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에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합니다. 불법적이거나 따라하면 위험한 내용도 포함할 수 있으며, 일부 이용자들이 불쾌할 수 있으니 열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실제 사건·사고를 설명하므로 충분히 검토 후 사실에 맞게 수정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틀을 적용하시려면 적용한 문서의 최하단에 해당 사건·사고에 맞는 분류도 함께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분류 목록은 분류:사건사고 문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문서는 사용자에 따라 불쾌감, 혐오감,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내용, 이미지, 외부 링크 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열람에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문서를 열람하여 발생한 피해는 바다위키에서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 문서를 읽고 싶지 않으시면 즉시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 상위 항목 : 사건 사고 관련 정보
- 관련 항목 : 황산, 완전범죄, 미제 사건
1 개요
아무런 죄가 없는 어린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희대의 테러 사건.
대한민국 경찰과 대한민국 검찰, 대한민국 국회의 희대의 병크의 총 집합체.
1999년 5월 20일 오전 11시경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골목길에서 학원에 가던 6살 남자 어린이 소년 김태완 군에게 갑자기 검은 비닐봉지를 든 정체불명의 남성이 나타나서 얼굴에 황산을 부은 뒤 달아난 사건.[1] 김태완 군은 얼굴을 비롯한 전신의 40~45%에 3도 화상을 입고 두 눈을 잃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시달리는 채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다 결국 49일만인 1999년 7월 8일 오전 8시 15분쯤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김태완 군은 아침에 학습지 과외[2]를 받으러 집을 나선지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이런 변을 당했다. 가장 무서운 점은 범인은 황산을 멀리서 뿌린 것이 아니라 바로 뒤에서 태완 군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입을 벌리게 한 뒤, 얼굴에 황산을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황산은 고스란히 태완 군의 눈과 입 속으로 들어가서 눈을 멀게 하고 식도와 기도를 태워버렸다. 태완 군의 비명 소리를 듣고 집 밖으로 뛰쳐나온 모친은 태완이가 반쯤 녹은 옷을 걸친 채 온 몸이 타들어가면서 필사적으로 집을 향해 기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범인은 사건 현장에서 곧바로 도주했고 대낮이었지만 길에 다른 사람들이 없었던지라 범인을 목격한 사람도 없어서[3][4] 경찰은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그리고 태완 군이 사망하기 직전에 범인은 치킨집 아저씨라고 지목했으나, 지목당한 사람은 무고라고 주장하고 있다.[5] 심지어 이 문서에서도 이게 한동안 진실로 알려져 2016년 초반까지 수정되지 않았다.
2 그 뒤
당시 PD수첩에서도 다뤄졌던 이 사건은 전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샀다. 그리고 첫 방송이 나간지 5일만에 김태완 군은 짧았던 삶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태완이의 모친 박정숙 씨는 인터넷에 태완이가 죽던 날까지의 병상일지를 올렸다.
당연한 일이지만 PD수첩은 이 사건을 심도 있게 다루었는데 방송이 나간 뒤 어떤 남자가 PD수첩을 통해 전화를 걸어 자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난리가 났고 경찰 관계자 및 PD수첩 스태프 전원이 출연한 특집방송을 기획하고 오후부터 광고를 하는 등 흥분했으나... 알고 보니 범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겠답시고 장난전화한 천하의 개쌍놈이었고 그는 체포되었다(...). MBC에서는 PD수첩 대신 특선영화를 긴급편성했다.
여담이지만 태완이는 너무 어려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황산이 뭔지조차 몰랐고 자기가 뒤집어쓴 그 액체가 단지 '뜨거운 물' 이라고만 알고 있었다고.
2013년 10월 30일, 굿모닝 대한민국에서 이 사건에 대해 다시 나왔는데 당시 "검은 봉지로 황산을 끼얹었다"[6]는 아이의 말을 경찰이 의아해 했다고 하며 이때문에 초동수사가 부실했었다는 어머니의 인터뷰가 나왔다. 그리고 죄목도 상해치사죄[7]가 적용돼서 공소시효가 10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문에 현재 수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2013년 12월 3일, 유족의 계속된 청원에 따라 14년만에 수사가 재개된다고 하는데, 미제사건 페이지의 글로 보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취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14년 5월까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해당 내용을 방영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재수사를 하면서 뒤늦게나마 상해치사혐의가 아닌 살인혐의를 적용, 공소시효를 15년으로 연장했다. 이에 공소시효가 김태완 군이 숨진 날을 기준으로해서 2014년 7월 7일까지로 연장되었다.
