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南雲 忠一(なぐも ちゅういち), 1887년 3월 25일 ~ 1944년 7월 8일
2 생애
2.1 탄탄대로를 달리다
일본 해군병학교 36기 출신으로 1908년에 졸업했다. 졸업성적은 총원 191명중 8등... 최상위권이었기 때문에 해군병학교 성적으로 이후 승진이 결정되는 일본해군의 전통상 탄탄대로를 달린다. 이후 여러 함상근무를 거쳐 함대 사령관까지 오른다.
2.2 리즈 시절
신중한 성격을 지닌 군인으로, 용의주도한 계획을 바탕으로 치밀한 작전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진주만 공습을 실행[1]하여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후 6개월간이 그의 전성기였다. 동으로는 하와이까지 진출한 그의 기동함대는 서로는 이듬해 인도양까지 진출하여 실론 섬의 영국군 기지를 폭격하고 영국 동양함대를 박살냈다. 나구모가 지휘하는 항공함대의 진주만-인도양 전과는 항공모함 1척 (영국), 전함 5척, 구축함 7척을 격침하는 대단한 것이었다.
2.3 문제점
수뢰전 전공이었던지라 어뢰를 이용한 전술에는 빠삭했으나 포격전이나 항공전에 관한 지식은 빈약했다. 항공모함이 주력인 진주만 공습의 사령관을 맡게 된 게 이상해 보이겠지만, 나구모가 수뢰전의 전문가이면서도 동시에 해군에서 손꼽히는 조함 전문가라는 이유였다. 요는 작전은 실패하더라도 배는 어떻게든 살려 오라고 임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신중한 면이 지나쳐서 과감한 모험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고, 융통성이 부족한데다 상황이 작전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페이스를 잃어버려서 스스로 무너지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진주만에선 세계최강 미해군을 잡아먹었고, 인도양에서는 세계최강 영국 해군을 잡아먹고, 미드웨이에선 세계최강 일본해군을 잡아먹음. 세계최강 종결자.
2.4 망했어요
미드웨이 해전에서 우유부단한 결정을 저지름으로써 제1항공함대를 태평양의 고깃밥으로 만들어버렸다. 저공으로 공격해오는 미군 뇌격기의 공격을 모두 성공적으로 막아냈기 때문에 세번째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뇌격기의 무장을 바꾸는 틈을 타서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공격해온 고공에서 닥쳐온 급강하 폭격기에게 당하게 된다.[2]
게다가 과달카날 전투 당시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미 해군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격퇴시켰음에도 휘하 함대를 갑작스럽게 철수시키면서 과달카날에 상륙할 부대를 실은 수송함대가 헨더슨 비행장에서 발진하는 항공기의 공습에 노출되도록 만들어서 상륙작전을 말아먹게 만든 적도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오바 항목의 동부 솔로몬 해전 참조.
이런 면을 볼때, 참모로서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야전 사령관으로서는 다소 걸맞지않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항공작전에 문외한인 수뢰전 전문가[3]를 연공서열 때문에 앉혀 놓았으니 별 수 없는 일이라 할 수도 있지만, 미 해군의 윌리엄 홀시 제독은 항모 지휘를 맡게 되자 중년에 비행사 자격을 딸 정도로 노력했으니 변명이 힘들다.
1944년 6월 15일, 미군의 사이판 상륙을 저지하러 출동했으나 이 시기의 일본 연합함대는 이미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였고 섬에 상륙한 미군에 쫓겨 도망다니던 중, 은신처인 동굴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3 평가
3.1 일본에서의 평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지식이 '미드웨이에서 나구모 함대가 대패했고 그 이후로 전세가 역전되어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했다'정도까지인지라 일반에서는 일본 패배의 원흉으로 취급받으며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대접을 받고 있다. 그래도 밀덕들 사이에서는 나름 평가를 받는 편.
3.2 그를 위한 변명
이 사람 혼자 일본 해군을 말아먹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고,[4] 일본측에서 본 핑계거리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서양의 전쟁사가중에서도 나구모는 그저 패배의 원인을 뒤집어쓰는 속죄양 정도로 보는 사람이 많다. 나구모의 소극성과 보신주의는, 다른 지휘관이 맡은 일본 해군 작전에서도 매번 나타나는 현상으로,[5] 나구모는 그저 결정적인 순간에 지휘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비슷한 실수를 한 다른 지휘관들에 비해 더 두드러질 뿐이라는 논리다.
