 LG와의 플레이오프에서 9회 대타로 나와 PO 최고령 출전 기록을 세운 동시에 동점 안타까지 치며 대타로만 6타수 5안타를 기록함에 동시에 소사의 승리, 임정우의 세이브를 날려버렸다. 김지용은 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뒤이어 팀은 손시헌 거르고 나온 용덕한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

7 인생은 이호준처럼

야구 팬들 사이에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인생은 이호준처럼" 그리고 사랑은 김동주 처럼 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호준의 FA 대박건도 있고, 무엇보다 이호준의 아내 사진을 보면 왜 이러는지 답이 나온다. 처음에 쓰일 때는 먹튀와 유사한 조롱의 의미였지만, NC행 이후 준수한 활약으로 인해 거진 야구계의 명언이 되어버렸다.

워낙에 유명해서 네이버 자동완성에도 저장되어 있고, 아내가 말해줘서 본인도 알고 있다고 한다. '야구는 양준혁처럼,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바리에이션도 있는데, 이 말이 왜 생겼는지 고려한다면 이쪽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원래는 "야구 선수로서의 기록은 더 뛰어나지만 결혼을 하지 못한 양준혁보다, 기록은 좀 뒤져도 미인과 결혼한 이호준이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라는 좀 장난기가 담긴 의미였다. 그러나 이후 FA 계약으로 인한 연봉 대박, NC로 팀을 옮긴 이후 고령의 나이에도 더 좋은 성적을 내면서 신생팀을 이끌어가는 모범적 고참 선수로 인정받는 등[33] 화려하지는 않아도 꾸준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치가 높아지는 선수라는 경의를 담은 별명이 되었다.

카스포인트에서 이걸 놓치지 않고, 이 문구가 들어간 광고를 만들었는데 실로 가관이다.직접 보자

NC는 이 구절을 인쇄한 티셔츠를 14년 7월부터 판매.#

자신도 이 별명에 자부심이 있는지 '인생은 조인성 처럼'이 나오자 발끈(...)했다.기사

8 병역비리

이호준의 흑역사. 본인의 병역비리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처분되었으며, 실제로 재검 뒤 공익 복무하는 것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브로커에게 이름만 올라 있던가, 아니면 정말로 큰 죄를 저질렀던가는 판단할 수 없는 상태로 실제로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태때 꽤 많은 선수들이 이 처분을 받았다. 문제는 이 양반은 다른 선수들에게 브로커를 소개해 준 죄로 병역법위반방조죄로 빨간줄이 쳐진 전과자라는 것 연예인 브로커는 막고 병역 브로커는 소개하고 개인으로서는 다행히 집행유예로 끝나 감방살이는 면했다.

같은 죄목으로 처벌을 받은 최기문은 사회봉사 200시간으로 끝난 것을 보면, 이호준의 죄질이 더 셌던 듯 하다.

9 기타

  • 가수 김종서와 상당히 친분이 있다고 한다.
  • 참고로 이진주(속칭 펄녀)를 앞장서서 내쫓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34억짜리 구단경비원 이게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팀 케미스트리에는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각광받는 유망주의 타락으로 통하는 길 하나를 막아버렸다는 얘기니까. 이래서 성큰옹만수르 둘 다 성적이 바닥을 칠 때도 로또를 계속 밀어준 것 같다. 그리고 NC도. 이게 농담이 아닌 게, 같은 팀 고참이었던 김재현과 함께 둘이서 쌍욕까지 하면서 쫓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반농담이긴 하지만 찰리 쉬렉이 심판에게 욕한 게 이호준에게 배운 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다(...).

