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Central League) | 퍼시픽 리그(Pacific League)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Tohoku Rakuten GoldenEagles)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Saitama Seibu Lions)
오릭스 버팔로즈
(Orix Buffaloes)
치바 롯데 마린즈
(Chiba Lotte Marines)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Hokkaido Nippon-Ham Fighters)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Fukuoka Softbank Hawks)
과거에 참가했던 팀들
로고마스코트 라이나 & 레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埼玉(さいたま)

西武(せいぶ)


ライオンズ
Saitama Seibu Lions
법인명㈜세이부 라이온즈
株式会社西武ライオンズ
창단1949년 11월 26일
연고지사이타마 현 도코로자와 시 (1979년 ~ 현재)
연고지 변천후쿠오카 현 (1950~1978)
사이타마 현 (1979~)
구단명 변천니시테츠 클리퍼스 (1950)
니시테츠 라이온즈 (1951~1972)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1973~1976)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 (1977~1978)
세이부 라이온즈 (1979~2007)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8~)
홈 구장카스가하라 구장 (1950)
헤이와다이 구장 (1951~1978)
세이부 프린스 돔 (1979[1]~)
2군 구장세이부 제2구장 (1979~)
모기업세이부 철도
모기업 변천서일본 철도(1949~1972)
후쿠오카 야구 주식회사(1973~1978)
세이부 철도(1979~)
감독츠지 하츠히코
킷 스폰서마제스틱
일본시리즈 우승
(13회[2])
1956, 1957, 1958, 1982, 1983, 1986, 1987, 1988, 1990, 1991,
1992, 2004, 2008
퍼시픽 리그 우승
(21회[3])
1954, 1956, 1957, 1958, 1963, 1982 전기리그, 1983, 1985, 1986, 1987,
1988, 1990, 1991, 1992, 1993, 1994, 1997, 1998, 2002, 2004,
2008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1회)
2008
플레이오프 우승
(2회)
1982, 2004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8
[공식 홈페이지]
1956년, 1957년, 1958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55-요미우리 자이언츠니시테츠 라이온즈1959-난카이 호크스
1982년, 1983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81-요미우리 자이언츠세이부 라이온즈1984-히로시마 도요 카프
1986년, 1987년, 1988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85-한신 타이거즈세이부 라이온즈1989-요미우리 자이언츠
1990년, 1991년, 1992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89-요미우리 자이언츠세이부 라이온즈1993-야쿠르트 스왈로즈
2004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03-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세이부 라이온즈2005-치바 롯데 마린즈
2008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07-주니치 드래곤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2009-요미우리 자이언츠
2008년 아시아 시리즈 우승 팀
2007-주니치 드래곤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2011-삼성 라이온즈

1 소개

퍼시픽 리그의 원조 명문 구단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사이타마 현. 1980년대 왕조를 구축했던 퍼시픽 리그의 과거 강호다. 한국 언론에는 예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세이부 라이온즈'라고 쓰지만, 매체 등에서는 '세이부', '사이타마 세이부' 식으로 쓴다. 하지만 그냥 일반적으로는 오랫동안 익숙해져서 저 식으로 부르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굳이 귀찮게 사이타마까지 붙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2 역사

2.1 니시테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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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테츠 라이온즈 시절 구단기.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최다 우승팀으로, 1949년 창단하고 1950년 양대리그제 시행 이후 후쿠오카를 연고지로 한 니시테츠 클리퍼스를 시작으로 이듬해 같은 후쿠오카의 센트럴리그 구단 니시닛폰 파이리츠와 합병하여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되었다. 애초에 후쿠오카 정도의 지방도시에 야구팀이 두 개나 있는게 무리였으나, 당초에는 철도회사인 서일본철도와 신문사인 서일본신문(西日本新聞)의 합작으로 후쿠오카의 단일연고팀을 만들려 했다. 그러나 센트럴리그, 퍼시픽리그 중 어느 리그에 속할 것인가를 두고 두 회사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결국 따로따로 팀을 창단했고 결국 1년만에 니시닛폰이 GG를 치고 니시테츠와 합병하여 퍼시픽리그 소속이 되었다. 1950~60년대의 강팀으로 군림하면서 1956~1958년에는 명감독 미하라 오사무. 명투수 이나오 카즈히사와 강타자 오시타 히로시, 나카니시 후토시의 활약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물리치고 일본시리즈 3연패를 차지했다.

그 후 1963년 리그 우승을 끝으로[4]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원래 지방 사철이 모기업이라 재정도 넉넉하지 않은데다 당시 비인기팀들이 모여있던 퍼시픽리그 소속에 소규모 지방도시를 홈으로 쓰는 덕분에 관중동원도 여의치 않아 팀의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프로야구 최악의 흑역사인 검은 안개 사건으로 주전들 대부분이 줄줄이 구속→영구제명 크리를 먹어 팀이 순식간에 약체화되었고, 그 때문에 니시테츠가 더이상 팀을 유지할 수 없어서 1972년 구단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2.2 고난의 시기: 다이헤이요 클럽-크라운 라이터 시절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시절 구단기].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 시절 구단기]. 활동기간이 얼마 안 돼서인지 구글에 일본어로 검색해도 구단기를 거의 찾기 힘들다.

이후의 사정은 현대 유니콘스넥센 히어로즈가 짬뽕된듯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니시테쓰는 1972년 시즌을 끝으로 구단에서 손을 떼면서 기시 노부스케의 비서이자 롯데 오리온즈의 구단주였던 나카무라 나가요시[5]에게 구단 매각을 의뢰했는데,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자 자신이 직접 후쿠오카 베이스볼(주)라는 구단 운영법인을 만들어 팀을 인수하고 팀 운영비는 롯데 오리온즈 시절처럼 팀의 명칭을 팔아 조달했다.

이렇게 해서 스폰서의 변천에 따라 1973년 다이헤이요 클럽(太平洋クラブ)라이온즈[6][7], 1977년 크라운 라이터[8] 라이온즈로 이름을 바꾸면서 라이온즈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롯데와는 달리 라이온즈의 스폰서로 나선 기업들은 업종을 보면 알겠지만 프로야구 구단을 인수할만한 능력은 전혀 되지 않아서 이 당시의 라이온즈는 넥센 히어로즈 최초 2년간과 거의 비슷한 안습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9]

결국 미덥지 못한 스폰서의 쥐꼬리만한 재정지원으로 강팀을 만들 수도 없거니와 팀의 막장화만 가속되어 1970년대 후반의 헤이와다이 구장[10]쌍방울 레이더스의 말년을 연상시킬 정도로 썰렁해졌다. 끝내 얼마 안되는 스폰서 자금과 나카무라의 개인 인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에 이르러 GG를 치고 팀 해체의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처해있을때 한 줄기 빛과 같은 광명이 비추었으니 당시 부동산, 사철 재벌로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세이부 그룹이 구단 인수에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마침내 후쿠오카의 시민들도 든든한 구단주를 얻어서 옛 영광을 다시 재현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세이부가 관심을 표명했을때만 해도 이것이 일본판 현대 유니콘스, 아니 현대 유니콘스의 선구자적 사건이 될 줄은...


2.3 세이부의 인수

2.3.1 1980년대 황금기

1978년 말 세이부 그룹은 라이온즈 구단을 인수할 것을 표명했다.

그러나 세이부는 구단인수의 조건에 자신들이 한창 부동산 개발중이던 도쿄 근교의 사이타마로의 이전을 조건으로 내걸었다.[11][12]

그 조건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팀 해체밖에는 길이 없었던 라이온즈 구단으로서는 무조건 조건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팀은 세이부 그룹에 인수되어 후쿠오카를 떠나 사이타마로 이전했고, 후쿠오카의 팬들은 옛 영광의 재현은커녕 크나큰 상실감만 맛보아야 했다. 결국 후쿠오카는 1989년 서로 죽이지 않고는 못살던 예전의 라이벌 호크스가 후쿠오카 이전을 발표할 때까지 무려 10년동안의 세월을 연고팀 없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야 했다.