그리고 나구모의 패배가 굉장히 뼈아픈 패배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구모는 미드웨이에서 항모 네척을 말아먹었어도 나구모의 부대들과 맞붙었던 요크타운급 세척이 과달카날에서 죄다 죽거나 저승 문턱까지 다녀왔고 인도양에서는 영국 해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진주만에서의 철수도 나구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가는 판단들이었다. [6]
게다가 그의 삽질을 보면 굉장히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미드웨이에서 항모 세척을 말아먹은 후 그는 야마구치에게 "히류는 살려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미 항모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야마구치는 자신이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해 공격을 했고 그 결과는 잘 알다시피 마지막 항모 히류마저 가라앉게 된다.[7][8]
사실 미드웨이에서의 대패는 나구모보다는 야마모토 이소로쿠에게 더욱 큰 책임이 있다. 처음부터 압도적인 수상전력을 미드웨이로 미 해군을 끌어내어 격멸한다는 망상으로 무려 4개로 분리시켰으며, 각각 200km나 되는 거리를 벌리게 만듬으로서 제1기동부대를 위험에 빠뜨리게 만든 장본인이다. 나구모에게는 정찰능력도 부족했는데, 결국 그 부족한 정찰능력이 기습을 당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정찰능력이 부족했던 근본 원인이, 북방함대와 미드웨이 상륙함대, 그리고 주력 본대 등으로 토막을 내놓은 야마모토 제독의 함대 편성 때문이었다.[9]
미드웨이에서 기습을 당하는 시점에선, 나구모가 무당이 아닌 이상에야 그걸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찰 능력은 부족하지, 좁은 아일랜드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분야로 참모들이 목소리만 높이지, 미국 항공기들이 축차 공격을 감행해서 기함을 조타하느라 정신없지... 엔터프라이즈에서 공격대가 출발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한 시점에서, 그 자리에는 나구모가 아니라 그 누가 와도 일본군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도 그랬는데 나구모의 항공전대가 격퇴시킨 그 항공모함은 당시 문제가 생겨 말 그대로 떠내려가고 있어서 일본군의 예상 위치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정규항모 한척이 다른 항공모함에게 격침당한 상황이었다. 섣불리 공격을 나갔다가 또 미드웨이 2편을 찍으면 연공이고 줄이고 상관없이 목이 달아날지 모를 상황.[10]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결국 쇼카쿠가 죽어나가고 즈이호가 불타오름에도 끝끝내 한척의 항공모함도 잃지 않고 돌아왔다. 물론 운과 설계가 작용하긴 했겠지만 당시 쇼카쿠는 전치 9개월이라는 말이 안되는 상태[11]에서 살려온 걸 보면 어쨌든 8등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대에 와서는 그의 선택에 대해 당시 일본군의 상황을 감안하면 그정도로도 할만큼 했다며 무능한 제독까지는 아니고 평범한 제독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미드웨이에서 한방에 말아먹기는 했지만, 사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지휘관을 통틀어 가장 많은 공적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며 다른 수많은 졸장들과 달리 그는 자기가 능력이 부족하단 걸 자기 자신도 잘 알고 있었고 인정했기에 작전에서 항상 참모들과 파일럿들의 의견을 중요시했다.
6.25 전쟁에서 현리 전투 등에서 대패한 유재흥과 비슷하다. 결정적인 전투들에서 패했는데 혼자 책임만으로 몰 수 없다는 당시 대부분의 한국군 지휘관들은 큰 병크만 저지르지 않으면 명장 소리들을 정도로 막장이였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하지만, 인도양에서의 영국함대 격멸등을 생각하면 유재흥과의 비교는 나구모에 대한 모욕이다.
4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가공전기에서 푸대접받는 대표적인 일본군인으로, 높은 확률로 닥치고 초반에 끔살당한다.
4.1 애니메이션 & 소설
- 전투요정 유키카제 - UN의 요청으로 남극에 파견된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CVN-56의 함장으로 실존 인물 나구모 주이치에서 모티브를 따온 '나구모'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CVN-56의 별칭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함께 유키카제가 극우 작품으로 종종 까이는 원인중 하나. 작중 등장하는 일본군이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는 (원작, OVA 모두 다) 표현으로 볼 때 이는 제국주의 미화의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비꼬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12]
- 일본의 가공전기 만화 몽환의 전함 야마토에서도 소극적이고 무능한 모습으로 등장. 미드웨이 해전에서 먼저 적기를 발견하고 요크타운을 공격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카기, 카가, 히류를 잃고 패주한다. 그나마 실제 역사와 달리 야마구치 다몬이 자살하지 앓기로 결심해서 소류만 건진다. 역사대로 사이판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4.2 영화
- 1970년작 도라!도라!도라!에서는 토노 에이지로가 역을 맡았다.
