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군인)

김영환
1921년 1월 8일 ~ 1954년 3월 4일

해인사에는 700년을 내려온 우리 민족정신이 어린 문화재가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프랑스파리를 살리기 위해 프랑스 전체를 나치에 넘겼고, 미국이 문화재를 살리려고 교토를 폭파하지 않은 이유를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인사를 폭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 말.

고려 800년 문화유산을 아름다운 항명[1]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의 참군인이다. 1, 3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정렬의 동생.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 소속 조종사로 복무했었다. 최종 계급은 준장으로 그에 관해서는 유명한 두가지 일화가 있다. 하나는 현재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마후라 이며 다른 하나는 전쟁 도중 빨치산 토벌명령을 받고 P-51 전투기를 몰고 편대원들과 출격했고 미군기가 떨어뜨린 연막탄을 보고 폭격을 개시하려 했으나 그곳이 해인사 였기에 전시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항명[2]하여 편대원들에게 폭격을 불허하고, 기관총으로 위협사격을 가해 내쫒아 내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 덕분에 팔만대장경을 지켜낼수 있었다.

이후 명령불복종에 대한 문책 당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일본 본토 폭격을 할때 교토는 폭격하지 않았던 것을 예로 들었다고 한다. 명령불복종에 대노한 이승만은 총살도 아닌 포살을 하라고 갈갈이 날뛰었으나, 배석하고 있던 공군참모총장 김정렬(김영환의 형)이 팔만대장경의 중요성과 그간의 공적을 역설하여 즉결처분은 모면했다. 이로 인해 대장경과 장경판고가 각각 세계기록유산세계유산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1954년 3월 4일 안타깝게도 F-51 기체를 몰고 강릉으로 비행하던 도중 추락사하였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낸 공로가 인정되어 고인에게 문화훈장 중 최고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존경합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13년 9월 29일 방송분에서 관련 내용을 다루었다.
  1. 농담이 아니다. 원래대로라면 그의 대표업적인 해인사 폭격거부는 전시 항명으로 즉결사형감이다. 하지만 그 명령을 거부한 덕분에 세계문화유산을 지켜낸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그야말로 목숨걸고 지켜낸 문화재. 다행히 이 항명으로 사형까지는 가지 않고 목숨을 건짐은 물론 명예까지도 잃지 않고 후대에 오히려 높게 평가받으므로, 아름다운 항명이 맞다.
  2. 전시상황에서 항명은 즉결처분 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