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역대 국왕 | ||||
12대 ○왕 대건황 | ← | 13대 ○왕 대현석 | → | 14대(?) ○왕 대위해 |
시호 | 알수없음 | |
성 | 대(大) | |
휘 | 현석(玄錫) | |
생몰년도 | 음력 | ? ~ 894년(?) |
재위기간 | 음력 | 871년 ~ 894년(?) (24년) |
목차
1 소개
○왕 대현석(○王 大玄錫). 대건황의 아들, 대현석 시기를 기점으로 융성하던 발해가 쇠퇴하기 시작한다.
대인수,대이진,대건황의 약 60여 년간 잠잠했던 귀족들의 권력투쟁이 이 때부터 다시 심화되었고 결과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시호가 경왕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일본 학자들이 경애왕과 혼동해서 생긴 사건. 정확히는 신라 '경애(景哀)왕'에서 앞의 '경(景)'을 본 항목인 발해 13대 왕 대현석에 대입시키고, 뒤의 '애(哀)'를 발해 15대 왕 대인선에 대입시킨 것이다. <환단고기>의 발해왕 계보에 따르면 대현석은 경황제(景皇帝)라고 실려 있다. 대충 적당히 다들 망국 즈음의 군주라서 그랬던 건지... 중간에 빠진 14대 왕인 대위해는 당시에 유일하게 당회요(唐會要)라는 책으로만 기록된 인물이었다. 왕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재위기간도 13대왕인 대현석부터는 왕의 즉위년도와 몰년도가 정확하지 않다.
2 업적
877년, 양중원(揚中遠)을 비롯한 105인으로 된 사절단을 일본에 보냈고 882년에는 배정(裵頲) 등 105인으로 된 대사절단을 일본에 보냈다. 내치,외치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발해고에 남아있는 기록으론
虔晃子也, 懿宗咸通中,三遣使朝唐.(건황자야, 의종함통중, 삼견사조당)건황의 아들이다. 의종 함통 연간(860년 ~ 874년)에 세 번 사신을 보내 당에 조공하였다.
이게 다다. 안습.
3 사후
아들(?) 혹은 친척(?) 대위해가 왕위를 승계하였다.
4 《신당서》 기록
대건황이 죽으니, 대현석(大玄錫)이 즉위하였다. 함통(咸通) 연간(860년 ~ 873년)에 3번 조공하였다. 처음 발해의 임금이 자주 학생들을 당나라 수도의 태학(太學)에 보내어 고금의 제도를 배우고 익혀 가더니, 이때에 이르러 드디어 해동성국(海東盛國)이 되었다. 그 영역에는 5경(京) 15부(府) 62주(州)를 두었다. 숙신(肅愼)의 옛 땅을 상경(上京)으로 삼았는데 용천부(龍泉府)라고 한다. 용주(龍州), 호주(湖州), 발주(渤州) 등 3주를 관할하였다. 그 남쪽은 중경(中京)으로 삼았는데 현덕부(顯德府)라고 한다. 노주(盧州), 현주(顯州), 철주(鐵州), 탕주(湯州), 영주(榮州), 흥주(興州) 등 6주를 관할하였다. 예맥(예貊)의 옛 땅을 동경(東京)으로 삼았는데, 용원부(龍原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