ニュースステーション
모든 오프닝 변천사. 음질과 화질이 약간 좋지 않은 편이다.
1 개요
1985년 10월 7일부터 2004년 3월 26일까지 평일 밤[1]에 방송된 TV 아사히의 메인뉴스 프로그램. 메인 진행자는 쿠메 히로시[2], 서브 진행자는 코미야 에츠코(1985 - 1998), 와타나베 마리(1998 - 2004).
참고로 이 프로그램은 일본 자민당의 우경화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고 1990년대 55년 체제가 무너지는데 공헌한 뉴스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2 역사
처음에는 시청률이 10%도 안 되는 등 매우 고전했지만 1986년 필리핀 민주화 운동을 보도한 이후로는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다. 사실 이름만 보면 그냥 평범한 뉴스 프로그램 같지만, 중학생도 알 만한 뉴스를 모토로 내걸고 어려운 전문용어나 상황을 보도할 때 나무블록이나 모형 등으로 풀어서 설명했었다. 게다가 1988년까지 금요일판은 밤 10시가 아닌 그보다 한 시간 늦춘 밤 11시에 방영했는데 이는 당시 아사히 방송이 금요일 오후 10시에 인기 드라마 시리즈인 필살 시리즈를 방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요일 방송은 다른 요일의 방송과는 달리 게스트를 모셔다가 토크쇼 형식의 방송을 하고 사이사이에 짤막하게 뉴스를 방송했다. 예능데스크의 시초?
워낙에 시청률이 높아서 1980년대 TBS가, 2000년대 초반 NHK가 같은 시간대에 뉴스를 편성했지만 망했어요. 현재는 TBS는 밤 11시대로 옮겨 유명 앵커 치쿠시 테츠야를 기용하여 시작한 NEWS 23 시리즈로 명맥을 잇고 있으며, NHK는 밤 9시대 뉴스를 억지로 10분짜리로 줄여버리고 10시로 기능을 옮겨 경쟁시켰다가 크게 데이고 도로 회귀했다.
2004년 3월 26일자로 메인 진행자였던 쿠메 히로시가 스스로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그만두어 동시에 프로그램도 종료되었다. 현재는 후속 프로그램으로 보도 스테이션이 방송되고 있다.
2.1 사건사고
1988년 10월 19일 이 방송이 프로야구 중계에 밀려 방송 시작시간인 10시 부터 약 1분 30초 동안 야구중계가 본화면으로, 본방송이 보조화면으로 송출되었고, 이후 뉴스 진행 도중에도 다시 야구중계로 전환 되었다가 다시 뉴스를 진행하다 다시 중계로 돌아갔다(...) 하는 등, 약 40분 동안 뉴스와 야구중계를 번갈아 방송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였는데, 보통같으면 야구중계를 끊고 정규 방송을 하였을테지만, 이날은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가 퍼시픽리그 정규시즌 우승을 단 0.5경기 놓고 벌어진 롯데 오리온스와의 더블헤더 경기가 있었던 날로[3], 지역민방인 ABC(오사카 아사히방송)에서 지방중계로 편성되었던 야구중계가[4] 일본 전역 시청자들의 강력한 요구(...)로 더블헤더 2차전인 오후 8시부터 본사인 TV 아사히의 정규프로그램과 광고가 일제히 편성중지, 일본전역에 2차전 중계를 논스톱으로 하기로 결정된 것이었다.[5][6] 뉴스 스테이션 또한 비켜나가지 못하였고, 연장에 돌입한 더블헤더 2차전 경기를 뉴스와 번갈아가면서 송출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하였다. 9회 초가 끝나고 화면이 잠시 뉴스스테이션으로 돌아오자 쿠메 히로시가 오늘 방송은 연장 13회까지 중계방송을 같이 할 것(...)이라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오늘 방송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전해드릴 뉴스도 엄청 많은데 도와주십쇼!" 라며 절규하였다.[7]
1999년 2월 1일 사이타마 현의 도코로자와 시에서 재배된 시금치에서 다이옥신이 나왔다는 보도로 이 지역의 시금치값이 폭락하자 농가에게 소송을 당했다. 이 소송은 2004년 6월 16일 TV 아사히가 농가 측에 사죄하고, 화해금 1000만엔을 지불하는 것으로 화해가 성립했다고 한다.
3 특이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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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보도 스테이션에서 쓰이는 테이블.)
스튜디오에 사용한 부메랑 테이블이 유명하며 이 테이블은 원래 고동색이었으나 몇 년만 쓰이고 밝은 색으로 바뀌었다. 아예 여기서 이름을 딴 NS부메랑이라는 코너도 있었을 정도. 그리고 부메랑 테이블은 후속 프로그램인 보도 스테이션에서도 쓰이고 있다. 그리고 뉴스 스테이션의 경우 보도국 제작이 아닌 외주제작으로 방송되었다! 뉴스인가 예능인가. 그리고 마지막 회에서는 쿠메 히로시가 "스스로에게 포상을 주겠다"며 엔딩으로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음주방송 그러나 젊은 세대의 뉴스 시청이라는 좋은 의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락적 요소를 채용하여 보도 버라이어티로 평가되기도 했다.
4 기타
만화 크레용 신짱의 노하라 신노스케는 이 프로그램의 1대 서브 진행자였던 코미야 에츠코의 팬이라는 설정. 그래서인지 극장판 부리부리 왕국의 보물에서는 본인 역으로 직접 출연하기도 하였다.
여담으로, 2003년에 쓰인 뉴스 스테이션의 오프닝은 엄청난 CG를 쏟아부으며 방송오타쿠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리기도 했다(...).- ↑ 1985년부터 2000년 4월 까지는 10시에, 2000년 4월부터 2004년까지는 밤 9시 54분에.
그래봤자 6분 차이. - ↑ 중간에 체력과 계약 문제로 하차한 적이 있지만 얼마 안 가 복귀.
- ↑ 당시 롯데 홈 구장이었던 가와사키 구장에서 벌어진 더블헤더로, 정규시즌 경기를 먼저 마친 1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0.5경기 차이였던 2위 긴테쓰는 이날 더블헤더 모두를 승리로 가져갈 경우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 더블헤더 역전 우승을 노릴수 있었다. 자세한 것은 10.19참조
- ↑ 오사카와 큐슈 일부 민영방송사에서만 중계가 계획되어 있어 관동지역에서는 볼수 없었다.
- ↑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떠돌이형사 여정편'부터 일본정계를 뒤흔들었던 리쿠르트사건 특집방송까지 모두 취소되었다.
- ↑ 이날 2차전 시청률은 30.8%를 찍었다. 포스트시즌 경기가 아닌 패넌트레이스 경기의 시청률로는 아직도 깨지지 않은 독보적 1위
- ↑ 9회초 2사에서 롯데 3루수 미즈카미가 몸을 날리는 호수비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내자 현장 캐스터인 아베 노리유키가 "This is PROYAKYUU !!!"' 라며 뜬금없이 영어로 감탄사를 내뱉었고, 화면이 뉴스 스테이션으로 넘어오자 쿠메 히로시도 "This is 뉴스 스테이션" 이라며 맞받아쳤다(...) 한 방송관계자가 그 말을 듣고 웃는것이 마이크에 잡힌것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