세이부에게 인수된 뒤 인기 만화였던 밀림의 왕자 레오레오를 마스코트로 삼았다. 레오의 일러스트는 실제로 데즈카 오사무에게 저작권료를 주고 정식으로 사용권을 승인받았다. 근데 정작 데즈카 오사무는 한신팬이다. 어?[13] 후쿠오카에서 도쿄 근교로 이전해 오면서 일단 기존 팬층은 개척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만화주인공을 마스코트로 해서 어린이들부터 공략하자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공략당한 어린이들이 밑에서 기술한 세이부 황금시대를 거치면서 3, 40대 성인으로 성장한 지금 세이부 팬층의 주축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계약이 끝난 2009년부터 이 로고는 폐기되고[14] 클래식 유니폼 데이 때만 일 단위로 계약하고 있다. 아무리 사용 못 한다 해도 아주리 블루까지 버릴 필요는 없는데.

세이부 라이온즈로 바뀐 이래, 오로지 이기는 것만이 팬을 확보하는 것이라는 일념하에 구단주인 츠츠미 요시아키는 감독 겸 관리부장(GM 역할)이던 네모토 리쿠오(1982년부터는 관리부장 직에만 전념) 에게 구단 운영의 전권을 위임했고, 네모토는 각종 방법을 동원[15]하여 팀의 전력을 강화시켰다.[16] 결국 이러한 전력 보강 등을 이어간 끝에 1982년, 팀은 드디어 퍼시픽리그 전기리그 우승에 이어 플레이오프 에서도 후기리그 우승팀 닛폰햄 파이터즈를 격파하며 퍼시픽리그 우승을 이루고[17] 뒤이어 일본시리즈에서도 주니치 드래곤즈를 격파. 24년 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룩하며 그 결실을 이루어냈다. 그 뒤로부터 1992년까지 10여년의 기간, 그러니까 1980년대~1990년대 초반 동안은 가히 세이부의 황금시대, 왕조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아키야마 코지-키요하라 카즈히로-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 일명 AKD 클린업 트리오와 와타나베 히사노부-쿠도 키미야스 원투펀치에 '오리엔탈 특급' 궈타이위엔(곽태원)를 앞세운 세이부는 명장 모리 마사아키의 지도 아래 이 기간에만 리그 우승 9회, 일본시리즈 우승 8회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리그 우승으로 일본시리즈 진출 후 패한 경우는 한신 타이거즈양대리그제 실시 이후 현재까지 유일한 일본시리즈 우승인 1985년... 이래저래 한신 타이거스만 여러 의미로 안습 리그 우승을 못한 경우는 1984년의 한큐 브레이브스에게 1위 자리를 내준 경우와[18] 1989년의 긴테츠 버팔로즈에게 리그 3번째 우승을 헌납한 경우.[19]

그렇게 해서 세이부(西武) 라이온즈로 30년 가까이 이어졌으나, 인기도 떨어지고 모기업 세이부 철도의 상태가 영 좋지 않게 되자 2008년 지역 이미지 부각을 위해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되었다. 도쿄에 미련이 남아있던 세이부 그룹으로서는 끝까지 사이타마라는 명칭의 사용을 거부해왔으나(이것도 수도권의 수원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면서 끝까지 서울 연고를 포기하지 않은 모 구단과 비슷하지 않은가!) 결국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팬베이스가 자신들이 원하던 자이언츠 네이션 도쿄 중심부가 아닌 사이타마의 베드타운 지역에 형성된 탓에 결국은 고집을 꺾었다. 오죽 사이타마라는 명칭을 쓰기 싫었으면 세이부(西武)라는 명칭은 과거 전국시대의 도쿄와 그 주변지역을 의미하는 무사시노(「武」蔵野)의 서부지역을 의미하는 이름이라면서[20] 본거지와 팬베이스가 도쿄의 서부지역이니 세이부라는 명칭도 지역명칭이라는 해석을 굳이 강조하기하면서까지 사이타마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하면서 버텼다.


2.3.2 황금시대 이후

1992년 이후 세이부 황금시대 주역들이 노쇠하거나 타 팀으로 트레이드[21] 및 주축 선수들의 FA(자유계약선수) 선언[22]으로 1980년대의 황금기는 끝난다...라고는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에도 세이부는 여전히 파리그의 강호였고, 첫번째 리그 우승을 이룬 1982년부터 2007년[23]까지 B클래스로 떨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단지 문제는 일본시리즈 우승을 못 해서 그렇지. 1997~1998년에는 2년 연속으로 파리그 우승을 하였지만, 당시 일본시리즈에서는 각각 노무라 카츠야야쿠르트 스왈로즈와 '머신건 타선'을 앞세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게 발목을 잡혔다. 그 이후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제4대 괴동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명 유격수 마쓰이 카즈오, 대형 슬러거 알렉스 카브레라 등이 투타의 기둥으로 활약하면서 2002년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2004년에는 1992년 이후 12년만에 다시 일본시리즈를 우승하게 된다.

2008년 일본시리즈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대결하여 4승 3패를 기록, 우승을 거머쥐었다. 전신인 니시테츠 시절을 포함하여 1950년 2리그제 시행 후 현재까지 리그 21회, 일본시리즈 14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엠블렘, 홈 덕아웃 위치(1루에서 3루로), 유니폼을 변경하고 출발한 원정 유니폼이 희대의 좆망 유니폼으로 바뀐 뒤에는 2009년에는 B클래스를 기록하였고 2010년에는 퍼시픽리그 2위를 기록했지만 PS에서 치바 롯데 마린즈에게 패배하며 탈락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2011년과 2012년에서 UTU을 하다가 각각 2011 클라이맥스 2스테이지에서, 2012클라이맥스 1스테이지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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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아노하나의 배경이 사이타마라서 이런 이미지도 나왔다.

2.3.3 2013년 시즌

2013년에는 페넌트레이스 막판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제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으며, 치바 롯데 마린즈를 제치고 퍼시픽리그 2위를 하였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1승 2패를 당하여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에 실패하였다. 더 압권인 건 잔루가 넘쳐났으며 8회에 교체 된 와쿠이 히데아키가 불을 지르면서 2실점으로 방화를 했다는 것. 서드 유니폼을 원정 유니폼으로 승격해야 할텐데

이 팀은 2000년대 들어와서는 하는 입장이든 당하는 입장이든 묘하게 플레이오프/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하위팀이 상위팀을 이기는 업셋 승부가 많다. 2004년부터 시작된 퍼시픽 리그의 플레이오프/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이 팀이 얽힌 업셋 승부만도 2004, 2006, 2010, 2011, 2012, 2013년으로 8번 출전 중에 무려 6번이나 되며 전적은 2승 4패로 업셋을 당하는 편이 많은 편.[24] 이 팀도 은근히 포스트시즌에서 은근히 달갑지 않은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

결국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서의 업셋 패배의 책임을 지고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이 자진 사임했다. 후임으로는 2002~2003년에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팀을 2002년 리그 우승으로 이끈 이하라 하루키 감독이 복귀해서 팀 재정비를 노리게 됐다.


2.3.4 2014년

2014년 시즌에 노히트 노런 기록이 나왔다. 5월 2일 치바와의 원정경기에서 기시 다카유키가 달성에 성공했다.

