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정식명칭주식회사 유한양행
영문명칭Yuhan Corporation
설립일1926년 6월 20일
설립자유일한(1895 ~ 1971)
업종명의약용 화합물 및 항생물질 제조업
상장유무상장기업
기업규모중견기업
상장시장유가증권시장 (1962년 ~ 현재)
주식코드000100
편입지수코스피지수
KOSPI200
KRX100
소재지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 74 (대방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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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柳韓洋行. 대한민국제약 부문 중견기업. 본사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대방동)에 위치해 있다.

유한양행은 유일한 박사의 이름을 따 온 유한과 세계로 통한다는 뜻의 양행을 합친 말이라고 한다.[1] 유한양행의 상징인 '버들표'는 유일한 박사의 성(버들 柳)에서 착안해 만든 것이다. 설립 초기에는 미국에서 수입한 약품이나 화장품 등을 팔았으나, 이내 자체 제조한 약품 등을 팔기 시작했다. 국내 상위 5개 제약사에 항상 이름을 올리다가 드디어 동아제약을 꺾고 제약업계 1위 매출 기업으로 등극. 주요 약으로는 트라젠타(혈당강하제), 알마겔(제산제), 비리어드(B형 간염 치료제) 등이 있다.

심벌마크이자 상표인 버들표는 실존 버드나무를 본따서 만든 로고로 1926년 창립 당시부터 처음 사용하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경된 적이 없다. 1920년에 설립된 동아일보을 본딴 로고와 함께 지금까지도 장수 중인 오래된 로고이다. 이 로고는 유일한미국에 있다가 유한양행을 세우기 위해 귀국하려고 했을 적에 서재필이 만들어서 유일한에게 준 것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유한양행 이름보다 유한킴벌리나 한국얀센[2]이란 이름이 더 친숙할 것이다. 여담으로 유한킴벌리가 곽화장지인 "크리넥스"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때가 1971년이다.

대한민국의 제약 기업 중 6330만원으로 평균 연봉 1위를 찍은 기업이다.[3]

2 역사

창업주인 유일한서울 종로2가에 유한약방을 처음 설립한 게 유한양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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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동 구 사옥(1962년 완공, 1967년 중축)

1997년에 대방동 구(舊)사옥에서 바로 옆의 신 사옥으로 이전하였으며 구 사옥은 현재 민간업체의 웨딩홀로 사용하고 있다.

3 계열사

  • 유한화학
  • 유한메디카
  • 유한크로락스
  • 유칼릭스
  • 엠지
  • 유한킴벌리
  • 한국얀센 : 벨기에 얀센과 합작 투자.
  • G.T.B.L : 인도 현지 합작 투자회사.

