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마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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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라이더도 하고 다닌다. 정의의 상징이라고 한다.

1 대한민국 공군 파일럿의 상징

참고로 군가의 경우 각 절마다 마후라의 색깔과 병과가 다르다. 황색 마후라의 경우는 전차병, 혹은 장갑차병.

1951년 강릉기지에서 김영환 장군이 형수의 새 치마 색깔이 예뻐서 자투리 천을 얻어다가 머플러로 둘렀다는 것이 통설인데, 전 공군참모총장인 장지량 장군에 의하면, 조종사 구출시 시인성 세 배 증대를 위해 자신이 김영환 장군에게 건의해서 채택한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 민간 기원설에는 어떤 조종사의 아내가 남편이 목에 두르고 갈 것이 없어서, 급한 김에 자신의 마후라를 메준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공군용 머플러 자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사용되었는데, 적기를 발견하기 위해 사방으로 목을 돌려대야 하는 파일럿의 특성상, 튼튼한 군용 칼라에 피부가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른 것이 시초이다. 물론 색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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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이 2008년 조종사의 날을 기념하여 만든 빨간 마후라.

공군만의 전유물은 아니고, 해군과 육군의 조종사들도 빨간색 머플러를 쓴다. 공군용의 그것과는 약간 생김새가 다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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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가 대통령 후보 시절 공군작전사령부을 방문하여 항공점퍼와 마후라를 받았다.[1]

2 대한민국 국군 중 하나인 대한민국 공군군가 빨간 마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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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3번 항목의 주제가였으나, 후에 정식 군가로 인정받았다. 작사가는 3항목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한운사.

삼둥이 중 장남인 송대한이 제일 좋아한다.

3 빨간 마후라(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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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감독이 1964년 만든 영화. 각본은 《현해탄은 알고 있다》를 쓴 한운사가 썼다[2]. 《돌아오지 않는 해병》과 더불어 1960년대 최고의 블록버스터 전쟁영화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배우들 역시 신영균, 故 최무룡[3], 최은희, 김희갑 등등 당대의 거물 배우들을 한 번에 동원했다.

한국전쟁 당시의 강릉 비행장을 배경으로 해서, 한국 공군 조종사들의 전우애와 사랑을 스토리로 삼고 있다. 한편 절정부의 폭격 작전은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을 모델로 해서 각색 후 써먹었다. 그 와중에 전사한 전우 아내와의 사랑이나네토라레, 내 아들이 나라를 위해 죽었는데 어찌 슬퍼하리오, 등의 레퍼토리가 나온다.[4] 참고로 승호리 작전은 실화였는데, 실화의 주인공은 김신 공군 대위와 유치곤 공군 중위였다. 다만 영화에서는 늘 그렇듯이, 위기에 몰리자 스스로 자폭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1960년대 당시 정부와 밀월관계에 있던 신상옥이 군부대의 전폭적인 협조와 자신의 공과 아이디어를 들여 만들어낸 영화다. 촬영 필름만 해도 당시 보통 영화보다 세 배 넘게 들어갔다고 하며, 거기다 각종 항공기 액션 장면을 위해 온갖 수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전투기 시점에서 폭격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촬영 카메라를 그대로 전투기 날개에 달고 비행기를 날리는 일을 벌였고[5], 절정부의 폭격작전 장면에서 극중 신영균이 탄 조종석에 총알이 박히는 장면을 찍기 위해, 육군에서 특등사수를 협조 받아서는 방탄유리에 실탄을 쏴버리고는 그걸 촬영하는 무식 과감한 짓을 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런 실제 전투기를 동원한 액션 장면 촬영은 할리우드 영화 같은 미니어처 촬영 기법이 없는 상태에서 짜낸 고육지책이었지만[6], 무식하리만치 실제 전투기를 동원한 빨간 마후라의 촬영은 동시기 할리우드 영화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고, 외려 더 뛰어난 면도 있는 항공기 액션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런 공을 들인 덕에, 영화는 영원한 고전 전쟁영화로 남았고, 한국뿐 아니라 대만과 동남아시아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다. 한데 이런 수출 과정에서 원본 필름이 그대로 수출용으로 쓰였고 그런 와중에 원본의 상당 부분이 갑자기 유실되어 버리는 일을 겪고 만다. 그리고 신상옥이 북에 간 이후에야 밝혀지지만, 저 유실된 부분은 뽀글이가 사들여 영화 컬렉션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만든 포스터에 의하면, "필름조차 남북으로 갈라져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환상의 명작" 이라 했는데 확실히 맞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다행히 신상옥이 탈북 전 비디오테이프에 그 부분을 복사해놓고 나오면서, 국내에 있던 필름과 그 비디오를 필름으로 변환하여 1989년 재개봉했었다. 그러나 비디오에서 변환된 화면의 해상도가 너무 열악하고, 가지고 나온 비디오 포맷에 맞추다 보니 화면의 좌우를 잘라내게 되어, 원 영화의 감동을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반으로 나눠진 필름을 맞춰 완전판으로 복원해야 할 듯하다. 김정은이가 없애지 않아야 할텐데

여담으로 북한에서도 이에 대응한 전투기 영화를 찍었으나, 개망 수준이었다고 한다. 김정일이 지시했지만, 공군 장군들이 귀중한 전투기 가지고 이렇게 무모하게 찍다가 전투기 날려버린다고 반발이 심했다는 후문이다.