일본 진출 후 안정궤도를 달리던 한신 타이거스의 오승환에게 첫 블론세이브와 패전 철퇴를 날렸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성과와는 대조적으로 팀 자체는 팀 인수 첫해인 1979년 이래 최악의 성적을 내면서 꼴찌를 달렸다. 교류전에서의 분발로 5위인 라쿠텐과의 승차를 좁히기는 했지만 시즌 중반까지 최하위 근처에서 헤맸다. 결국 황금시대를 재건하겠다던 감독 이하라 하루키가 성적 부진을 이유로 6월달에 시즌 도중 사임하고 황금시대의 주전유격수로서 츠지 하츠히코와 키스톤을 형성하던 수비코치 타나베 노리오가 감독대행자리를 맡게 되었다. 감독이 시즌 도중에 사임하고 대행이 지휘를 잡는 건 세이부 그룹의 라이온즈 구단 인수 이후로 사상초유의 사태.

2014년의 부진의 원인은 이하라 하루키 감독이 경기 외적으로는 선수들의 사생활까지 일일이 통제하고 경기 내적으로는 볼배합까지 일일이 지시하는 시대착오적인 관리야구라는 평이 대세이다. [25]] 한마디로 부진의 원인을 요새 애들이 정신이 빠져가지고라고 결론을 내리고 해결책이랍시고 80년대 식으로 회귀하는 것을 들고 나왔다는 거다. 히로오카 타츠로 감독 시절부터 시작되어 모리 마사아키 감독 시대까지 계승된 치밀한 관리야구가 이 팀의 황금시대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프로야구에서 조차 시간이 흐른 현재의 야구의 경향과는 맞지 않는 낡은 방식이 되어버렸는데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실패의 원인이 과거의 성공 매뉴얼에서 벗어난 지도방식이라고 생각해서 과거의 인물을 감독자리에 앉힌 프런트의 오판이 빚어낸 참사라 하겠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프런트의 오판으로 1979년시즌 이후 35년만에 최하위를 기록할 뻔 했으나 5위인 라쿠텐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이기고 라쿠텐이 남은 경기를 전패함으로서 어부지리로 탈꼴찌에 성공했다. 회색 유니폼의 희망고문

다만 혜성 같이 등장한 신인 모리 토모야 포수[26]가 3경기 연속 홈런에 베테랑 투수와의 승부에서 고의사구로 경원당할 만큼의 활약을 선보였고, 파리그 홈런왕 메히아 내야수와의 잔류 교섭에 성공하는 등 다음 세대의 세이부는 희망이 있다는 걸 팬들에게 어필했다.


2.3.5 2015년

아키야마-구리야마-아사무라-나카무라 타케야로 이어지는 공격야구를 선보이며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퍼시픽리그 최다 팀홈런, 팀 ops 1,2위 경쟁을 할 정도로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다. 스태프진이 물갈이되면서 팀 체질개선의 한 방책으로 헛스윙을 두려워하지 말고 풀스윙을 하도록 팀의 타격 스타일의 변화를 꾀했는데, 전년에는 자기 스윙이 제대로 장착되지 않은 상태라 역대 팀 최다삼진만 경신하는(...) 불명예를 얻었으나 2015년에 들어와서 드디어 개화했다는 평. 물론 전년만큼은 아니라도 당연히 삼진도 여전해서 홀로 1000 팀삼진 돌파 페이스를 달리고 있으며, 팀 최다삼진인 1경기 17삼진(...)을 2번이나 당했고, 5월 주중 소프트뱅크 전에서 3연전 총합 39삼진을 당하는 등 깨알같은 삼진기록을 계속 내고 있는 중. 그렇게 모 아니면 도 식의 타격이 되다 보니 기복이 상당히 심한 편이다. 팀 전원의 애덤 던

그렇다 보니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는 소프트뱅크, 닛폰햄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그 이후 투타의 동반부진과 함께 추락하며 7월 15일부터 8월 2일까지 1970년 이후 구단 최다 연패 타이기록인 12연패를 기록했다. 그 와중에 연패의 흐름을 끊는답시고 구단 타이기록이 걸린 경기에 고졸 2년차 신인 타카하시 코나2015년의 대정의 소프트뱅크(!)를 상대로 프로데뷔 첫 선발등판을 시키는 로또질까지 했다. 결과는 볼넷 남발로 자멸. 그 전 6경기까지 합하면 18전 1승 17패(...)라는 흠좀무스러운 성적. 당연히 승률도 5할 밑으로 추락하면서 롯데에게 3위를 뺏기고 4위로 전락했다. 라어강 8월 4일, 리그 5위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0-4로 지고 있다가 4-4로 만드는 뒷심을 보여줬지만..8회 1점을 내주면서 5-4로 패배했다. 결국 13연패를 기록하며 70년 이후 구단 최다 연패 기록을 새로 썼다(..) 8월 5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키쿠치의 호투로 6-1로 이기며 겨우 연패탈출에 성공했다.

8월 11일, 니혼햄전에서 파리그 대괴수 오오타니에게 6이닝까지 무실점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7회 쿠리야마의 안타, 작년만큼 활약은 못하는 에르네스트 메히아의 역전 투런홈런이 터지며 오오타니에게 3패를 안겨주며 승리, 이날 노게임으로 경기를 못한 치바 롯데와의 경기차를 2.5경기차로 줄였다.

20일, 라쿠텐을 상대로 4-7으로 지고 있었지만, 막강한 화력전을 펼치며 15-7로 역전승을 거두며, 라쿠텐 시리즈를 스윕하며 4연승을 거뒀다. 이로써 니혼햄에 스윕당한 지바 롯데 롯데와 경기차를 반게임차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21일, 퍼시픽 리그 3위 자리를 두고 지바 롯데와 단두대 시리즈 1차전, 4회 상대 선발 와쿠이 히데아키를 상대로 4점을 뽑아내고, 7회에도 3점을 더 뽑아내며 7-1로 앞서갔다. 하지만, 9회 마무리 타카하시 토모미의 작가정신으로(..) 4피안타를 기록하며 5점을 내주며 7-6으로 찜찜한 승리를 거뒀다. 어쨌든, 이로써 13연패를 극복하고 다시 3위를 찾는데 성공했다.

22일, 노가미가 3과 1/3이닝 8실점 7자책점으로 발리며 떡실신 당한 끝에 5:9로 패배, 다시 3위 자리를 지바 롯데에게 내줬다. 1일 천하

23일, 타율 수위를 다투는 아키야마 쇼고의 쓰리런 홈런을 앞세워 선발 오미네 유타를 두들겨 4이닝만에 끌어내리고, 신예 다카하시 코나의 9이닝 완봉으로 7-0,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다시 3위에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우울한 분위기가 지속될 뻔 했는데 그나마 고졸 2년차 신인투수 다카하시 코나가 데뷔전의 악몽을 극복하고 대형신인의 싹수를 보였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요소도 발견했다.

8월 27일, 니혼햄 전에서 선발 복귀한 마키타의 6이닝 무실점 역투, 아키야마 쇼고, 나카무라 타케야의 투런포로 6-0으로 승리를 거두며 니혼햄전 2연패를 팀완봉승으로 갚아줬다. 이로써 이날 경기가 없던 치바 롯데와의 경기차를 1경기차로 늘렸다.

8월 31일, 휠윈드 에르네스토 메히아가 5타수 4안타(2홈런) 8타점(!)을 올리는 원맨쇼를 펼치고, 나카무라 타케야가 홈런을 보태는 등 타선이 대폭발했고 선발 타카하시 코나가 5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2%부족한 호투로 4승 1패 평균자책점 2.96의 호성적을 이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타카하시 코나는 8월 월간 MVP를 수상, 사상 최연소 월간 MVP 수상자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9월 1일, 돌아온 에이스 키시의 7이닝 2실점 5삼진으로 2개는 이대호 호투했고, 에르네스토 메히아, 나카무라가 각각 홈런포를 가동, 리그 선두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13-4로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며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지바 롯데와의 게임차를 1게임차로 늘렸다.

