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 실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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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論理 實證主義
독일어: Logischer Positivismus
영어: Logical Positivism

1920년대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 등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 사조. 논리 경험주의(Logischer Empirismus)와 비슷한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이후 분석철학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받지만, 바로 그 사상적 적자에 의한 혹독한 비판 끝에 결국 철학사의 영역에 접어들게 되었다. 1920년대 독일어권의 여러 철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을 중심으로 한 빈 학파(Wiener Kreis)가 유명하다.

논리 실증주의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두 가지 오해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첫 번째는 논리 실증주의가 문학, 윤리, 사랑 등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과학주의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오해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저런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 실증주의는 과학의 언어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사조였다. 이는 논리 실증주의로부터 배제된 특정 영역들이 과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주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할 뿐, 그것들이 인간의 삶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물론 과학이 아닌 것을 경시하는 태도가 몇몇 논리 실증주의자에게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더 많았다.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논고>의 유명한 언급은 흔히 과학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방진 발언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문제들보다 삶의 문제들, 삶의 형식들이 훨씬 중요하다고 간주했다. 위 언급은 인간 인식, 인간 표현의 한계에 대해 우리가 숙고해야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표현들이 과연 정당한지에 관해 숙고해야한다는 발언일 뿐이다. 비트겐슈타인 외에도 에이어 등의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과학이 아닌 것을 존중하였고, 그것들이 다만 과학과는 다른 형태로 주장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논리 실증주의가 극단적인 과학주의를 함축한다는 주장은 많은 점에서 사실이 아니다.

두 번째는 논리 실증주의가 자기 모순에 빠져 실패했으며, 그 이후의 분석 철학 또한 그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다는 오해가 있다. 대표적으로 지젝이 그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이 오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논리 실증주의에서 제기된 몇몇 문제들(이에 관해서는 후술할 것이다)이 그 사조 자체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었을 정도로 심대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분석 철학이 그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논리 실증주의 이후에 라일, (후기) 비트겐슈타인, 콰인, 셀라스 등은 그 문제들을 해소하거나, 혹은 그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키거나 하여 그 문제들을 극복했다. 따라서 논리 실증주의에 많은 심대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주장들이 극복되지 못할 정도로 심대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특기할 것은, 헤겔로부터 이어지는 철학의 어떤 그룹이 논리실증주의의 발전과 위기, 극복에 있어서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데 있다. 논리 실증주의에 관한 중요한 문제제기들은 모두 논리 실증주의의 문제의식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에 대한 (제대로 된) 극복들도 경험론의 전통에 선 철학자들에 의해 가능하였다. 요컨대 논리 실증주의의 실패가 헤겔-데리다-지젝 등의 그룹의 승리를 함축하지 않는다.

러셀, 비트겐슈타인, 에이어, 카르납 등에 의해 주창된 논리 실증주의를 다음의 한 문장으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경험적 대상을 다루거나 논리적 동어반복을 언급하는 진술들만이 의미를 가진다." 이와 같은 주장은 논리 실증주의를 발전시킨 두 가지 전통과 함께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논리 실증주의와 전통적 경험론의 관련으로부터 논리 실증주의를 이해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험론자였던 흄은 우리가 실제로 감지할 수 있는 인상들 외에는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사물들 간의 인과성까지도 표현할 수 없는데, 예를 들어 'A가 B의 원인이다'라고 하는 것은 어쨌든 실제로 감지될 수 없는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논리 실증주의는 이로부터 영향을 받아 의미있는 진술들의 범위에 경험적 대상들과 논리적 진술들을 허용하였다. 흄과 다르게 논리적 진술들을 허용한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 점을 거론할 수 있다: (1) 논리적 진술들을 허용하여 과학에 있어서의 연역적, 귀납적 추론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2) 논리적 진술들을 배제하면 우리 언어에 있어서의 '또는', '그리고', '만일'과 같은 요소들을 전혀 설명할 수가 없었다. (3) 세계에 관한 인식의 기본 요소는 사물들의 연쇄로 구성되지, 사물 하나로는 구성되지 않아보였다. 예를 들어 거미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면 우리는 거미가 어떤 색인지, 거미가 어디에 있는지, 거미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등 거미과 관련된 사물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야만 한다. 요컨대, 거미가 어떤 색인지는 이야기할 수 있어도 아무 색깔도 아무 위치도 여하간 아무 속성도 없는 거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세계에 관한 우리의 인식과 표현의 기본 요소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들의 연쇄이다. 따라서 사물들의 연쇄를 구성하는 '그리고', '또는'과 같은 논리적 진술들도 의미있는 진술에 허용되어야만 했다.

