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패

1 개요

2006년 부천에서 제주로 연고이전한 제주 유나이티드를 비하하는 용어이다.

2 남패로 불리기까지

1990년대 말 K리그의 인기팀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부천 SK였지만, 모기업의 투자 감소로 점점 전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야기되기 시작한건 IMF 외환위기 이후.

연고이전 사유는 FC 서울과는 다르다. 모기업 SK측에서 축구단을 해체하려고 했으나 서귀포시의 지원으로 제주로 연고이전 후 운영을 이어갔다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SK그룹에서 운영하던 스포츠팀들이 줄줄이 해체되었고[1], 축구단은 폭풍을 피했으나 모기업 지원금이 줄어듬과 동시에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던 선수 연봉에 대해 새로운 고과평가제도가 실시되었다.[2] 또한 신임 강성길 단장은 축구단 운영에 매우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인물[3]이었는데 홍보효과도 없는 축구단은 최소비용으로 운영하겠다.가 이 양반의 축구 철학이었다. 이런 양반이 단장이 되었으니 축구단에 투자는 기대할 수 없었고, 쓸만한 선수는 다 팔아먹고, 있는 선수로 돌려막으면서 그냥그냥 운영하는 팀으로 전락하였다.

여기에 똥누는 놈 주저앉히는 계기가 된 결정적인 사건이 소버린 사태. 2003년 소버린 사태로 인해 그룹의 존망 위기에까지 내몰린 SK는 축구단 매각매각이지 해체가 아니다!을 검토했으며 실제로 부천시에 무상기부, 중국 스더그룹에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흐지부지되었다.[4] 어찌저찌 소버린 사태가 잘 수습된 이후 2004년부터는 축구단 정상화를 위해 정해성 감독을 영입하고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김정수, 조준호 등을 영입하는 등 본격적인 정상화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실제 팀이 정비된 2005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눈앞에 두고 탈락하기도 했으며 평균관중도 대폭 상승하였다.

파일:Attachment/부천은 영원합니다.jpg
지금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그런데 엄청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2006년 2월 2일 오전. 공식 홈페이지에 제주도 서귀포시로 연고이전을 한다는 발표를 한다. 연고이전의 이유는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클럽하우스 문제였다. 당시 부천SK는 인천광역시 용현동에 위치한 SK저유소 부지내에 위치한 클럽하우스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 부지가 재개발이 됨에 따라 새로운 클럽하우스를 구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부천시측에 새로운 클럽하우스 건설을 위한 부지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부천시에서는 단칼에 거절, 전국 최고의 인구밀도와 도시화를 자랑하는 부천시에 클럽하우스 건설 부지를 구입하는 것은 비용이 한두 푼 들어가는 일이 아니었다.이 문제를 고심하던 SK는 축구단을 부천시에 유지, 제주도로 연고이전, 제 3지역으로 연고이전의 세가지 방안을 놓고 외주용역조사를 하였으나 결국은 클럽하우스 부지 무상제공을 떡밥으로 던진 서귀포시로 연고이전을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5]

"그 따위로 축구하려면~ 그따위로 축구하려면~ 나가 뒤져라! 나가 뒤져라! SK 나가뒤져라~!"

- 연고이전 이후 분노한 부천 서포터들이 부른 노래. 이 곡은 원래는 수원 응원단의 안티콜이며, 2015년 12월 5일에 부산 아이파크가 결국 강등되었을 때 분노한 부산팬들이 부르기도 했다.

사과문에 남의 구장 사진 이용하는 건 뭥미?
파일:부천 SK 연고이전.jpg

이후 FC 서울과 함께 연고지를 옮겼기(2006년 부천시→제주) 때문에 남쪽 패륜이라 해서 남패라고 불리고 있지만 이미지는 좀 더 나은 편[6]이다. 일단 FC 서울과는 다르게 구단 사이트에 연고 이전을 인정했으며, 모기업이 축구단 박대한 정황이 분명하고, 부천 FC 1995 창단이나 챌린지 리그 준비 기간에 SK[7]가 약간의 지원도 해 주었다. 서포터즈 풍백도 부천팬들에게 죄송하다는 사과 걸개를 거는 등 부천 SK 서포터즈에게 사죄의 뜻을 표명해 지금까지 별다른 충돌이 없고, 이후로도 연고이전 관련해선 발언을 극히 조심하고[8] 여타 폭력사태에도 연루된 적이 없었다. 전력이 약해 오랫동안 중하위권을 해맨 탓에 연고이전 외의 일로 타팀의 미움 받을 일이 없었고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팬, 특히 원정팬 숫자도 적어서 FC 서울만큼 까이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진짜 1~2명이 원정와서 응원하는 일도 있어서 타팀 서포터들이 개인적으로 격려해주는 일도 왕왕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잊을만하면 나타나 '우리가 북패보단 낫죠?'라면서 어그로를 끄는 팬인지 안티인지 모를 부류만 없더면 이미지가 좀 더 좋았을 것이다.[9].

또한 같은 SK 계열사인 SK텔레콤에서 부천 FC 1995와 잉글랜드 7부리그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10]와의 친선경기를 주선하고 비용을 부담해줬다.

