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만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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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우리들이 하는 짓을 보면 참 끔찍해."

- 홉스, 캘빈과 홉스

문과생 피꺼솟[1]

과학지상주의라고도 한다. 만능주의의 하나로, 소위 과학만능주의로 통칭되는 주제는 이하의 서로 다소 다른 개념 두 가지를 다루고 있다. 이 둘은 분명 차이가 있으며 후자는 비교적 오래된 개념, 전자는 현대[2] 북미권 중심으로 유행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국내의 2014년 현재 시점에서 전자를 주장하는 사람과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은 겹치는 경우가 매우 많다.

2 과학주의

Scientism

"굳이 필요한 일이 아닌데도 과학이 모든 가치 있는 질문의 대답을 알고 있는 것, 또는 설령 모르더라도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 그리고 과학적인 대답을 허용하지 않는 질문은 어떤 의미에선 얼간이 혹은 숙맥들이나 묻고 대답하는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이라고 치부하는 것. 이것보다 더 빠르게 과학을 망신시키는 일은 없다."

- 젊은 과학도들에게 드리는 조언(Advice to a Young Scientist), 피터 메더워(P.Medawar)[3]

영미권에서는 일종의 신조어로, 국내에는 "사이언티즘" 이라 하여 그 발음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과학적 방법을 비단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주제에서뿐만 아니라 그 외의 비과학적(≠유사과학적) 측면들이나 가치함축적 측면들에서도 적용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 다시 말하면 "과학적 방법 만능주의" 내지는 일종의 과학부심. 여기서는 과학을 진리에 이르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길이라고 여긴다. 철학자 톰 소렐(T.Sorell)은 과학주의를 "자연과학을 다른 학습이나 풍습의 갈래와 비교하여 지나치게 높게 치는 것" 이라고 정의한 바 있고, 즉 이에 따르면 좁은 의미에서 자연과학 만능주의로 이해될 수도 있다. 반과학과는 완전한 대척점에 있다.

철학적 배경은 계몽주의와 논리실증주의에 기초한다. 대체로 과학에 매우 우호적인 신합리주의 계통의 현대 무신론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논자들 면면만 봐도 그 사람이 다 그 사람이다. 국내에는 반종교, 무신론, 환원주의, 유사과학 비판 등등의 떡밥들이 얼키고설킨 채 쏟아져 들어오는 무렵에 함께 업혀서(…)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와도 많이 혼동되는데, 이것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얻어진 지식에 자신의 지성을 최대한 의존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대해서는 건전하고 건설적인 의심을 유지하는 입장이다. 양자가 상당 부분 겹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과학적 회의주의자들 중에도 인문학의 가치나 계량화, 수량화, 환원 등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사이비 사이언스》의 저자 아서 위긴스(A.Wiggins) 같은 경우에도 과학의 적용범위에 대해 선긋기를 하는 모습이 종종 나타나며, 하술될 다른 회의주의자인 로버트 캐롤(R.T.Caroll) 역시 과학주의에 매우 비판적이다.

과학주의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작가이자 신경과학자인 샘 해리스(S.Harris)로, 그의 저서 《도덕의 풍경》에서 가치판단을 내릴 때 과학이 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흔히 "인문학의 시대는 끝났다" 라느니 어쩌니 하는 도발적 슬로건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이런 축. 이들은 과학의 교도권(Magisteria)이 지금보다 더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유명한 사람이라면 무신론자로 잘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일 것이다. 아니 세계적으로도 제일 유명하다.

과거 과학전쟁 이래 잦아들었던 인문학 대 과학의 구도가 다시 일부 강경한 과학자들의 과학주의에 의해 불붙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번에는 과학계의 선빵으로 시작한다 과학주의자들은 사회과학 역시 경성과학적 편견[4]을 가지고 대하며, 애초에 질적 자료(qualitative data)는 아예 자료로 취급하지도 않으려 한다. 이런 논자들의 경우 답이 딱 떨어지지 않는 골치아픈 인문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마치 수학문제에서 x값 구하듯이 답을 찾으려 하는 경우도 있으며, 환원주의를 탑재했을 경우 아예 거시적 안목 자체를 거부하려 하기 때문에 자신이 익숙한 미시적 수준에서의 분석에만 고집스럽게 천착하려 한다.