  • 이호준의 아내 홍연실 씨가 아주 미인인 것으로도 유명하다.[34] 그래서 일부에서는 확실히 이런 부인이 있다면 이진주가 소개하는 연예인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라면서 이진주를 앞장서서 내쫓는 원동력을 여기서 찾기도 한다. 하지원 + 성유리 + 김유미을 닮은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KBO 리그의 WAG 중 최고의 미모라고 해도 반론이 없을 정도다. 인천대학교 출신 전직 땅콩 스튜어디스로, 꼬실 당시에 자기 연봉을 사기치고 외제차를 뽑았다고 뻥쳐서(...) 꼬셨다고 한다. 이게 잔혹한 현실이다. 미녀와 결혼할려면 돈을 벌어라. 그것도 억대로. 그 당시엔 연봉이 적었겠지만 FA로 대박친 이후의 연봉은 5억. SK에서 박경완, 박재홍과 함께 최고 연봉 수령자였고 KBO 전체에서도 양준혁 - 김동주 - 손민한 - 박진만 - 장성호 다음가는 고액연봉자였다. 처음엔 거짓말이었겠지만 이후 현실이 되었으니 팀은 몰라도 부인에겐 진실된 남자. 게다가 이호준이 외출할 때는 신발을 직접 신겨주는 현모양처 스타일.모든 것을 가진 남자 이호준 이호준 부부 인터뷰
보면 알겠지만, 딸도 엄청 귀엽다. 정말 다 가졌다 물론 딸이 어렸을 때였으니까 귀엽긴 하다.
  • 최동수와 닮은 꼴로 유명한데, 위의 사진에 나온 그 딸조차 최동수에게 달려가 '아빠!~~'라고 할 정도.(…)
  • 현재 가지고 있거나 가졌던 징크스를 다 합치면 100개가 넘을 만큼 많은데 지금은 많이 깼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징크스도 많은데 특히 자신이 손톱을 깎거나 남이 손톱을 깎는 걸 보면 그 날 경기가 잘 안 풀려서 그러한 행동들은 전부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 한다고 한다. 그 밖에 이발하는 것도 피하고, 비누 없이 물로만 세수와 샤워를 하며, 계란같이 잘 깨지는 것도 피한다고 한다. 또한 성적이 안 좋으면 쓰던 야구 용품을 모두 버리고 새로 바꾼다고 한다. 반대로 좋은 징크스로는 자기나 자기 부인이 똥차를 보면 그날 홈런을 친다고 한다.
  • 고향 팀에 지금도 애착이 있는 듯하다. 기아가 연패에 빠질 때 인터뷰에서 기아가 연패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 2009 시즌에는 기아와 벤치 클리어링이 여러 번 터질 때도 절대 나오지 않았다.[35] 성적 역시 유난히 기아전 성적이 처참하다. 물론 지금은 그 반대로 기아전 성적이 뛰어나다. 그것도 혼자 뛰어난게 아니라 클린업 트리오 전부 뛰어나다
  • 이미지에 가려 잘 안보이는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통산 성적은 꽤 좋다. 2007년 우승과 2008년 야구붐 이후 SK 팬이 된 사람들은 그 이전에 보여준 이호준의 전성기 활약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별 수 없이 까인다. 실제로 2007년 우승 후 FA가 되었을 때는 SK 팬들이 "우리의 프랜차이즈 스타인데, 꼭 FA로 잡아야한다."라고 팬 게시판에서 서명운동까지 했다.[36] 그 때 팬들의 반응 덕분에 이호준은 예상보다 훨신 높은 금액의 FA 로또를 터트릴 수 있었으니, 지금 반응과 비교하면 흠좀무. 사실 SK시절 말기에 보여준 로또와 먹튀 이미지(...) 때문에 꽤나 저평가를 받고 있는 타자지만, 현역 타자들 중에서는 이승엽 다음으로 홈런 2위에 랭크되어 있고(2015년 6월 18일 기준 300홈런), 현역들중에선 300홈런이 넘는 유이한 타자. 역대 홈런 순위도 8위에 랭크되어 있다. 2014 시즌에는 1000타점도 달성하여 은퇴한 마해영의 기록까지 넘었다. 특히 NC에 이적해와서는 거의 회춘했다고 평가받을 정도. 나이가 있긴 하지만 2014년까지 통산 285홈런을 때렸고, 2015년 초반의 홈런페이스도 좋기 때문에, 아홉수가 좀 있긴 했지만 6월 18일 프로야구 사상 8번째로 300홈런 달성에 성공했다. 최고령 300홈런 기록은 덤. 300홈런도 대단한 기록이지만, 이게 더 의미있는 것이, 이호준 다음으로 당분간 300홈런을 기록할 타자들은 보이지가 않는다는 점이다.[37][38]
  • 횡령 등으로 무너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차기 회장으로 박재홍을 떠밀면서 존재감을 다시금 입증했다. 처음에는 자존심 강하고, 개인주의적이란 비난을 듣던 박재홍이 선수협 회장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많았으나, 예상외로 박재홍이 선수협을 잘 이끌어 나가자 덩달아 이호준의 평가도 올라가고 있는 중. 이호준 요정설 어쩌면 사람 보는 눈이 선구안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은퇴하고 스카우트 시키자![39]
  • 퇴물 먹튀로 취급받던 시절에도 롯데만 만나면 전성기로 돌아와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로나쌩 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 이후의 SK는 롯데한데 뭘 해도 이기는 팀이라서 팬들에겐 호구 상대로 스탯쌓기만 한다고 오히려 까였다.(…) 이 때문에 2007년 FA 당시 롯데에서 영입하려 했지만, 영입 실패로 돌아가면서 꼴런트 어디 안 간다고 욕을 먹었었다. 알고보니 신의 한 수.
  • 2012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은 뒤 SK와 협상이 결렬되며 NC로 갔을 때 솩갤에서는 아름다운 이별행이라면서 섭섭함보다 기쁨이 크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호준이 NC로 가면서 먹튀짓을 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마다 SK에게 비수를 꽂자 모두 뒷목을 잡았다고 한다. 이호준을 까는 데 앞장섰던 솩갤의 경우 엔전드라고 부른다. 그리고 2013년 겨울 정근우가 팬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치고 떠나면서 좋게 떠난 이호준은 그래도 착한 사람(...)이라는 재평가가 잠깐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2015년 겨울 이 분이 정근우보다 더한 뒤통수를 거하게 쳐서 또 재평가를 받았다
  • 보통의 인간 이호준, 인생은 아름다워! : ##
  • 첫째 아들인 동훈(2002년생)이 프로 입단할 때까지 뛰는 게 목표라고 한다. 그럼 최소 45세까지 뛸 거라는 얘기인데? ? 참고로 수원북중 재학중이라고 한다.