하지만 어쨌든 오랫동안 연고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다 안양시에서 서울특별시로 가버린 FC 서울이나 정말 갑작스럽게 야반도주 하듯이 연고이전을 한 제주 유나이티드나 연고지를 이전한 것은 엄연한 사실인지라 극성 팬들이 많은 디시 국축갤 같은 곳에서는 똑같이 깐다. 다만 SK로서도 할말은 있는게, 부천시가 축구단을 위해 2,000억원을 들여 수용인원 35,000명의 부천종합운동장을 지어주었는데 얼마 쓰지도 않고 가버려서 시 재정만 축냈다는 주장은 지어낸 이야기다. 부천종합운동장은 1996년 전국체전 유치용으로 부천시에서 건설한 경기장이고 이와 별도로 SK에서는 신도시 계획이 한창이던 상동 신도시 내에 축구전용구장을 건립하려고 하였다.(현 부천터미널 인근) 그러다 1997년 IMF 사태로 인해 축구전용구장 계획은 전면 백지화 되면서 부천종합운동장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쉽게 정리하면 SK 축구단은 클럽하우스 부지 매입 비용 절감을 위해 연고이전을 한 것. 이는 보다 큰 마켓, 즉 (나름)더 잘해보려고 연고이전을 한 FC서울의 경우와는 정반대이다. 거대한 수도권 마켓을 버리다시피 하는 바람에[11] 관중 동원이 썩 좋지 않고 되려 기업과 구단 이미지만 왕창 깎아먹었다고 까이는데, 상술했듯이 당시 SK프런트는 연고지나 구단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었다. 또한 프런트의 지속적인 파행으로 열성팬들 사이에서 SK그룹의 이미지는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태여서 더 깎아먹을 이미지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박대가 화룡점정에 치닫던 와중에 제주도에서 지원해준대서 제주도로 간 것이며 오히려 제주도로 간 후 프런트를 물갈이하고 그룹 자체의 마인드가 바뀐 지금이 상황이나 이미지는 훨씬 좋다.
  1. 여자농구 SK증권 농구단과 여자배구 SK케미칼 배구단이 대표적이었다. SK증권은 1998년 2월에 농구대잔치 우승을 한 다음 날에 해체라는 어이가 가출한 발표로 여자농구팀의 연쇄 해체를 이끈 시발점이었으며, 여자배구 역시 슈퍼리그 준우승을 기록한 준수한 팀이었으나 역시 1998년 4월에 해체가 됐다. 당시 두 팀의 선수들이 현재는 각각 여자농구와 여자배구의 레전드급 선수들이 있었고, 이 때문에 SK그룹에 대해 악감정을 가진 올드 스포츠팬들이 많다.
  2. 기본급은 줄이고 출전수당을 대폭 늘리는 방식이었는데(즉, 먹튀를 막겠단 뜻) 주전급 고참 선수들은 이에 반발했으며 주장 강철을 비롯한 많은 고참급 선수들이 팀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3. 선수들이 전지훈련 갔을 때 열악한 숙소 문제로 하소연을 하자, "다음번엔 여관방으로 잡고 식사도 라면으로 때워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더구나 이 인간, "전국에 SK정유소가 몇 개인데 축구단 따위로 홍보하느냐?"...라는 소리까지 지껄였다.
  4. 이 시즌에 단 3승만 거두는 등 최악의 한해를 보냈다.
  5. 아이러니 하게도 연고지 용역조사 결과는 부천시 연고 유지가 최선이라고 결과가 나왔다.
  6.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서포터즈인 풍백 비롯한 팬들 이미지가 낫다. 운영 주체인 모기업은 연고 이적 하기 직전까지 안한다고 발뺌하면서 레플리카 팔아치우고 갔었다. 당연히 레플리카들은 분노한 팬들에 의해 화형식이 치뤄졌다.
  7. 같은 SK그룹이라지만, 부천 FC 창단을 지원한 건 SK텔레콤으로 연고이전 추진한 SK정유와 다르다.
  8. 연고이전에 관련 토론같은 게 있으면 내가 지지하는 구단이 연고이전 구단이라며 아예 말을 안했다. 반명 성남은 조명탑 사건을 들먹이며 자기들이 반강제로 쫒겨났다고 언플을 날리며(구장시설문제는 바로 그 해 말 새 구장이 건설되어 해결되었고 추적 60분 보도를 보면 처음부터 떠날 생각이었다.) 당당하게 서울, 제주 비난하는데 끼어들었다. 쫒겨났던 서울로 돌아간 FC 서울은 아예 연고복귀라고 못을 박았고.
  9. 연고 이전 당시 기자가 "제주 있다가 나중에 또 연고 이적 합니까?" 라는 질문에 구단 측이 "한국에서 안 되면 일본이나 중국으로 갈 수도 있다." 는 식의 발언을 내뱉은 적도 있었다. 당시 윗선의 축구단 대우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10. 통칭 유맨. 맨유의 지나친 상업화에 반발한 맨체스터 시민들이 만든 구단.
  11. 서울 서부, 인천 동부, 부천이라는 먹음직스러운 시장을 버렸는데 그 동네 숫자만해도 제주도의 4~5배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