대만에서는 이 영화가 히트 쳐서 3번의 노래가 대만 공군에서 군가로 쓰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발지 대전투에 독일 전차로 M48이 나오듯이 어쩔 수 없는 고증오류가 많다. 한국전쟁 당시 공군은 P-51 머스탱을 썼지만, 영화에서는 F-86을 타고 다닌다거나, 폭격당하는 인민군 전차와 대공포가 아무리 봐도 M47 패튼과 M45라거나 등등. 한데 역으로 이런 부분은 1960년대 당시 한국 공군의 F-86 운용상황을 엿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영화에 나오는 조종사 구출 장면도 볼거리 중 하나다. 그 부분에선 큰 나무 둘 사이에 조종사가 자신과 연결된 줄을 걸어놓으면, 저공비행하는 항공기가 그걸 고리로 낚아채 구출하는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몇 장면은 로버트 미첨이 주연한 헐리웃 한국전 영화 《War Hunt》를 그대로 참조했다는 말도 있다.

인지도나 유명세에 비해서는 흥행성적은 신통치 않아서, 김진규 감독의 《성웅 이순신》과 같이 1960년대 대표적인 말아먹은(...)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다만 《성웅 이순신》은 완전히 흑역사인 반면에, 이 영화는 고전 걸작으로 남아있다.[7]

북괴 2대 수령도 이 영화를 아주 좋아해서(...) 마치 아돌프 히틀러찰리 채플린위대한 독재자를 보는 격이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 있을 때, 북한 공군 창설에 관한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이만희 감독은 이 영화에 필을 받아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비슷한 항공영화 《창공에 산다》를 만들었다. 스토리 구성은 창공에 산다가 짜임새 있지만, 클라이맥스의 전투장면은 이 작품에 비교할 수 없다.[8]

2011년 말 또는 2012년 초에 개봉예정이었다가, 극장들이 외면하고 여러 문제로 계속 개봉이 미뤄지다가, 가까스로 2012년 8월 개봉이 확정된 영화 《R2B: 리턴 투 베이스》는 이 작품의 후계작 또는 리메이크작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는가 했더니만, 공개된 스틸과 줄거리는 불안감만 주고 있다.[9] 재미있게도 이 작품 역시 공군의 지원을 받았으며, 김신 장군이 직접 제작 관련 조언을 했다. 하지만 감독이 두사부일체 2나 유감스러운 도시를 감독한 사람이라서 불안감을 주더니만, 결국 8월 15일 개봉해 한 달이 지나서야 120만 관객을 겨우 넘기면서 쫄딱 망했다(손익분기점은 400만). 그런데, 일부러 한 오마주인 지는 모르겠지만, 후반부 폭격 장면과 배우 표정은 60년대 영화빨간 마후라의 그것을 아주 닮았다.

여담으로 북한 영화인 《하늘의 6부자》가 있다. 90년대 초반에 나온 영화로 5명의 아들(!)과 아버지 1명이 MiG-21을 타고 나오는 장면을 담은 영화이다. "신상옥 감독이 이 영화를 찍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신상옥이 북한을 탈출한 건 1986년 일이다. 그 이전에 촬영됐을지 모르지만 결국 마무리는 못 지은 셈. 유튜브에 영화가 있었는데 삭제된 상태라 정말 신상옥 감독이 이 영화를 맡았는지는 추가바람.

4 아마추어 아동 포르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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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중고생들이 직접 찍었다는 이유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포르노 비디오.

당시 KBS 1TV뉴스에 보도된 사건 내용이다.

최 모양(당시 15세)은 중학교 2학년이던 1997년 남자친구인 서울 S공고 김 모군 등 고등학교 남학생들과 외국 포르노를 흉내 내 집단 성행위 장면을 가정용 8mm 캠코더로 촬영했다. 문제는, 촬영 전 4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점이다. 거기에 이 비디오는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들의 복사를 거쳐 청계천 등 시중에 나돌게 되었으며, 나중에 최 모양 등은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2년을 명령받았다. 빨간 마후라는 비디오에 붙여진 이름으로, 영상 중 최 모양이 목에 빨간 머플러를 하고 성관계를 했기 때문에 붙은 제목이라고 한다. 성 머슬?

원래 시작할 때 나오는 제목은 '비디오를 보다' 이다.

처음 언론을 탄 건 MBC 9시 뉴스데스크였는데, 여기서는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동원해서 찍은 섹스 비디오였고, 마치 유흥업소 아가씨들을 조폭들이 강제로 시켜서 찍은 류의 비디오로 소개했다. 진상은 더 끔찍했지만...