현재 포지션은 투타 겸업으로 3루수와 투수라고 한다

  • 축구선수 곽태휘와 친분이 깊다. 2008년 무릎 연골 수술을 위해 독일을 방문했을 때, 곽태휘도 마침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으러 온 것. 이후 재활센터에서 같이 재활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이호준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했을 때 박찬호 배우 정경호 그리고 곽태휘를 지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 "프로는 인내의 삶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진 뒤의 쓸쓸함을 곱씹을 줄 알아야 한다."
ㅡ 2013년 인터뷰
  • 프로 데뷔 후 골든글러브 수상이 단 한번도 없다.사랑의 골든글러브만 수상 했을 분 지독하게도 운이 없다. 이유는 골글을 받을만한 시즌에 항상 더 괴물 같은 성적을 기록한 사람들이 있어서...
  • 현재 우타자 통산 타점 1위이다. 2위는 장종훈.
  • 해산물을 좋아하는 듯. SK시절에는 연안부두 어시장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10 연도별 성적

10.1 투수 시절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1994해태 타이거즈812⅓0000-10.22167[40]941414
KBO 통산812⅓0000-10.22167941414

10.2 타자 시절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6해태 타이거즈1718.16731013606.389.375
199754126.27835918202608.556.321
1998121422.303128271197764533.507.354
1999107312.27686161165548527.487.333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0SK 와이번스61190.2324490102523116.437.291
200180286.23467175
(3위)
83044421.413.287
2002129444.288128242236476549.507.358
2003133473.29013720136
(4위)
102
(5위)
86978.564.389
2004133497.28013922230
(3위)
112
(1위)
87773.513.368
2005105354.27196161216559555.500.367
2006공익근무요원 복무[41]
2007101351.313110221147156334.501.368
2008825.20052002101.280.231
2009103299.29889141165540036.512.369
201085194.278549084619121.448.342
2011114368.25393120146241245.399.333
2012127426.300128260187855377.488.407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 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13NC 다이노스126442.278123251208746261.475.362
2014122424.271115200237859370.481.371
2015131449.2941322502411048068.510.381
통산18576100.281171231617309114288455775.490.359
  1. 입춘(2월 4일)을 넘겼기 때문에 용띠가 맞다.
  2. 1994년 데뷔 때, 결국 불만 지르다가 타자가 됐다.
  3. 해태 시절은 외야수로도 뛰었다.
  4. 해태 시절인 1999시즌 홍현우가 2루수로 이동하면서 정성훈과 같이 3루를 보기도 했다.
  5. SK 시절 첫 FA 계약을 맺은 2008년 전까지는 주전 1루수였으나 이후 무릎 부상으로 박정권에게 서서히 1루를 내주고 지명타자가 되었다. NC 이적 후에는 쭉 4번 지명타자. 1루수 수비가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부상 전력과 나이 문제 등으로 사실상 수비 측면에서는 거의 활약을 기대하기 힘들다.
  6. 야야야야~ 이호준 날려버려라(홈런!) 이호준 날려버려라~ (홈런!) 이호준 날려버려라~ (홈런!) X2