- 1976년에 만들어진 영화 미드웨이에서는 일본계 미국인이었던 제임스 시케타가 맡았다. 대사를 영어로 말한다. 여담으로 목소리가 제라드 듀갈을 연상시킨다.
- 1988년의 미국 미니시리즈인 전쟁과 추억에서는 대니 가메코나가 맡았다.
- ↑ 처음에는 항모를 사용하는 것이 불확실하다고 반대했다가 야마모토 제독에게 "그렇다면 그만두시오!"라는 말을 듣고 마지못해서 작전을 실행했다는 일화가 있다.
- ↑ 이것도 나구모를 조금 변명하자면, 일본 항공모함의 내구력과 수리능력이 개판이라서 폭탄 한방에 유폭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나구모에게 주어진 임무는 미드웨이 점령인지 항모 격멸인지 확실치 않았다.
그런데, 적의 공습부대가 뇌격기만으로 구성됐을 거란 예상은 하는 게 아니쟎아. 일본군도 뇌격+폭격부대를 조합해 날릴 텐데.그뿐 아니라 일본군 해군의 함재기 운용 방식도 문제가 많았다. - ↑ 미드웨이 해전 당시도 꺼벙하게 있는 조타수를 밀쳐내고 자신이 직접 키를 잡고선 그 크고 둔한 아카기 항공모함으로 어뢰를 피해냈다는 일화까지 있다(…).
- ↑ 역설적으로 한사람이 완전히 말아먹을 정도로 허술한 조직이었다면, 그 조직은 원래부터 문제가 있는 조직이다.
- ↑ 예를 들어 미카와 군이치는 과달카날 전투를 둘러싼 사보섬 해전에서 적의 순양함 4척을 격침시키는 대승을 거두고도 적 항공모함의 반격으로 함정을 잃을까봐 과달카날로 가는 수송선단은 그대로 둔채 돌아왔다.
- ↑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에서는 나구모가 라인이 다른 자기 직속 상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보다 같은 라인인 나가노 오사미 군령부 총장의 말을 듣고서 진주만 기습 시에는 함대 보존 우선, 미드웨이 해전 시에는 미드웨이 점령 우선 명령을 따른 것으로 그리고 있다.
- ↑ 미드웨이 해전 이후에 만일 일본이 당시 잃어버린 항모중 단 한척만 더 살아있었어도 미드웨이 수준의 대규모 공세를 다시 한번 벌일 수 있었을 거라는 계산도 있다. 우습지만 나구모의 판단이 맞았던 사례인 셈.
- ↑ 하지만 그 히류가 요크타운을 끝장내버려서 미국의 항모 한대를 더 줄이는데 성공한다. 만약 그당시 히류가 공격을 나서지 않았다면 일본은 항모 셋을 잃고 상대방의 항모는 흠집도 나지않은 결과가 나왔을테니 히류를 공격에 동원한것이 무작정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다. 미드웨이해전때 요크타운을 잃었기에 산타크루즈해전에서 호넷마저 침몰하면서 결국 미국이 항모가 엔터프라이즈한대밖에 안남아 여기저기 뺑뺑이 돌리는결과가 나와버렸다. 만약 그 엔터프라이즈마저 침몰했다면 오히려 히류를 희생한 그 결정이 잘한결정이라고 후대에 평가될수도 있었다.....
- ↑ 게다가 미드웨이에서 나구모 부대를 앞세운 것도 결과적으로는 치명타였다. 포격이 되는 전함으로 구성된 주력 본대를 앞세워야 했을 판국에 포격도 안 되며 함재기 말고는 딱히 무장이랄 것이 없는 항공모함을 앞세운건 방어무장을 의도해서 넣지 않고는 자체 방어력이 없다시피 하게 되는 항공모함 입장에서는 그냥 내다버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 ↑ 물론 나구모의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다. 크기로는 경항모였지만 일본에서는 정규항모로 취급되던 류조를 미끼로 내던지는 작전을 세운 것부터가 문제다.
항모가 모자란다면서요? - ↑ 일반적으로 떡이 되도록 얻어맞은 항모라도 보통 3개월 정도면 도로 작전 가능한 수준까지 회복이 가능했다. 이를 감안하면 전치 9개월은 침몰 안 한게 기적인 수준이다.
- ↑ 외계 전투기가 쳐들어와 전투 조종사들이 숱하게 격추 당하고 호위함 한척은 대파 당한 마당인데 겨우 위기에서 구해준 부커 소령 앞에 세워두고 손톱이나 깎으며 달갑지 않은 소리나 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