김태완 군 사건과의 연관성 여부는 불분명하나, 공교롭게도 사건이 일어나기 3개월 전에 대구에서 50대 여성이 얼굴 등에 황산 테러를 당해 숨진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2014년 6월 30일 MBC 리얼스토리 눈에서 이 사건에 대해 방영했는데, 공소시효가 7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들은 공소시효가 4일 남은 7월 4일 재정신청을 냈다. 이에 따라 공소시효가 3달 연장되었다.
2014년 7월 5일 KBS 추적 60분에서 이 사건에 대해 방영하였다. 현재 증거는 오염[8] 및 훼손이 되어 쓸모가 없고 마지막 남은 희망은 태완군이 사망직전까지 남긴 약 300여분에 가까운 증언[9] 밖에는 남지 않았다. 태완 군의 부모가 이렇게 준비한 이유는 경찰이 태완 군의 말이면 된다. 태완이 한테 물어봐라 라고 했기 때문인데 정작 경찰은 씹었다. 그리고 당시 수사를 맡은 경찰은 기억도 안나고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렸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국내 단일사건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진술분석전문가를 비롯한 12명의 최고 전문가들이 달라붙어서 약 1개월간 집중 분석을 했는데 그 결과물은 당시 경찰의 조사결과와는 차이점이 매우 많았다. 경찰에서는 태완 군의 증언에 대해서 6세 아동이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고, 부모의 유도진술에 의한 것으로 인해서 신빙성이 없다고 하였으나 전문가들은 유도심문을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이 보고 느낀 상황을 정확히 증언한 것으로 판단했고 믿을 만한 증언이라고 하였다.
방송을 통해서 기존에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알려졌는데
- 사건직전 같이 놀던 친구 또한 이 상황을 목격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 황산이 담긴 검정비닐봉투를 지목하는 등의 행동과 증언이 있었기 때문인데 현재 그는 그에 대한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경찰은 태완군과 같이 놀던 그 친구가 지능이 약간 낮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고 무시했다.
- 태완군의 증언으로는 골목으로 들어서 가던중 시험지 교사가 다른골목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뒤 얼마 되지 않아 테러를 당했으니 최소한 다른 누구보다 확실한 증인이 됐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 피의자로 의심받은 00아저씨와 그 00아저씨를 본 사람과의 복장에 관련된 증언에서 일치하지 않았고 태완 군 부모는 경찰에게 증거수집을 요청했으나 당시 경찰은 자신이 어떻게 증거를 수거하느냐 라며 수사를 기피했다. 그 후 4개월 뒤에서야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의 가죽신발에 황산이 묻은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오염된 옷과 함께 보관해서 쓸모가 없었다.
- 00아저씨가 전봇대로 가는 방향 또한 증언과 일치하지 않았다. 00아저씨는 가게에서 나왔다고 했으나 증인의 말로는 전봇대 맞은편에서 자신과 마주보는 방향에서 왔다고 증언했다. 00아저씨는 곧바로 전봇대로 간 것이 아니라 길을 가로질러서 약간 돌아갔기 때문에 증인과 마주보는 방향으로 갔다고 증언했다.
- 태완군은 테러 직전과 직후 00아저씨의 목소리만을 기억하고 말하고 있었는데 이는 태완 군의 피해사실을 최초로 인지하고 있었거나 제3의 범인이 있다면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 피의자로 의심받은 00아저씨는 테러당시 자신의 가게에서 '태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으악'하는 비명소리와 '사람살려'라는 3층의 이모의 비명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더니 태완 군이 골목을 나와 전봇대앞에 기대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으나 당시 태완 군을 발견한 사람들의 증언으로는 비명소리는 없었다고 한다. 당시 태완군을 보게된 또다른 주민들은 비명소리가 났다면 자신의 집에 있던 사람들과 다 같이 밖에 나갔을 것이라는 증언도 나왔다. 더구나 현장실험에서 비명소리는 들릴 수 없었고 간신히 신음소리를 내며 골목을 벗어났다.
- 피의자를 표현할 때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00아저씨가 피의자가 아니라고 입증하는게 아니라 당시 누군지 정확하게 얼굴을 못봤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수 있다고 한다.[10]
이하 전문가들이 내린 의견은
- 태완 군의 증언은 신빙성이 상당히 높다.[11]
- 피해 아동의 진술로는 00아저씨를 가해자로 특정하기 어렵다.
- 피해 아동이 진술에서 00아저씨를 지목하는건 의미가 있다.
- 피해 아동과 00아저씨의 진술간 상이한 점을 발견했다.
무려 12명의 전문가가 만든 보고서까지 들고
3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다
2014년 7월 4일, 대구지방검찰청에서 태완 군의 부모님이 유력 용의자를 상대로 제출한 고소장에 대해 '혐의없음' 결정이 떨어졌으나 유가족이 즉각 재정신청을 내면서 공소시효가 극적으로 정지되었으며 형사소송법에 의거해 고등법원에서는 3개월 이내로 공소제기 혹은 기각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다만 고등법원에서 기각결정을 내릴 경우엔 사건은 영구미제로 분류되며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해진다.
