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조(항공모함)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 군함
전투함
구축함이소카제급, 미네카제급, 카미카제급, 무츠키급, 후부키급, 하츠하루급, 시라츠유급, 아사시오급, 카게로급, 유구모급, 시마카제, 아키즈키급, 마츠급
사쿠라급, 카바급, 모모급, 나라급, 모미급, 와카타케급
잠수함L급, 해중형, 해대 1형, 해대 2형, 해대 3형, 해대 4형 해대 5형, 해대 6형, 해대 7형, 순잠 1형, 순잠 2형, 순잠 3형, 순잠 갑형 순잠 을형, 순잠 병형, 순잠 정형, 센토쿠급, 키라이센급, 갑표적, 삼식잠항수송정
경순양함텐류급, 쿠마급, 나가라급, 센다이급, 유바리, 아가노급, 오요도
중순양함후루타카급, 아오바급, 묘코급, 타카오급, 모가미급, 토네급, 이부키급
순양전함B-40, 공고급, 아마기급, 13호급, B-65
전함카와치급, 후소급, 이세급, 나가토급, 카가급, 키이급, 후지모토 전함 계획안, A-140, 야마토급, 슈퍼 야마토급
경 / 개조 / 호위항공모함호쇼, 류조, 쇼호급(쇼호-즈이호), 류호, 히요급(히요-준요), 치토세급(치토세-지요다), 신요, 다이요급, 카이요, 시마네마루급-야마시오마루
정규항공모함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 쇼카쿠급, 운류급, G18, 다이호, 카이다이호, 시나노
수상기모함노토로, 카모이, 아키츠시마, 미즈호급, 닛신
강습상륙함아키츠마루급, 쿠마노마루
연습함 / 포함카토리급, 하시다테급, 아타다C
어뢰정치도리급, 오오토리급, 제1호형 어뢰정, 갑형 어뢰정, 을형 어뢰정
해방함시무슈형, 에토로후형, 미쿠라형, 히부리형, 우쿠루형, 제1호형, 제2호형
군수지원함
공작함아카시, 아사히
급유/급탄/급병함시레토코급, 온도급, 카자하야, 하야스이, 타카노급, 하리오급, 무로토급(급탄함), 카시노(급병함)
급양함마미야, 이라코
상륙함정신슈마루, 대발동정, 제101호형 수송함
잠수모함진게이급, 타이게이
잡역선아스카C, 아타다C
취소선: 계획만 되거나 건조 중 취소, 윗첨자C: 노획 함선, 윗첨자A: 전후 완공

{{틀:해상병기 둘러보기}}

해상병기 둘러보기
1차 세계대전
미국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영국
2차 세계대전
미국 일본 제국
영국 나치 독일
소련 이탈리아 왕국
폴란드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중화민국 만주국
냉전
소련 동독
현대전
미국 일본
대한민국 인도
중화민국 러시아
영국 중국
프랑스 태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북한

1 개요

일본군 해군의 류조(龍驤)급 항공모함. 사이즈상으로는 소형항모(경항모)지만 일단 당시 기준으로는 정규항모로 분류되어 있다.

위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항공모함의 아이덴티티(?)이자 치명적인 결점이 바로 미칠듯한 언밸런스(…). 이게 왜 언밸런스인지 모를 수 도 있는데 하부(선체)에 비해 상부(격납고, 함교, 비행갑판 부분)가 말도 안되게 높다.[1] 앞에서 보면 아타케부네, 옆에서 보면 세키부네


1929년 11월 26일 진수, 1933년 5월 9일에 취역해서, 1942년 8월 24일에 침몰했다.

2 제원

%D0%A1%D1%85%D0%B5%D0%BC%D0%B0_IJN_Ryujo_-_1938_%D0%B3.png

  • 전장 : 180m
  • 전폭 : 20.3m
  • 흘수선 : 5.6m
  • 기준배수량 : 10,600t
  • 최대출력 : 65,000hp
  • 최대속력 : 29kt
  • 항속력 : 14kt로 10000 해리
  • 함재기 수 : 48기
  • 승무원 : 924명

3 상세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서 일본의 해군력은 영국미국의 6할로 제한되었고, 항모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8만 톤의 할당량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 할당량을 아카기카가의 개수작업으로 대부분 써 버렸고, 이대로는 영미에 대항할 수 없다며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은 배수량이 1만톤 이하인 항모는 몇대를 만들든 조약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서 1만톤 이하의 소형항모를 전력화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영국과 미국처럼 커다란 항모를 여러대 운용할 수는 없는 상황하에 작은 항모를 무진장 뽑아내서 이에 대항하려고 한 것. 원래는 와카미야를 대신하는 신형 수상기 모함이었던 류조는 그런 이유로 계획이 변경되어 항공모함으로 건조되기 시작한다. 본래 8000톤 정도의 배수량을 가지고 있어서 조약의 제한에는 여유가 어느 정도 있던 상황이라 군령부는 본래 20기 탑재할 예정이었던 함재기를 두 배로 늘리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무리하게 격납고를 한 층 더 올리는 개조에는 이런 배경도 있었다.