9월 2일 소프트뱅크전, 대만 투수 궈춘린이 1회 4실점을 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초반에 끌려갔다. 하지만, 추격전을 펼친 끝에 8회 오사키 유타로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며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12회초, 무안타에 그쳤던 야나기타의 결승홈런 내가 무안타 였던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을 내주며 5-4로 패배하면서 니혼햄에 승리를 거둔 지바 롯데에 또다시 동률을 기록했다.

3연전 세번째 경기에서는 선발 마키타가 1회초에만 5실점한 것을 비롯 5이닝동안 10점을 내주며 떡실신당하고 10대1로 대패. 1차전의 대승을 그대로 되돌려받으며 다시 4위로 추락했다.

4일, 3위를 두고 경쟁중인 치바 롯데전, 와쿠이와 도가메의 호투 속에 치열한 투수전이 전개됐다. 결국 연장전 끝에 오사키 유타로의 결승타점으로 2-1로 승리했다. 도가메는 7이닝 1실점 4탈삼진으로 호투했지만 10승 도전은 다음으로 미뤘다. 다시 롯데와 동률을 이뤄 3위로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5일, 에르네스토 메히아의 5타수 4안타 1홈런 3타점 맹활약과, 키쿠치 유세이의 8이닝 1실점 4탈삼진의 호투로 지바 롯데에게 6-0으로 승리를 거두며 승차를 1경기차로 늘렸다.

6일, 타카하시 코나가 1회 2실점하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2회 1할대포수 스미타니 긴지로의 쓰리런, 3회 나카무라, 모리의 적시타등을 앞세워 6점을 뽑아내며 경기를 뒤집었다. 타카하시가 5회 2사 만루 위기를 탈출하며 5이닝 2실점 0삼진으로 잘 버텼고, 이후 노가미, 오카모토, 타카하시 토모미로 치바 롯데 타선을 잠재우며 9-3으로 승리, 승차를 2게임차로 벌렸다.

9일, 오릭스의 딕슨에게 6이닝 무득점으로 끌려갔지만, 후반기에 각성한 메히아가 히라노를 상대로 역전 투런, 수비형 포수스미타니 긴지로의 쐐기타로 3점을 뽑아내며 딕슨 지못미 3-1로 승리했다. 이로써 8이닝 1실점 탈삼진 10개로 호투하고도 패할 뻔한 에이스 키시에게 5승을 선사하는 데 성공했고, 치바 롯데와의 2경기 승차를 유지했다.

10일, 천적 토메이 다이키에게 꽁꽁 묶이며 완봉패로 4연승을 마감했다. 선발 마키타가 3회 4실점을 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아사무라 히데토의 홈런성 타구는 이토이에게 호수비로 잡히고, 5회 무사 12루 찬스에서 모리 토모야의 잘 맞은 타구가 T-오카다에게 잡히는 등 운이 안 따른 면도 있긴 했다. 다행히도 치바 롯데가 라쿠텐에게 패하며 2경기차를 유지했다.

12일 닛폰햄전, 사실상의 에이스 도가메 켄이 1-0의 상황을 못 지키고 1.1이닝 7피안타 6실점으로 떡실신당하며 2회도 못채우고 강판됐다. 하지만, 2회 3점, 4회 1점, 6회 2점을 내며 7-7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11회초 나카타 쇼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으며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11회 말 아사무라의 볼넷에 이은 4타수 무안타에 빛나던 나카무라 타케야가 역전 투런으로 경기를 끝냈다. 지바 롯데와의 경기차는 3.5경기차.

13일 치바 롯데전, 6회까지 2-1로 앞서며 이기려니 했는데, 키쿠치 유세이의 스퀴즈 번트 송구 실책으로 역전당했고, 7회 2점을 뽑으며 추격했으나 4-5로 패배했다. 치바 롯데와 경기차는 2.5경기차.

14일 라쿠텐 전, 노리모토에게 7이닝 무득점으로 묶인 끝에 키시에게 시즌 6패를 안겨주며 패배했다. 15개의 삼진을 당하며 라쿠텐 투수진에 완전히 묶이며 팀 완봉패를 당하며 5할 승률에서 추락했다. 경기가 없던 치바 롯데와 경기차는 2 경기차. 17일 소프트뱅크 전, 선발 타카하시 코나가 5회도 못 채우고 강판 당했고, 8회 2점을 추격했으나 결국 5-3으로 패했다. 치바 롯데와의 경기차는 2경기차.

9월 27일 라쿠텐 전에서 1-5 승리를 거두었다. 시즌 68승 째. 같은 날 롯데는 소프트뱅크를 상태로 1-3 승리를 거두어 1.5경기차를 유지했다.

28일, 치바 롯데와의 단두대 매치에서 롯데의 에이스 이시카와에게 6이닝 2득점으로 묶이며 4-2로 패했다. 경기차는 반게임차. 한편, 경기 중 95년 3순위로 입단해 182승 118패, 97년 사와무라상 수상에 빛나는 팀 레전드 니시구치 후미야의 은퇴식이 열려 많은 팬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10월 1일, 오릭스와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4 패배를 당하면서 69승 69패 5무로 정확히 5할 승률을 맞추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같은 날 롯데는 닛폰햄을 상대로 10-2 대승을 거두어 69승 68패 1무가 되면서 3위 자리를 롯데에게 뺏겼다.

세이부는 이미 시즌을 마쳤기 때문에 당연히 자력으로 3위는 불가능해졌고, 5경기를 남겨둔 롯데는 2승 3패만 해도 3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27]

결국 치바 롯데가 4일 니혼햄 전에서 승리하면서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탈락이 확정되었다. 최근 10경기 6승 4패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렸으나 치바 롯데 마린스가 12경기 10승 2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 이로써 올해 세이부는 70년대 이후 팀 최다연패 갱신과 더불어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실패로 시즌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관중은 왕조 시절보다 더 많이 왔다. 응?


2.3.6 2016년

명불허전의 타력으로 오릭스 버팔로스를 상대로 2연속 역전승을 거두며 정규리그를 시작했다. 전년도 안타왕 아키야마 쇼고, 에르네스트 메히아, 아사무라 히데토 등의 맹활약이 돋보였다. 하지만,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선 앤디 밴 헤켄이 사사구 6개를 내주는 등 제구난조로 고전하며 5이닝 4실점을 기록하고, 역전 찬스마다 병살, 삼진, 범타를 적립하는 야마카와와 사카타의 맹활약으로(...) 5-4로 첫 패를 기록했다. 그 이후, 타자들의 맹활약으로 3월을 3승 2패로 마무리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4월 들어 좋은 타격 페이스를 보여주던 아사무라 히데토가 갑작스레 타격 슬럼프에 빠지며 팀 타격 페이스가 들쭉날쭉하기 시작했다. 전년도 좋은 타격을 보여주며 올스타까지 선발됐던 모리 토모야는 2할 초반대에서 허덕이다 2군으로 갔고..그나마 사람 노릇을 하는 타자는 전년도 216안타의 아키야마, 메히아, 베테랑 쿠리야마 정도.. 거기에, 선발 투수진이 3명이나 나가 떨어졌다.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던 에이스 키시 타카유키는 부상으로 나가 떨어지고, 전년도 10승 투수 토가메 켄은 7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2군행, 150만불을 줘서 데려온 앤디 밴 헤켄은 140도 안되는 직구에 되도 않는 변화구를 던지다 자멸 테크를 타며 2군행. 밴핵켄 덕분에 4월은 23전 9승 2무 12패, 5월 1일에서 15일까지는 12전 3승 9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교류전에서는 9승9패로 본전치기는 했지만 라쿠텐조차 11승7패를 하며 2부리그양학해대는 교류전에서 5할승률은 도리어 뒷걸음친 것이나 마찬가지.[28]

교류전 이후로는 사정이 더욱 나빠져서 시즌 내내 팀 전체가 겨우 38개의 실책만을 범하며 철벽수비를 자랑했던 1990년의 황금시절과 대조적으로 2016년 전반기에는 12개 구단 중에서 최다 실책[29]을 뿜어내면서 예능야구를 시전 중이다. 그나마 답 없이 공격만 하던(...) 전년도와는 달리 주포 나카무라 다케야가 부진에 빠지면서 공격도 못하는 야구로 전락. 라쿠텐과 4~5위 자리를 놓고 다투는 중이다. 2016년도 절반을 소화한 6월 하순에 전년도를 뛰어넘는 역대급 페이스를 찍고 있는 한 때 라이벌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언감생심, 3위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도 무려 8게임차가 나고 있어 닛폰햄이나 7월이후 닛폰햄과 자리를 바꾼 롯데가 전년도의 자신들과 같은 '대형 삽질'만 하지 않는다면 자칫하면 1981년 이후 35년만에 3년연속 B클래스에 머물게 생겼다.