다음으로 논리 실증주의를 논리학의 전통과 관련하여 이해해볼 수도 있다. 19세기에 크게 발전된 논리학에 따르면, 가장 복잡한 논리적 진술들도 가장 단순한 논리적 도구들의 합으로 치환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 언어의 기본 골격이 논리학에 있다는 점만 인정된다면 가장 복잡한 일상 언어도 가장 단순한 논리적 도구들의 합을 변수로 가진 일종의 함수로 간주할 수 있을 듯 보였다. 따라서 철학자들의 임무는 그 함수에 들어갈 적절한 상수를 찾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식의 발상은 주로 러셀 등 논리학자들의 몫이었다.

논리 실증주의는 여러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가장 중대하고 유명한 문제는 논리 실증주의가 그 스스로 정당화되기 힘들어보였다는 데에 있었다."경험적 대상을 다루거나 논리적 동어반복을 언급하는 진술들만이 의미를 갖는다"라는 논리 실증주의의 주장은 그 자체로는 경험적 진술인가, 아니면 논리적 진술인가? 이 주장은 언어의 특정 사용에 관한 문장이므로 경험적 진술이라고 보기엔 힘들다. 또한 이 주장이 'A=A'와 같은 논리적 진술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명백하다. 따라서 그 주장은 그 둘 중 어떤 것으로도 간주하기 힘들어보였다. 물론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본인들의 목적과 작업들을 진지하게 추구하였고 옹호하였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주장은 그들의 원리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았다. 따라서 논리 실증주의에서 이루어진 여러 복잡하고도 쓸모있어보였던 언어분석들에도 불구하고, 그 분석의 지침이 되었던 논리 실증주의의 주장이 정당화되지 않았으므로 그 분석들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를 설명하기가 곤란했다.

이외에도 논리 실증주의에는 여러 문제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거론할 수 있다: (1) 유아론의 문제. 논리 실증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감각 경험이라고 할 때, 나의 감각 경험은 다른 사람의 감각 경험과 그 성격이 일치하는가? (2) 원자 명제의 문제. 세계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명제들을 과연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가? (3) 논리 체계들의 문제. 논리 실증주의에서 사용되는 여러 논리적 도구들 중에, 완전히 성격이 다른 논리 체계를 바탕으로 한 도구들이 존재한다면 어떤 기준을 통해 더 나은 논리 체계를 선택해야 하는가? (4)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론에 있어서의 문제. 우리 언어가 과연 세계를 그림처럼 그리는가? 실제로 우리 언어에 세계를 그림처럼 담아내는 측면이 있다고해도, 언어를 세계의 그림이라고 선언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 이 문제들과 논리 실증주의에 관한 보다 자세하고 엄격한 논의는 엄슨의 <<철학적 분석>>를 참고바람.

한편, 논리 실증주의의 실패와 별개로 논리 실증주의의 의의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대부터 40년대까지 지속되었던 논리 실증주의는 사실 단순한 철학적 사조라기보다 철학과 과학의 협동에 의해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활동이었다. 과학자들은 본인의 작업들에 관해 보다 유용한 언어를 얻기 위해 논리 실증주의에 동참했고 철학자들은 과학의 활동들에 자극을 받아 철학도 일종의 과학으로 만들기 위해 논리 실증주의에 동참했다. 실제로 논리 실증주의에서의 중요한 그룹이었던 '비엔나 학파'에는 철학자들과 더불어 다수의 과학자들이 참가하고 있었다. 그 그룹에서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다같이 모여서 철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하는 데 힘을 모았던 것이다. 논리 실증주의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과학의 성과들을 외면하지 않고 철학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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