  7. 현재 한동민이 쓰는 곡과 같은 곡을 썼다
  8. 다이노스 이호준 NC 이호준 이호준! 이호준! NC 이호준 이호준!(홈런!) 이호준!(홈런!) NC 이호준!
  9. 다! 이노스! 홈런 이호준! 다! 이노스! 홈런 이호준 오~ 이호준 홈런 오오오 홈런 이호준 홈런~ X2
  10. 한 경기에 6번이나 볼넷으로만 출루했다. 그것도 연타석으로...그러나 6번이나 출루하고도 그 날 경기 때 이호준의 득점은 0.(...) 이걸 보면 한국시리즈 5차전 때 최정오승환한테 선두타자로 3루타를 쳐도 홈으로 못집어넣은 게 살짝 이해가 가기도 한다. '1경기 제한'을 없애면 홍문종의 9연타석 고의사구가 최다 기록.
  11. 2013년 4월 28일 김태균이 7타석 6볼넷을 얻어 이호준과 타이를 이루긴 했지만 이는 6연타석 볼넷은 아니었고, 고의사구가 하나 포함된 것이다. 이호준의 경우에는 고의사구가 하나도 없는 모두 순수한 볼넷. 김태균의 이 날 기록은 볼넷-볼넷-고4-안타-볼넷-볼넷-볼넷.
  12. 여기에 엮여서 생긴 김성근 감독의 별명으로 나니욘쥬라는것도 있다. 대충 3억짜리 경비원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던 김성근에게 이호준이 40억이라고 알려주자 놀라며 나니?! 욘쥬?!(...)라고 말했다는 드립이 흥하면서 생겼다.
  13. 그러나 1995년의 1군 출전 기록은 없다. 23년 연속 1군 출전한 선수는 박경완...
  14. 이병규와 최영필은 대학(93학번)을 졸업하고 1997년에 데뷔했고, 이호준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1994년에 데뷔했다.
  15. 당시 고졸 선수들은 연고 지역 선수들에 한해 무제한 스카웃이 가능했으나 계약 기간을 11월 1일부터 15일까지로 제한하고 있었다.
  16. 이후 프로선수 출신 아마야구 지도자 1호가 한대화다.
  17. 이게 중요하다. 중고교 운동부시절 가출해본 선수는 꽤 있으나 프로가 되고 나서 가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8. 심지어 프로데뷔 4년차에도 두어번 집을 나갔다고 한다.
  19. 동네경찰 순찰차를 동원해서 가출한 이호준을 잡은 적도 있다고 한다.
  20. 아버지의 증언으로 더 무서운 건 그렇게 두들겨 맞고 '아버지 다신 안 나갈게요'라면서 반성하던 이호준이 일주일도 안 되어 또 나간 적도 있다는 것이다.
  21. 불펜투수로 뛰면서 올라올때마다 불쇼를 했다.
  22. 사실 이 시절의 이호성이 하락세가 시작되는 시점이긴 했다.
  23. 85~97, 해태는 1995년에는 4위를 했음에도, 1989년 단일리그 시행 이후 유일하게 4위를 하고도 포스트시즌을 못나간 당시 제도의 희생양이니 사실상 준플 진출이라고 봐도 무방.
  24. 당시 타이거즈는 제대로 된 투수가 없었다. 그나마 최상덕, 오봉옥 정도만이 쓸만한 선수였었고, 그 외 곽채진, 곽현희, 오철민 등의 선발 투수들은 좋은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1999 시즌을 날리고 복귀한 이대진은 마무리로 보직변경되더니, 2000시즌 끝나고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팀내에는 잠수함 투수가 없었다. 이강철은 FA로 삼성에 갔고, 보상선수로온 박충식은 재활 중이였기 때문에 잠수함 투수 부재를 해결해야 했다. 이렇게해서 성영재와 이호준 트레이드가 성립한것.
  25. 대신 이적하면서 강병철의 양아들이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다행인 이적이었지만...
  26. 그리고 트레이드로 고향 팀에 온 성영재는 2000시즌 종료후 병역비리 논란으로 은팔찌를 차게 되고, 석방된 뒤 2001, 2002시즌을 말아먹고 KIA에서 방출당했다. 반면 이호준은 펄펄 날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해태-KIA가 실패한 트레이드.
