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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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남구 용당동 옛 동명목재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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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0년 6월 까지 한국존재했었던 재벌이자, 한때 세계 1위 규모 목재 합판 가공업체.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사라진 첫번째 재벌이다.

2 연혁

1925년 부산시 동구 좌천동에 개업했던 동명제재소가 그 기원이다. 1959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원목을 수입하여 가공하게 된 것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승승장구 했으며, 1964년에는 남구(당시 부산진구) 용당동에 대규모 목재 가공 공장을 만들었다.

1965년 당시 국내 재계서열 1위의 재벌이었고, 1970년대 당시에는 한국에서 7년 연속 수출 1위 기업이었다. 해체 직전 까지만 해도 동명해운, 동명페인트, 동명산업, 동명중공업[1][2], 동명개발, 동명식품[3] 으로 구성된 6개의 다양한 자회사와 동원공업대학(현 동명대학교), 동원공업고등학교(현 부산항만물류고등학교)를 보유한 굴지의 재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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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도 종합소득 랭킹 1위 강석진 동명목재 회장 2위 조중훈(대한항공)의 3배가 넘고 3위와는 11배 다만 이후에는 사업이 부진했던 것인지 1976년 5위 , 1977년 3위, 1978년 8위로 정체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물론 그래도 대단하지만.

2.1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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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에 의하여 강압적으로 작성된 강석진 회장의 포기각서

하지만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전두환에 의해 표면상 강제헌납의 형태로 1980년에 어이없게 강탈당해 사라지고 말았다 (...) 일설에 의하면 박정희 말기였던 1969년에 당시 2대 부산시장이었던 김대만 부산시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는데 이를 강석진 회장이 변호하다가 같은 시기 동명불원[4]을 고급묘로 이장하는 것이 차지철의 시야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해체 원인이라는 카더라가 있지만 이건 명백한 거짓이다. 이후 1980년 제5공화국 신군부가 들어서자마자 동명목재 노동자 투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 투쟁이 그룹자체를 와해시켰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제5공화국 시절 비슷한 이유로 희생된 국제그룹과 비교하면 둘 다 부산을 중심으로 성장한 재벌이었던 공통점이 있고, 당연하게도 두 그룹의 창업자 모두 말로를 어이없게 맞이하였다.

2008년에서야 신군부에 의한 강탈로 결론났지만, 실의에 빠진 강석진 회장은 동명목재를 강탈당한 뒤 화병을 얻어서 1984년에 이미 작고했고, 그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반환 소송을 걸었지만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번번히 기각당하고 말았다. 공장 터는 현재의 항만물류고교 남쪽으로 추정. 그나마 옛 동명목재그룹중에 현존하고 있는 것이 동명대학교와, 부산항만물류고등학교(舊 동명정보공업고) 정도. 그 외에 동래구에 있는 해바라기 맨션도 동명목재그룹 산하의 동명개발이 금양이라는 건설업체와 공동으로 건설한 것이고 현재도 남아있다.

정치권력이 돈에 환장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국제그룹의 사례와 더불어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 참조

  1. 주로 전기 지게차를 만들던 업체였다. 배터리 전기 차량이었던것을 생각하면 당시 꽤나 시대를 앞섰을지도..
  2. 이후 두산중공업에 인수되어 두산모트롤이 됨
  3. 동명목재그룹 말기인 1970년대 이후에 설립된 업체였다.
  4. 가족묘였다고 한다