게다가 6월 27일 경기에서는 타나베 노리오 감독이 부상에서 회복하여 갓 돌아온 에이스 기시 다카유키의 부상 이후 첫 등판에 6⅔이닝동안 무려 140구를 던지게 하며 무리수를 둔 끝에 7대3으로 앞서가던 경기를 막판에 뒤집히고 역전패. 팬들로부터 아무리 불펜이 못미더워도 겨우 부상에서 회복하고 돌아온 투수에게 140구가 웬말이냐면서 무능한 감독으로 가열차게 까이고 있다. 애초에 비전을 가지고 준비한 감독이 아니라 코치자리에 있다가 전임 이하라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얼떨결에 감독 대행이 되었다가 그대로 정식감독으로 취임한지라 감독으로서의 수업을 제대로 받은 것도 능력도 검증받은 것도 아니라서 2016년의 사태는 그냥 구단 OB 출신 중에 급한대로 적당한 인사를 감독으로 앉힌 프런트의 무사안일주의가 빚어낸 참사라 하겠다. 팬덤에서는 구단 출신 감독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외부에서 유능한 감독을 모셔와서 팀을 근본부터 개혁해야 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30]

오릭스가 폭망하면서 최하위까지는 내려가지 않았으나 전반기 막판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2연전에서 전부 패배하면서 전반기를 5위로 마감하였다. 그리고 7월 15일에 부진한 모습을 보인 앤디 밴 헤켄을 웨이버 공시하였고, 앤디 밴 헤켄은 친정팀인 넥센 히어로즈로 복귀하였다. 7월 27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홈경기에서 패배하며 세이부 시대의 원년인 1979년 이래 37년만에 처음으로 팀의 부채가 17까지 올라갔다.[31] 게다가 같은 팀 명칭을 쓰는 KBO 리그삼성 라이온즈도 부채 15(37승 1무 52패[32])를 찍으면서 한일 양국의 라이온즈 야구단이 망테크를 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7월 29일 오사카 돔에서 열린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첫 경기에서 7:1로 패배, 30일 경기에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31일 경기에선 5:4로 끝내기 패배[33], 루징 시리즈를 기록하며 결국 6위 오릭스와의 경기차가 0.5게임차로 좁혀졌다.세이부의 7월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으로, 7월 동안 7승 16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게다가 6월 9일~10일 요미우리-주니치에게 거둔 2연승 이후인 6월 11일부터 7월 31일까지의 기간동안 단 한번도 2연승조차 거둔 적이 없으며, 이 기간 중에 위닝 시리즈를 거둔 연전마저도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8월 2일, 세이부 프린스 돔에서 진행되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8월 홈 3연전의 첫 경기에서 6-2로, 경기 내내 한번도 우세를 잡지 못하고 6회에 4실점으로 빅이닝을 허용하면서 무기력하게 경기를 내줬다.[34] 8월 3일에 열린 경기도 7-3으로 패배하였고[35], 그나마 같은 날 오릭스 버팔로즈라쿠텐 이글스에게 6대1 패배를 당하며[36] 최하위 추락은 면했다. 그리고 8월 4일 경기에서는 5회초에 3-2로 세이부가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소프트뱅크 마츠다 노부히코의 동점 적시타와 무사만루 요시무라 유우키 타석에서 병살타를 허용하였지만, 3루 주자가 홈을 밟으며 4-3 역전, 거기에 주자 3루 2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츠루오카 신야의 중견수 앞 안타로 1타점을 올리면서 3-5로 역전당하고[37] 결국 스윕패를 당하며 37년만에 승패차 -20을 기록하고 기어이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 연승을 반복하며 8월 26일 현재 4.5게임차로 최하위 오릭스를 앞서게 된다.

그렇게 분전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38] 결국 3년 연속 B클래스가 확실해진 9월 1일, 타나베 감독에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후임으로는 세이부 황금기의 간판스타였던 아키야마 코지 전 호크스 감독, 역시 황금기에 불펜의 중심축으로 활약했던 시오자키 데쓰야 헤드코치 등이 거론되고 있는 와중에 9월 29일 츠지 하츠히코 주니치 수비, 작전코치와 접촉한 사실이 보도되어 새감독으로 유력하다. 앞서 언급된 3명 모두 세이부 OB.

2016년 시즌은 143전 64승 76패 3무, 퍼시픽리그 4위를 기록했다. 결국 신 감독은 역시 OB이자 타나베 전 감독과 키스톤 콤비를 이루었던 츠지 하츠히코가 선임되었다.


3 홈구장

세이부 돔 항목 참조.


4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

2012년2013년2014년2015년2016년
연 평균1,526,028명 (-4.1%)1,600,841명 (+4.9%)1,498,365명 (-6.4%)1,616,827명 (+7.9%)1,618,194[39] (+0.0%)
일일 평균21,195명22,234명20,142명22,456명22,791명[40]


