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렬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
창군초대 김정렬2대 최용덕
2대 최용덕3대 김정렬4대 장덕창
역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6대 김용우7대 김정렬8대 이종찬
역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150px-Emblem_of_the_Prime_Minister_of_the_Republic_of_Korea.svg.png
제5공화국제6공화국
19대 서리 이한기19대 김정렬20대 이현재


1917년 9월 29일 ~ 1992년 9월 7일

대한민국 인사들은 국방의 현실을 철저히 인식하고 공군 정비에 관한 정당한 이해와 판단을 해야 한다."

- 본인의 저서인 (항공의 경종)中 -

1 소개

1917∼1992. 대한민국의 군인·정치인.
최용덕 장군과 더불어서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지닌 장군이다. 종교불교다. 초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그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공군 창건에 막대한 기여를 하였다. 다만....

2 일생

2.1 전쟁 전

1917년 9월 29일 경성부(서울특별시) 종로에서 태어났다. 1936년 경성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12월 일본 육군예과사관학교에 입교, 1940년 5월 일본 육군항공사관학교의 전투기과를 졸업하고 육군 항공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그는 일본 아키노(明野) 비행학교를 다니다가 남방전선의 항공전에 참전하였다. 베트남의 사이공에 머물다가 광복을 맞이하고 일본의 구축함을 이용하여 부산항으로 귀환했다.

광복된 조국에서 그는 공군창설의 주역들인 최용덕, 박범집, 장덕창, 이근석, 김영환, 이영무와 함께 육군 내의 항공 부대를 창설하는데 기여했다.

1948년 5월 14일 그는 육군항공사관후보 1기생으로 입교하여 교육 수료후 육군소위로 임관하였다. 공군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어째서 공군이 아닌 육군 장교로 임관했는가 하면, 그 당시 공군이 독립된 제대가 아니라 육군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48년 9월 13일 그는 조선 경비대 항공기지 사령부 비행부대 부대장으로 임명되었고 여순 반란 사건이 발생하자 진압작전에 참가하여 공중지원을 실시했다. 1949년 2월에는 중령으로 진급, 육군항공사관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제주 4.3 사건과 옹진지구전투를 지원하는 임무를 맡아 출격했다.

국군조직법에 의해 공군이 육군으로부터 독립한 1949년 10월 1일에 초대 공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5월에 공군 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 때 그는 공군 육성에 전심전력을 경주하여 오늘날의 공군을 만드는데 기초를 쌓았다.

김계원의 회고에 따르면 일본 육군 항공대 출신들은 군사영어학교에서 일진처럼 몰려다녔고 김정렬의 동생도 있었는데 입이 험했다고. 김계원은 그 패거리한테 맞을까봐 피해다녔다고 한다. 그럴만도 한 게 김계원은 학병 출신이라 강제로 끌려갔다가 견습사관만 하다가 나온 터라 군맥(軍脈)이라 할 만한 게 미약했기 때문.

2.2 전쟁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공군참모총장으로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투기의 필요성을 건의하였다. 열악하게도 당시의 공군의 비행전력은 연습기와 연락기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건의를 한 이후 1950년 7월 2일 미 극동 공군으로부터 F-51 전폭기 10대를 인수받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전투기에 탑승, 진두에서 지휘하며 지상군엄호작전을 감행하는 등 작전 완수에 만전을 기여하는 등 전형적인 무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지휘를 따라 대한민국 공군은 육군의 근접지원 및 후방차단 작전을 감행, 국군의 지상작전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특히 그는 1951년 8월 17일부터 9월 18일까지 지리산지구 전투경찰사령부 요청을 받고 F-51 전폭기들을 이용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투입시켜 지상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2.3 전후

휴전 후인 1954년 12월 다시 공군참모총장에 취임하여 공군 발전에 헌신하였다. 1957년 7월 6일 공군중장으로 예편한 후, 같은 달 국방부장관으로 발탁되었다.

그 후 박정희가 소장진급심사 대상자가 되자 거의 소장진급이 확정된 상황에서 곽영주의 훼방으로 인하여 소장진급이 취소되자 이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가서 심사위원들을 잘 달래고 박정희를 변호해줘서 박정희가 무사히 소장에 진급하게 도와줬다.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있던 박정희는 훗날 대통령이 되자 김정렬을 민주공화당 의장, 제7대 전국구 국회의원 등에 임명하였다.

5.18 민주화운동의 유혈진압 이후, 제4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어 제5공화국을 출범시키려던 전두환의 부탁으로, 친구였던 대통령 최규하를 설득, 8월 15일에 하야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전두환은 그를 제5공화국 말기인 1987년 국무총리에 임명하였다.

재밌는 건 4.19 혁명 당시에도 이승만에게 하야를 건의했다는 점.

3 흑역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다. 이 명단에는 큰아버지 김기원과 아버지 김준원도 포함되어 있다. 이거 말고도 이미 8~90년대 故 임종국이 주도하던 한국의 친일파 관련 서적에서도 대를 이은 친일파로 나온 바 있다.

4 김정렬을 연기한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