당시로서는 사회적 파장이 매우 커서, 일부 학교에서 이걸 보다가 걸린 학생들은 가중처벌[11]을 받았다. 참고로 당시는 캠코더 초창기고, CD도 없이 VHS 테이프로 복사해보던 시절이라 화질이 몹시 끔찍하다. 영상 자체는 어렵사리 구해서 볼 만한 물건은 아니고, 그냥 희소성(...) 때문에 문제였다. 작중 최 모양은 머리를 남자처럼 단발로 깎고 있는데, 왠지는 모르나 강제로 깎인 것으로 보인다.

해당 동영상을 찍은 여학생 중 최 모양의 인생은 그야말로 기구하기 짝이 없다.

이 캠코더 테이프가 시중에 팔려 비디오테이프로 복사되어 유포되었다가 나중에는 인터넷에서 파일로 변조되어 다시 나돌았다. 일단 웹하드에서는 거의 대부분 삭제되었으나, 일부 P2P에서는 나돌고 있다. 이것 때문에 위의 빨간 마후라의 이미지가 한때 크게 추락했다.

일단, 미성년자들의 성관계가 담겨 있어 아동 포르노로 분류되기 때문에, 전자발찌 착용을 각오하고 싶지 않다면 찾아서 보지 말자. 어차피 화질도 눈이 아플 정도로 구려서, 막상 보더라도 별로 계속 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들 것이다. 이 글을 쓴 위키러는 봤다는 얘기네? 잡았다 요놈 이 사건이 97년, 아청법은 00년이니까 볼 사람은 다 봤다

유머로 4번을 보려고 P2P 검색해서 받았더니, 2번 동영상(군가동영상)or 3번(빨간 마후라 영화)이더라 하는 유머가 있다.

<싸이 6甲 part 1>의 수록곡 중 하나인 <77학개론>에서 김진표에 의해 언급된다. 거친 화면에도 우린 탁탁탁

충무로에서 이 영화에 참가한 아이들의 후일담을 가상으로 해서 두 편의 일반 극영화를 만들었다. 하나는 《스무 살 – 어느 소녀의 고백》이라는 영화로, 일반 극영화로 나왔지만 에로영화로 분류해도 상관없는 완전 흑역사급. 다른 하나는 지진희문소리가 나오는 영화《여교수의 은밀한 유혹》으로, 앞의 영화보다는 낫지만 역시 평가는 시망. 동영상을 찍은 여학생이 과거를 숨기고 잘나가는 여교수가 되었다고 가정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 실제 여학생의 인생은 그렇게 잘 풀리지 않았다.

5 온라인 게임

넷마블에서 서비스했던 온라인 비행기 게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기에 만화풍 캐릭터, 포트리스를 연상케 한 아이템 등 이것저것 짜깁기한 느낌이 강했던 일관성 없는 내용의 게임.

2006년쯤에 망해서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현재는 후속작에 해당하는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 라는 게임이 개발되었다. 프리스타일을 만든 JC에서 서비스하며 2009년 9월 오베까지 종료되었다.

그런데 이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마저도 2011년에는 완전히 고사(枯死)되어가고 있다... 지못미.
  1. 안철수는 해군 군의관 출신이다.
  2. 원작은 라디오드라마라고 전해진다
  3. 알려진 대로 최민수의 아버지
  4. 이 부분은 사실 생뚱맞게 처리되는 경향이 있다.
  5. 이런 짓을 하면 당시 비싸디 비싸던 카메라를 날려버릴 위험뿐만이 아니라, 비행기가 뜬 후 내릴 때까지 계속 카메라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필름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가게 된다. 필름 한 컷도 비싸서 함부로 못 쓰던 시절이 1960년대 한국 영화계인데, 저렇게 필름을 써댔으니 그야말로 용자 짓.
  6. 반면 일본은 전쟁 때부터 이런 미니어처 촬영에 도전, 전후에는 그 기술을 살려 거대괴수물에서 크게 꽃을 피웠다
  7. 사실 비행기 관련 영화의 흥행성적은 의외로 신통치 않다. 고전 전쟁영화의 걸작인 《공군 대전략》이나 《도라 도라 도라》도 역시 말아먹은 영화로 악명이 높았다.
  8. 다만 변명하자면, 1960년대 대한민국 공군이 대단위 전투를 한다는 건, 제 2차 한국전쟁을 다루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세계 각국에서 분쟁에 개입하거나 분쟁을 일으키는 미군과는 다른 입장이다.
  9. 사실 빨간 마후라의 마지막 장면은, 현대로 넘어가서 이제는 높으신 분들이 된 주인공들이 나오는 장면이다. 그들의 아들들의 이야기로 구상된 건 사실 1990년대 이래로 꾸준히 나오던 떡밥.
  10. 엄밀히 말해 아동 포르노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아동 복지법에 의하면, 아동이란 18세 미만의 사람을 칭하기 때문에, 이는 아동 포르노가 맞다. 법률에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12세 이하의 아이들을 아동이라 칭하지는 않는다. 법과 일반 상식이 다른 경우가 어디 한둘인가. 정확히 말하면 이 물건은 아청법상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해당한다.
  11. 그도 그럴 것이 상업적으로 찍은 성인들끼리의 성관계가 아니라, 또래의 아이들이 장난으로 섹스 비디오를 찍었다는 점에서 더욱 엄중한 계도가 필요했으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