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1 기호로서의 녹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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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Cross. 녹색의 십자모양의 표식으로 재해나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을 상징한다. 병원에 크게 걸려있는 그것.

2 국제녹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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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크로스 한국지부
지구의 환경과 인류의 생존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 비정부 환경단체.
적십자와 다른 점은 전쟁 때 부상자를 도와주기 위해 설립된 적십자와 달리 환경파괴로부터 지구를 지키자는 뜻에서 출범했다.

주요 사업은 지구의 환경과 인류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하여 가치관과 인식을 전환시키는 활동, 국제 재난 구호와 의료 지원,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차세대 에너지 개발에 대한 지원, 수자원 보호 및 수자원으로 인한 분쟁 방지와 해결, 핵무기와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지구 및 인류의 생존 보호, 전후(戰後) 환경에 대한 분석 보고와 국제사회 지원 등이다.

3 녹십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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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주식회사 녹십자
영문명칭Green Cross Corporation.
설립일1969년 11월 1일
업종명완제 의약품 제조업
상장여부유가증권시장
기업규모중견기업
종목코드006280
[1]

대한민국의 제약회사. 본사 및 연구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으며, 충청북도 청주시 오창읍과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공장이 있다.
2번 항목과 이미지가 비슷하여 비영리 단체 같은 것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엄연히 돈을 벌기 위한 영리기업이므로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1967년에 설립되었고 주로 하는 일은 혈액을 이용한 혈액제제를 만들거나 백신 개발 및 판매이며,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이 '2010 대한민국 10대 신기술' 선정되는 등 상당히 전망 있는 기업인 듯. 1983년 세계에서 3번째로 B형간염 백신 개발에 성공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군대에서 맞는 유행성 출혈열 예방 백신인 한타박스도 여기서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국내 70,80년대까지는 학교나 공원 등의 공용 남자 화장실에는 개인용 소변기가 없었고 시멘트 벽을 치고 바닥에 일자로 홈을 파 놓았을 뿐이었는데, 70년대 중반부터 녹십자 마크가 붙은 소변을 모으는 플라스틱 통이 놓이기 시작했다. 소변에서 혈전용해제인 유로키나제의 원료를 추출하기 위해 수거하는 것이었다.

이름때문에 1991~1993년 사이 에이즈 보균자의 혈액을 이용해서 만든 혈우병 환자 약이 시중에 유통되어 혈우병 환자 20여명 이상이 에이즈에 걸려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다행히 2013년 11월에 합의를 보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한일시멘트에서 계열 분리된 그룹이다. 한일시멘트의 창업주 허채경 회장의 장남 허정섭이 한일시멘트를 이어받고 차남 허영섭이 녹십자를 이어받았다.

2014년 1조 매출 돌파를 노리고 있다... 사실 한국의 제약사들은 역사는 제법 길어도 대부분 규모가 영세하고 내수 의존, 신약 개발은 있지도 않고, 심지어는 복제약도 아니고 다국적 제약사들의 약을 가져다 파는 도매상에 가까운 경우도 많은 등 경쟁력이 영 좋지 않은지라... 제약업계 최초의 1조 돌파는 제법 의미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유한양행도 1조 매출을 기대하고 있음.
일동제약과 경영권 분쟁이 있었다.

4번 항목 회사와는 별개 회사이나, 초창기에는 명칭 사용에 대한 양허는 있었고 기술 교류 정도 관계는 있었다고 한다. 혈우병 백신 에이즈 사건은 우연

한보그룹이 망하고, 한보그룹 계열사였던 상아제약을 인수했다. 상아제약의 유명한 파스 제놀도 이 때 녹십자로 넘어왔다.

4 일본 녹십자사

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된 일본의 의료관련 회사.

처음의 사명은 혈액은행이였다.당시의 다른 일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6.25 전쟁 특수로 미군 상대로 혈장을 팔아서 부를 축적해 잘 먹고 살았다.

그러나 곧 병크가 터지는데 1980년대 이 회사에서 제조한 혈우병 환자를 위한 약에 HIV 바이러스가 섞여들어간 것. 인간의 피를 원료로 하다 보니 제대로 검사를 했어야 하는데 일본 후생성과 녹십자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1] 당시 5000명의 혈우병 환자 중 약 2000명이 에이즈에 감염.이후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는데, 녹십자 설립에 참여한 인물들 중 관동군 731 부대에서 복무한 자들이 있었던 것. 그중에서도 당시 설립 주도자이자 회장이었던 나이토 료이치(内藤良一)란 자는 아예 대놓고 적극적으로 생체실험에 관여한 전적이 있어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부르지도 못할 놈이었다!

또 한 가지 일본의 전 총리인 간 나오토가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사건이였는데 당시 후생노동상(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있었던 그는 이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배상 판결이 내려지도록 노력했으며 이는 부인의 요청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결국 미쓰비시 제약을 거쳐 현재는 타나베제약에 인수되어 사라졌다.
  1. 혼다 테츠야의 본격 일본 관료제를 마이크로 단위로 까는 소설 "감염유희"에서도 흑막이 복수귀로 타락하게 된 주요 계기로 이 사건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사랑하던 여자가 이로 인해 에이즈에 걸렸는데 추가타로 외무성의 어느 천하의 개쌍놈이 알지도 못하면서 걸레니 뭐니 하는 헛소문을 퍼트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