그런데 반면으로, 사회과학 쪽에서 과학주의에 더 적극적인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심리학, 경제학이다. 자연과학 형님들, 우리도 과학이니깐 같이 껴 주세요 ㅠ 인문학 너네는 저리가 이럴 경우에는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과학적인 성격을 띈다 하더라도 경제학이나, 과학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존재하는[5] 심리학이 과학을 자처할 경우에는 한편으로는 과학주의에 봉사하는 결과를 낳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과학이 아닌 부분까지 과학인 것처럼 행동하다보니 유사과학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의 유사과학성은 흔히 생각하는 유사과학보다는,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이라는 표현이 더 이해하기 쉬운 설명일 것이다. 주류 경제학이 보이는 객관성, 과학성에 대한 자처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비판들이 끊임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리학자 이안 허친슨(I.Hutchinson)은 과학주의에 대해서 "여타 학문들을 촉진하기는커녕 위험에 처하게 하고, 최후에는 그들의 오만함과 지적 따돌림(intellectual bullying)의 대가로서 다른 학문 공동체들로부터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반응만이 되돌아오게 될 것" 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 심지어 《회의주의자 사전》의 저자 로버트 캐롤은 "과학주의는 과학적 주장이 아닌 자가당착적 관점, 거짓이거나 무의미하다" 라고까지 하면서 혹독하게 깠다.[6]

이들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학문들을 공평하게 고려할 때) 그 주장이 과격하고 지나치게 강경하기 때문. 사실 과학적 방법 항목에도 있지만 과학이라는 것은 인류에게 매우 훌륭하고 믿을 만한 좋은 지식축적 도구이다. 그러나 흔한 만능주의극단주의가 다 그렇듯이 과학주의 역시 그 주장이 호응을 받기 힘들 만큼 과격하고 비현실적인 측면이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 다행히 인문학자들과의 대담이나 소통을 적극 시도하는 논자들도 있으며 이는 분명히 좋은 현상이다. 어딜 가나 잘 모르면서 설치는 행동력 높은 사람들이 문제일 뿐...

또한 정치적인 측면에서 좌파나 진보적 사상가들에 의해서도 약간 다른 각도에서 여러가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는데, 결국 가진 자들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과학주의를 너무 섣불리 내치려 하는 것도 경계하는 것이 좋다. 현실적으로 21세기 들어 수많은 학문분야들에서 과학적 방법은 서서히 그 저변을 넓혀 가고 있으며 그 유용성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7] 또한 학제간 연구, 다학제 연구, 통섭이라는 아이디어들이 호응을 받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과학과 타 학문과의 만남 자체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 어찌 보면 과학주의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지식이 축적되는 모습에 매혹된 나머지 생겨난, 빠가 까를 만드는 악성 팬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긍정적인 의미로서 자연과학적 지식과 과학적 방법론을 인문사회 분야는 물론 모든 인간의 영역에 적용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여러모로 발전의 계기가 되며 긍정적인 영향도 주어 왔으며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의 과학주의는 긍정적이겠지만 이 항목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문단에서 다루는 과학주의는 과학만능, 지상주의에 가깝기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적절한 것이 최고라는 너무도 뻔하지만 사실 잘 안지켜지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능성을 닫아버리지 않고 모색하는 것이다.

3 기술만능주의

"현대 사회는 기술이 가져다 주는 안락함에 감격하고, 기술의 편리함에 매료되며, 기술이 제공하는 꾸준한 오락에 중독되고, 기술이 그려 주는 미래의 전망에 매혹되어, (그 결과) 기술의 힘과 속도에 압도되어 가는 시대이다."

- 존 나이스비트(J.Naisbitt)

만능주의의 한 갈래. 과학기술로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위의 과학주의와는 다르니 주의. 한국에서는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등의 개념들이 서로 비슷비슷하게 통용되기 때문에, 주로 과학만능주의라고 하면 이것을 가리킨다.