  27. 하지만 2005 시즌의 마무리는 좋지 못했는데,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LG와의 경기, 만루에서 병살타를 치며 결정적인 찬스를 날려멱었고, 시즌 내내 2위였던 SK는 3위로 떨어진 후 4위 한화에게 패배하며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28. 병역기피 혐의에 대해서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기에 공소권없음 처리되었으나, 팀 동료들에게 병역기피 브로커를 소개시켜준 혐의에 대해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승부조작 브로커였던 마모씨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과 비교해 보면 그 활약상(...)을 짐작할 수 있다.
  29. 같은 곳에서 공익 훈련 받았던 1인 훈련소에 있을때 부터 이미 무릎부상 때문에 훈련 못하고 뒤에서 항상 열외되었다.
  30. 반쯤 농담이긴 하지만 일단 신생팀의 어린 선수들을 펄녀로부터 보호해주니깐(...)
  31. 수원KT위즈파크의 경우, 외야관중석 석재 마감된 부분에 공이 맞고 도로 그라운드로 튕겨나오는 일이 잦은 편. 다행히도 이호준의 300호 홈런볼도 그라운드로 튕겨나왔고, 좌익수가 아무 생각 없이 회수해서 볼보이에게 넘기려는 것을 고향 후배중견수 이대형이 챙겨서 NC 덕아웃으로 전달했었다.
  32. 박재홍 해설은 이 날 엠스플 중계를 위해 마산에 왔다. 즉, 박재홍 해설이 보는 앞에서 이호준은 박재홍의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33. 이는 성적에서는 역대 정상급의 타자이면서도 팀웍, 인성 등에서 평판이 나빠 환영받지 못하며 은퇴했던 두산 김동주의 사례와 대조를 보였다.
  34. 훈련소에 있을 당시 퇴소 전날에 행사를 진행하였는데 깜짝 영상편지를 띄웠다. 그리고 모든 훈련병들이 우와~를 외쳤다(....)
  35. 벤치 클리어링은 투수 몇몇을 제외하곤 무조건 나가야 한다. 안 나가면 벌금도 내야 하고 팬들에게 욕도 먹는다. 자세한 것은 벤치 클리어링 문서를 참고.
  36. 이호준이 지금은 사라진 용틀임마당에 술을 먹고 쓴 글(...)이 계기가 됐다.
  37. 이호준 다음으로 300홈런 후보군이 한화 이글스김태균KIA 타이거즈이범호일 정도로 통산 300홈런도 은근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김태균은 똑딱질홈런 페이스를 보면 다소 시간이 걸릴 듯 하다(...) 물론 한 시즌에 30홈런 정도를 기록하면 더 빨라지겠지만, 그의 커리어상 30홈런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단 두 시즌 뿐이라는 점이 걸린다. 일단 2015년 8월 5일 현재 통산 250홈런을 달성했다. 이범호는 김태균에 비해 페이스가 늦은 것처럼 보이지만, 매년 20홈런은 보장할 수 있는 꾸준함이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김태균보다 앞설 수도 있다. 역시 2015년 8월 5일 현재 통산 242홈런 기록. 두 선수 다 별탈없이 3~4년 동안 선수생활을 한다면 통산 300홈런은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8. 그 외에 일본에 진출해 있는 이대호넥센 히어로즈박병호, 삼성 라이온즈최형우 정도가 유력하다. 그러나 이대호가 일본에서 잘 나가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 돌아와서 300홈런을 기록할지는 미지수이고, 박병호도 2015 시즌 이후 해외 진출이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이 역시 불투명하다. 최형우의 경우에도 120억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기회가 된다면 해외진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한 상태. 기록을 살펴보자면, 2010 시즌까지 이대호는 통산 225홈런을 기록, 일본프로야구 기록까지 합하면 일단은 개인통산 300홈런을 넘겼다. 박병호는 2015년 8월 17일 현재 통산 200홈런을 기록 중이며, 최형우는 2015년 8월 30일 통산 200홈런을 기록했다.
  39. 참고로 이호준 본인은 해설을 하고 싶다고 한다. 방송국에서도 몇번 섭외 시도가 있었던듯 하고 이 형 말빨이 무진장 좋아서 해설 하면 정말 잘 할거다...
  40. 여기에는 김재현에게 맞은 홈런이 있다. 무려 20-20 클럽 가입포(...)
  41. 병역비리 연루로 입대 후, 1년 만에 의병 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