그런데 류조가 거의 완성되어 가던 무렵 체결된 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이 계획 자체가 흔들리고 만다. 1만톤 이하의 항공모함도 조약에 의해 항모 제한에 들어가버렸기 때문. 소형 항모를 여러 대 만드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한 대로는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이 와 버렸다. 결국 당초 계획했던 운용이 불가능해진 류조는 졸지에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고, 궁여지책으로 실전에서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기 위한 개조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미 선체가 완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평으로 사이즈를 늘릴 수는 없었고, 결국 작은 선체 위에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함재기 탑재공간을 늘리기 위해 격납고를 어거지로 한 층 더 올려버리면서 무게중심이 말도 안 되게 위쪽으로 쏠려 있는 흡사 전국시대의 세키부네를 연상시키는 언밸런스한 디자인으로 완성되고 말았다.

그런데 억지로 격납고를 2층으로 만든 결과, 배의 무게중심이 올라가고[2] 부력도 감소했다. 게다가 메인 연료탱크가 함의 가장 아래쪽 중심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여기에 들어있는 연료를 써 버리면 아래쪽의 무게가 줄어 안 그래도 위쪽으로 쏠린 무게중심이 더욱 위쪽으로 올라가 버리기 때문에 메인 연료탱크에 들어 있는 연료를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엄청난 모순(…)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배의 무게중심이 올라가는 게 왜 문제냐 하면, 급선회라도 하면 배가 옆으로 쓰러져서 침몰한다! 겨우 1만 톤짜리 배를 정규항모로 써먹으려고 무리하게 2층 격납고를 붙였기에 벌어진 참사였다.

결국 일본군은 3년식 14cm포를 보다 가벼운 12.7cm 고각포로 바꾸고, 연장고각포 2기를 철거하여 고각포의 수를 12문에서 8문으로 줄였다. 배에 벌지를 붙여서 배의 부력을 늘리고, 기관을 줄이고, 배 밑바닥에 밸러스트를 약 550톤 설치하는 등의 개조를 하여 무게중심을 낮추는데 성공했다. 또한 측하부를 향해 나있는 연돌의 위치를 높여서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탓에 오히려 속력은 당초 계획보다 떨어져버렸지만 어떻게든 항해는 할 수 있을 최소한의 안정성(…)은 확보되었다. 쇼를 한다. 쇼를

결국 그렇게 1931년 4월 2일 진수를 거쳐 1933년 5월 9일에 준공. 이후로도 우학사건이 원인이 되어 복원성을 높이기 위해 벌지를 크게 하는 등의 1차 개장을 받는다. 여기에 또 함수와 함미의 건현이 너무 낮은 탓에 1935년에 터진 제4함대사건 당시 후방 격납고의 문이 파괴되면서 침몰의 위기를 겪은 후 2차 개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완전한 문제해결에는 이르지 못한 채 항상 아슬아슬한 항해를 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커브를 도는 와중에 그대로 자빠질 뻔한 적도 몇 번 있었다는 모양으로, 류조가 급커브를 도는 도중에 격납고에 있던 선원이 천장을 올려다 봤더니 엘리베이터 출입구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

히류와 소류 등의 본격적인 항모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일본 해군의 몇 없는 항모로서 파일럿들이 엄청난 맹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매일같이 해가 저문 야간에도 이착함 훈련을 하는 탓에 매달 훈련중 사망자가 나왔다고. '적귀, 청귀조차 류조라는 이름을 들으면 줄행랑을 친다'는 우스개(?)까지 있었다는 모양. 덕분인지 일본 해군의 탑 에이스로 평가받는 이와모토 테츠조를 배출해낸 배이기도 하다. 사카이 사부로 역시 이 배에서 이착함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3].
다만 진주만 공습을 준비하면서 이 배가 키워낸 정예 파일럿들은 모두 나구모 기동부대로 이동. 예를 들어 일본군내에서 뇌격의 신이라 불리던 무라타 시게하루는 이 배에서 아카기로, 이와모토 테츠조는 쇼카쿠로 넘어갔다. 덕분에 정작 태평양 전쟁에서는 별 볼일 없는 수준의 파일럿들을 데리고 작전에 임해야 했다는 모양.