의외로 그 기원은 상당히 오래 되었는데 이미 16세기 계몽주의에서부터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으며 19세기에 벨 에포크만 보더라도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며 이러한 믿음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세기가 바뀌면서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진보에 따른 문제점이나 부작용이 속속 발견되고, 결정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이 일깨워짐에 따라 점차 위축되어 가며 반대 주장이 목소리를 얻기 시작하였다. 사실 기술만능주의가 지배적이었던 당대에 출간된 프랑켄슈타인이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기술만능주의를 불신하는 풍조는 어느 정도 있었다.

그렇지만 기술만능주의는 다른 만능주의나 제일주의에 비해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발전에 따른 대부분의 문제를 또다시 과학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엔진 개발! → 근데 연비가 나빠서 환경오염이... → 엔진 개량! → 아직도 매연이... → 필터 개량! → 근데 가격이... → 싸고 좋은 신소재로 변경!" 같은 식으로. 또한 과학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이전에는 전혀 예상도 못한 일들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는 점도 한몫 한다. 바닷물로 비행기 연료를 만들고 잘린 손가락을 재생시키고 핸드폰으로 컴퓨터와 TV를 겸용한다는 이야기를 20년 전에 했다고 상상해보자. 아마 비웃음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 가지 알아둘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학기술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 과학기술로 축적해온 문명 역시 과학기술에 의해서 혹은 과학기술이 쌓아올렸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인간이 그 과학기술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과학이 인간성을 결핍시킨다"거나 "과학에 의해 인간이 부품화된다" 등의 이야기를 들어 봤을 것이다. 이것은 과학기술을 부정적으로 보는 자들의 의견인데, 사실은 아돌프 히틀러우생학을 들먹이며 유대인들을 학살시켰던 것처럼 과학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활용하기 나름인 도구이다. 교양과학 서적을 많이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데이스 홍(홍 원서)의 《로봇 다빈치, 꿈을 설계하다》의 마지막에서도 잘 나와있는데, 자기가 만든 구조로봇에 소화기 대신 총을 들게하고 투척용 소화기 대신 수류탄을 들게 하면 순식간에 군사로봇이 된다며[8] 과학기술이라는 것은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극명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 다시 말해 세간에서 흔히들 과학의 폐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악용한 인간이 문제인 것이지 과학기술 자체의 단점이나 결함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을 유용한 도구로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과학기술만이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의 해법이라고 생각한다거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절대적으로 옳은 명제라고 여기는 주장들은 이미 도구성을 넘어서 하나의 이념화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즉 과학기술 자체는 1차적으로는 도구일 뿐이고 가치중립적이므로 과학기술에 대한 편협한 비난은 분명 옳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을 도구로 여기는 것을 넘어서 목적화시킨다면[9] 그 때는 도구라는 변명으로 비판을 회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현대사회에서 매우 흔하게 보이고 있다.

또한 과학은 도구일 뿐이라고 해도, 기술은 과학과 달리 분명히 누군가의 의도와 목적성에 의해 개발되는 것임은 분명하며, 더더욱이나 현대의 과학기술처럼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력공밀레를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사회적 자원의 배분과 관련된 정치경제적 문제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애초에 과학기술만 생각하지 말고, 그 과학기술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자원을 대 주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을 희생하고 과학기술에 돌린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10]

그리고 기술 만능주의는 사실 제도권 교육 등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현대사회에서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면이 있다. 즉 우리가 겪는 여러 문제는 기술발전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암암리에 주입받아 왔고, 특히나 한국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경제성장 만능주의와 쌍을 이루어 왔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당연시되는 가정에도 여러가지 입장에서 의문과 비판이 가해지고 있는데, 환경문제에 대한 지적 등을 떠올리기 쉬우나 그것말고도 많은 지적들이 있다. [11]

이를테면

  • 과학기술은 무한정, 혹은 그에 준하게 계속 발전할 수 있는가?
  • 발전할 수 있다고 해도 제한된 지구의 자원과 환경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가?
  • 사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몇몇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12]
  • 과학기술의 발전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시각은, 경제성장이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주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렇다면 모든 국가가 계속 성장할 수 있는가? 우리가 성장하면 우리의 경쟁상대는 몰락하는 것이 아닌가? 파이 자체가 갑자기 무에서 유로 커지는 것이 가능한가? 질량보존법칙 붕괴[13]
  • 그리고 계급적 문제나 사회적 지배관계, 자원분배의 문제를 본질적 문제로 보지 않고 과학기술의 미발전을 본질적 문제로 보는 것은 결국 강대국, 자본가, 기득권, 권력자들을 본질적으로 무너뜨리지 못하는 위선 아닌가?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개발해서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주었다고 하는데, 정작 전쟁으로 기아로 죽어가거나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의미가 있을까? [14]

