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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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자유의 이차선 찍을때 현장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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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이후의 데니스 윌슨
금발 미남에서 예수가 되었다.

1 개요

Dennis Carl Wilson (1944~1983)

비치 보이스의 멤버이자, 윌슨 가의 차남. 주로 드럼을 맡았다. 서핑을 즐겼으며 바다에서 삶을 마쳤다는 점 때문에 The Real Beach Boy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 비치 보이스

내게 필요한건 큰 서프보드와 피아노 뿐이다.

- 데니스 윌슨

어린 시절 항상 사고를 치고 다녀서 집에서는 거의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1] 원래 브라이언만이 밴드를 할 생각이었으나 어머니의 '둘째도 좀 끼워서 해라'(...)는 말에 의해 비치 보이스에 합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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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과 함께.

마땅히 컨셉이 없었던 밴드에 사촌형인 마이크 러브와 함께 서핑과 여자, 자동차라는 정체성을 부여한 멤버이며[2] 밴드 내에서 유일하게 실제로 서핑을 즐기는 남자였다. 또한 여자를 한껏 끼고 다니거나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등 그야말로 비치 보이에 가장 가까운 인물. 그렇다보니 그가 겪은 여러 이야기들이 초기 비치 보이스 노래들의 가사 모티브가 되었는데, 그 예로 Fun, Fun, Fun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밴드에서는 드럼을 맡아 연주하게 되는데, 엄밀히 말해서 테크닉이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당시 록밴드 드러머로서는 드물게 강하고 파워풀한 드러밍을 바탕으로 톰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그루브가 넘치는 연주를 했고, 라이브에서의 쇼맨쉽 또한 훌륭해서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브라이언이 요구하는 정교한 사운드를 잘 뽑아내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손목 통증을 앓게 되며 드럼은 한동안 그만두게 된다.[3]그러다가 15 Big Ones 앨범을 전후로 다시금 드럼스틱을 잡게 되어 이전보다 더욱 파워풀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보컬 하모니에서는 마이크 러브와 함께 바리톤을 맡았으며, 초기 곡 중 This Car of Mine에서는 메인 보컬로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데니스는 점점 자신이 제안한 서프 음악에 대해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며 이윽고 형 브라이언의 음악적 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멤버가 된다. 데니스는 비치 보이스 비운의 명작 SMiLE에 대해 사실상 유일하게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멤버였으며 수록곡 중 You Are My Sunshine의 메인보컬을 맡았다.

브라이언 윌슨이 정신병과 피로로 인해 밴드를 떠난 뒤 오히려 데니스의 음악적 능력은 일취월장한다. 20/20 앨범[4]이 나올 즈음해서는 앨범 당 적어도 데니스의 곡의 세 곡 이상씩은 실릴 정도로 비중도 늘었고, 점점 곡의 퀄리티가 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Sunflower 에 수록된 명곡 Forever가 데니스의 곡으며, 이후에도 Cuddle Up, Little Bird 등 중후기 명곡 다수를 작사작곡하였다.

작사작곡은 주로 데니스의 절친이자 송라이터였던 그렉 제이콥슨 (Greg Jacobson)과의 협업 하에 이루어졌다.

3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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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비치 보이스의 멤버 중 가장 먼저 솔로 앨범을 발매한 것이 바로 데니스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솔로 앨범인 Pacific Ocean Blue를 발표하는데 평론가들의 열광적인 반응과 당시의 비치 보이스 앨범보다도 더 높은 차트 성적을 찍는데 성공하며 명반 대접을 받는다. 점점 쇠퇴해가는 해변의 흥겨운 분위기와 미국 서남부의 느낌을 당시 데니스 특유의 감성으로 훌륭히 포착했다는 평.

Pacific Ocean Blue 가 상당한 호평을 받아내자 데니스는 자신감을 가지고 2집 Bambu[5] 를 준비하지만 녹음 중 만취 상태로 서핑보드에 올랐다가 39세라는 젊은 나이로 익사하고 말았다. 그의 장례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도움으로 국장으로 치뤄졌다. 데니스의 죽음 이후 비치 보이스는 본격적인 암흑기로 돌입한다.