5 이모저모

  • 여배우 요시나가 사유리가 이팀의 열성팬이다. 이 팀의 구단주인 츠츠미 요시아키의 세이부기차 그룹에서 펜션을 구매하였다고(...)
  • 참고로 KBO 리그 히어로즈가 하고 있는 네이밍 마케팅의 원조가 바로 라이온즈다. 다이헤이요 클럽과 4년, 크라운 라이터와 2년간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네이밍 마케팅은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후에 세이부 철도가 인수, 세이부 라이온즈로 바뀌게 되었다.
  • 2015년까지 일본시리즈에서 홈 경기로 스윕 승리를 맞이한 유일한 구단이다.(1990년 일본시리즈) 나머지 4연승의 4번째 경기는 전부 원정 경기에서 나왔다.
  • 팀명에 '사이타마'라는 지역명이 들어가 있으나 정작 사이타마시즈오카와 함께 '일본 축구의 성지' 라고 불릴 정도로 축구의 인기가 야구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타마 현은 우리나라의 수원시와 비슷한 동네인듯 하다. 실제로도 사이타마 현에서 세이부는 현대 유니콘스보다는 아주 조금 나은 대접을 받고 있다.[41] [42] 그래도 오릭스보다는 인기 좋다
  • 역사적으로 드래프트에서 제비를 잘 뽑는 팀이기도 하다.[43]특히 일본프로야구의 판도를 바꿀만한 초대형신인[44]이 나오는 해의 경우 유난히 제비를 잘 뽑아서 팀 전력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예로 키요하라 카즈히로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있고[45] 2009년에도 6팀의 경쟁을 뚫고 코시엔 여름 대회에서 154km/h를 뿌린 좌완 투수인 키쿠치 유세이를 뽑아내는 강운을 과시했다. 2010년에도 또다기 6구단 경합이 벌어진 와세다 대학의 마무리 투수였던 오오이시 타츠야를 한방에 뽑아서 2년연속 6개 구단경합에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확률로 보면 2.7%. 이정도 되면 사기같다(...). 사이타마 파워 주입!
  • 노모 히데오가 나왔던 1989년[46]다르빗슈 유가 나왔던 2004년[47]의 경우에는 아예 지명자체를 하지 않아서 제비뽑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지명을 안 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뽑겠다고 달려들면 사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제비뽑기운이 좋은 팀이다.
  • 퍼시픽리그의 끝판왕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교류전 성적은 신통치 않다. 2016년 현재 교류전 통산 승률은 딱 5할로 12개 구단 중 정확하게 중간인 6위이고, 교류전 우승은 한 차례도 없다. 이치로메이저리그 진출 이 후 암흑기에서 도통 벗어나지 못하는 오릭스 버팔로즈도 해본 교류전 우승인데 저정도면 본전치기는 한 게 아니냐고 생각도 할 수 있겠으나 교류전이 워낙 퍼시픽 리그센트럴 리그를 일방적으로 두들기는 양상으로 전개가 되어온지라 상대적으로 부진한 편. 실제로 퍼시픽 리그 내로만 따지면 리그 내 4위에 해당하고 2~3위권인 롯데와 닛폰햄이 승률 5할 +20에 가까운 승률을 기록 중이고 5위인 오릭스와도 얼마 차이가 안 나는 성적이라 교류전에서 별로 재미를 못 봤다고 보는 쪽이 타당하다.
  • 예전에 쓰던 로고는 만화 캐릭터를 로고 겸 마스코트로 사용했는데, 밀림의 왕자 레오의 레오의 아버지 판쟈가 마스코트이다. 자주 레오와 헷갈리는 사람들이 일본에도 있다.
Seibu_Lions.png
라이온킹으로 치자면 "심바가 아니라 무파사였다."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데즈카 오사무가 자신은 마스코트로 판쟈를 그렸는데, 세이부 라이온즈 측에서 멋대로 레오라고 주장한다더라하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사실 레오나 심바나 성장하면 아버지들과 너무 닮긴했다.)[48]



  • 유니폼 교체 이후 응원문화가 점차 바뀌고 있다. 과거 1루 외야 홈 시절엔 작은 배트를 사용한 비교적 전통적 응원이었는데, 같은 현 안의 축구단 보고 꼴린 건지 서포터즈들은 배트를 놓고 손뼉응원을 많이 하고 있으며, 한 손으로 드는 작은 깃발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거기다 게이트기도 심심찮게 보여 축구장이 다 되어가고 있다. 샄카현 인증 연고지 정착은 23년이나 빠른데 응원은 대놓고 치바 롯데 파크리
  • 2013년에 비교적 가까운 치바 롯데 마린즈와 라이벌전을 선포하고 양 측 홈에서 3연전을 아노하나 vs 오레이모[49] '사이타마 vs 치바 라이벌 시리즈'로 각 한번씩 치뤘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클라이맥스 퍼스트에서 도호쿠행 티켓을 놓고 붙게 되었다.
  • 왠지 최근 몇 년 간은 '중간계투불을 지르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니코니코 동화 같은 곳에서는 '세이부의 중간계투'라는 전용 태그가 따로 있으며, 2군에서는 통하는데 1군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볼질에 불만 지르는 중간계투의 모습을 풍자한 '우리들'(俺達, 오레타치)라는 네타가 정리되기도 했다.[오레타치]
  • 유달리 보복성,고의성 빈볼 및 사구(死球)가 많은 팀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빈볼 공세는 후쿠오카 시절 말기~세이부 인수 초창기 팀의 에이스였던 히가시오 오사무의 전매특허였고, 히가시오가 1990년대 중~후반 7년동안 감독을 맡으면서 투수들을 육성한 영향도 어느정도 있다. 문제는 이 팀의 배터리가 대체적으로 이러한 빈볼투구를 비신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상대팀의 심리를 흔들기 위한 전략의 일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히가시오와 배터리를 이룬 이토, 선수시절 선후배로서 히가시오로부터 이러한 투구술을 배운 와타나베 히사노부가 차례차례로 감독을 맡으면서 "몸쪽 공을 공략 못하거나 못 피하고 맞는 쪽이 병신 기술이 없는 것"이라는 식의 태도가 코칭스탭과 선수뿐만 아니라 팬들 사이에까지 만연해 있다. 또한 팀에 입단하는 투수들에게 신인시절부터 그러한 인식을 주입시켜오기 때문에 이 팀의 투수들이 대체적으로 빈볼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그 결과, 2012년에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FA를 선언하고 라이벌 팀에 입단한 호소카와에게 4번연속(...)으로 상반신에 140km 볼을 던졌지만, 이를 호소카와가 모두 회피해 결국 포볼로 진출시킨적도 있다.[50] 또한 오릭스와 사이가 안좋을때는 오릭스 타자에게 예고 빈볼을 맞춘후 사과도 안하고 당당하게 퇴장해 빈축을 산적도 있고, 홈런 세레모니가 요란한 모 타자는 세레모니가 거슬린다는 이유로 빈볼을 맞은 적도 있다. 또한 한이닝에 빈볼을 3연발을 한적도 있어서 상대팀이 항의하러 뛰어나오자 세이부 팬들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세이부 선수들은 씩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힌바 있다.] 이상 나열한건 일부 사례일 뿐이고 수개월의 한번씩 매번 다른구단과 고의사구(死球)로 벤치 클리어링을 벌이고 있다. 2013년 6월 라쿠텐의 앤드류 존스에게 고의사구로 벤치클리어링을 유발했고, 2010년 닛폰햄전에서는 연전중 3명을 고의사구로 병원으로 보내버렸다.
  • 2013시즌 이후 3년만에 상대팀 에이스투수에게 홈에서 우승확정을 허용한 굴욕을 맛봤다.


6 유니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유니폼 항목 참조.


7 주요 선수들

7.1 현역

7.1.1 투수

7.1.2 포수


7.1.3 내야수


7.1.4 외야수


7.2 OB[52]

7.2.1 투수


7.2.2 포수

세이부에서는 주로 1루수, 지명타자를 보았다.
오랫동안 지내왔던 난카이 호크스에서 내쫓겨나다시피 하며 떠난 뒤 롯데 오리온즈를 잠깐 거쳐 여기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7.2.3 내야수

세이부 황금시대에 주장을 맡은 팀 리더. 개인적으로도 20-20 클럽에 가입한 호타준족의 선수였다.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2루수 수비를 보여줬다고 평가받는 선수.


7.2.4 외야수

츠지와 함께 전성기 테이블 세터를 보던 스위치 히터 외야수. KIA 타이거즈에서 타격코치를 지내기도 했다.


7.2.5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7.3 영구결번

24. 이나오 카즈히사: 하느님, 부처님, 이나오 님. 이나오가 은퇴한 때부터 1972년까지 24번을 달고 감독직을 지냈다. 그런데 구단이 다이헤이요로 매각된 1973년에 이나오 자신은 81번으로 번호를 바꾸고 24번을 후배 선수들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하며 준영구결번으로 남겼다. 이후 라이온즈 24번의 계보는 고가 마사아키(古賀正明)-아키야마 코지-히라노 켄(平野謙)-마츠나가 히로노리(松永浩典)로 이어지다, 결국 2012년에 이나오 탄생 75주년을 맞아 동년 5월에 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7.4 준영구결번

3. 오시타 히로시: 1960년 은퇴 후 오시타의 커리어를 기리기 위해 당시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구단사장이었던 니시 마다지로(西亦次郎)가 '당분간 오시타의 3번을 결번으로 처리하겠다'라고 해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으나, 1968년 오시타가 토에이 플라이어즈에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슬그머니 영구결번을 해제했다. 이에 대해 오시타의 동의가 있었는지는 불명이라고. 어쨌든 세이부가 구단을 인수하고 나서는 라이온즈의 3번은 키요하라 카즈히로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6. 나카니시 후토시: 1970년에 은퇴 당시 나카니시에 견줄만한 선수가 등장하면 그 선수에게 물려주겠다고 하여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위의 이나오 카즈히사와 비슷한 이유로 해제가 됐고, 당시 감독이었던 이나오가 추천한 키쿠카와 소지로(菊川昭二郎)가 이 번호를 사용했다. 세이부로 바뀌고 나서 그나마 이 등번호를 달만한 자격이 있던 플레이를 했던 선수는 90년대 초반 유격수로서 황금시대를 떠받친 수비의 핵 타나베 노리오.