3.1 문제점

일본군이 마개조를 했지만, 류조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이 문서 맨 처음에 언급한 바와 같이 배의 무게중심이 높다는 게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

  • 안정성이 떨어진다.
심한 파도가 일면 배가 전복될 수 있고, 급선회라도 하면 배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져서 침몰할 수 있으므로 이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적이 공습이라도 해오면 급선회를 해서라도 피해야 하는데, 급선회를 못하면 그냥 폭탄 맞고 죽어야 한다(...) 일본군이 대공포까지 줄이면서 무게중심을 낮추려고 한 것도 그 때문.
  • 함재기의 수가 적다.
원래는 24기였지만, 격납고를 2층으로 만들어서 48기로 증강했다. 그래도 정규항모치고는 수가 좀 부족하다.
  • 대공화력이 약하다.
무게중심을 낮추려고 대공포를 줄인 탓이다. 늘리려고 해도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면 망하니까 그럴 수가 없다.
  • 속도가 느려졌다.
원래 30노트급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만들고 보니 29노트가 되었다. 항공모함이 느리면 여러가지로 애로사항이 많으니 별로 좋지 않지만 무게때문에...
  • 함교가 너무 작다!
항공모함이라면 흔히 연상하는 커다란 함교가 없다. 비행갑판 아래에 함교가 위치하기 때문인데, 이러면 항공기 통제부터 항해지시까지 매우 힘들어진다. 함교를 세우면 되겠지만, 그러면 기껏 낮춰놓은 무게중심이 도로 올라간다. 게다가 함교를 따로 새우려 해도 문제가 되는게, 무게중심 이전에 균형을 잡을 방법이....
  • 비행갑판이 좁다.
길이 156.5m에 폭 23m이므로, 조종사의 이착함이 쉽지 않았다.

결국 함재기 탑재수가 늘어났다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기존 성능보다 다운그레이드되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개장해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솔직히 표현하면 옆그레이드만도 못한 없그레이드가 되어 버린 것.

4 운용

4.1 중일전쟁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 류조는 많은 작전에 참가했으며 아카기와 카가가 보수작업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는 제 1항공전대에 편입되기도 했다. 1941년 4월부터는 4항전 기함이 된다.

4.2 남방작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후, 일본군은 남방작전을 벌였고 류조도 여기에 참가한다. 그런데 문제는

정규 항모는 류조 한 척이었다.

다른 항모들은 모두 진주만 이후의 정비나 오스트레일리아 방면의 작전에 투입되었기 때문. 어쨌든 류조는 동남아시아 방면을 침략하는 일본군을 지원했고, 싱가포르를 거쳐 자바해 해전 등에도 참가하고 인도양까지 진출하며 대활약했다. 대공포로 초계정을 침몰시키는 등의 정신나간 짓도 했다고(…).

1942년 4월에는 경항모 쇼호가 4항전에 소속되었고, 5월 3일에는 정규항모만큼 거대한 경항모 준요도 배속된다. 그러나 쇼호는 산호해 해전에서 쇼카쿠의 삽질로 침몰한다.

4.3 아쿠탄 제로

미드웨이 해전 당시 4항전은 알류샨 열도를 공격하는 통칭 AL작전을 담당했는데, AL작전 자체는 성공[4]했지만 당시 류조 소속의 코가 타다요시 1등 비행병조가 탑승했던 A6M 전투기가 아쿠탄 섬에 거의 손상없이 추락했다. 제로센 항목에 있는 바로 그 뒤집힌 채 추락한 제로센과 미군 라운델이 달린 제로가 그것인데, 통칭 '아쿠탄 제로' 또는 '코가의 제로' 등으로 불린다. 코가의 시신은 미국식으로 장례가 치뤄졌으며, 미국은 이 기체를 노획한 뒤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제로센의 모든 비밀을 알아냈다. 일본에서는 미드웨이 해전만큼이나 중대한 사건이라고 여겨지고 있으며[5], 4항전을 알류산 열도로 보내 전력을 분산시킨 실책은 미드웨이 해전의 중요한 패배 원인이 되었다.[6]

4.4 최후

과달카날 전투에 참가한 류조는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한다. 본대와 분리되어 미끼가 된 류조는 핸더슨 비행장 폭격을 위해 항공대를 출격시켜 폭격은 성공하나 미군에게 발견되어 B-17의 공격을 받지만 모두 피한다. 그러나 새러토가 함재기들의 공습을 받고 어뢰 한발과 폭탄 네발을 맞고 침몰한다. 귀중한 항모를 미끼로 내세운 일본군의 실책이 빚은 참사였다.