4 깨끗한 기업의 표본

  • 1939년에는 대한민국 기업 최초로 전사원 주주제를 실시, 유일한 창업주가 가지고 있던 주식의 52%를 당시 유한양행 회사원들한테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대인배 오오. 그리고 역시 대한민국 최초로 전문 경영인(CEO) 제도를 실시한 기업이기도 하다. 이는 유일한 박사가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계승함으로서 직접 시행했다. 이 말이 잘 와닿지 않는 위키러를 위해 간단히 표현한다면 재벌 세습을 안 했다. 이 때문에 전임 대표였던 김윤섭 대표이사(재임기간 : 2009년~2015년)도 1976년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고 현임인 이정희 대표도 1978년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4] 또한 딸에게 묘소 주변 땅 5천평, 손녀에게 학자금 1만 달러를 물려준 것을 제외하고는 전 재산을 기부했다.[5] 유일한 박사의 타계 후 40여 년이 흐른 대한민국 재계는 온통 2세 3세 경영인이 판치고 있는 데다가 결국 곪고 곪은 상처가 크게 터지고 말았으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 전문경영인 제도도 모자라서 '대표이사는 1회만 연임(최대 6년)이 가능하다'는 정관까지 끼어있어 한 사람이 오랫동안 하지 못하게 했다. 전임인 김윤섭 대표가 제약계 최초로 1조원의 매출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주총을 통해 물러난 이유도 이 때문.
  • SBS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땅콩 리턴과 관련한 보도를 내보내면서, 가족 경영을 거부한 기업인의 표본으로 유한양행 사측에 창업주 일가의 연락처를 문의했더니 그 분들 연락처는커녕 지금 뭐하는지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유일한 박사 본인이 임종 직전 회사에 남아 있던 일가 친척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몽땅 해고했기 때문에. 셀프 숙청 [6] 유한양행에는 단 1명도 일가 친척이 안 남아 있다고 한다.[7] 유일한 박사의 추모 행사나 혹은 유한재단에서 여는 시상식에 아주 가끔 참석하는 정도라고 한다.#
  •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는 법인세를 철저히 납부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주는 것을 거부했고, 이에 대한 보복(?)인지 국세청으로부터 수개월 간 세무조사를 받았다.[8] 그러나 당시 세무 조사원이 "아무리 털어도 먼지 안 나는 경우가 있구나"라고 말할 정도로, 탈세 내역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제조하고 있는 약품들도 관련 기관에다가 검사를 의뢰해 보니 멀쩡했다는 것[9]. 결국 보고를 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그렇다면 오히려 훈장을 받아야 마땅하다'며1968년 유한양행에 동탑 산업 훈장을 수여했다.

다만 논란거리가 없는건 아닌데 계열사인 유한킴벌리는 갑질 및 여러 논란으로 언론 보도된 바 있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5 트리비아

  • 실미도 실제사건의 인질극이 당시 유한양행 구 사옥앞 도로에서 벌어졌다.
  • 스페인 독감과 기업 설립이 연관된 것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1. 수공업자 조합은 작(作), 상업 조합은 행(行). 유럽의 guild같은 것
  2. 제약회사로, 일반인들에게는 타이레놀 라이센스 생산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참고로 미국에서 타이레놀존슨앤드존슨에서 만들고 있다.
  3. 단, 이 돈받는 신입사원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약학대학을 졸업해야 입사가 가능하다.
  4. 기아자동차도 과거에 이렇게 했으나, 부도 크리 먹고 망했다.
  5. 그 묘소 주변 땅도 공원으로 만들어서 모든 사람이 이용하라고 물려준 것이며 학자금 1만 달러 또한 손녀는 처음에 받지 않으려고 하다 반만 받고 나머지는 전부 기부하였다. 그야말로 호부호녀
  6. 다만 퇴직금은 비교적 후하게 주었는데, 유특한 회장은 퇴직금이 너무 많다며 반환하기 위해 형에게 소송을 걸었다. 과연 그 형에 그 동생이랄까.
  7. 다만 유일한 박사의 동생인 유특한 회장은 유유그룹의 창업주로, 이 분은 가족 경영을 했다. 그러나 유특한 역시 형만큼은 아니라도 굉장히 도덕적인 사람이다. 여담이지만 형인 유일한 박사가 유특한 회장에게 자신처럼 전문 경영인을 들일 것을 권유했을 때 유특한의 대답이 재미있다. 유일한 항목 참조.
  8. 나중에 이 정도의 세무조사를 받은 기업이 두개나 있었다. 바로 한보그룹과 삼풍백화점으로 유명한 삼풍그룹. 당연하지만 조사 진행 5%도 안 되는 시점에 당시 세무 조사원이 이렇게 경악했다. "내가 그동안 세무조사를 12년 간 했는데 아무리 털어서 먼지가 안 나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살짝 건드렸는데 먼지가 우수수 나오는 기업은 처음 봤다."라고 기겁했다. 현재도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9. 심지어 약품 제조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분까지 고려하여 원재료를 손실되는 양만큼 더 투입하여 약품 성분의 함량을 정확히 맞추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