27. 이토 쓰토무: 은퇴 후 이토 스스로가 인정한 후배 포수에게 넘겨주기로 하여 준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이후 2006년 호소카와 토오루(細川亨)가 사용했으나 2010 시즌 종료 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FA 이적하면서 결번 상태였다가, 2012년부터 스미타니 긴지로(炭谷 銀仁朗)가 사용하고 있다.
  1. 개장 당시에는 야외 구장이었으나 이후에 지붕을 덮었다.
  2. 전후기리그제 성적도 포함.
  3. 전후기리그제 성적도 포함.
  4.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패배했다. 근데 누가 알았을까. 이로부터 불과 2년 뒤가 진정한 요미우리의 캐씹사기 리즈시절인 V9의 시작이란 걸(..)
  5. 당시 오리온즈는 1964년 마이니치 신문이 손을 뗀 후에 영화회사 다이에이의 사장인 나가타 마사이치에 의해서 운영되었다. 그래서 팀 이름도 마이니치 오리온즈에서 도쿄 오리온즈로 바꾸었고 다시 롯데의 자금지원을 받아서 현재 넥센 히어로즈 방식으로 롯데 오리온즈로 이름을 바꾼다. 롯데는 1970년 퍼시픽리그 우승 이후 팀 운영에 자신을 보이고 정식으로 구단을 인수했다. 이 롯데가 오리온즈의 네이밍 스폰서만 맡던 시절에 구단주를 맡은 사람이 나카무라였다.
  6. 골프장, 리조트 개발회사이다.
  7. 백인천이 이 때 리그 수위타자 타이틀을 차지했다.
  8. 도시가스 회사라고 이전 편집자가 언급했지만, 우리가 아는 그 담뱃불 붙이는 라이터 만드는 회사 맞다. 80년대에 타업체에 인수되면서 업종변경으로 회사의 자취가 소멸됨. 일본 위키백과에서 크라운가스라이터 란 항목으로 있는데 그걸 보고 착각한 듯 하다.
  9. 물론 자금난을 버티지 못해 가끔 주력선수를 팔아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있긴 했지만, 주력선수를 팔아서 연명하지는 않았다. 라이온즈 프랜차이즈의 레전드 중 한 명인 히가시오 오사무(東尾修)는 저무는 니시테츠-고난의 행군기-세이부의 최전성기를 두루 거쳤던 팀의 간판이자 에이스였다. 팀이 막장이던 시절 타선의 빈타 때문에 시즌 20패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은퇴할 때까지 한 팀에서만 선수생활을 해 일본프로야구계에서도 '사나이 중의 사나이'로 평하기도 한다.
  10. 후쿠오카 시절의 홈구장. 후쿠오카 돔이 지어지기 전까지 오사카에서 이사온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홈구장이기도 했다. 그러다 구장 보수를 하던 도중 이 구장 부지가 헤이안 시대에 있었던 유적지 코로칸(鴻臚館)이 위치했던 유적지였음이 밝혀졌고, 결국 1997년 폐장 후 철거된 뒤 역사공원이 조성되었다.
  11. 세이부 그룹은 라이온즈 프랜차이즈를 인수하기 전에 두 차례나 야구단 스폰서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일본프로야구가 양대리그로 나눠지기 이전에 존재했던 일본야구연맹(JBL)에 참여했던 도쿄 세네터스(東京セネタース)-츠바사군(翼軍)의 재정적 스폰서를 해줬다.(나중에 도쿄 세네터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팀이 바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다.) 당시 귀족원 의원이었던 아리마 요리야스와 세이부 그룹의 모종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후 2차 세계대전 이후 세너터스가 재건에 실패하자 1970년대에는 다이요 훼일스요코하마 스타디움 건립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다이요의 2대 주주로 경영권을 행사하기도 했다.문제는 후원하는 팀마다 성적이 시망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렇게 머니게임에 집착했는지도 세이부가 야구단을 인수한뒤 도쿄 근교로 연고지를 옮기고 싶어했던 이유이기도 바로 이러한 과거도 있었기 때문이다.
  12. 근데 사실 세이부 그룹에게 이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철인 도쿄-사이타마 지방의 세이부 철도를 기반으로 하는 세이부 그룹에게 있어서 거의 적자가 안 발생하는게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스포츠단인 라이온즈를 그나마 적자가 최대한 안 나게 운영하고, 연고지 주변 지역의 관중을 끌어들어 수익을 올리려면 반드시 사철이 자리잡은 곳 근처에 스포츠단 연고지를 두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애초에 간토 도쿄-사이타마 지방의 세이부가 드럽게 멀리 떨어진, 자기네 철도도 안 다니는 큐슈 후쿠오카 지방에서 야구단을 운영하는 게 넌센스였다. 당장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왜 해체되었는 질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온다.
  13. 근데 그 전에도 1960~70년대에 산케이-야쿠르트 아톰즈(現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철완 아톰아톰을 마스코트로 쓴 적 있기도 하다.
  14. 다만 걸어놓는 팀 깃발에서는 잘만 쓰고 있다. 물론 영리 목적 사용은 금지이므로 판매하고 있지는 않다.
  15. 대형 선수 트레이드는 기본이고 드래프트에 지명이 확실한 전국의 고교 유망주를 뒷공작과 다른 구단과의 물밑 협상으로 선수 자격이 아닌 구단 직원 채용 형식으로 확보해둔 뒤, 드래프트외 선발로 입단시키는 방법(20년간 세이부의 안방을 지켜온 이토 쓰토무치바 롯데 마린스 감독이 이런 케이스)이나 그룹 계열사 내 일본의 사회인야구 팀인 프린스 호텔 야구부로 빼돌려서 아예 다른 팀의 지명을 포기하게 하는 방법(세이부 황금기의 팀의 주장을 맡은 이시게 히로미치가 이런 케이스. 방법은 간단하다. 학교를 졸업할 때 '난 프로 안 갈래' 하고 일단 프린스 호텔에 입단한다. 그러고 나서 다른 팀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다음 드래프트 때는 미리 포기하는 것)까지 동원했다.
  16. 1990년대 후반의 모 팀이 생각나지 않는가?
  17. 여담이로 이 해를 끝으로 퍼시픽리그는 1973부터 운영해 온 전후기리그-플레이오프 제도를 폐지하고 센트럴리그처럼 6구단 중 리그 우승(1위)팀만 일본시리즈에 가는 것으로 변경했다. 그러니 세이부가 전후기리그-플레이오프 제도 시대의 마지막 플레이오프 우승팀인 것이다.
  18. 그러나 한큐는 일본시리즈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패배. 참고로 이게 현재 카프의 마지막 일본시리즈 우승 기록이다.
  19. 그러나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3연승 후 4연패로 내리 역관광당하며 처참하게(...) 패배했다. 참고로 이때 긴테츠 감독은 공교롭게도 전신인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였던 오기 아키라였다.