이에 대해서는 약간 이야기가 있는데, 류조가 미끼라면 가장 잘 알고 있을 지휘부인 즈이카쿠와 쇼카쿠에선 또 류조가 미끼인 것을 몰랐다고 한다. 이때문에 단순히 임무가 달라 분할되어 작전을 진행하던 도중 격침된 것 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4항전의 경항모 쇼호산호해 해전에서 5항전과 별도로 행동하다가 쇼카쿠의 삽질로 격침된 점을 감안하면 그냥 병크. 경항모가 단독으로 행동하면 그만큼 격침될 위험이 높아진다는 게 쇼호를 통해 증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교훈을 무시한 것이다. 이놈들은 반성이란 걸 모른다

류조가 격침된 후 쇼카쿠급 항공모함들이 엔터프라이즈를 공격한 결과는 엔터프라이즈 참조. 기승전엔터프라이즈

일본의 주장에 따르면 류조는 미끼 역할을 수행한 후 과달카날로 향하는 수송부대를 엄호할 예정이었다고 하나, 중간에 격침되었으므로 공중엄호는 불가능해졌고 쇼카쿠와 즈이카쿠도 미군 항모와의 교전이 끝나자 그대로 후퇴했기에 수송함대는 아무 엄호도 받지 못하고 과달카날로 가야 했고, 결국 공습으로 피해만 입고 철수했다. 수송부대의 고생길에 대해서는 중순양함 아오바 항목 참조. 기승전아오바

5 평가

기술적으로는 그 후소급 전함과 어깨를 견줄 정도의 결함함이다. 다만 이는 일본군의 무능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조약으로 졸지에 산 송장이 돼버린 물건을 도로 때려부술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되살려보려고 했던 것에 더 가깝다. 그야말로 일본 해군의 처절함과 안습함의 결정체.

그러나 실전에서는 나름대로 많이 활약했으므로, 후한 평가를 내려도 좋을 것이다. 전과도 못 올린 일본군 전함들보단 낫잖아? 그런데 만들어지고 나서 함재기는커녕 자폭용 미사일 싣고 가다가 단 한 척의 잠수함에게 걸려서 격침당한 항공모함도 있다는 게 함정. 그런데 문제는 그 항공모함의 원래 신분이 일본군에서 가장 강한 전함이었다는 게 더 함정.

6 다른 매체에서의 등장

네이비필드에서는 일본군 2차 항공모함으로 나온다. 그 전까지 오요도호쇼를 몰며 그 성능의 어중간함에 몸부림치던 일본군 플레이어들에게 단비와 같은 함으로, 여전히 동급의 타국 함선들에게는 뒤쳐지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손싸움으로 갈 만한 성능까지는 올라서게 된다. 게임 중에서는 급선회한다고 바닷물에 꼬라박진 않으니까

Ryujo_wows_main.jpg
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일본 6티어 항공모함으로 등장한다. 역시나 급선회한다고 바닷물에 꼬라박진 않는다. 그리고 보그에게 당하던 깡통을 역으로 되돌려줄 수도 있다.

함대 컬렉션칸무스류조(함대 컬렉션) 항목 참고. 참고로 아쿠탄 제로가 북방서희를 통해 구현되어 있다.

7 관련 링크

  1. 사람이 밟고 있는 곳 밑을 하부, 그 위를 상부로 보면 왜 언밸런스한지 알 수 있다.
  2. 이때 무게중심이 얼마나 높았냐면, 무게중심의 위치가 흘수선으로부터 무려 3.895미터 위(경하기준)였다.
  3. 다만 사카이 사부로는 항모에 소속된 파일럿으로 근무한 적은 없다.
  4. 그런데 문제는 미드웨이 해전, 즉 MI 작전이 대실패함으로써 반쪽짜리 작전이 된 것이다.
  5. 여기서도 아쿠탄 제로 때문에 제로센의 비밀이 미국에 노출되어서 F6F 헬캣이 만들어졌다느니 하는 일본의 주장에 헛점이 노출되는데, '제로센 킬러'로 불리는 F6F 헬캣과 대전기 최강의 함재기 F4U 콜세어는 개발을 시작한 연도가 미드웨이 해전은 물론 진주만 공습보다 더 전인 1938년부터였다는 것이다. 아쿠탄 제로가 노획된 시점보다 한참 앞서 있었으니, 아쿠탄 제로 운운하는 일본의 정신승리는 완벽한 뻥카.
  6. 일본의 평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제로기의 비밀이 탄로난 것이 마치 엄청나게 중요한 무엇이 들통난 것 취급을 하면서 역으로 제로기의 비밀이 탄로나지 않았으면 미군은 이길 수 없었다/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하는 뭔가 병신같은 논리가 은연중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실상은 제로의 비밀이고 뭐고 그저 연합군의 대응을 조금 더 수월하게 만들었을 뿐 연구가 없어도 제로기는 연합군의 후속기에 박살날 운명이었다. 노획 후 테스트 비행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당시 테스트 파일럿이었던 에릭 브라운은 전후에 회상하길 "최고의 비행기였다. 적어도 1943년 중반기 까지는" 이라고 평했다. 사실 일본 빼고 이 사건을 저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