2014년 12월 10일, 대구고법 제3형사부는 2014년 12월 24일 오후3시 재정신청 2차 심문을 진행 할 것이라 밝혔다.
2015년 2월 3일 대구 고등 법원에서 재정신청을 기각 함에 따라 영구 미제 사건이 되게 생겼다. 피해자 부모는 대법원에 재항고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흉악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론이 대두되고 있다.
2015년 2월, 피해자 부모는 대법원에 재항고하였으며 재항고 제기 시부터 재항고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재정신청 기각결정의 집행이 정지되므로,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검찰의 공소제기에 대한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2015년 7월 10일 대법원은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끝나게 되었다.... 태완군의 억울한 죽음을 계기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문제가 여론의 힘을 얻어 곧 폐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관련 기사
결국 2015년 7월 24일 대한민국 국회는 이 법에 대한 투표를 한 결과 단 한개의 반대표도 나오지 않았으며 4개의 기권표만 있었을 정도로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깝게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태완이법을 통과시켰다. 다만 이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끝났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12]
다만 이 동영상을 보면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기 4개월 전인 2015년 3월에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법안이 이미 국회에 계류되어 있었다고 하므로(법안 자체는 2012년 9월에 발의) 국회에서 조금만 빨리 통과시켰다면 이 사건 역시 태완이법의 혜택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술하겠지만 이러한 황산테러류 중에서도 매우 극악한 유형이다.
- ↑ 피아노 학원이라고도 했다.
- ↑ 사건 발생 10여분 전 골목길에서 30대 중반의 남자가 서성거리고 있었다는 진술이 있긴 하였으나 최초 목격자나 신고자는 모두 김태완 군이 황산을 뒤집어쓴 이후의 모습만을 보았으며 다른 수상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 ↑ 사실 목격자가 있다고 한다. 청각 장애인인데 너무 어리고 귀가 들리지 않는 농아라서 진술을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아...
- ↑ 여기서 피의자로 지목된 치킨집 아저씨가 자살했다느니 하는 것은 낭설이다. 링크 참조
- ↑ 즉 황산이 물병에 담겨있지 않고 검은 비닐 봉지 속에 담겨있었다는 말. PD수첩에서도 이 말을 듣고 직접 황산을 검은 봉지에 넣어보니 놀랍게도 비닐이 타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 추적60분 에서도 똑같은 실험을 했는데 실험자는 병과 같이 안정적으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범인은 아마 황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던 듯. 다만 비닐봉지에 액체를 담아 붓는 것이 워낙 쉽지 않고 그 누가봐도 이상한 일이기에 경찰이 의심했을 가능성도 있다. 직접 비닐봉지에 물을 붓고 이걸 쏟아보자. 자신의 손에 안 튀기게 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길거리에서 비닐봉지에 액체를 담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황산이 담긴병이 눈에띄기쉬우니 봉지에 담아서 가다가 봉지째로 병을잡고 부었을 가능성이 높지않나? 그러면 위에서 아래로 황산을 쏟기에 황산이 담긴 병은 검은봉지에 가려질 수도 있다즉 나중에 목격자가 나올 가능성도 높아진다. - ↑ 죽게할 생각 없이 상해를 입혔을때 그 상해가 원인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 ↑ 어쩌면 증거가 됐을 수도 있는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의 황산이 묻은 신발을 다른 증거품과 섞어버렸다.
- ↑ 태완군이 5일만에 정신을 차리자 부모님은 즉시 캠코더와 녹음장비등을 직접(경찰이 한 것이 아니다. 부모가 직접 한 것이다.) 준비해서 간신이 정신을 태완군의 증언을 듣기 위해서 틈틈이 질문을 했으며 자신들은 그 아픈 아이에게 할 수 있는것이 이렇게 밖에 할수 없다는것에 죄스러워했고 ' 우리는 부모도 아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여기에서 부모도 아니라는 말을 왜곡해서 듣지 말자. 아픈 소년의 부모로서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할 수 있었던 일이 그것밖에 없었기에 지켜주지 못했고 수사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하는 말이다.
- ↑ 당시 태완 군은 비닐봉지는 정확히 봤지만 인물은 누군지 못봤다고 증언했다.
- ↑ 증언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발언하는것과 일관된 증언으로 인해서 신빙성이 높다고 결정했다.
- ↑ 이건 공소시효를 이미 폐지한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있던 사건에 대해 마구 소급적용을 할 경우 법적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공소시효를 없앨 당시 이미 시효가 끝난 사건은 소급적용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공소시효가 형식적으로나마 도과한 후 해당 범죄를 처벌한 경우로 단 한번의 예외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