  20. 세이부라는 그룹 명칭의 기원인 것은 맞다. 하지만 타지 철도회사이자 도시권이나 공업 지대 지역 이름으로도 많이 쓰이는 '한신'과는 달리 '세이부'는 어떤 곳에서도 지역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21. 대표적으로 1994년 오프시즌의 세이부 - 다이에 간 2-3 트레이드. 아키야마 코지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건너갔다. 참고로 당시 다이에의 단장은 공교롭게도 1980년대 세이부의 황금기를 구축한 그 네모토 리쿠오였다.
  22. 쿠도 키미야스가 FA로 다이에로 이적하고, 기요하라 카즈히로도 1996년 FA로 그토록 원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게 된다.
  23. 이토 쓰토무의 세이부맨 커리어가 이로 인해 끝장나게 된다.
  24. 업셋을 한 해는 2004, 2011, 당한 해는 2006, 2010, 2012, 2013.
  25. 구대성이 오릭스에서 뛰었던 당시 감독을 역임하면서 구대성을 홀대하는 등 문제를 일으킨 전적이 있다. 이거 보면 혐한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사람 재일 한국인이다(...) 한국명은 윤춘식으로 데뷔 초엔 이름을 음독한 이하라 슌쇼쿠를 등록명으로 쓰기도 했다. 지금은 일본으로 귀화한 상태.
  26. 출신자체는 오릭스 버팔로스의 유소년 팀 출신이다. 다만 포수로서 실력은 아직 많이 미숙해서 실책이나 리드 미스가 눈에 띄었다.
  27. 2승3패를 하게 될 경우 승률이 5할로 동률이 되는데 이 경우 퍼시픽리그는 1) 맞대결 전적에서 우위에 있는 팀, 2) 1)로도 동률일 경우 교류전을 제외한 동일리그 소속팀과의 대결에서 승률이 높은 팀(즉, 교류전의 하위팀), 3) 1), 2)로도 동률일 경우 전년도 성적 상위팀의 기준으로 순위를 가르게 되어 있다. 2015년의 경우 세이부와 롯데의 맞대결은 13승 1무 11패로 롯데가 우위기 때문에 1)이 적용 되어 동률이면 롯데가 상위를 점하게 된다. 참고로 동률 팀의 순위를 가르는 기준이 양 리그가 다른데 센트럴리그의 경우는 동률일 경우 1) 승리수가 많은 팀, 2) 1)이 동률일 경우 맞대결에서 우위에 있는 팀, 3) 1), 2)까지 동률일 경우 전년도 성적 상위팀 순으로 기준을 정하게 된다.
  28. 실제로 리그 내 교류전 성적은 5위에 머물렀다. 밑에는 교류전에서도 폭망하며 센트럴 리그 팀들의 보약 노릇을 한 3부리그 팀 오릭스 버팔로즈 뿐이었다.
  29. 2016년 7월 31일 기준으로 81개'. 2위 오릭스 버팔로즈의 67개와도 10개 이상 차이가 난다.
  30. 타나베 뿐만 아니라 와타나베 히사노부, 이토 쓰토무, 히가시오 오사무 등 OB출신인 감독들이 있었다. 근데 이 3명은 전부 리그 우승 이상은 했는데? 비교하기 미안한 수준 아닌가?
  31. 일본식 표현인데 승수가 패수보다 많을 때 승수-패수 차이를 저금(貯金), 패수가 승수보다 많으면 부채(借金)라 일컫는다. 예, 20승 10패면 저금 10, 10승 20패면 부채 10)
  32. [「[프로야구 순위 5위 롯데 8위 LG 격파,두산 3위 넥센에 완승, 6위 KIA 10위 KT 대파, 4위 SK 7위 한화이글스 제압」, 이슈톡, 2016-07-27]]
  33. [출처 : 야후저팬 스포츠나비 2016년 7월 31일 세이부-오릭스 경기]
  34. [출처 : 야후저팬 스포츠나비 8월 2일 소프트뱅크-세이부 경기]
  35. [출처 : 야후저팬 스포츠나비 2016년 8월 3일 소프트뱅크-세이부 경기]
  36. [출처 : 야후저팬 스포츠나비 2016년 8월 3일 오릭스-라쿠텐 경기]
  37. [출처 : 야후저팬 스포츠나비 8월 4일 소프트뱅크-세이부 경기]
  38. 8월에 3연승 이상의 연승을 여러차례 했는데도 50승을 채우는데 한참 걸렸다. 그만큼 이전에 워낙 답이 없었다.
  39. 구단 신기록
  40. 구단 신기록
  41. 참고로 사이타마 시는 세이부 철도의 영업구간이 아니라 토부 철도의 영업구간이며, 야쿠르트와 롯데 2군 구장이 오히려 사이타마 시에서 더 가깝다. 그리고 세이부의 홈구장은 사이타마 시에서 접근하기 좀 골룸한 위치에 있는데, 평일에도 경기가 있는 야구는 경기장 접근성이 관중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히려 세이부를 지지하는 팬층은 사이타마 현보다도 도코로자와 시에 인접한 도쿄 도의 시 지역부분(우리가 생각하는 도쿄가 아닌 그 외곽의 위성도시들로 이루어진 도쿄 도의 영역)에 더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세이부가 도쿄에 집착한 것도 일리는 있지만 홈구장이 사이타마 현에 있어서...
  42. 일각에서는 사이타마를 연고로 하는 J리그 최고의 인기구단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의 존재와 그에 못지 않은 오미야 아르디쟈의 인기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둘의 더비는 '사이타마 더비'로도 불릴 정도다.) 실제로는 같은 사이타마현이지만 세이부 라이온즈가 있는 도코로자와시와 사방에서 우라와 레즈깃발이 펄럭이는 사이타마시는 완전히 다른 동네다. 베드타운인 사이타마현의 특징 덕분에 도쿄로 가는 교통시설만 잘 정비돼 있기 때문에 사이타마 동부와 서부는 같은 현이라도 교류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장 사이타마 시에서 야구를 보러 가려면 도쿄 돔이 오히려 더 가깝고 가는 시간은 세이부돔의 절반 정도밖에 안걸린다.(무사시노선 참조)
  43. 일본프로야구의 경우 1차지명은 전구단 제비뽑기로 뽑는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프로야구 항목 참조.
  44. 당연히 복수의 구단이 1순위로 지명한다.
  45. 특히 기요하라가 있던 10년간 세이부는 퍼시픽 리그 우승 8회에 일본 시리즈 우승 6회를 차지하는 리즈시절을 누렸다.
  46. 대신 1990년대 세이부 불펜진의 핵심인 시오자키 테츠야를 지명했다.
  47. 대신 와쿠이 히데아키를 지명했고 세이부의 에이스가 되었다가 FA선언하고 롯데로 튀었다.
  48. 프로야구 초창기 삼성라이온즈 어린이 회원 잠바의 마스코트가 저 마스코트를 약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는 수준에서 모방된 것이었다. 어느 어린이 회원은 삼성라이온즈 잠바 입고 민속촌에 갔다가 일본 관광객들이 '세이부 라이온즈네' 하는 바람에 약간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韓야알못들 같으니
  49. 2013년 시즌 당시 타이업한 작품들.
  50. 2012년에만 50개가량의 빈볼을 던져 리그 탑순위의 빈볼을 기록했다. 심지어 빈볼의 대부분은 중간계투가 아닌 선발투수의 의한 고의성 빈볼
  51. 방출 후 넥센 히어로즈로 복귀했다.
  52. 괄호 안은 재적 연도
  53. 검은 안개 사건에 연루되어 1970년 영구제명 당했다가 2005년 사면되었다. 이나오 카즈히사의 뒤를 이을 투수로 각광받았지만 불상사로 인해 불과 24세의 나이에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54. 한자: 郭泰源. 일본에서의 등록명은 가쿠 타이겐. 한국식 한자독음으로는 곽태원으로 나이든 일본야구 전문가들은 이 명칭이 더 익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