4 기타

윌슨 형제의 삼남인 칼이 브라이언과 단순히 '각별한 사이의 형 동생' 같은 느낌이었던데 반해, 남아있는 인터뷰 등에서 확인해 볼 때 데니스는 브라이언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하다시피 했으며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희한한 관계였다. 심지어 데니스는 인터뷰에서 '비치 보이스가 곧 브라이언 윌슨이고 브라이언 윌슨이 곧 비치 보이스다. 우리는 전부 그의 악기일 뿐이고, 그가 없는 비치 보이스는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또한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브라이언이 유진 랜디에게 착취당할 때 브라이언의 애원에 몰래 마약을 갖다 주었다가 유진 랜디가 고용한 경호원들에게 두드려 맞는 (....) 등 눈물겨운 형제애를 보여준다.

사촌형인 마이크 러브와는 중기 이후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버리게 되는데, 특히 브라이언이 제정신이 아닐 당시 나온 똥반앨범 M.I.U Album에 대해서는 "내 인생의 수치이자 자아파괴다. 카르마[6]가 마이크 러브의 명상을 다 조져놨으면 좋겠다"라는 격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찰스 맨슨과의 관계를 지적받는데, 데니스는 비치 보이스의 중기 즈음 해서 히피 생활을 하던 중이었고 그 때 찰스 맨슨을 만나게 된고 레코드 회사에 소개시켜 준 것은 사실이나[7] 당시에도 데니스는 맨슨을 썩 좋게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반 다이크 파크스의 회상에 따르면 몇 번의 협업 이후 맨슨이 비치 보이스를 상대로 개드립을 치자 데니스가 맨슨을 개패듯이 팼고, 이후 맨슨과의 관계는 끝났다고 한다.

히피처럼 생활했던만큼 여자 관계는 당연히 (...) 복잡한데, 밴드 시카고의 멤버 로버트 램의 전처 카렌 램, 심지어 사촌 마이크 러브의 딸 등과 결혼하기도 했다.

배우로서의 재능도 있어 영화에 몇 편 출연하기도 했다. 다른 비치 보이스 멤버들과 함께 조연으로 'The Girls on the Beach' 에서 데뷔한 뒤 명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몬테 헬만의 자유의 이차선 (Two-Lane Blacktop) 의 주인공 중 하나를 연기했다. [8] 196-70년대 자동차 경주를 하는 청춘들의 허무함을 다룬 자유의 이차선은 당대에는 인기를 얻지 못했으나 재상영과 재평가를 거쳐 196-70년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걸작으로 꼽힌다. 한국에서는 서울시네마테크에서 몇번 상영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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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뮤지션들이 지금 살아 있었더라면 어떤 모습일까' 라는 느낌으로 기획된 Sach Media Group 의 가상 사진 시리즈에 엘비스 프레슬리,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등과 함께 수록된 모습. 2015년 기준으로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72세였을 것이다.

데니스의 일생을 그린 전기영화 드러머 (The Drummer) 가 촬영되고 있었으나 현재 엎어진 상태. 일단 데니스 윌슨 역으로는 다크 나이트하비 덴트 역으로 유명한 아론 엑하트, 데니스의 딸 역으로 클로이 모레츠가 내정되어 있었다.
  1. 일설에 의하면 머리 윌슨의 강압적인 교육에 대한 스트레스를 브라이언은 참으면서 속으로 풀었고 데니스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면서 풀었고 칼은 음식을 먹으면서 풀었다 카더라.
  2. 이 컨셉 결정에는 사실상 마이크 러브의 입김이 가장 강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3. 이때 데니스는 기타와 베이스 등을 배우고, 드럼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공부한다. 물론 보컬, 키보드 등으로 밴드 활동은 지속하였다.
  4. 이 앨범에서 그가 작곡한 All I Want to Do는 하드 록을 시도한 곡이다.
  5. 이 때 녹음된 곡들은 The Bambu Sessions 라는 이름으로 1집이 복각될때 함께 묶여서 발매되었다.
  6. 마이크 러브가 힌두교도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추측된다.
  7. 맨슨의 곡 Cease to Exist를 고친 Never Learn Not to Love가 앨범 20/20에 실려 있다.
  8. 나머지 주인공도 심히 화려한데, 'Fire and Rain'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가수 제임스 테일러샘 페킨파가 총애했던 워렌 오츠가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