따라서 과학기술 만능주의는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지만 보편적인 해답은 결코 되기 힘들다. 애초에 만능주의항목을 보면 알듯이, 뭔가 하나에 모든 것을 의지해 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뭔가 하나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 만큼이나. 과학기술은 분명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에 크게 공헌하였고, 확실한 건 인류의 평균수명을 늘렸다. [15] 이것은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의미이지 만능주의로 빠져서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앞으로도 STS (과학-기술-사회)적 측면에서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서는 깊게 고찰해볼 의미가 있고 계속 화두로 제기될 것임은 분명하다.

서구에서 기술만능주의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사상가들로는 프랜시스 후쿠야마(F.Fukuyama)나 자크 엘륄(J.Ellul) 등이 있다.

4 유사품

기술관료(technocrat), 혹은 전문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이념, 정치성, 민주성을 경시하는 사상이 유사하다.

기술관료를 중시하는 사상은 꽤나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마크 마조워의 「암흑의 대륙」에 따르면 나치 독일 역시 우두머리들은 파시즘의 격정과 투쟁에 젖어 있었으나 의외로 실무자들은 무미건조하고 기계적이며 탈가치적일 뿐만 아니라 보수적이기까지 한 기술관료들에 가까웠다고 한다.[16] 특히 사회주의 붕괴 이후 다니엘 벨이나 후쿠야마 등의 보수적 미래학자들이 역사의 종언, 이데올로기의 종언 등을 거론하였고 많은 이들이 그에 동조하였는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관점 하에서는 이데올로기, 이념, 좌우논쟁 등은 무의미하고 예송논쟁스럽고 비효율적인 것에 불과하며, 하나의 주어진 미래상 혹은 국가의 목표 하에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것만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합목적적 도구주의가 더욱 강조되게 되었다. 한국과 같이 정치성이라는 것이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곳에서는 더더욱 강조되게 된다.

이러한 주장들은 탈이념을 주장하지만, 사회의 발전방향이 하나의 목표로 정해질 수 있으며 서로 상충하는 사회적 갈등이나 계급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우파적 관점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사회의 발전방향을 방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험 성적 잘 받듯이 효율성의 문제로만 보는 것에 치우쳤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흔히 하는 "정치인은 정당 이런거 다 필요없고 능력있는 사람을 뽑아야 해"라는 사고방식이 결국 이러한 점에서 어불성설인 것. [17]

기술관료 및 전문가주의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이념 즉 과학성이 약하고 인문학적 토대가 필요한 부분을 경시한다는 점에서 1번 단락의 과학주의와 통하는 바가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기술관료주의가 제시하는 하나의 목표는 경제와 과학기술의 발전 등의 성장주의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2번 단락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다만 과학주의, 기술만능주의 등과 일치하는 개념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1번 단락이나 2번 단락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문서 자체도 지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쓸데없이 이념논쟁할 시간에 뭔가 '효율적'으로 '발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서가 강하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게 극단에 이르면 기술독재가 된다.

