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B Dato' Sri Haji Mohammad Najib bin Tun Haji Abdul Razak
말레이시아의 6대이며 현직 총리. 전직 총리들과 더불어 별 다를 바 없는 독재자의 하나로 분류되는데, 종종 김정은이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과 많이 비교된다.
1 생애
1953년 파항 주 쿠알라리피스에서 전직 총리이자 초대 부총리였던 압둘 라작과 영부인 라하흐 노아흐의 아들로 태어났다. 동생으로 나지르 라작이 있는데 지금은 유명한 기업인이다.
젊은 시절 영국의 노팅엄 대학교에서 유학했었고 귀국 후에는 공무원 및 회사원 등으로 평범한 사람으로 살던 중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아버지가 맡고 있던 쿠알라리피스 지역 국회의원 직을 바로 승계했는데 이로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76년 텡쿠 푸트리 자이나와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11년만에 이혼했는데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후로는 로스마 만소르와 결혼하여 현재까지 쭉 살고 있다.
1982년부터 4년간 파항 주의 총리대신을 역임했고 1986년 문화청년체육장관에 이어 1991년 국방장관, 1995년 교육부장관뭐가 이렇게 많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치경력을 쌓았고, 2004년 부총리에 오르면서 당시 총리였던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에 이어 권력 2인자가 되는 데 성공하고 2008년 재정부장관까지 오르면서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재정부장관에 오르던 그 해 총선에서 소속정당이자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이 패하고, 결국 압둘라가 이에 대한 댓가로 사퇴하면서 권력후계에 성공한다. 물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리콴유-리셴룽, 프랑수아 뒤발리에-장 클로드 뒤발리에처럼 혈연을 통한 후계는 아니지만 같은 당원끼리 물려주는 것으로 일종의 후계라 할 수 있다. 무려 6대.
말라야 대학교 등 말레이시아의 공립대를 나와서 다소 편협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전직 총리들과는 달리 영국에서 유학한 유학파 출신으로 다소 개방적인 성향을 보일 듯 했고, 대대적인 정치가문 출신임에도 기성세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신세대였는데다 일명 "말레이시아의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불리던 부미푸트라 정책에 대한 개정으로 인종차별 및 외국인 문제 등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공약하는 등 말레이시아를 다소 개방적이고 개혁하려 하지 않을까... 했지만 현실은 시궁창. 아래 서술되는 내용들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이 점이 어째 김정은과 닮았다.[1]
2 개혁은 또다른 독재의 길
취임하자마자 부미푸트라 정책에 대해 다소 개정을 추구하면서 인종차별의 희생양(?)[2]이었던 중국인과 인도인들의 기대도 나름 얻었고, 이 정책으로 가장 크게 발목잡혔던 외국인들 역시도 크게 기대했다. 상대적으로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구하면서 체제는 비록 보수적이더라도 경제는 개방적으로 추구하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외국인은 나가라" 따위의 행동을 보이면서 결국 현실은 시궁창. 구글에서 기사를 찾아보면 나오지만 부미푸트라 정책을 완화하지 않고 되려 강화하려는 태도를 보인다거나, 외국인들에게 더 까다롭게 굴면서 이에 대해 반발이 있자 "내정간섭하는 외국인들은 필요 없다"는 소리를 하는 등 그야말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
전직 총리들과 마찬가지로 권력 연장을 위해 부정선거도 서슴치 않고, 2013년 총선 때도 민주화 열기를 엎어버리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여 말도 많았다. 야당 지도자로 "민주화 투쟁의 아버지"라고도 종종 불리는 안와르 이브라힘의 복권 가능성도 나집 시대에는 점쳐져 왔으나... 되려 안와르가 구속되고 투옥되는 상황을 보면 달라진 거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일종의 신격화를 시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총리들은 1대 툰쿠 압둘 라만은 "독립의 아버지", 2대 압둘 라작은 "개발의 아버지", 3대 후세인 온은 "단결의 아버지", 4대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는 "현대화의 아버지", 5대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는 "인적자원개발의 아버지" 등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일종의 시도가 있었다. 물론 윗동네의 3돼지처럼 아주 신으로 만드려는 것은 실패했지만. 그리고 나집 본인도 스스로를 "변화의 아버지"로 띄우려 하고 있다.
부패 의혹도 터졌다. 2015년 소위 "테러 방지"를 빌미로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260억 링깃(한화 약 7조 1500억)을 받았는데 문제는 이게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의심스럽다. 말은 "기부"라고 하는데 실상은... 이 일로 버르시 4.0과 같은 야권단체들의 시위가 있었고 빨간 옷을 입은 친여계의 반격도 있었다. 그야말로 탈이 많았는데 하필이면 최악의 총리로 꼽혔을 정도. 뭐 지금은 "#RespectMyPM"이니 하며 다소 풀리고 있지만 여전히 그 여파는 벗어나지 못할 듯.
정적 숙청도 여러 번 있었다. 나집 본인에게 기껏 협력해줬던 많은 이들이 정치적 대립이 붙자 숙청되었는데 첫 번째 희생양이 바로 권력 2인자였던 무히딘 야신. 검찰총장 압둘 가니 파타일부터 심지어는 전직 총리이자 독재자였던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는 민주화 투쟁가로 변신한 뒤로 아예 당에서 축출되었다. 아무튼 이러한 대대적인 숙청으로 꼴통으로 유명한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가 일단은 후계자로 내정된 상황이지만, 이 사람도 운명은 불안하다.[3] 지금까지 한 꼬라지를 봐서는 새로운 권력파들도 까딱하면 숙청될 듯.
사실 새로운 권력파들은 상대적으로 꼴통들이라 그런지 숙청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년 쯤은 일단 두고봐야 한다. 왜냐하면 적어도 2018년 이전에는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흔히 독재자들이 하던 수단으로 만약에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하면 조기총선을 치를 가능성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있던 상황을 봐서는 의석이 더 줄어들 전망인데다 2013년에도 주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무력으로 뒤엎고 승리한 상황을 보면 이번에는 어떻게 될 지 미지수. 설상 야당이 승리하더라도 그 때 가서는 이미 61년 장기집권 시대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관행을 보면 미얀마처럼 총선무효를 선언하고 대놓고 독재로 나갈 가능성마저 있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을 피하고자 2017년으로 슬쩍 앞당겨 치를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1995년 총선 다음이 1999년 총선이었고 2004년 총선 다음이 2008년이었다는 점을 볼 때는 나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3 내일은 해가 뜰까?
뭐 이렇게 부정적인 면만 적어 봤지만 그래도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중국식으로 체제는 보수적으로, 경제는 개방적으로 다소 돌릴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그래도 윗동네처럼 정통적인 막장은 아니기 때문에, 혹시나 지속적으로 권력을 연장하여 철권통치를 강행할 경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비난을 받아도 쌍욕을 하며 통쾌히 씹어버리는 윗동네와는 달리 말레이시아는 어느 정도 좀 수용하는 편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꼬락서니를 보면 이쪽도 걍 씹어버리고 니들이 나설 일은 아니니깐 꺼져라라는 식으로 귀를 닫아버린 건 있지만.
그리고 주민들도 나집을 차우셰스쿠처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지는 않는다. 나집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괜찮다"라고 말하는 정도. 무엇보다도 안보 문제 앞에서는 철저한 편이다 보니 주민들이 이러한 점만큼은 지지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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