5 관련 문서

  1. 드립이지만 편협한 발상이다. 애초에 이공계 중에서 과학주의 비판 이론가가 적지 않게 나왔다. 무슨 진영논리 식으로 생각 말자.
  2. 현대라고 해도 따지면 수십년 전으로도 거슬러 올라가지만
  3. 생물학자로, 196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이다.
  4. 경성과학을 본질적인 과학으로 보고 연성과학은 부차적인 과학으로 취급하는 꼰대적 태도나 그런 태도 아래에 연성과학을 대하는 편향된 의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극적으로는 경성과학의 연구법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정도로 볼 수도 있다. 학계 내에서는 물리학, 화학, 분자생물학 같이 비교적 학문적 정립수준이 높고 대체로 미시적인 것에 집중하는 주요 자연과학 학문을 경성과학(Hard science)이라 하고 사회학, 심리학 등의 사회과학(크게는 생태학, 진화생물학 같은 거시적 자연과학)과 같은 완전한 정립이 곤란하고 대체로 거시적인 것에 집중하는 학문을 연성과학(Soft science)이라 일컫는 구분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 구분을 단순히 학문적 차이가 아닌 우열로 볼 경우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연구대상 등 성격이 판이한 학문분야에 우열을 두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단순히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도 많은 비판이 따른다. 특히나, 사회과학자(그리고 얼떨결에 끼인 일부 자연과학자)는 본인들의 학문이 자연과학보다 덜 굳어져있고 정형화되있지 않다는 식인 이런 구분 자체가 배타성에 기인한 것이라며 용어 자체를 언어학자로 빙의해 비판한다.
  5. 특히 임상, 상담심리 쪽은 절대 과학적 방법론만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렇다. 수백년 뒤라면 몰라
  6. R.T.Caroll, pp.654~655.
  7. 물론 과학이 "매번 옳다" 고도 할 수 없고 때로는 과거의 이론이 뒤집힐 때도 있지만, 경험적으로 보아 과학은 그 신뢰성과 효용성이 매우 확고하게 입증된 방법론이다. 이는 종래에는 과학과 무관했던 분야의 학자들이 과학적 방법의 논리를 접하고 점점 더 그것이 쓸만한 연구방법이라는 데 동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더라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과학의 절대화를 외치는 과학주의와는 무관하게, 과학이 인류가 갖춘 강력한 지식축적 도구라는 것은 명백하다.
  8. 물론 그는 군사로봇 프로젝트에 많은 러브콜을 받음에도 전부 거절할 정도로 오직 사람을 구하는 로봇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오해하지 말자. 그리고 군사로봇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그냥 만들기 싫을 뿐이라고 한다. 사상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군사로봇 하나 만드는데 투자하는 시간은 어마어마한데 그의 성향은 다양한 기술을 만들고 전 세계가 공유하고 힘을 합치는 것을 좋아한다. 진짜로 오해하지말자.
  9. 어떤 특정 개인은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진리 탐구를 인생의 목적으로 할 수 있고 그것은 멋진 일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목적으로 강요하는 태도를 말한다.
  10. 문명 시리즈에서도 나오는 대형 불가사의들이 세워지려면, 분명 누군가들은 피땀흘려 일을 했을 것이라는 것과 똑같다. 왕이 자기가 등에 돌을 지고 건축물을 세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면서 국민들은 행복해하지 기술도 똑같다
  11.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614705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라스 저 등을 참조할 것
  12. 환경문제를 쉽게 떠올릴 수 있으며, 그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 특히 선진국 국민들이 겪는 대다수의 중한 질병들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아닌지 의학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생각해보면 의외로 정말 대다수의 질병이 직접적인 환경오염 뿐만이 아니라 진화론적으로 영양섭취비율의 변화, 혹은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의사의 말에 따르면 과학이 발달해서 의학의 발달과 질병의 발생이 일어난다고 카더라
  13. 무역경쟁처럼
  14. 좌파들이 주로 가지는 관점인데,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의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이 제기한다.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기술혁신의 혜택을 못받은 것이지, 혁신으로인해 피해를 입은적이 없다. 상당히 잘못된 논리
  15. 고대, 중세사회에 비해 지금 발전한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의외로 쉽게 대답할수만은 없다. 지금도 잔인한 학살, 고문, 전쟁은 (어쩌면 더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으며, 선진국 말고는 기아나 영양실조로 허덕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데 평균수명이 상승했고 대규며 전염병이나 치명적 외상으로 죽을 확률이 줄었다.
  16.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지적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17. 한국에서는 전두환이 경제는 전문가에게 다 맡겨놓은 것하긴 전두환은 그냥 맡겨놓은게 나았을지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지금 대통령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나, 국가의 목표를 '경제살리기'라는 하나로 정해놓고 다른 목표는 우리 살림살이와 관계없거나 쓰잘데기 없다고 생각한다던지 하는 식의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괜히 ~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담론이 나온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